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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빛 참꽃 세상 가람터 고려산
고려산(高麗山) 고려산은 수도권에서 진달래명산으로 알려졌으며 해마다 강화군에서 진달래 축제를 이어가고 있다. 4월 하순, 20여만 평 능선과 비탈에 연분홍 물감을 풀어놓기라도 한 듯 천지가 꽃 바다를 이루고, 봄철에는 진달래 군락지가 있어 장관을 이루는 산이며 또한 낙조봉과 그 능선의 진달래 빛은 상봉 일대의 모습에 뒤지지 않는다. (2013년 4월 30일 화요일)
■ 아름다운 그림 (고려산)
고리산 군의 강화읍 · 송해면 · 하점면 · 내가면이 경계하는 지점에 위치한 산.(고도:436m). 강화 6대 산의 하나로 전한다. 강화도에서 마니산(469m) · 혈구산(466m) · 진강산(441m) 다음으로 높은산으로 1696년에 편찬된 『강도지』에 "홍릉(洪陵)과 국정(國淨), 적석(積石), 백련(白蓮) 등의 세 절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 아름다운 그림 (고려산)
주말엔 산객들로 발디딜 틈이 없을것 같아 평일에 왔지만 생각과 달리 평일에도 산춘객들로 넘쳐나는 이곳엔 강화 역사박물관이 있는 고인돌광장에 진달래축제 운영본부및 주차장을 설치해 놓고 이곳에서 부터 고려산에 오르게끔 행사 관계자들의 단속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오늘의 산행 들머리는 고인돌광장에 주차를 한뒤 부근리 마을로 들어서면서 산행을 시작하므로 부근리가 산행 들머리가 되겠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강화부 서쪽 15리에 있으며 강화부의 진산(鎭山)이다."라고 되어 있고, 『강화부지』에도 강화부의 진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와 『조선지지자료』에서 지명이 확인되며, 『대동여지도』에는 고려산(高呂山)으로 한자 표기가 되어 있고 동쪽 산록 끝에 강화읍성이 위치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 아름다운 그림 (고려산)
고려산 오련지 유래
고구려 장수왕 4년에 인도의 천축조사가 가람터를 찾기 위해 고려산을 찾았다. 그는 정상에 피어있는 5가지색상의 연꽃을 발견하고 불심으로 이를 날려 꽃이 떨어진 장소마다 절을 세웠다.
하얀 연꽃이 떨어진 자리엔 백련사를,
흑색 연 꽃이 떨어진 자리엔 흑련사를,
붉은 연꽃이 떨어진 자리엔 적석사를,
황색꽃이 떨어진 자리엔 황련사를,
청색 꽃이 떨어진 자리엔 청련사를 각각 지었다.
그러나 청년사만은 조사가 원하는 장소에 떨어지질 못해 원통한 나머지 ‘원통 암’이라는 절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현재 고려산 주변엔 3개의 사찰과 1개의 암자가 천오백년을 넘게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한때는 이곳에 자리한 연못을 오련지라고도 하였으며 산이름을 오련산으로, 다 섯개개의 사찰을 하나로 묶어 오련사라고도 불렀으며 후에 오련산은 고려가 강화도로 천도하면서 고려산으로 개명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 아름다운 그림 (고려산)
고려산은 고려의 정기를 품은 산으로 진달래가 피는 봄의 모습도 좋지만 백련사, 적석사 등 사찰과 고인돌 군락지, 오련지, 홍릉 등 문화재가 분포하여 역사탐방 위주의 산행에도 좋다. 서쪽 적석사를 가다보면 솔밭을 지나고 갈대밭을 지나 낙조봉을 만날 수 있는데 저녁에 서해 수평선 바닷물을 붉게 물들이며 해지는 광경은 [강화8경]중 하나이다.
