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째 타는 자동차
우리 집에는 자동차가 한 대 있다. 내 차가 아니라 아내의 차다. 아내는 이 자동차를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아끼고 사랑한다. 내가 검사를 그만두고 변호사 개업을 할 때 그동안 공직자의 배우자로서 경제적으로는 물론 여러 가지 마음고생까지 시켜 미안하다고 하면서 선물로 사준 것이 이 자동차다. 그러니 만 18년이 지나 이제 19년째 타고 다니는 것이다.
이 차를 살 때 명예퇴직수당이라는 것을 받아놓은 것도 있고 앞으로 변호사로서 수입도 제법 괜찮을 것으로 기대되어 호기롭게 멋진 외제 승용차를 하나 사주려고 했다. 하지만 화가인 아내는 이젤 등 화구(畫具)나 50호짜리 캔버스를 실을 정도만 되면 충분하다면서 아주 실용적인 준중형 SUV를 고집하여 이 차로 정한 것이다.
그 이후 이 차는 바로 우리 집 가족의 일원이 되어 ‘똘이’라는 이름까지 얻었고, 아내 맘에 쏙 들게 말 그대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였다. 내비게이션을 별도로 장착해야 하고 후방카메라가 없어 후진 시 다소 불편해 보이긴 하나(아내는 후방카메라가 없는 것이 오히려 편하다고 한다), 승차감이 매우 좋고 소음이 거의 없으며, 특히 뒷좌석을 접으면 엄청 공간이 넓어져 웬만한 큰 짐은 다 실을 수 있어 제법 효용성이 높다. 서울 방배동 집이 재건축 들어가 양평 집으로 이주할 때도 테라코타 작품이나 부엌 그릇 등 조심해 다뤄야 할 이삿짐은 몇 번에 걸쳐 그 차로 다 옮겨 포터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했고, 얼마 전에는 산림조합에서 특별 판매한 제법 큰 대추나무를 뉘어서 집에까지 거뜬히 가져왔으며, 코스트코에서 구입한 조립식 창고도 담당자는 그 자재가 도저히 차에 안 들어갈 거라고 했는데 아내는 아무 문제 없이 다 싣고 왔다.
그리고 내가 업무용으로 타던 승용차는 국산차 중 가장 고가의 고급차이고 기사가 잘 관리하는데도 잔고장이 잦았은데, 아내의 차 똘이는 말 잘 듣는 착한 아들처럼 전혀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나는 차량 운행 관련 비용이 세금 처리되기도 하고 또 최신 모델을 타고 싶은 욕심에 3년마다 승용차를 바꿨었는데, 정을 안 주어서 그런지 그 차들에겐 매번 ‘비용 처리’할 일이 곧잘 생기곤 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이 똘이의 트렁크에는 아내의 작품 재료나 묘목과 정원용품 같은 다소 험한 짐을 자주 싣고 다닐 뿐만 아니라 아내가 제법 활동적인 편이고 얼마 전까지는 서울의 본가와 양평의 작업실 겸 전원주택을 오가는 생활을 했기 때문에 주행거리도 만만치 않은데도 이 ‘효자’는 아무런 불평 없이 말썽을 일으키지 않고 아내를 안전하게 잘 모시고 다닌 것이다. 과외를 안 시키고도 알아서 공부 잘하는 자식처럼 참으로 신통하고 고마운 일이다.
나는 개인 변호사 사무실을 상당 기간 운영하다가 초대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원장에 취임하여 임기를 마친 뒤 법무법인으로 들어가면서는 따로 승용차를 장만하지 않았다. 내 차가 따로 없지만 별로 불편하지 않다. 자주는 아니지만 간혹 골프 약속이라도 있게 되면 아내는 즐거운 마음으로 나를 똘이에 태우고 그 먼 골프장까지 데려다주고 나중에 다시 데리러 온다. 나에게 똘이의 키를 주지 않는 것은 행여 내가 음주운전이라도 할까봐 걱정이 돼서 그런 것이리라. 이렇게 나만 즐기기 위해 아내와 똘이를 고생시키는 것이 미안해서 요즘은 아내와 함께가 아니면 골프를 잘 안 친다. 양평으로 완전히 이사 오고 나서는 춘천이나 수원 같은 곳에 재판이 있으면 서울 사무실을 들르지 않고 바로 양평서 직접 가는데, 이때는 똘이가 업무용 차량 역할도 훌륭하게 해낸다(이럴 경우 기사 노릇을 하는 아내에게 내가 약간의 ‘사례’를 한다).
