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지나온 길에 만난 시비(詩碑)가 있어, 그 주변 풍광과 함께 소개합니다. 복선의 철길과 기다랗게 이어지는 물길이 나란히 어깨를 맞대면서 평행을 이루고 있는 곳 거기, 어떤 조망처에 길을 지나다가 들리게 되었습니다. 사위를 둘러싸고 있던 물빛과 산그리메가 정다워 보이는, 그래서 한결 편안해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여행길에 나서야만 느끼게 되는 어떤 특별함이 있었습니다.
듣자하니, 저 철길 자리는 본디 옛 시절 '한양대로'였다는 사실. 그리고 임진왜란 때 저 길따라 왜군이 밀려오기도 했다는 사실. 좁지만 반듯한 길에 일제가 경부선 철도를 부설했다는 사실. 그러나 저 아래는 강과 산이 만들어낸 자연적인 잔도, 벼랑길이라는 사실. 물길 조금 아래 황산 잔도(현지어로 '베랑')가 있고 물길 거슬러 위로 가면 삼랑진 조금 못미쳐 작원관 터에 이르기 까지 좁은 길목이었으므로 이런 지형을 군사적으로 활용했더라면 임진왜란의 전황은 어찌되었을까 뜬금없는 생각을 가져보기도 했습니다. 충주에서 배수진을 친 신립 장군을 탓할 일이 아니라 저 아래 벼랑길을 활용하지 못한 당시 어른들의 잘못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전엔 다가서기조차 수월하지 않았을 이곳에도 좋은 접근로가 생겨나고 커다란 카페가 생기고 해서 서서히 관광지가 되어가는 듯했습니다.
이날 만난 시인은 그곳 출신으로 주로 울산 지역에서 활동하였다 하고, 최백호의 노래 '영일만 친구'의 실존했던 당사자라고 적혀있었습니다. 시인을 이날 처음 만나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의 시가 나에게는 무척 난해하게 다가왔습니다. 뭔가 속깊은 말과 사유를 뺃아내려 노래했겠지만서도 도무지 모르겠어요...
경부선 원동역 / 홍수진(1949~1997)
우리는 그때 부산역에서 같이 떠나, 완행열차가 서는 곳, 경부선 원동역에서 헤어졌다. 1969년
무거운 짐 진 그대 영혼 멀리 떠나거라 우리 헤어질 때 빈 들에는 어둠이 더욱 넓게 번지고 강물도 고여 멎었다
소리 없는 강물처럼 행열 속으로 사라지던 그대, 뱉는 침 저주처럼 가라고 말하지만 역사에는 빛이 고이고 흐린 불빛은 나의 절망이었지
떠나가는 것에 대해 다시는 추억하지 않으마. 언약처럼 떠나거라 떠나는 길 이승의 끝이랴
휘어진 길 돌아서 가는 열차의 불빛 삼랑진, 낙동강변으로 이어진 길 추억이 아득할수록 그날의 불빛은 살아 차라리 따스하고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