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이야기]
스포츠클라이밍 세계랭킹 1위, 여제(女帝)
김자인
굽은 발가락, 노란 매니큐어
문화일보 2012년 10월 31일(水)
스포츠클라이밍(인공암벽)의 김자인(24·노스페이스)에게도 김연아와 장미란과 같이 그의 이름 앞에 ‘여왕(Queen)’이나 ‘여제(女帝)’라는 수식어가 붙은 지 오래다. 그가 스포츠클라이밍 리드 부문에서 3년째 세계랭킹 1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한국스포츠클라이밍 사상 처음으로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 세계선수권 종합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23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 노스페이스 인공암벽 훈련장에서 만난 김자인에게서 여왕이나 여제로서의 위엄(?)은 없었다. 보름 걸러 열리는 국제대회 출전으로 일정이 빡빡한데다 체력적으로 힘들 만도 한데 인터뷰 요청에 흔쾌히 응했다. 그는 “스포츠클라이밍을 널리 알리는 기회인데 대회 때보다 더 신경을 써야죠”라며 ‘스포츠클라이밍 전도사’를 자처했다. 사진촬영에서의 이런 저런 요구에도 한마디 불평이 없다. 오히려 “이런 게 어때요”라며 나선다.
어쭙잖게 정상에 올라 ‘나도 스타다’라고 몸부림치며 대접(?)을 원하던 선수들을 자주 봐 왔던 기자였기에 그와의 인터뷰는 신선한 충격이기도 했다. 진짜 스타를 찾은 기분이었다.
[인터뷰 =박광재 부장(체육부)]
사진촬영을 위해 스포츠클라이밍 경기 복장으로 갈아 입은 김자인의 손에는 보기에 너무 작은 암벽화가 들려 있었다. 153㎝의 김자인이지만 그래도 너무 작은 것 같았다.
“암벽화는 자기 발 사이즈보다 좀 작게 신어야 돼요. 발가락을 한 곳에 딱 모아야 힘을 잘 실을 수가 있고 암벽의 미세한 부분을 디딜 수가 있어요. 그래서 저 같은 경우 보통 신발은 225㎜에서 230㎜ 정도를 신는데 암벽화는 205㎜를 신어요. 발가락이 완전히 구부러진 상태에서 암벽을 올라야 하기 때문이죠.”
그러고 보니 그의 발가락은 전족(纏足)을 한 듯 모두 굽어있었다. 발등에는 아직도 피멍 자국이 남아있고 마디 마디의 뼈는 툭툭 튀어나와 있다.
그는 놀란 눈으로 자신의 발을 쳐다보는 기자에게 묻지도 않았는데 “신발이 작기도 하지만 홀드에 발을 끼워 넣어야 하니까 발가락이 굽어지고 상처가 나고 흉해질 수밖에 없어요. 그래도 나름 멋을 내죠. 짬짬이 매니큐어도 칠하고 손질도 해요. 노란색을 좋아해 노란색 매니큐어를 자주 하는 편이에요. 그래도 저는 괜찮은 편이에요. 클라이밍을 오래한 언니들 발은 정말 험해요”라며 환하게 웃는다.
그는 잘 꾸미고 다닌다. 이날도 화사한 셔츠에 조끼를 걸쳐 입어 청순 발랄했다. 살짝 화장도 했다. 그는 “저는 꾸미고 다니는 것도 좋아해서 운동 안 할 때는 화장도 예쁘게 하고 다녀요. 원피스 차림도 좋아하고요. 암벽을 탄다고 해서 ‘산쟁이’ 같은 복장을 하고 다닐 필요는 없잖아요. 여자이니까요”라고 말했다.
그가 인공암벽을 탈 때 아래서 지켜보니 어깨 근육이 ‘장난’이 아니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어깨 근육이 많이 발달했다”고 말을 건넸다. 그는 “그 얘기 하실 줄 알았어요”라면서 “지난주 인터넷에 ‘김자인, 가슴이 없어도 좋아…’라는 제목이 떴더라고요 . 너무 깜짝 놀랐어요. 물론 내용은 클라이밍을 오래하다 보면 어깨가 넓어질 수 있다는 얘기를 한 것인데 그걸 그렇게 표현했네요. 그것도 선배 언니 얘기였는데요. 그리고 클라이밍 선수가 어깨가 조금 넓은 게 어디 흉인가요. 잘 발달된 근육은 클라이밍 선수로서는 오히려 자랑이 아닌가요. 나는 엄청 예쁘기만 하던데…”라고 여성으로서의 클라이밍 예찬론을 펼쳤다. 그의 얘기를 듣고 나서 다시 바라 본 그의 어깨와 양팔 근육은 너무 아름다웠다. 그래도 앞에서 보니 가냘프다. 평소 체중 조절이 힘겨울 것 같다.
