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규에게..
1980년에 동대문 실내 스케이트장 옆에는 처음으로 OB 생맥주 집이 생겼단다. 요즘 어딜가도 있는 김밥 천국 같이 가운데 나무 테이블 있고 양쪽에 통나무로 해놓은 좀 썰렁한 분위기였지만 500CC에 500원 하는 생맥주 한 잔과 마른안주 김 100원, 땅콩 100원 하니 부담 없이 생맥주를 마실 수 있는 데가 생긴 거지. 길 건너편 황해정에서 청계천 방향으로 조금 가면 그 당시 유행했던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 집 유리 진열장에는 닭다리만 줄을 잘 맞춰 수북이 쌍여 있었지. 한남동 면허시험장에서 운전면허증 따고 기분 좋아 치킨과 생맥주 혼자 마셨던 곳. 황해정은 지금 없어졌고.
창신교회 사거리 대각선 방향으로 건너가 동덕여고 가는 골목지나 동대문 방향으로 조금 가면 지하 1층 원풍 다방이 있었는데 거기서 우리 동창 이창건 이가 DJ 를 1년간 했어.
청계천 7가 삼호호텔 건너편 청평화 시장은 옛날에 전매청 이었어. 뒷 길을 따라 동대문 운동장 축구장 뒤로 걸어가면 성동 여실이 있었지. 이 학교도 만만지 않았지. 노는 애들이 많았어.
중학교 2학년 때 선샤인 영화 보다 걸린 신당동에 있는 동화 극장을 가끔 가보기도 하는데 춘장과, 고추장, 양배추와 얇은 떡볶이, 얇은 오뎅으로 만든 신당동 할머니 떡볶이 집은 갈 때마다 사람이 많아서 못가고 그 앞에 있는 꾸러기 라는 집은 즉석 떡볶이 국물을 멸치 다시물을 우려 내어서 끊여 주거든. 서울에 있을 때 술 마시고 이 곳에 가서 떡볶이 1인분 시켜서 국물 추가 해서 들어 마시면 해장 되거든.
성동 여실에서 길을 건너서 시구문을 지나 고가 아래로 걸어가서 좌측으로 가면 장충동 할머니 족발. 원조는 벽돌로 지은 2층 건물 할머니 족발집. 이 집은 1970년 대에 처음 갔었는데 허름 했던 집으로 시원한 동치미와 파전을 써비스로 주었던 소박한 집이었는데 이젠 기업화 되었지.
족발을 대 중 소 주문 하면 족 1개 전체를 통째로 잘라 주는게 아니라 이미 썰어놨던 족발 몇 개가 섞어져 있어서 운 나쁜 날이면 맛 없는 부위만 먹게 되더라고.
그래서 난 족발 먹으로 갈 때면 앞 유리에 진열된 광주리에 있는 먹음직 스러운 족발을 하나 찜해서 아주머니가 계속 써는 것을 모니터 해서 다른 것과 섞이지 않게 앞에서서 감리 감독을 잘해서 족발집에서 먹거나 아니면 족발 하나를 통째로 사가지고 와서 집에 가져와서 썰지 않고 족발 끝을 양손으로 잡고 동물처럼 입으로 뜯어 먹다가 배부르면 랩에 쌓아서 냉장실에 두었다 먹고 싶으면 다시 뜯어 먹곤 한단다.
80년대 서울에서 잘하는 족발 집은 장충동에 있었고, 종로 3가 국일관 골목에 족발집이 있었는데 이 집은 지금 없어졌고 지금도 있지만 교보문고 후문 족발집이 잘했어. 지난 동창모임했던 퍼시픽 호텔 우측 길 족발집도 잘하는 집이고 삼각지 에 있는 족발집도 잘하지.
을지로 6가 계림극장(지금은 없어졌지만) 건너편에는 우표 수집점이 1970년대 있어서 이곳에서 가끔 우표 사러 왔던 곳이었지. 우리 국민학교 때는 대부분 우표를 수집했지. 기념일 날 쉬트 사러 신설동 우체국까지 아침부터 걸어가서 새로나온 우표 사서 우표 책에 끼워 넣고 우표를 자주 보곤 했지.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이라던가 박정희 대통령 취임 기념 우표라던가 단원 김홍도 풍속도 우표라던가. 등등. 학교에 가져와서 손으로 쳐서 뒤집어지면 먹는 우표 따먹기도 했고..