■ 아름다운 그림 (고려산)
연개소문 치마대 전설이 서린 고려산
고려산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연개소문에 관한 구체적인 전설이 있는 장소이다. 고려산 인근에서 태어나 치마대에서 말을 타고 무예를 닦았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오련지에서 말에 물을 먹였다고도 하는 전설이 있다.
연개소문을 가리켜 독립운동가이자 역사학자인 단재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위대한 혁명가로, 박은식은 [천개소문전]에서 독립자주의 정신과 대외경쟁의 담략을 지닌 우리 역사상 일인자로 평가했다. 연개소문은 시대에 따라서 그 평가가 달라져왔다. 한때는 독재자로, 아니면 거 대한제국에 맞서 나라를 지켜낸 민족최고의 영웅으로 부침이 잦았다. 올해도 고려산 진달래는 유난히 붉은 꽃잎을 처연하게 피우고 있다.
■ 아름다운 그림 (고려산, 진달래 축제장)
진달래가 고려산 가득히 펼쳐진 진홍빛의 향연을 가슴 가득히 느낄수 있는 고려산 진달래 축제. 고려산 진달래는 4백고지가 넘는 산에서 꽃을 피운다. 결코 낮지 않은 산이기에 이를 보기위해 애쓰며 오른 산객들의 감동은 더욱 큰 울림이 되어 산객들의 마음을 치유한다. 미술전과 사진전, 등산로에서 열리는 작은 음악회, 화전만들기와 거리예술(캐리커쳐, 벽화미술)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체험하고 즐기며 추억을 만들수있는 축제다. 처연한 역사가 깃든 고려산에서 아름다운 진달래도 보고 강건너 북녘하늘도 감상하며 일상의 지친 몸과 마음에 활력을 가득 담아 가는건 어떨까..
■ 아름다운 그림 (고려산)
■ 아름다운 그림 (고려산)
고려산이란 지명
고려산은 1232년 몽골의 칩임을 피해 고려왕조가 강화도로 천도했던 시기에 붙은 지명이다. 고려 왕조는 궁의 주산을 고려산이라 부르며 개경 시절을 그리워했다고 한다.
뭍에서는 이민족의 침입으로 백성들이 도륙당하거나 말거나 이곳에서 무신정권의 비호를 받았던 고려 왕조는 불과 38년 만에 강화 시대를 접고 개경으로 돌아간다. 고려산 주변에는 그 38년 시기의 고려 유적들이 잔존한다. 이후 고려는 원나라의 부마국으로 전락하고, 정권을 유지할 수 없었던 무신들은 삼별초라는 이름으로 진도~제주도를 거쳐 몽고에 맞서다가 토벌당한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조선 건국 후 남아있던 고려 왕족들이 강화도 유배길에 손돌목에서 대부분 수장당했다는 사실에 있다. 이후 王이란 성씨를 사용할 수 없어서 全씨, 金씨 등으로 고려 왕족들이 개명한 사실은 너무 유명하다.
■ 아름다운 그림 (고려산)
고려산 정상엔 고려산 이정표가 정상석을 대신하고 있다. 정상(해발 436m)에 오르면 북한 송악산과 연백을 비롯해 교동도 일대의 강화 앞바다, 영종도 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바다와 이어지는 한강, 임진강, 예성강 등도 한눈에 들어온다.
■ 아름다운 그림 (고려산)
진달래는 고려산을 찾는 이유 중 하나다. 봄만 되면 정상 앞 비탈에는 잡목이 없이 빽빽하게 들어선 진달래가 군락을 이룬다. 산 정상에서 능선 북사면을 따라 355봉까지 약 1㎞를 연분홍으로 물들이는 향연을 만들어낸다. 등산보다는 진달래 감상이 우선이면 산 뒤편에서 오르는 게 빠르고 편하다.
■ 아름다운 그림 (고려산)
전통풍속 화전놀이가 봄꽃축제의 유래?
