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칼럼
[2030 플라자] 환자는 병원 말고 집으로 가야 했다, 그가 옳았다
조선일보
남궁인 이대 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작가
입력 2024.04.18. 03:00
https://www.chosun.com/opinion/column/2024/04/18/5L74KYDGOVC5DCERY5JMKPDUJ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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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죽음이 정해진 사내가 왔다. 전신이 퉁퉁 부은 그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소생실에 누웠다. 그의 외양은 기록과 일치했다. 1년 전 췌장암 3기 진단을 받았으나 치료를 거부하고 귀가했다고만 되어 있었다. 그다음 기록이 지금 응급실 방문이었다. 40대밖에 되지 않았는데 모든 치료를 거부하는 드문 경우였다. 그는 내 말에 간신히 대답할 정도로 쇠약했다.
“다른 병원에도 안 가본 거지요?” “전혀 안 다녔습니다.” “그때부터 치료를 받았으면 이 정도까지는 안 되었을 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치료받기 무서웠습니다. 이번에도 병원에 안 오고 싶었지만 숨이 가쁘고 움직일 수가 없어서 왔습니다.”
심전도가 금방이라도 멈출 것처럼 파형을 잃고 뒤흔들렸다. 수치는 참혹했다. 병을 일부러 마지막까지 키운 것처럼 보였다. 신장까지 망가져서 칼륨 수치가 지나치게 높았다. 그야말로 즉사 직전 상태였다. 소생실 의료진은 분주했다. 말기 암이었지만 그동안 치료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처치하면 조금은 더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수액 줄이 순식간에 그를 뒤덮었다. 그가 심각하게 모니터를 바라보는 나를 붙들었다.
“집에 가고 싶습니다.” “그동안은 어쩔 수 없지만 마지막이니까 병원 말을 들으세요. 이대로면 당장 돌아가실 겁니다. 중환자실에 입원해도 살아나면 다행입니다. 지금 죽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아내가 마지막으로 가보라고 해서 왔습니다. 적당히 조치만 해주시면 집에 가겠습니다.” “안 됩니다.”
심전도 파형이 약간 형태를 갖추자 소생실을 나왔다. 이미 이 상태라면 환자를 나무라는 일은 무의미했다. 그럼에도 환자가 이른 죽음을 선택하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고집스러운 환자와 마주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다른 환자를 진료하러 돌아다녔다. 예감했던 연락이 왔다.
“소생실 환자가 자꾸 퇴원하겠다고 합니다. 선생님께 할 얘기가 있다고 면담을 요청하세요.” 나는 굳게 마음먹고 소생실 문을 열었다. “도대체 왜 말을 안 듣습니까. 정말 죽는 게 환자분 뜻입니까?” 그는 그 사이에 약간 기운을 되찾은 것 같았다.
“선생님, 저는 1년 전 암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때 어차피 살 방법이 없다고 깨달았습니다. 치료를 받아봤자 연장에 불과하다고요. 그런데 제겐 여섯 살 된 딸이 있습니다. 저는 조만간 세상을 떠나고 딸의 기억 속에서만 살아있을 것입니다. 징그러운 수술을 받고 항암 치료로 고통스러워하는 아빠로 기억되기 싫었습니다. 좋은 시간을 함께했던 아빠가 되는 게 남은 인생의 유일한 목표였습니다. 그래서 어떤 치료도 받지 않았습니다. 대신 일을 그만두고 딸아이와 집에서만 시간을 보냈습니다. 지난 1년은 전혀 후회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시간이 너무 행복해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
“일단 너무 숨이 차서 왔습니다. 그런데 아직 마지막 인사를 못 했습니다. 당장 딸과 떨어져 있는 게 더 고통스럽습니다. 어차피 조금 더 사는 게 제 인생에 크게 의미 있지도 않습니다. 살아봤자 병원에서 목숨을 건져 온 나약한 아빠로 집에 누워있을 겁니다. 중환자실에서도 사망 가능성이 높다고 하셨죠. 가족 없는 중환자실에서 혼자 죽으면 저는 실패한 겁니다.
마지막 계획이, 그리고 제 인생이, 모두 실패입니다. 마지막까지 가족과 있고 싶습니다. 선생님. 도와주세요. 집에 가겠습니다. 다시는 안 돌아오겠습니다.”
도저히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고개를 돌려 소생실 문을 열고 자리로 돌아왔다.
