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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聖誕)
至極高處也(지극고처야)-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耶和華榮光矣(야화화영광의)-하나님께 영광이요
世上位也(세상위야)-땅위에서는
歡喜浴恩(환희욕은)-기뻐하심을 입은
救贖者中平和矣(구속자중평화의)-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누가복음 2장 14절
웃음도 조잘거림도 캐럴도 없어진 무성영화 크리스마스
성탄절이나 석가탄일은 해당 신앙인들의 날만이 아니고 인류의 축제일이다.
크리스마스 12월이 되면 흔히 나누는 대화가
“연말이고 크리스마스니까 한잔하지”하는 말을 주고받는다.
“한잔하자”는 이 말은 꼭 술을 먹자는 것이 아니고
이 축복의 날을 같이 즐기자는 함축(含蓄)된 표현이다.
괜히 옆에 사람 옆구리를 쿡 찌르면서 씩 웃고,
무슨 말이 그리 많은지 그냥 입이 한시도 쉬지를 않았다.
상점마다 다양한 크리스마스 튜리를 세우고 캐럴이 흘러 나왔다.
무릎 허리 어깨 관절을 그냥 두지 못하게 한다.
눈이라도 내리면 필자같이 무딘 사람도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약간 흥분되고 한잔 하고 싶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 크리스마스 캐럴이 없어졌다.
박근혜 정부, 최순실 사건 때문만은 아니다.
이유라는 것이
소음(騷音) 때문이다
저작권 때문이다 등등 말하지만---
그러나
조선일보 나온 서영수 영화감독이 쓴 글을 보면
《성탄 캐럴은 저작권료를 받지 않는다.
3000㎡(900평) 미만 치킨 집이나 음식점 같은 중소형 영업장에서는 캐럴을 틀어도
저작권료를 낼 필요가 없다. 백화점과 마트 등 음악사용료를 성실히 납부하고 있는 곳은 추가 저작권료를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다.
그런데도 연말 거리에서 캐럴이 들리지 않는다.
우리사회의 열기(熱氣)가 식은 것이다.
흥(興)이 식은 것이다.
우리민족은 신명(神明)이 있는 삶이었다.
신이나면 못할 것이 없는 민족이었다.
모심을 때 못 노래
제주도의 해녀 노래
전라도의 판소리
경상도 육자배기
요즘 서울 거리는 “박근혜 퇴진” 시위 때문에 시끄럽지 시위가 없으면
고요한 서울의 12월 밤낮 풍경은 무성영화를 보는 듯 한 무미건조뿐이다.
신명(神明)이 없어졌다.
우리국민은 신명이 없으면 시금치 되친거와 같다.
4,50년전 필자가 촌놈소리를 면하게 해준 서울거리가 떠오른다.
12월이 되면 경쾌한 캐럴과 함박눈 사이를 누비며 서울의 이곳저곳을
밤새도록 돌아다녔다.
크리스마스 캐럴만 없어진 것이 아니다.
웃음도 대화도 줄어들었다.
모바일 스마트폰이 등장하고부터는 더 심해졌다.
대신에
혼밥-혼자 밥 먹는 사람
혼술-혼자 술을 즐기는 사람
혼집-혼자 사는 집
혼인-혼자 사는 인생이 늘어났다.
인류문화의 변화에 따라 나타나는 사회현상은 어쩔 도리가 없다고 하지만
이런 사회 현상은 행복의 열기가 식어가는 “관계거부”의 조짐이다.
우리사회에 가장 부족한 것은 대화(對話)다.
특히 박근혜 정부에 가장 문제 된 것이 불통(不通)된 대화의 실종이었다.
(대통령이 최순실 하고만 대화를 한 것이 이제 확인 됐지만---)
나는 박근혜 대통령이 자기 입으로 독서를 많이 했다는데
왜 대화의 중요성은 왜 깨닫지 못했는가?
묻고 싶다.
실천하지 않는 독서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논어(論語) 제15편 위령공(衛靈公) 7장에
子曰 可與言而不與之言 失人. 不可與言而與 之言 失言.
知者不失人 亦不失言.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더불어 말할 수 있는 사람과 말을 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고,
더불어 말할 수 없는 사람과 말을 하면 말을 잃는다.
지혜로운 사람은 사람도 잃지 않고, 또한 말도 잃지 않는다.”
공자의 이 말씀은 분명히 박근혜 대통령에게 한 것이다.
택도없는 최순실과만 대화를 하였으니 말도 잃고 권력도 잃고 국민도 잃었다.
책이나 TV 교양프로그램에서 이스라엘 어린이들은 외워서 1등하기 보다는
토론을 통해서 지식을 쌓고 견문을 넓히는 교육방법이 매우 부러웠다.
친목 모임에서도 교양 있는 대화가 귀하다.
겨우 하는 말이 “내가 너보다 아는 것이 많다”의 뽐내는 말 정도다.
우리 사회는 건전한 대화가 부족하니 그렇지 않아도 “저녁 굶은 시어머니 쌍판”
같은 표정들이 대화조차 없으니 더욱 어둡고 삭막하다.
전철이나 버스 속을 보면 무엇이 못마땅한지 활짝핀 모습을 볼 수가 없다.
거기다 눈은 전부 스마트폰을 향하고 있으니---
안과 겉에 모두 장막을 치고 있다.
한 가지를 보면 열 가지를 안다고 사회의 이런 현상을 보면 가족끼리 대화도
풍성하지 않을 것이라 짐작이 간다.
이러니까 사회 분위기가 어두울 수밖에 없다.
“스몰토크(small talk)”는 말 그대로 “작은 대화”다.
흔히 말하는 수다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나라를 흔드는 거창한 말”보다
속삭이고 다정한 달콤한 작은 수다가 필요하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캐럴을 따라 부르고 하하 히히 호호 수다를 떨어야 한다.
맛있는 음식을 서로 나누며 킥킥거리고 즐거워하는 행복이 있어야 한다.
술잔을 서로 부딪치는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성탄절 크리스마스 캐럴 속에 나누는 “스몰토크(small talk)”는
누구라도 좋다.
아내도 친구도 연인도 상관없다.
따뜻한 음식을 함께하면서 마음 편히 웃으며 주고받는 크리스마스는
가는 한해의 아쉬움 보다 새해의 봄을 기다리는 희망을 주는 하나님의 은총이다.
찬양은 하나님께만 드리는 것이 아니고
우리 자신에게도 찬양을 해야 한다.
흰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징글벨 징글벨 ♪♬
I want to hear Christmas carols !
크리스마스 캐럴을 듣고 싶다 !
농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