화전놀이의 역사는 확실치 않지만 멀리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특히 조선시대 화전놀이는 양반 부녀자들에게도 기품 있는 풍류놀이로 자리잡았다. 그 전통은 일반 백성들에게도 퍼져나가 농촌마을에서는 1960년대까지 이어졌다. 해마다 진달래꽃이 피는 음력 삼월 삼짇날 즈음에 마을단위로 여성들이 함께 화전놀이를 하며 하루를 즐겼고 진달래가 피기 시작하면 마을단위로 여성들은 미리 계획을 세웠다.
꽃놀이 장소는 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진달래꽃이 많이 피어난 골짜기나 산자락으로 잡았다. 각종 음식이며 노래하고 춤출 때 장단을 맞출 장구나 놀이기구 등도 미리미리 서둘러 준비를 했고, 평소에는 엄하기만 했던 시어머니들도 이때만큼은 며느리들의 꽃놀이를 허용하고 참견하지 않았다. 꽃놀이 당일엔 남성들이 음식이며 각종 요리기구 등을 운반해주고 놀이터 주변정리까지 맡아서 돌봐주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옛날 여성들의 삶은 참으로 고달팠다. 자식들을 낳아 기르고, 시부모를 섬기며 농사일에 매달려 살기에 바빠 놀이다운 놀이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힘들게 살아오던 여성들이 모처럼 같은 처지의 이웃들과 함께 어우러져 하루를 즐겼기 때문에 그 흥겨움과 감회는 남달랐을 것이다. 이날만큼은 참가한 모든 여성들이 힘든 농사일이나 가정의 모든 시름을 내려놓고 마음껏 즐겼다. 이때 빠뜨리지 않고 만들어 먹는 음식이 화전(花煎)이었다. 진달래꽃 부침개다. 맛은 과연 얼마나 좋았을까? 화전놀이라는 이름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
■ 아름다운 그림 (고려산)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노래도 있다.
"어화세상 동무들아 구십춘광 봄이로다. 뒷동산에 두견새는 봄소식을 전하온데, 무심한 우리들은 봄 온 줄을 몰랐구나, 규중에 깊이 싸여 여중지사 하노라고, 시절을 몰랐더니, 만화방초 볼자시면 춘삼월이 분명하다.
상촌 하촌 동무들아 화전놀이 가자시라. 일년 삼백 육십일에 규중에 있던 몸이. 하로 소풍 못할손가 소풍삼아 화전가자. 각성 각댁 통기하야 친구 벗들 서로 정해. 이날 갈가 저날 갈가 서로서로 의논하여. 그중에 좋은날을 골라 골라 생각하니. 삼월삼짇날이 분명하다,"
-전통 민속 '화전가(花煎歌)' 중에서-
화전놀이를 하는 날은 모든 참가여성들이 복장과 화장 등 몸치장에도 각별한 정성을 들였다. 가정일과 농사일에 바빠 몸치장은 엄두도 내지 못했던 여성들이 모처럼 아름답게 멋을 부리는 날이었다. 아름답고 멋진 모습으로 즐기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햇살이 따사로운 봄날에 곱고 예쁜 진달래꽃밭에서 꽃을 전으로 부쳐 먹으며 마음껏 노래하고 춤추는 아리따운 여성들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풍류는 결코 일부 양반과 선비계층들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던 셈이다. 비록 1년 중 봄날의 하루였지만 서민 여성들도 즐겼던 화전놀이, 요즘 한창인 봄꽃축제의 유래를 우리전통 민속놀이였던 화전놀이에서 찾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 아름다운 그림 (고려산)
고려산은 지난 1986년 산불로 고려산 전체를 태워, 울창했던 삼림은 잿더미로 변해 수십년 세월을 지나는 동안 그 지역 면민들이 진달래가 아닌 잡목들은 꾸준히 모두 베어내서 그들의 아이디어와 땀으로 고려산 북편에 오늘날 60여 평방미터의 전국 최대의 진달래 군락지를 만들어냈다. 고려산의 참꽃..그 분홍빛 참꽃속에 그들의 노고가 함께 피었으리라.
