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햄찌. 도대체 누가 이런 괴상한 이름을 지어준거야??
사육사가 주는 사료를 배불리 먹고 늘어지게 낮잠을 잤다. 눈을 떠보니 동물원이 아닌 정체모를 낯선 집에 와 있었다. 내 눈앞에서는 6명의 남자가 내 이름을 서로 짓겠다며 멱살을 잡고 있었다. 금발머리를 가진 꺽다리가 나를 상드라고 부르자 쇼팽이라 불린 남자가 그를 의자로 두들겨팼다. 베토벤이란 남자가 나를 햄 스테이크로 부르자 한껏 경멸어린 시선을 받았다. 그리고 3시간 뒤 고상한(?) 토론 끝에 나는 햄찌가 되어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유리 케이지가 아닌 형형색색의 장난감들이 가득한 집으로 이사를 왔다. 일단 내 주인님들이 누군지 관찰하기로 한다. 뀨?
인간들은 흔히 재미없는 인생을 쳇바퀴 같다고 한다. 참, 이상하네 나는 쳇바퀴가 재밌는데. 인간들은 내가 쳇바퀴를 돌리는 시늉만 해도 꺅 소리를 내며 귀엽다고 해바라기씨를 물려준다. 풋, 나는 그런 인간들이 더 귀여운데. 자, 기분이다. 그럼 오늘도 인간들을 위해 서비스로 쳇바퀴를 돌려볼까?
아 시원해! 역시 모래 목욕은 재밌어. 그런데 왜 인간들은 모래가 묻으면 기겁하며 물로 씻어내려는거야?
아이 또 꼇네. 사료 조금만 먹고 다이어트나 해 볼까?
햄찌의 슬픈 눈빛. 저.... 이 플라스틱 출구로 나가는 법 아시는 심??
귀여운 여자아이들이 나를 관찰하며 귀엽게 까르륵거린다. 저 아이들은 다행이도 나를 높은 곳에서 장난으로 던져서 터뜨리거나 뱀에게 먹이로 던져주는 부류는 아닌 것 같다. 나랑 놀래?
햄스터마냥 통통하고 작은 슈베르트는 조심스레 케이지를 열었습니다. 햄스터도 자신을 닮은 남자에게 호기심이 생겼는지 조심스레 다가옵니다. 뀨? 당신도 햄스터였나요?
낑낑! 조그만 햄찌는 슈베르트의 장갑에 매달리기 위해 버둥거립니다. 나 귀엽나요?
슈베르트의 얼굴에서 반짝이는 은빛 안경에 호기심이 생긴 햄찌는 폴짝! 그의 얼굴에 매달립니다. 우왕, 이 안경 내꺼~
슈베르트의 얼굴에 얹혀진 안경에 수줍게 부비부비.... 햄찌에게 슈베르트의 몸은 흥미로운 장난감 그 자체입니다. 주인님께 사랑을 담아 그의 안경에 조심스레 꾹꾹이를 하며 지문을 남겨줍니다!
아무리봐도 신기한 햄찌의 재주. 슈베르트의 통통한 손가락 끝에서 폴짝거리기도 하고 빙글빙글 춤을 추기도 한다. 자, 내가 귀엽다고 말해줘요 주인님! 메롱~ 애교를 부리며 수줍게 혀를 살짝 내미는 서비스도 잊지 않습니다.
애완동물에게 극한의 신뢰와 사랑을 얻었다는 증거. 코 부비부비 키스!
통통한 슈베르트가 매우 마음에 들었던 햄찌는 슈베르트가 얼굴을 내밀며 수줍게 다가오자 애정의 의미로 코를 부비며 키스를 해 주었다. 마음만 같아서는 입술에 해주고 싶었어! 하지만 손가락 끝에서 균형잡기는 너무 어렵단 말이야!
행여 작고 소중한 생명체가 다칠까 조심스레 눈을 감고 키스를 받습니다. 주인의 얼굴에서는 무언가 부드럽고 따뜻한 우유 냄새가 나는 것 같아 포근함을 느낀 햄찌의 눈이 슬슬 졸음으로 감겨옵니다.
우쭈쭈, 우리 귀여운 햄찌, 나랑 비행기 놀이 하고 놀까?
나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 애완동물이 이렇게 귀여운 줄 몰랐다. 전생에서는 나도 굶고 사는데 왜 애완동물을 키우냐며 사람들을 비웃기도 했었지. 하지만, 공중으로 던졌다가 받자 까르륵대며 웃는 햄스터를 본 순간, 그런 생각은 싹 사라져버렸다. 게다가 내 작은 손안에 쏙 들어오는 그 앙증맞음! 어찌 널 사랑하지 않겠니?
햄찌야 너 뭐 먹니???....
주인님 머리카락 냠냠.... 햄찌는 슈베르트의 머리카락에서 나는 오렌지 냄새에 호기심을 갖고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매달려 낑낑댑니다. 저 머리 위에 뭐가 있는 지 꼭 보고 말거야!!
저 주인님 치사하게! 혼자서 머리카락 속에 오렌지를 숨겨 두고 먹는 거 같아. 나도 맛 볼꺼야!!
햄찌는 머리카락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조그만 몸으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머리카락 등반을 수행합니다. 물론 곱슬머리 산의 등반 난이도는 다른 머리카락 산보다 매우 높습니다!
