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여러분은 ··· 하느님의 말씀을 ···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이 그러하듯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습니다.—데살로니가 전서 2:13. 여호와의 선물인 성경에는 그분의 지혜가 가득 담겨 있습니다. 성경의 조언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줍니다. 그들은 성경 덕분에 더 행복한 삶을 살게 됩니다. 모세는 성경의 처음 다섯 권을 썼을 때 하느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헛된 말이 아니라 여러분의 생명을 의미합니다.” (신명 32:47) 성경 말씀에 순종한 사람들은 의미 있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시 1:2, 3)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하느님의 말씀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지혜로운 원칙들은 늘 유익합니다. 그 원칙들은 어느 시대에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성경을 읽고 배우는 내용을 묵상하면, 하느님께서는 강력한 성령을 사용하셔서 우리가 성경의 조언을 생활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깨닫게 도와주십니다. (시 119:27; 말라기 3:16; 히브리 4:12) 그렇습니다. 성경의 저자이신 하느님께서는 살아 계시며 우리를 간절히 도와주고 싶어 하십니다. 성경을 정기적으로 읽어야 할 참으로 강력한 이유가 아닙니까! |
여러분은 ··· 하느님의 말씀을 ···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이 그러하듯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습니다. because, when ye received the word of God which ye heard of us, ye received it not as the word of men, but as it is in truth, the word of God, which effectually worketh also in you that believe. —데살로니가 전서 2:13. Barnes' Notes on the Bible For this cause also thank we God - In addition to the reasons for thankfulness already suggested, the apostle here refers to the fact that they received the truth, when it was preached, in such a way as to show that they fully believed it to be the word of God. Not as the word of men - Not of human origin, but as a divine revelation. You were not led to embrace it by human reasoning, or the mere arts of persuasion, or from personal respect for others, but by your conviction that it was a revelation from God. It is only when the gospel is embraced in this way that religion will show itself sufficient to abide the fiery trials to which Christians may be exposed. He who is convinced by mere human reasoning may have his faith shaken by opposite artful reasoning; he who is won by the mere arts of popular eloquence will have no faith which will be proof against similar arts in the cause of error; he who embraces religion from mere respect for a pastor, parent, or friend, or because others do, may abandon it when the popular current shall set in a different direction, or when his friends shall embrace different views; but he who embraces religion as the truth of God, and from the love of the truth, will have a faith, like that of the Thessalonians, which will abide every trial. Which effectually worketh also in you that believe - The word rendered "which" here - ὅς hos - may be referred either to "truth" or to "God." The grammatical construction will admit of either, but it is not material which is adopted. Either of them expresses a sense undeniably true, and of great importance. The meaning is, that the truth was made efficacious in the minds of all who became true Christians. It induced them to abandon their sins, to devote themselves to God, to lead pure and holy lives, and enabled them to abide the trials and temptations of life; compare notes on Philippians 2:12-13; Hebrews 13:21. The particular illustration here is, that when they embraced the gospel it had such an efficacy on their hearts as to prepare them to meet all the terrors of bitter persecution without shrinking. 반스의 성서 주석 이 때문에 또한 우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 이미 제시된 감사의 이유에 더하여, 여기서 사도는 그들이 진리가 전파되었을 때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완전히 믿었음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진리를 받았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말이 아니라 신성한 계시의 말씀으로 말입니다. 인간의 추론이나 단순한 설득의 기술, 또는 다른 사람에 대한 개인적인 존중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라는 확신에 따라 복음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복음을 받아들일 때만 종교는 그리스도인이 겪을 수 있는 불같은 시련을 견뎌낼 수 있는 충분한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단순한 인간적 추론으로 확신하는 사람은 반대되는 교묘한 추론에 의해 믿음이 흔들릴 수 있고, 대중적 웅변술로 승리한 사람은 오류의 원인에서 유사한 예술에 대항하는 증거가 될 믿음을 갖지 못할 것입니다; 목사, 부모 또는 친구에 대한 단순한 존경심이나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하기 때문에 종교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대중의 흐름이 다른 방향으로 설정되거나 그의 친구들이 다른 견해를 받아 들일 때 그것을 버릴 수 있지만, 종교를 하나님의 진리로 받아들이고 진리에 대한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데살로니가 사람들과 같은 믿음을 갖게 될 것이며 모든 시련을 견딜 수있을 것입니다. 믿는 너희에게도 유효하게 역사하느니라 - 여기서 "어느"로 번역된 단어인 ὅς 호스는 "진리" 또는 "하나님"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문법적 구조는 어느 쪽이든 인정하지만, 어느 쪽이 채택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느 쪽이든 부인할 수 없는 진리이며 매우 중요한 의미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의미는 진리가 참 그리스도인이 된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효력을 발휘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 헌신하며 순수하고 거룩한 삶을 살도록 유도하고 삶의 시련과 유혹을 견딜 수 있게 했습니다(빌립보서 2:12~13, 히브리서 13:21 참고). 여기서 특별한 예는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였을 때 복음이 그들의 마음에 어떤 혹독한 박해의 공포에도 위축되지 않고 맞설 수 있도록 준비시킬 만큼의 힘을 발휘했다는 것입니다. |
문맥은 권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즉, 데살로니가의 그리스도인들이 바울과 같은 사도들의 권위를 인정하였다는 것이다. 모세의 기록을 인용하는 것은 사도들이 아니고 다른 유대인들도 그렇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만일 다른 유대인들이 그렇게 편지를 썼다면 그 내용을 데살로니가 그리스도인들이 그것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였겠는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문맥은 바울의 성경 해석과 그의 조언을 하느님에게서 온 것으로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이점을 볼 때 신적 권위는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것이어야 하지 작위적으로 '보혜사'니, '충슬종'이니 등의 명칭을 스스로 붙여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명칭을 붙이는 것은 그들의 권위를 강요하겠다는 작태이다. 다시 말하면, 그들이 컬트임을 스스로 드러내는 짓이다. 참된 하나님의 종이나 조직이라면, 그 권위가 자연스럽고 자발적으로 형성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기까지 사도 바울의 과정을 살펴보건데, 그리스도인을 박해로 시작하여, 회심 그리고 개종 후 많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그가 헌신적으로 바친 열정과 믿음이 그를 인정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권위는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는 방식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발생하는 방식이다. 다만 인정해줄만한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조직은 발전할 것이며 체계적 권위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충분한 합의가 필요할 것이다. 이 권위는 하나의 조직을 이끌어가는 데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모든 구성원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뭉치기 위해서는 모두가 인정하는 권위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물론 보이지 않는 권위는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가 있지만, 현실적인 권위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권위체계를 제대로 가지는 것이 그 조직의 미래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
질문:
1. 본문의 성구는 모세의 기록이 하느님의 말씀임을 알리고자 하는 것인가?
2. 하나의 조직에서 권위는 왜 필수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