2003년 부터 '고려산 진달래 축제(현재는 예술제)'를 개최하게 되었으며, 강화군은 강화를 상징하는 군화(郡花)를 백일홍에서 진달래로 바꾸었다.
■ 아름다운 그림 (고려산)
여의화장(如意花杖)
탐스럽게 핀 고려산 진달래 가지로 꽃방망이를 만들어서 앞서가는 여성의 등을 치면 사랑에 빠지고 남성의 머리 를 치면 장원급제 한다는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져있다.
■ 아름다운 그림 (고려산)
진달래
진달래는 잎이 나오기 전인 4월부터 가지 끝에 2~5송이씩 모여 피며, 통꽃으로 꽃부리 끝은 5갈래로 조금 갈라져 있다. (수술은 10개, 암술은 1개.)
진달래는 한국에서 아주 오래 전부터 개나리와 함께 봄을 알리는 대표적인 나무로 사랑받아 왔으며, 봄에 한국의 산 어디에서나 꽃을 볼 수 있을 만큼 널리 퍼져 있다. 개나리가 주로 양지바른 곳에서 잘 자라는 반면에 진달래는 약간 그늘지며 습기가 약간 있는 곳에서 잘자라고, 가지가 많이 달리기 때문에 가지치기를 해도 잘 자라며 추위에도 잘 견딘다.
꽃은 따서 먹을 수 있으므로 날것으로 먹거나 화채 또는 술을 만들어 먹기도 하며, 화전을 부쳐 먹기도 한다. 술을 빚어 먹을 경우 담근 지 100일이 지나야 맛이 난다고 하여 백일주라고도 하며, 한꺼번에 많이 먹지 말고 조금씩 먹어야 몸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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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전설.
진달래를 두견화(杜鵑花)라고도 하는데, 이는 두견새가 밤 새워 피를 토하며 울어, 그 피로 꽃이 분홍색으로 물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탐스럽게 핀 고려산 진달래 가지로 꽃 방망이를 만들어 앞서가는 여성의 등을 치면 사랑에 빠지고 남성의 머리를 치면 장원급제 한다는 재미있는 전설도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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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8경
*제1경:전등사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성면 온수리635 에 있는 "전등사"는 단군왕검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전설을 간직한 [삼랑성]내에 아늑히 자리잡은 사찰로 고구려 소수림왕 11년(372)에 "아도화상"이 창건하여 [眞宗寺]라 했다가 그후 고려 충렬왕비 "정화공주"가 이 절에 귀한 옥등을 시주했다 하여 "전등사"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제2경: 보문사 강화군 삼산면 매음리 629 에 있는 "보문사"는신라 선덕여왕 4년(635)에 "회정대사"가 금강산으로 부터 이곳에 와서 처음 창건하였으며, 우리나라[3대 관음성지]로 "기도처"로 유명한 사찰이다.
*제3경:연미정 강화군 강화읍 월곶리 242 에 있는 정자로 고려 고종이 九齊하기 위하여 학생을 이곳에 모아놓고 勉學하였다는 기록이 전하며,조선 중종 5년(1510) 삼포왜란때 방어사가 되어 왜적을 무찌르고 1512년에 순변사가 되어 반란을 진압한 공로로 "황형"에게 이 정자를 하사햇다고 한다. ↓
■ 아름다운 그림 (고려산)
*제4경:갑곶돈대 강화군 강화읍 갑곳리 1020 일원에 있는 돈대로 고려 고종19년(1232)부터 원종 11년(1270)까지 도읍을 강화도로 옮긴 후 조선 인조 22년(1644)에 설치된 "제물진"(갑곶진)에 소속된 돈대로 숙종5년(1679)에 축조되었다.
*제5경;마니산 강화군 화도면 일원에 있는 해발 468m로 "참성단'은 단군의 천제를 올리던 곳임.