계림극장 맞은편 뒷 골목에는 선술집 털보집이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동태찌개를 시원하게 끊여서 가격은 5,000원 미만이었어. 1980년대 털보집에서 술 마셨는데 지금은 없어졌더라구.
청계천5가 방산시장 은 국민학교 때 팽이 돌린다고 나무팽이 사고 총알 2개 망치로 삐뚤지 않게 잘 박아서 떨지 않게 돌렸는데 팽이 끈을 좋은걸 사려고 방산시장에 가서 국방끈이란 것을 샀어.
재철이(떡판) 는 넓은 팽이가 오래 돈다고 좋아했고 재철이 얼굴도 넓적하고 팽이도 넓은 것만 돌리니 떡판이라고 별명을 부쳐 주었지.
떡판하고 찍끼 하면서 총알 빼먹기도 하고 팽이 돌리기는 우리 어릴 때 중요한 놀거리 중에 하나였어.
동대문 시장은 60년대 70년대 초만 해도 서울에서는 가장 고급이고 큰 시장이었어. 가끔 엄마 따라 동대문 시장 장을 보곤 한 기억이 난다. 그 시절 어물전 위에는 밝은 백열등이 생선을 비취고 있었지.
광장시장에서 종로 4가 쪽 시계 골목에는 그 유명한 함흥 냉면집인 곰보집이 지금도 있었고 1969년에 가족들과 여길와서 비빔 냉면을 먹었는데 으트게나 맵던지.. 지금도 있어서 먹어보니 별로 안 맵더라고.
성동공고 정문 담벼락에는 옛날에도 있었지만 중고 구두가 있고 중고 바지를 팔아 지금은 빠끼(파키스탄) 친구들이나 필리피노 등이 주 고객이고 이 거리는 30년 전에 돼지 내장인 막창, 새끼보, 대창, 염통, 허파를 커다란 양은 다라이에다가 고추가루, 참기름, 대파, 마늘등 갖은 양념해서 1970년대에 연탄불에 구어 무척 싸게 팔던 곳이였는데 요즘도 밤 10시에 가면 포장마차에서 막창 정도는 팔고 있는데 고추장 소스 양념이 너무 강하고 가격이 비싸서 옛 맛을 다 잃어 버렸어.
영미다리 건너 중앙시장 초입에는 30년동안 석굴만 리어커에서 파는 아주머니가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지고 그 잔재로서 곱창구이집 두 집에서 석굴을 팔고 있고 허름한 중국집은 서울에서 제일 싼 곳으로 자장면이 서울서 3,000원 할 때 이 곳에선 1,800원 곱빼기 2,000원 했는데 이 집도 없어졌더라고.
청계천 8가지나서 성동공고 방향으로 우측으로가면 그 유명한 원 할머니 보쌈집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지고 약 200 M 올라가서 2층 새 건물을 크게 지었는데 허름한 집이었을 때보다 맛이 덜하고 양도 덜한 것 같아.
옛날 원 할머니 보쌈집 에가면 비계만, 삼겹살만 또는 비계+삽겹살 등으로 주문 받고 보쌈 김치 끝내줬고 냉 콩나물국은 콩나물 향기가 팍 나서 쏘주 2병 비우기는 금방이었어.
청계천 9가 공구상 지나 우측 골목으로 들어가면 80년 된 설렁탕집 옥천옥이 아직도 있는데 옛날 기동차로 뚝섬에서 재배되는 야채를 실어나른 야채 장사꾼 들이 옥천옥을 즐겨 찾앗다고 하여 그 맛을 검증하려고 1998년에 혼자 가서 먹어봤는데 소머리국밥 맛이더라고. 별로..