“소생실 환자 퇴원시키겠습니다.” “칼륨 수치가 그렇게 높은데 퇴원시키는 게 맞나요?” “암 말기 DNR(심폐 소생술 거부) 환자입니다. 괜찮아요. 퇴원시키겠습니다.”
퇴원 기록을 적어야 했지만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책상에 머리를 묻었다. 눈가의 압력이 높아지고 속에서 무엇인가가 치밀어 오르는 것 같았다. 그는 집으로 가야만 했다. 내가 그르고 그가 옳았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그가 옳았다. 그는 당장 집에 가야 했다.
밥좀도
2024.04.18 05:22:19
인간이든 동물이든 생로병사는 신의 뜻이다.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 너무 탐욕이나 집착에 기세 부리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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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보루
2024.04.18 06:08:46
"인명은 재천" 이라 했다... 병원 가서 낳을 병이 있고 병원 가도 안될 병이 있다..다만 빈부의 격차로 인해 생명이 연장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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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이어
2024.04.18 07:07:10
엊그제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은 어르신이, 입원 21일 만에 별세하셨다. 연명치료를 모두 거부하고 깔끔하게 생을 마치셨다. 슬픔은 살아 남은 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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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由
2024.04.18 06:58:17
필자는 언급안했지만 아마도 사랑하는 아내에 대한 마지막 배려이고 사랑을 표현한 결정이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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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토바
2024.04.18 08:27:01
의사는 악의 축이다 의사를 미화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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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性醫學 설현욱
2024.04.18 07:03:44
2) 죽고사는 것은 하늘의 뜻.. 그리고 그게 끝도 아니고 세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이고.. / 정현채 선생 유튜브나 최준식 선생 유튜브를 보면 좀 도움이 많이 될거고..그러구보니 둘다 경기중고 동창이구먼.. 나도 30대에는 parapsychology 에 푹 빠져 군의관 시절 '虛 -- 당신은 소곡 있다/라는 책도 썼었건만..86년도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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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性醫學 설현욱
2024.04.18 07:00:20
..의사가 그 것도 응급실 의사가 이렇게 센티멘탈해서야 환자를 어떻게 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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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mortalis
2024.04.18 08:58:43
젊은 환자의 말에 가슴이 답답해지고 눈에 물이 차오르는 걸 느낀다. 죽음을 맞이하는 그의 방식에 공감하는 부분도 있고 아쉬운 부분도 있다. 모두 존중받아야 할 사람의 선택이다. 딸에게는 좋은 아빠로 영원히 기억되고 좋은 곳으로 가서 먼 훗날 은하계 멀리에서 그리운 가족과 재회할 수 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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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2024.04.18 08:52:13
박근혜 정부당시 고산병때문에 구입해서 사용도 못한 비아그라를 수상하다고 공격하던 사람이 남궁인이다. 조선일보는 이런 사람까지 불러서 글을 쓰게 한다. 약사 민주당 의원 김상희가 주동해서 주장한 의혹인데, 약사는 무식하다고 하더라도, 의사들은 빈번하게 처방해서 빤히 알고 있는데, 탄핵선동에 가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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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트웨인
2024.04.18 09:22:31
집에서 죽고싶은 모든 환자는 모두 병원에서 죽는다. 의사판정이 없으면 죽어도 죽은 게 아니다. 만약 집에서 죽어 응급실 이송을 하면 전가족은 경찰에 불려가 뭘 먹였느냐부터 조사에 들어간다. 시체는 일이 해결될 때까지 냉동실에서 대기하고 장례도 지낼 수 없다. 먹은 음식 분석, 가족 중 갈등소지자 질문 등 슬퍼할 시간조차 없다. 그래서 집에서 죽으면 골치아픈 일이 생겨 거의 죽음 앞둔 자는 병원을 향한다. 본인의지와는 상관없이 가족임의로. 슬픈 일이다. 본인이 집에서 죽고싶다고 하면 가정방문 의사가 와서 확인하면 안되나. 조금만 아파도 의사가 집방문을 못하니 모두 응급실행이다. 얼마나 손실이 큰가. 지역구, 동네 중심의 가정방문 의사제도 도입이 꼭 이루어져야 한다. 기사 속 아빠는 도인이다. 자식과 더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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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의나무
2024.04.18 09:10:25
이렇게 몹쓸병이 인간을 덮치지않도록 의업에 계시는분들이 불철주야 노력중 이실듯 합니다 의료인님들을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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