*제6경:광성보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 833 에 있는 "광성보"는 조선 효종 9년(1658)에 설치 되었으며, 1679년(숙종5년)에는 '용두돈대''오우돈대' '화도돈대' '광성돈대'등 소속돈대가 설치되었다.
*제7경:초지진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 624 에 있는 해상으로 부터 침입하는 외적을 막기위해 조선 효종 7년(1656)에 구축한 요새이다.
*제8경:적석사 강화군 내가면 고천리210-3 즉 고려산 서쪽에 위치한 사찰로 고구려 장수왕 4년 (416)에 천축국 스님이 고려산에 올라 오련지를 발견하고 붉은 꽃이 떨어진 이곳에 "적련사"를 세웠는데 '적석사'의 전신이었다고 한다.
■ 아름다운 그림 (고려산)
■ 아름다운 그림 (고려산)
고려산이 위치한 강화도는 남북 28㎞, 동서 16㎞, 면적 302.4㎢로서, 제주도․거제도․진도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4번째로 큰 섬이다. 강화도는 원래 두 개의 섬, 즉 원래의 江華島와 마니산을 중심으로 한 古加島로 나누어져 있었으나, 고려시대부터의 간척사업으로 하나의 섬이 되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강화도를 남북으로 잇는 강화지맥의 마룻금을 긋기가 쉽지 않다.
■ 강화지맥도
강화지맥은 강화도의 동북단인 양사면 철산리 해안에서 출발하여 別岳峰, 성덕산, 奉天山(291m), 시루메산, 高麗山(436m), 穴口山(466m), 退帽山(339m), 德政山(325m)으로 이어진다. 그 다음 덕정산에서 산줄기는 두 갈래로 나뉜다. 남동쪽 갈래는 鼎足山(221m), 吉祥山(336m)을 거쳐 가천의과대학 부근에서 맥을 다하며, 이 산줄기는 간척 전의 강화지맥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남서쪽 산줄기는 鎭江山(441m)을 거쳐 간척지를 가로질러 강화도의 최고봉인 마니산(469m)에 올랐다가 분오리 돈대에서 끝이 난다. 즉 덕정산을 중심으로 Y자를 거꾸로 세워 놓은 형상을 하고 있다.
■ 아름다운 그림 (고려산)
강화도의 유물 고인돌
고인돌광장에는 커다란 강화지석묘와 강화도의 역사와 유적지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강화역사박물관이 있어 역사 공부도 함께 할 수 있는 곳이다. 강화의 고인돌은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어있고, 27~28일에는 고인돌문화축제가 고인돌 광장에서 함께 진행된다.
■ 아름다운 그림 (고려산)
이야기로 떠나는 고인돌 여행
현재로부터 오천년전 하점면에 마하부족이 살고 있었다. 어느날 마하부족은 사냥을 나갔다.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마하부족의 족장은 사냥을 시작하기에 앞서 모든 부족인에게 외쳤다.
“자 나의 능력을 보여주겠다!” 마하족장이 주문을 외우는 순간 무기가 청동으로 바뀌었다. 그 무기로 하는 사냥은 대성공 이었다. 사냥이 성공적으로 끝나자 다산을 기원하는 축제가 시작되면서 신명나는 축제가 시작되었다.
“모두들 오늘만큼은 마시며 즐기자!” 축제 분위기는 점점 고조되었고 사람들은 취해서 축제를 즐길 때 쯤 전사 중 한명이 말을 했다. “야 이상한소리 안 들려? ” “우리는 안 들리는데?,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놀아~ ” 소리는 점점 더 크게 들리기 시작했고 그 소리는 라쿤 부족의 침략을 알리는 전갈이었다.
이에 놀란 마하부족은 급히 회의를 하기 시작하였다. “라쿤 부족이 침략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하늘아래 2명의 군장이 있을 순 없다! 전쟁을 선포하겠노라” 적의 침략에 분노한 마하족장은 전쟁을 선포하고 돌입하기 시작하였다.