종로4가 종묘 건너편 세운상가 입구에 있는 감미옥이란 설렁탕 집은 70,80년대 만해도 가격이 1,300원 저가지만 그 맛에 있어서는 독보적 존재 였고 깍두기 맛도 일품이여서 설렁탕 맛을 아는 사람들이 줄을 이은 곳이였고 나도 대학교때 청계천에나와 전자 부품 시장 보고 꼭 먹고 갔고 , 혹 시험을 봤던 날이라던가 아니면 시험에 떨어져서 기분이 꿀꿀하면 꼭 감미옥을 찾아서 설렁탕 국물을 마시며 마음을 달랬던 곳. 근데 7년 전엔가 사장님이 돌아가시고 흐지부지 되다가 지금은 오랜 역사와 그 성시를 이루었던 지난날 들을 등에지고 문을 닫았단다. 결국 설렁탕의 지존은 사라졌고 그 뒤를 이남장이 대신하고 있단다.
신설동 시외 전화국 맞은편은 서울사이더 공장이 있던 곳 그 길로 올라가면 중턱에 절이 있었고 신설동 육교 앞 2층에는 역마차 다방이 있었는데 1980년 초만 하더라도 DJ 있는 음악 다방이 서울에는 많았고 다방 레지(Lady)들이 투피스 유니폼입고 주문 받고 차를 나르고 리퀘스트 뮤직으로 E.L.O 의 Midnight Blue 를 많이 신청했지. 예븐 레지는 정말 예뻤지. Skeeter Davis 의 He says the same things to me. My Last date. 아바 등등..
병규도 옛 기억을 고스란이 갖고 있기에 우리가 태어난 고향 주변 ,어린시절 우리가 지내왔던 바운더리에 있었던 것들을 네게 이야기 한다.
30년 , 20년 이란 세월이 흘러 지금의 PC, 초고속 인터넷과 휴대폰, 자동차를 우리에게 주었지 만 지난 날들 우리와 함께한 문화 공간, 음식점, 놀이 들은 이제 간 곳 없구나.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했던가? 70년대 80년대 옛 문화의 흔적 그리고 잃어버린 우리의 낭만을 과연 어데가서 찾을 것인가? VIPS 나 TGIF 같은 훼미리 레스토랑에서? No. 성인나이트 클럽에서? No. 노래방에서? No. 다방에서? No.
병규야. 서울에 안암동 고대 닭발집이나 홍제동 닭내장볶음집, 안암동 꼴뚜기데침집, 허리우드 극장 밑에 순대술국집 70년대 분위기가 베어있는 이런 곳에서 내년에는 한번 우리 동창 친구들과 함께 보기로 하고 숭신 카페에라도 들어와서 옛 친구들의 음성을 들으면서 사기 당한 것 같이 촌음 처럼 빨리 흘러가 버린 지난 30년의 세월을 되찾기로 하자.
향후 30년 후에는 아마도 우리들이 어린시절에 무대였던 그 거리들이 형체도 다 없어지겠지만 우리의 동심과 동묘앞 단오날의 축제의 그 거리는 우리들 가슴 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이야.
병규에게 보내는 숭신카페를 통해 쓰는 마지막 편지인 것 같다. 더 이상 내 기억을 할 수없으니.. 담엔 원주에서 만나 병규 눈을 보며 옛 이야기를 직접 들려주마. 일요일 오후 가족과 함께 잘 보내.
Best Regards.
첫댓글 오늘도 태호 덕분에 맛 기행을 실컷하는구나... 대충 세어봐도 20군데... 세다가 헷갈려서 몇 번이나 세어봤다. 다른 친구들은 나 같이 무모한 짓 하지마라... 근데 내가 왜 그걸 세기 시작했을까.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나 아무래도 바본가봐. 현기증이 나는구만... 니가 말한 음식점 중에 1/4 정도 밖에 모르겠다만, 새까맣게 있고 있었던 동묘 앞 단오제가 생각이 난다. 동묘 앞에 왕따시한 그네 걸어 놓고 어떤 아줌마가 한 바퀴 돌 것 같이 높이 타던 생각이 나네... 그래 너도 휴일 잘 보냈겠지? 원주에 어디가 맛있나 알아 놓지...
원주에선 내가 살게. 내가 허름한데 아는데가 있거든. 지난번 못 나와서 미안하고..
휴휴 이걸 다 읽어보는데 난 10분쯤 걸린것 같다... 정말 세세한거 하나도 잊지않고 기억하고 있는 태호가 대단해..
허경영인 I,Q가 400 이래 태호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