그런데 똘이가 아무리 마음에 들고 효자 노릇을 잘한다고 하더라도 너무 오래 운행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래서 나는 그 차의 차령이 5년쯤 되었을 때부터 안전상의 이유 등을 들어 차를 바꾸자고 아내에게 권유 또는 요구를 여러 번 했다. 그러나 아내는 똘이를 놓아줄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나뿐만 아니라 시집간 딸도 자기 신랑과 함께 엄마 차를 바꿔주고 싶다고 몇 번이나 얘기했으나 아내는 내가 좋아서 타고 다니는데 왜들 야단이냐고 혼내기만 했다.
차령이 10년이 되었을 때는 정말 차를 바꾸는 것이 좋겠다 싶어 사람이나 마찬가지로 차도 오래되면 속으로 골병드는 것이니 사고 예방을 위해서 이번에는 꼭 새 차로 교체하자고 통사정을 했으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내는 자동차라는 것이 부품만 제때에 잘 교체해주면 안전은 문제 안 된다고 하면서 자기가 익숙해서 타기 편하고 또 짐을 많이 싣고 다녀야 하기 때문에 새 차는 불편하니 더 이상 우리 똘이를 버리자는 얘기는 꺼내지 말라고 했다.
사실 아내는 정말 뭐든지 버릴 줄 모르는 여자다. 아들 말마따나 ‘재활용의 여왕’인 아내의 손을 거치면 뭐든지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다. 딸이 시집갈 때 못 입을 것 같아 두고 간 청바지와 원피스는 실용성 가방이나 레저용 모자가 되어 나오고, 고장 난 빨래 건조대는 마당의 포도 넝쿨 받침대로 요긴하게 쓰이게 되며, 색깔 고운 양주병은 녹인 다음 다른 주물(鑄物)과 어우러져 멋진 벽걸이용 조형 작품으로 재탄생된다. 아내의 이런 야무진 점이 살림에 꽤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나는 안전과 관련된 자동차까지 그렇게 안 바꾸고 오래 타려고 하는 것은 싫었다.
아내가 내 간절한 마음을 몰라주고 고집을 피우는 것 같아 은근히 화가 나서 한마디 쏘아붙였다.
“사람이 버릴 줄도 알고 바꿀 줄도 알아야지. 누구도 얘기했잖아. 마누라만 빼놓고 다 바꾸라고 말이야!” 그날따라 내 말이 필요 이상으로 길어졌다. 어느 대기업의 총수가 했다는 말까지 꺼내고…. 그러자 아내가 작은 목소리로 “알았어요. 저도 똘이만 빼놓고 다른 건 바꿔볼게요.” 하는 것이었다. 그날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아내가 공손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핵심은 살짝 비껴가자 나는 더욱 공격적으로 공세를 이어간 것이다.
“‘창조적 혁신’이란 말 들어 봤어? 계속 바꾸고 변화해야만 발전할 수 있고, 그대로 있으면 도태되는 거야. 가장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가장 잘 적응하는 자가 살아남는 거란 말이야. 적응하려면 바꿔야 하는 거라고.” 내가 그냥 거기서 멈췄어야 했는데 이렇게 너무 앞으로 나가는 바람에 차를 바꿔주기는커녕 그 이후 아내의 반격에 나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 것이다.
아내는 “넵, 알겠습니다.”라고 일단 대답을 하고는 차분하면서도 단호한 어투로 이렇게 반박했다. 바꾸라는 것은 우선 자기 자신을, 자기의 구태의연한 고정관념이나 사고방식을 바꾸라는 것이지, 주변의 다른 것만 아무리 바꿔봐야 다 소용없는 것 아니겠냐는 것이다. 모 그룹의 회장 그분도 임원들에게 정신 차리고 사고 프레임을 완전히 바꾸라고 그 말을 한 것이지 타고 다니는 승용차 같은 걸 바꾸라는 취지로 한 말은 아닐 것이라는 얘기다. 또 진화론자들이 말하는 적자생존론도 주변 환경의 변화에 맞춰 각 생물 개체 스스로 자기 자신을 바꿔야만 적응해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지 자기에게 맞게 환경을 바꾸라는 말은 아닐 것이라는 취지다.
내가 달리 반박할 거리가 없었다. 본격적인 논전으로 들어가면 대개 내가 논리가 딸리는 경우가 많지만 그날은 유난히 더 심해 내가 완전히 TKO 패했다.