본격적으로 마하족과 라쿤족의 전쟁이 시작되었고 마하족 전사들이 한두 명씩 죽음을 맞이하고 전사들의 죽음에 족장은 비통해 하며 눈물을 흘렸다. “나의 욕심으로 부족원들이 죽었구나... 다 내 탓이다...내 탓...” 마하족장의 진실한 그 눈물로 인해 마하족장 앞에 빛이 환하게 비추면서 칠선녀들이 내려왔다.
“족장님이 마하족 전사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크므로 전사들을 살려드리겠으니 이 빛을 전사들에게 뿌려 주세요.” “정말입니까? 선녀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칠선녀가 준 빛으로 전사들은 살아났고 전쟁의 승리는 마하부족에게 돌아갔다.
“족장님 드디어 우리 마하부족이 이겼습니다!” “그래...우리 부족이...이겼구나...기쁘도다!” 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족장은 전쟁에서 입은 상처를 움켜쥐며 쓰러졌다. 슬픈 승리로 끝난 이 전쟁에서 마하족 전사들은 “하늘에서도 보이게 족장님의 큰 무덤을 지어라!” 마하족의 전사들은 눈물을 흘리며 무덤을 지었고 이 완성된 무덤을 고인돌이라 부른다.
■ 아름다운 그림 (고려산)
강화도의 유래 및 역사(1)
강화군은 멀리 국조 단군성조의 개국과 그 역사를 함께하며 도서 특유의 지정학적 숙명으로 고금을 통해 왕실의 흥망성쇄가 곧 강화군의 역사를 이룬 것이라고 하겠다.
강화의 옛 이름은 갑비고차라 불리웠고, 고구려 시대에 이르러 군제를 두어 혈구군이라 칭하였으며, 신라때에 이르러 해구군으로 개칭하고 태수를 주재시켰다.
고려조에 이르러 태조 22년에 현으로 개편되고 이어 현재 지명인 강화군으로 불리웠다. 강화는 국가에 커다란 변란이 있을 때마다 제 2의 서울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외적이 침입할 때마다 조정에서는 강화로 천도함으로써 강화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강화는 39년간이나 사실상의 고려조의 왕도 역할을 하게 되었고, 그 후에도 수차의 천도가 있었던 바 처음으로 강화에 천도한 것은 고려 23대 고종이었다. 그 해 대륙에서 득세한 신흥 세력인 몽고군이 송경, 지금의 개성에 침범하자, 당시의 권신 최우의 권유로 8월에 천도하였고, 그 다음 대의 원종도 강화에 머물러 전후 39년간 강화는 사실상 고려의 서울이었다.
■ 아름다운 그림 (고려산)
강화도의 유래 및 역사(2)
그 뒤 25대 충렬왕은 재위 17년 12월에 또다시 거란군의 화를 입어 강화에 들어 왔다가 2년 후에야 겨우 송도로 환도하는 등, 강화는 양차에 걸쳐 고려 정치의 중심지였던 것이다. 고려는 고종때의 천도를 계기로 당시의 서울인 송도를 폐하고, 강화를 항구적인 도읍으로 삼으려 했던 모양이다.
고려 제23대 고종은 그해 8월(음 6월)에 송도에서 강화로 옮기면서 이령군으로 하여금 국도의 방어선인 내성의 축조공사를 일으키는 한편 궁전 구장과 사찰, 사직 등을 모두 당시의 왕도인 송도를 모방케 하고, 궁전 배후의 산에 송악이라는 산 이름까지 짓게 했던 것이다. 내성이 완공되자 익년 겨울에 외성을 쌓게 했고, 22년 9월에는 연안의 방비를 강화하였으며 24년 12월에는 외성 등을 또 중수했다.
그러나 몽고병의 세력이 날로 강화되어 강화도의 임시 왕도 방어가 위태롭게 되자 마니산 남쪽에 별궁인 흥왕이궁을 마련했고, 5월에는 가궁과 혈구사를 삼랑성에 창설하는 등 갖은 노력을 다 하였으나 끝내 강화는 몽고군에게 유린 되었고, 태자는 볼모가 되어 46년 6월에 몽고 내지로 납치되는 비극이 일어났던 것이다.