“항상 41∼42㎏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요. 몸이 가벼워야 하기 때문이죠. 예전에는 체중 유지가 참 힘들었는데 요즈음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유지하는 편이에요. 예전에는 힘들었는데 한창 클 때였기 때문인 것 같아요. 고등학교 2학년 때였을 거예요. 경기 일산에서 가족끼리 외식하고 들어오는 길에 자유로에서 내려 집까지 10㎞를 걸어온 적도 있었어요. 그날 좀 많이 먹었거든요. 생각해 보니 도저히 안 되겠는 거예요. 차에서 내린다니까 가족들이 다 말렸는데 울면서 내려달라고 했어요. 요즘에는 밥은 ‘아점(아침 점심 사이에 한 끼)’으로 한 번 먹고 오후에 운동할 때는 음료수와 과일만 먹어요.”
그래서일까. 그의 최고 취미와 즐거움은 ‘음식 맛보기’라고 한다. 그는 시간만 나면 맛집을 소개하는 블로그를 검색한다.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꼭 찾아가기도 한다. 그는 시즌이 끝나면 가끔 술도 마신다고 한다. 스트레스 해소는 물론 그 분위기를 좋아한다. 소주 한병 반쯤은 가볍게 마셔 ‘젖힌다’고 한다.
그는 “오늘도 스테이크를 먹었어요. 소고기를 제일 좋아해요. 양고기도 좋고요. 대회 출전 때문에 여러 나라 고유 음식을 접할 수 있는 게 좋기도 하고요. 새로운 음식을 접할 때마다 식욕이 더 왕성하니 걱정이에요”라고 활짝 웃는다.
스포츠클라이밍 선수의 스케줄은 대회 출전으로 쉴 틈이 없다. 바쁜 와중에도 학업에 충실했던 그는 올 2월 고려대를 높은 학점을 받고 졸업했다. 그는 학업에 대한 열정도 강해 대학원에 입학, 스포츠심리학을 공부하고 있다. 하지만 올해 하반기에 국제대회가 몰린 탓에 한 학기 휴학한 상태다. 그는 팔다리에 힘이 있는 한 선수생활을 계속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차갑고 거친 암벽에 어떤 매력이 있어서 그럴까.
“루트를 완등했을 때의 짜릿함이죠. 스포츠클라이밍은 예선·준결승·결승 때마다 루트가 달라지는데 갈수록 힘들거든요. 결승에서는 대개 완등이 어려울 정도로 루트를 세팅해요. 그 문제를 모두 풀고 마지막 홀드까지 갔을 때가 가장 짜릿해요. 그리고 10년 이상 스포츠클라이밍을 하다 보니 암벽에 매달려 있을 때 가장 ‘나답다’는 생각을 해요. 그때가 가장 자신감 있고 행복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는 산악인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암벽과 친해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알려진 대로 그의 부모가 산악인이 되기를 강요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엄마 아빠가 한 번도 이래라 저래라 하신 적이 없어요. 그냥 내가 오빠들(김자인의 두 오빠들도 모두 스포츠클라이밍 한국 선수권자이다)이 암벽을 타는 것을 보고 놀이처럼 자연스럽게 접하게 됐죠. 그러다 보니 재미있어 더 열심히 하게 된 것 같아요.”
부모가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암벽 여제로의 등극은 태어나면서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그의 부모가 지은 이름 때문이다. “제 이름을 아버지가 지어주셨는데요. 자인에서 ‘자’자가 자일(Seil)에서 따왔대요. 로프죠. ‘인’은 인수봉의 인자를 붙여 ‘자인’으로 지어주셨어요.” 그럼 인수봉 등 자연암벽은 어떨까. “전에는 스포츠클라이밍만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자연암벽도 하고 싶어요. 얼마 전엔 클라이머인 아빠 엄마랑 같이 전북 선운산의 난도 14급쯤 되는 암벽에 오른 적도 있어요.”
그런 그에게도 ‘암벽타기’가 싫고 어려웠던 때가 있을 것 같았다, 슬럼프 같은. 그는 오히려 한창 잘 나가던 올해 그랬다고 한다. “예전에 비해 스포츠클라이밍과 저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었어요. 그게 힘들었죠. 대회에 출전할 때마다 부담감이 컸고 성적만으로 평가되는 것이 무서웠어요. 지레 ‘정상에 오르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에 밤잠을 설치기 일쑤였죠. 내가 부진하면 창피해지지 않을까 두려웠죠. 그 부담 때문에 언제부턴가 클라이밍을 즐기지 못했어요. 참 힘들었어요.”
김자인은 지난 7월 12일 프랑스 샤모니에서 열린 월드컵 1차 대회에서 자신의 주종목인 리드에서 2위에 올랐다. 그러나 2차 대회(프랑스 뷔앙송)와 3차 대회(오스트리아 임스트)에서는 결승에도 오르지 못하고 무너졌다.
좌절하던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건 2012 런던올림픽에서의 역도 장미란의 투혼과 스스로의 힐링(healing)이었다.
“런던올림픽에서 장미란 선수가 4위에 그쳐 메달을 따지 못했지만 경기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어요. 그리고 초심, 즉 암벽타기를 그냥 즐기자고 마음먹었죠. 경기로 나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연습 때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당당했죠. 그랬더니 마음이 가벼워지면서 다시 암벽이 따뜻하게 다가오는 거예요. 앞으로도 오랫동안 초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할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