룰루랄라~ 머리카락 그네를 타 봅시다!
드디어 머리카락을 물었다! 비록 오렌지는 없었지만, 햄찌는 새로운 장난감을 발견했다. 머리카락을 힘껏 당기자 흔들흔들 그네마냥 움직이는게 너무 신기하고 재밌었다. 물론 아프다며 비명 소리를 지르고 허우적대는 주인의 얼간이 같은 표정을 관찰하는 것은 더욱 재밌었다!
내친김에 뾰족한 코와 손가락도 오물거리다 방심한 틈에 장난으로 깨물어주었다. 고통스러워 하며 소리를 지르는 주인과 장난이 성공했다며 까르륵대는 햄찌의 조화! 저 햄찌 동물이 아닐지도 몰라....
애완동물 이라는 단어와는 아무리봐도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남자가 어슬렁어슬렁 호기심을 가진 채 햄스터를 쥐었습니다, 저 남자는 또 누구지?
처음 만난 남자보다 2배는 더 커 보이는 손을 가진 남자는 웃으며 내 몸통을 이리저리 건드리며 웃고 있었다. 어후 숨막혀....이러다 햄스터 쥐포되는 거 아니야?
어우 씨 입에서 술이랑 담배 냄새. 저 남자는 혹시 술에다가 자기 똥을 타서 먹는 취향이 있나? 냄새나니까 제발 뽀뽀하지 말고 얼굴 좀 치워! 햄스터도 냄새나는 주인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
햄스터의 속마음 따위 알 리 없는 베토벤은 그저 조그만 햄스터를 갖고 노는데 열중할 뿐입니다. 고무공 같기도 찹쌀떡 같기도 하구나!
햄스터 간지럽히기를 빙자한 괴롭히기에 재미를 들린 베토벤. 하하, 쥐XX 자식, 감히 내 허락없이 슈베르트의 코와 입술에 키스를 했겠다? 보니까 얼굴도 핥았네? 그건 나도 못 해본건데! 내 꺼를 빼앗았으니 간지럼 공격으로 너를 괴롭혀주마!
끄윽...에이 X팔 쥐XX 너만 없었어도! 너가 온 뒤로 슈베르트 녀석의 사랑을 반으로 나눠야 한다는게 너무 싫단 말이다! 슈베르트는 내꺼란 말이야! 슈베르트 녀석은 네놈이 애교를 부리고 얼굴을 핥고 키스를 할 때마다 매우 행복해하며 놀아주는데 도대체 왜! 내가 침대에서 애교를 부리고 얼굴을 핥아보려고 하면 왜 똥 씹은 표정으로 나를 째려보는거냐고....히끅. 으아앙!!!
주정뱅이의 푸념이 끝나고.... 이제 좀 쉬나 했더니 어딘지 천진난만하고 유치하게 생긴 남자가 싱긋 웃으며 다가와 간식을 내밀었다. 헤에, 햄찌야 안녕?
햄찌야 안녕? 너랑 놀고 싶어서 간식 준비했다! 이거 줄 테니까 내 앞에서 애교 부려볼래? 어때 이거 먹고 싶지?
흥! 단순한 놈. 고작 그딴 싸구려 간식 조각 하나에 내 웃음과 애교를 팔 거 같니? 메롱~
자신을 귀찮게 구는 심이 마음에 안들거나, 싸구려 간식이 웃겼거나. 햄지는 코웃음을 치며 모차르트를 개무시 합니다.
내 간식을 거부해? 흥, 나도 너랑 안 놀아! 부루퉁한 표정으로 유치한 모차르트는 유리문을 쾅 닫았습니다. 유리 깨지면 네놈이 물어낼거냐며 뒤에서 소리를 질러대는 살리에리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힝! 햄찌가 나랑 안 논다고 했어요....
하지만 귀엽고 사랑스러운걸.... 햄스터에게 개 무시당해 속상은 하면서도, 햄스터가 귀엽게 쳇바퀴를 돌리는 모습을 보며 웃습니다.
에휴 주인아, 아무리 그래도 울 것 까지는 없잖아? 내가 졌다. 특별히 한 번은 먹어주마....
햄찌가 귀엽게 간식을 오물거리자 모차르트의 표정에서는 어느새 눈물이 사라지고 부드러운 미소가 사르르 피어났다. 이제 나랑 놀래?
햄찌야 내가 생각해 낸 이야기 해줄까? 내 이름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그런데 나 말이야 내가 진짜 환생한 건지 아니면 정체불명의 창조주가 인간 세계 음악가의 과거 기억과 외모를 복제한 그래픽 덩어리인지 종종 헷갈린다? 어때 우습지! 내 상상 이야기 어땠어?
햄찌는 말 없이 모차르트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가 눈물을 거두고 웃음을 짓자, 햄찌 역시 웃었다.
주인님 그거 아나요? 애완동물은 주인이 늘 행복하게 웃을 수 있도록 존재한다는 사실을. 전 주인님들이 우는 모습이 아니라 저를 보며 늘 웃는 모습이 더 보고 싶어요! 그러니 더는 슬퍼하지 마세요!
저기....주인아? 혹시 나를 탱탱볼이라고 생각하는 거 아니지? 나 이제 잠 좀 자면 안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