태자를 몽고로 보낸채 고종은 강화에서 천명을 다했고, 뒤를 이은 24대 원종도 강화를 서울로 이어받을 생각이었으나 몽고의 압력으로 이를 실현치 못하였다. 이로써 강화는 천도이후 39년간 고려의 국도가 된 셈이다.
■ 아름다운 그림 (고려산)
전국에서 인기가 높은 현지 특산물을 다양하게 보유한 지역도 드물 것이다.
강화군은 쌀과 고구마, 순무, 약쑥, 포도, 배, 수박, 새우젓, 갯벌장어 등 지역 농수특산물을 고가의 고품질 고급브랜드 상품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하고, 강화군의 농수특산물 공동브랜드인 ‘강화마니’로 농수산물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도를 높이고, 농어민 소득 증대에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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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사자발 약쑥과 마늘 이야기.
아버지 환인의 뜻을 이어 받아 처음으로 하늘을 열고 태백산 신단수(신성한 숲) 아래로 내려온 환웅, 아버지로부터 받은 천부인 세 개, 삼천 명의 무리와 함께 인간 세상에 온 환웅은 내려온 곳을 신시라 칭하며 그 곳에서 홍익인간의 뜻을 펼치기 시작한다.
그는 풍백, 우사, 운사를 거느리고 인간들의 곡식, 수명, 질병, 형벌, 선악 등을 주관하면서 인간세계를 다스리고 교화시켰다. 하늘의 신(환인)의 아들이 인간 세상에 내려왔다는 소식에 미천한 짐승들마저 들뜨고 환웅을 보려고 주위로 몰려들게 된다. 환웅이 그 몰려드는 무리들을 헤치고 나와 조용한 산길로 접어들자 한 동굴이 눈에 보여 그 곁을 지나며 들여다보게 된다. 그 동굴 안에는 몇날 며칠을 먹지 못해서 그 형상이 초라한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있는데 환웅이 그 까닭이 궁금하여 그 짐승 둘에게 연고를 물으니 곰이 환웅의 물음에 대답하기를
“하늘 신의 아들 환웅님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먼 길을 돌아서 왔거늘 난 그 분의 얼굴도 모르고 어디에 계신지도 가늠할 수 없기에 이렇게 태백산 아래 동굴에 몸을 숨기고 내가 인간을 될 수 있기를 소원하며 기도하나이다.” ↓
■ 아름다운 그림 (고려산)
환웅이 곰의 대답을 들은 고로 심히 그 마음이 인간보다 순진한지라, 그 짐승 둘을 기특히 여겨 다시 그 마음을 시험해 보고자 하여 다시 묻는 고로 “네가 어찌 사람이 될 수 있겠느냐, 그 어리석은 믿음은 어디서 나오는고? 하늘의 신이 지어준 너의 운명이거늘 하물며 하늘의 신보다 낮은 그의 아들이 어찌 아버지 보다 높은 능력을 지녀서 너를 인간으로 바꾸어 주겠느냐?”
