모세오경을 비롯한 구약성서!
모세오경이라고 해서 모세가 직접 썼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언제 이스라엘 민족을 지도하고 언제 또 글을 썼겠는가? 아무리 부지런한 사람도 몸이 열개라도 그리 하지 못할 것이다.
구약성서는 기원전 1200년부터 기록되기 시작해서 기원전 2세기까지 약 천년에 걸쳐 기록되고 편집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선조들과 야훼 사이에 맺은 옛 계약(구약)의 전개과정을 입에서 입으로 전하다가 기록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따라서 차츰 글로 옮겨지게 되었다.
이렇게 기록된 것들은 각 지방과 시대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뉘어지게 되었는데, 구약성서의 대부분은 헤브라이 어(히브리 어)로, 상당부분이 그리스 어로, 아주 조금만 아람어로 씌여졌다.
기원전 3세기에 지중해와 오리엔트 세계를 제패한 헬레니즘이라는 문화적 배경으로 당시의 공용어인 그리스 어로 옮겨지기 시작했는데,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알렉산드리아에서 나온 70인역이었다. 당시 유대인들은 자신의 조상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구약성서가 각 지역과 시대에 따라 성서 목록이 서로 다른 탓에 말들이 많음을 알고 이러한 혼란을 막기 위해서 서기 90년경 팔레스티나의 '얌니아'라는 곳에 모여 히브리어로 쓰여진 39권만을 정경목록으로 확정하였다(가톨릭 교회는 이 39권을 제1경전이라고 부름).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었다. 가톨릭이 제 2경전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7권(토비트, 유딧, 지혜서, 집회서, 바룩, 마카베오서 상, 하권) 이 앞에서 말한 39권의 정경목록을 확정한 얌니아 모임에서 빠진 것이다(그래서 개신교에서는 외경이라 함).
그래서 서기 382년에 열린 로마 회의에서 제 2경전(외경)을 포함한 총 46권의 구약과 27권의 정경 목록을 확정하였다.
그렇다면 어째서 얌니아 회의에서 7권을 왜 구약성서의 정경목록에서 누락시켰을까?...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당시 유대교와 신흥종교였던 크리스트교와의 미묘한 관계를 비교해보면 조금 이해가 간다. 초창기의 신도들은 이미 그리스어 구약성서인 70인역을 사용하고 있었고, 그리스어의 공용어로서의 위상과 이에 대한 유대인의 반감이 자신들에게 비교적 생소한 7권의 저서를 정경목록에서 제외시키는데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동했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한편 종교개혁가 루터는 신,구약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라틴어 번역본인 불가타역을 원본으로 하지 않고 구약성서의 경우 7권의 성서가 포함되지 않은 히브리어 성서에서 직접 번역함으로써 유대교와 마찬가지로 39권만을 프로테스탄트 성서로 채택, 사용하게 되었다.
신약성서의 형성과정
원시 크리스트교 공동체는 예수의 생애가 신과 인간의 관계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기술해야 할 필요성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전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선교활동을 하려면 예수의 직계 제자들만으로는 크게 부족하였다.
선교 주체의 폭이 넓어지자 처음 설교의 내용을 구성하였던 예수에 관한 정보가 희석되거나 왜곡될 위험이 나타났다. 예를 들어 10명 정도의 사람을 세워 놓고 처음 사람이 한 말과 가장 마지막 사람이 받아 들이는 말과는 차이가 나는 이치나 마찬가지이다. 본래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보다 신빙성 있는 방법이 필요하게 되었고, 이러한 필요에 부응하기 위해 한편으론 예수의 가르침과 행적이 보존되고 복음선포의 지침서로 사용되도록 예수에 관한 전승들이 모아졌으며 현재의 복음서로 정리되었다.
다음으로는 예수의 행적과 사도들의 행적을 기록한 4복음서와 사도행전 이외에 지역 공동체들의 신앙을 감독하고 견고케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목회서신이었다. 사도들은 문제해결을 위해서 자신이 직접 갈 수 없었을 경우에는 편지를 써서 공동체에서 일어난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줄 수 있었다.
이러한 사도들의 서간문은 매체론적으로 보아서도 매우 효과적이었다. 다시 말해서 직접 사도들이 들이 발로 뛰는 것보다 훨씬 넓은 지역과 기록의 최대 장점인 지속성으로 오랜 기간에 걸쳐 사도들의 신앙지도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사도 시대가 끝날 무렵 이미 바울로 서간문이 정리되기 시작하였다. 이처럼 크리스트교 고유의 문헌이 작성되는 과정에서 일련의 문서를 교회의 권위있는 글로 선별하는 작업이 일찍부터 진행되고 있었다.
예수의 직계 제자들이 하나 둘 세상을 뜨자, 교회 공동체가 갖가지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의지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사도들의 글 뿐이었다. 즉 교회문제 해결사로서의 중요성이 증인이었던 사도에게서 이제는 특정 문서들에게 옮겨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느 것이 과연 진정한 사도전승인가하는 진위 여부를 가려야 하는 문제들이 공동체로 하여금 권위있는 문집, 즉 정경을 이루게 하는 자극제로 작용하였다.
신약성서는 27권으로 되어 있는데, 27권의 문헌들이 모여 신약성서가 이루어지는 데는 그야말로 오랜 시일이 걸렸다. 약 3백년이라는 기간을 통해 교회에서 이 문헌들을 식별 검토하여 비로소 정경으로서의 신약성경이 이루어지게 되었는데, 여기서 소위 정경이라고 번역되는 카논(Canon)은 원래 '갈대'라는 뜻이며 여기서부터 길이를 재는 '잣대' 또는 사물 판정의 '기준, 표준'이라는 뜻이 파생되었다.
카논을 신약성서와 관련해서 사용하는데는 긴 시간이 걸려야 했다. 신약성서를 정경(카논)이라고 부르게 된 동기는 이 문헌이야말로 크리스트교 공동체를 위한 신앙과 생활의 기준, 혹은 규범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교회에서 카논을 정령목록이란 뜻으로 사용한 것은 기원후 4세기부터이며, 정경에 반대되는 것을 위경(僞經.Apocrypha)이라 하였다.
여기서 한 가지 정리했으면 하는 가톨릭과 개신교 간에 성서에 관한 용어상의 차이가 있다. 가톨릭은 구약의 경우 정경으로 삼고 있는 46권 이외에 그와 유사한 성서적 작품들을 가리켜 위경(僞經, Apocrypha)이라고 하지만, 개신교는 7권의 제 2경전을 'Apocrypha(한국 개신교는 이를 외경(外經)으로 번역), 그 밖의 다른 작품들 즉, 가톨릭의 'Apocrypha(위경)'를 'Pseudepigrapha(한국 개신교 이를 위경(僞經)으로 번역)라고 부르고 있다.
신약의 경우는 신구교 모두 정경목록상의 차이가 없으므로 27권 이외의 작품을 가리켜 'Apocrypha'라고 하고 있으나 우리나라의 경우 가톨릭은 위경(僞經)으로, 프로테스탄트는 외경(外經)으로 번역 사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