사실 그렇다. 아내의 말이 맞다. 나를 싸고 있는 외부 환경을 바꾸는 것보다 나를 바꾸는 것이 더 근본적이고 쉬운 해결 방법인데 자꾸만 밖에서 그것을 어렵게 찾으려 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제도도 그렇다. 물론 제도 자체에도 문제점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이를 운용하는 사람이 더 문제인 경우가 훨씬 많다. 그래서 그 사람의 의식이나 태도를 바꾸는 것이 쉽고도 올바른 해결 방법일 것이고, 영 안 되면 그 사람을 바꾸면 될 일인데 사람들은 제도 탓만 한다. 나중에 위 대기업 총수가 돌아가셨을 때 그분의 어록이 소개됐는데, 그분이 “모든 변화는 나로부터 시작한다. 모든 변화의 원점에는 나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라는 말도 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이후 나는 한동안 아내에게 차를 바꿔준다는 말을 꺼내지 못하고 지냈다. 차를 바꾼다는 것은 마치 나를 변화시키지는 않고 다른 것만 바꾸려고 드는 것처럼 보일 것 같아서 말이다. 아무튼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일의 잘못됨을 외부 탓으로 돌리지 않고 나에게 원인이 있지 않나 먼저 찾아보고 나 자신부터 바꿔보려고 하는 마음가짐을 갖게 된 것은 그날 논쟁으로 스타일을 좀 구기기는 했지만 하나의 깨달음을 얻은 소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 그래도 이름이 좀 알려진 변호사가 마누라한테 10년 넘은 준중형 자동차를 계속 끌고 다니게 한다는 것이 아무래도 남 보기에 민망했다. 그래서 기회가 될 때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넌지시 운을 떼 보기도 했다. 드디어 결혼 40주년이 되는 해에는 이제 당신 생애의 마지막 차를 내가 사줘야 할 것 같은데 이번에는 정말 내 말을 꼭 들어달라고 사정하다시피 했다. 예상대로 이때도 아내의 완강한 거부는 여전했고, 다만 결혼 40주년 기념으로 스위스 여행을 다녀오고 싶다고 해서 그냥 스위스 일주 투어만 다녀왔다.
그로부터 약 5년 뒤 드디어 나에게 기회가 왔다. 사고가 난 것이다. 사법연수원 동기생 부부 모임으로 문경 쪽으로 1박 2일 여행을 하고 귀가하던 길이었다. 기분 좋게 관광과 운동을 마치고 양평 집까지도 무사히 잘 돌아왔는데, 다 와서는 그만 집 입구의 커다란 정원석을 차 전면으로 그대로 들이받은 것이다. 범퍼가 쭈그러지고 그 충격으로 전면 유리가 깨짐과 동시에 에어백까지 터졌다. 다행히 둘 다 특별히 다친 곳은 없었지만 차는 파손된 정도로 보아서는 상당히 중상인 셈이었다.
아내는 자기 잘못이라며 신발을 바로 신지 않아서 브레이크를 밟는다는 것이 액셀러레이터까지 함께 밟은 거 같다고 했다. 나는 이건 노령의 차가 일으킨 문제고 당신은 아무 잘못도 없다고 아내를 달랬다. 그러면서 바로 이때다 하고 이번 기회에 이 차를 폐차시키고 새 차를 사자고 해결방안을 제시했다. 그랬더니 아내는 우리 똘이가 이렇게 크게 다쳤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냐면서 정말로 가족이 크게 부상하기라도 한 것처럼 엉엉 통곡을 하는 것이었다.
그 후 우리 집은 초상집 분위기여서 보름 정도 그 차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집 앞에 그냥 세워두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전철로 서울에 출근했다 오니까 차가 보이지 않았고, 그 뒤 한 달 좀 넘어서야 똘이가 목욕하고 이발까지 한 새 신랑의 모습으로 우리 집 앞에 돌아왔다. 정비공업사에서 부품 교체 및 수리를 싹 한 것이었는데 워낙 오래된 차종이라 맞는 부품 구하기가 상당히 어려웠다고 한다.
그 뒤 아내는 종전보다 더 그 차를 소중히 아끼며 잘 보살폈는데, 기름은 조금 비싸더라도 꼭 정품만 파는 주유소를 찾아가 넣고, 보약이라면서 ‘불스원’인가 하는 것도 가끔 넣어주며, 엔진 오일도 때가 되면 바로 갈아주고, 세차도 열심히 하는 등 정말 정성이 대단하다.
나도 그러고 나선 똘이를 자세히 살펴보게 되었는데, 차체의 군데군데에 난 흠집에는 진주색 유화용 물감으로 깨끗이 도색되어 있었고, 차 트렁크 뒤에 걸려 있는 스페어 타이어 덮개에도 상처가 생겼었는지 예쁜 꽃이 몇 송이 그려져 있는 것이 보였다. 아내가 이처럼 그때그때 상처를 잘 보듬고 치장까지 해줘서 똘이가 이렇게 튼튼하고 새 차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이런 아내의 자상한 보살핌에 보답이라도 하려는 듯 우리 똘이는 전혀 큰 사고 치른 차 같지 않게 오늘도 경쾌하게 잘 달린다. 그러면서 나한테는 한마디 쏘아대는 것 같다.
“바꾸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세상을 바꾸려고 하지 마시고 자기 자신부터 바꾸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