환웅이 꾸짖어 가로되 그 마음을 시험하는지라, 이에 다시 곰이 대답하기를 “환웅님은 인간 세상을 너무 사랑하셔서 아버지께 허락을 받아 내려오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게 저희 인간 세상을 사랑해 주시는 분이시라면 그 인간 세상에 더불어 사는 이 미천한 동물들의 마음도 헤아려 주시고 보듬어 주실 꺼라 생각하옵니다.” ↓
■ 아름다운 그림 (고려산)
환웅이 마음이 감동하여 그 곰에게 다시 묻되 “네가 진실로 인간이 되길 원하느냐?” “예, 그러하옵니다.” “내가 바로 니가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환웅이니라.” 이에 곰이 깜짝 놀라 몸을 땅에 엎드려 절하자, 환웅이 그 짐승 둘에게 약속하는 고로 “네 너희 둘의 마음이 인간보다 순진한고로 곰은 아이를 잉태하는 여자로 범을 사냥하며 여자를 보호하는 남자로 만들 것이니 너희 둘은 지금부터 햇빛이 들지 않는 이 동굴에서 내가 이 인간 세상에 하늘의 기운을 받아 오로지 하늘의 영험한 신비초들을 생산하는 비밀스런 곳, 마니산에서 거두어들인 쑥 한 심지와 마늘 20개를 주리니 이것들을 삼칠일 동안 먹고 인간이 되거라”
이에 곰과 범이 환웅의 뜻을 받들어 이행하는데 범은 성질이 빠르고 포악한 짐승인지라 동굴의 답답함과 식욕을 이기지 못하고 일주일 만에 뛰쳐나가고 오로지 곰만 남아 삼칠일 동안 쑥과 마늘로 견뎌내니 비로소 그 마지막 날에 여자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환웅이 그 모습을 보니 심히 아리따운 여자니라, 환웅이 그 여자의 이름을 웅녀라 짓고 그녀를 취하여 그 아들 단군을 잉태하게 된다. 단군은 후에 장성하여 하늘의 신을 위한 단을 짓고 제사를 지내게 되는데 바로 이곳이 자신의 어머니 웅녀가 아버지 환웅에게 받은 하늘의 신비초인 쑥과 마늘이 자란, 오로지 하늘이 선택하고 허락 받은 땅인 강화도 마니산인 것이다.
■ 아름다운 그림 (백련사)
백련사(白連寺)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 조계사의 말사로, 416년(장수왕 4)에 인도 승려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창건 뒤의 역사는 뚜렷하지 않으나 현존 자료로 가장 오래된 것은 1806년(순조 6)에 세운 의해당의 사리비와 부도이다.
그뒤 1881년(고종 18)에 벽담이 화주가 되어 현왕도를 조성하고, 1888년(고종 25)에도 벽담이 지장보살도·신중도·칠성도·독성도 등을 조성하여 법당에 봉안하였는데, 이 불화들은 오늘날까지 전해오고 있다. 1905년(순조 6)에 인암과 보월이 퇴락한 절을 중창하였으며, 1908년 불상을 개금하고 탱화를 봉안하였다.
■ 아름다운 그림 (백련사)
절 이름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온다. 인도의 한 승려가 절터를 물색하다가 강화의 고려산에 이르러 연못에 다섯 색깔의 연꽃이 핀 것을 보고 연꽃을 꺾어 공중으로 날려 떨어지는 곳마다 절을 창건하였는데, 이곳에는 흰 연꽃이 떨어져 백련사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극락전·삼성각·칠성각·범종각·요사 등이 있다.
■ 고려산 안내도
고려산 등산로
1코스: (백련사-진달래군락지) 총연장 : 3.7km, 소요시간 : 1시간 20분 고인돌광장 [2.1km:48분] > 백련사 [0.9km:18분] > 고려산 정상 [0.7km:14분]> 진달래 군락지
2코스: (청련사-진달래군락지) 총연장 : 2.9km, 소요시간 : 1시간
국화리마을회관[0.5km:12분] >청련사 [1.7km:34분] > 고려산정상 [0.7km:14분] > 진달래군락지
3코스: (적석사-진달래군락지) 총연장 : 5.2km, 소요시간 : 1시간 50분 고천리마을회관 [2.3km:46분] > 적석사 [0.3km:6분] > 낙조봉[1.4km:28분] > 고인돌군[1.2km:24분] > 진달래군락지
4코스: 고비고개-진달래군락지) 총연장 : 2.4km, 소요시간 : 1시간 고비고개 [1.7km:34분] > 고려산정상 [0.7km:14분] > 진달래군락지
5코스: (미꾸지고개-진달래군락지) 총연장 : 5.8km, 소요시간 : 2시간
청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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