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24일(음력 윤9월1일)새고려신문 | | | 새고려신문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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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6 02:33 |
(10월 22일. 사할린. 김장철이 한창이다. 한인동포만 아니라 사할린 러시아인도 김장준비를 하고 있다. 유즈노사할린스크시장. 배추를 판매하는 사할린 한인, 중국인 등.)
유즈노사할린스크, 전체주의적 교단 문제로 국제컨퍼런스 개최
21-22일 유즈노사할린스크에서 <전체주의적 교단들과 시민사회: 영적 보안에 대한 절박한 과제>란 주제로 국제학술대회가 개최됐다.
세계 6개국을 대표하여 컨퍼런스에 참가한 20명의 명예참가자와 발표자는 세계 이름난 종교 전문가들이다. 그중에는 카르파스키 흐리스토포르 주교(키프러스), 신신앙운동센터장 이완 젤레브 지미트로브 교수(불가리아), 차오 후안 우하니대학교 철학학교 교수(중국), 블라지미르 로가찐 <디알로그>니콜라옙스크가족·개인보호센터장 (우크라이나)등이 있다.
러시아신앙·종파연구센터연합 알렉산드르 드워르킨 회장에 따르면 이와 같은 행사들이 러시아 여러 지역에서 개최됐지만 극동지역은 이번이 처음이다. 신앙상태로 보아 사할린은 불안전한 지역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본사기자)
단일국가시험 변경 절차에 관한 세미나 개최
이번 주에 사할린을 다녀간 러시아교육감시청 일반교육질평가국 율리야 예고로와 국장은 지난 20일(월) 유즈노사할린스크에 모인 사할린 남부지역 8개 구역 교육기관 전문가들에게 2015년 단일국가시험 변경 절차 사항을 알렸다.
그는 외국어시험을 구두로 할 가능성이 생겼다고 했다.
수학시험 변경도 있다. 수학 기본과 수학 프로필 시험으로 구분되기 때문이다. 인문학전공을 하려고 하는 졸업생은 기본수학 시험만 보면 된다.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는 국가최종인증 허가를 받기 위해 졸업생들은 작문을 써야 한다. 그 허가작문이 통과하지 못하면 작문을 또 한번 쓸 기회가 있다.
첫 국가시험들인 러시아어와 지리학은 2월 14일, 다음 시험들은 3-4월, 5-6월에 있다.
2월 시험 선택은 12월 1일 전에 해야 한다.
예고로와 국장은 포로나이스크, 스미르늬흐, 마카로브, 노글리키, 오하, 틔몹스코예, 알렉산드롭스크-사할린스키 전문가들을 위해서도 두 차례 세미나를 가졌다.
<겨울>시간으로
사할린과 쿠릴이 오는 일요일에 <겨울>시간으로 넘어간다. 이로하여 10월 26일 밤 2시에 시침을 1시간 뒤로 옮겨 놓아야 한다.
참고: 시간은 한번만 전환된다. 크릠, 세워스토폴리를 포함해 러시아연방 행정구역 85개 중 80개가 시간 전환을 할 것이다. 우드무르찌야, 캄차트카, 추코트카, 케메로워, 사마라주는 시간을 전환하지 않을 것이고 자바이칼리예와 마가단주는 오히려 시침을 2시간 뒤로 옮겨놓을 것이다.
단신
소치 민속문화축제에 북방소수민족원주민 사할린주를 대표
11월 2-4일 소치에서 러시아연방문화성의 주최하에 제1회 전국 민속문화축제가 개최된다. 앞으로 해마다 진행될 이 축제는 러시아 지역 민속문화 풍습을 지원·재생시키는 행사가 될 것이다.
첫 축제에 사할린 북방소수민족원주민들이 사할린주를 대표할 것이다. 즉 닙흐민족인 조야 류토와, 알렉산드르 몬구쉬, 안나 잘위나(<아리 라 미프>앙상블, 노글리키), 원주민 공예품 마스터들인 알비나 믜군(녜크라솝카)과 왈레리아 오시포와(노글리키)이고 대표단 단장은 사할린주 민속창작센터 북방소수민족문화부장 갈리나 사멘코라고 사할린주문화성에서 밝혔다.
사할린에 쿠르스크주 돼지 약 600마리 도착
얼마 전에 아니와구역 타라나이촌에서 현대 양돈종합체가 운영되었다. 지난 19일 쿠르스크주에서 돼지 587마리를 실어왔다.
첫 우량종 돼지 새끼를 2015년 4월 초에 받아 사육하여 2015년 4/4분기에 첫 고기를 판매할 것으로 알려졌다.
양돈장에서 인공수정 시스템을 이용할 것이다.
사료는 프리모리예변강에서 공급했다. 현재 사할린에서 사료공장건설문제도 심의중이다.
돼지 연 1만2000마리(체중110킬로그램)를 사육할 계획이다.
최대 고기 생산량은 1320톤이다. 돼지고기 예상판매가격은 220루블리로 보고 있다고 밝혀졌다.
새 양돈종합체는 돼지고기시장의 10%를 차지할 것으로 알려졌다.
사할린 복지기관 겨울준비 완료
사할린주사회보호성은 주내 복지시설들의 가을-겨울 시즌 준비 상황을 검토했다.
. 사회복지기관 25개 모두 겨울준비가 됐다고 밝혀졌다. 올해 복지시설 겨울준비에 주예산에서 1억6000여만 루블리가 지급됐다
준비과정에 복지시설에서 지붕, 외벽, 엔지니어망, 건물 등 수리를 했다. 즉 미성년복지시설인 <알릐 파루스>센터(아니와), <스웨틀랴쵸크>센터(스미르늬흐)에서는 대규모 종합수리를 하고 <울릡카(미소)>센터에서는 지붕수리를 했다.
여러 복지시설의 난방 시스템 수리, 새 창문과 문 교체 등도 했다.
사할린작가, 우글레고르스크 시민들과 만나
10월 23-26일간 우글레고르스크구역에서 <사할린 문학의 날들>이 진행된다.
이 행사 범위에서 러시아작가동맹원인 니콜라이 타라소브, 이리나 레위테스, 안나 사포노와 사할린작가와 옐레나 나모코노와 동화작가가 우글레고스르크구역 시민들과 만남을 가질 것이다.
방문 목적은 사할린 및 러시아 작가들의 새로운 작품들을 소개하는데 있다고 한다. 작가들은 어린이보육원, 샤흐쵸르스크 광산전문학교, 시·농촌 여러 도서관들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인물
사할린 만남 2014. 초대 손님 - 안드레이 란코브 교수
3-5년에 한번씩 사할린방문 계획
현 북한 실태를 알아보는 장
이미 홍보된 바와 같이 지난 12-19일간 아.란코브 국민대학교(서울) 교수가 사할린을 다녀갔다. 사할린 방문차 그는 제1차 세계 대전에 관한 국제학술대회에 참가하고 학생들과 시민들을 위해 <김정은 정치하에 북조선>공개강의를 하였다.
지난 17일(금) 유즈노사할린스크시한인회 건물에서 30여명이 모인 가운데 새고려신문사가 주최하는 <사할린 만남>프로젝트 범위에서 안드레이 란코브(51) 교수와 대화할 자리가 만들어졌다. 이번 행사를 유즈노사할린스크시한인회(회장 박종철)가 주관했다.
새고려신문사 배 윅토리아 사장은 안드레이 란코브 역사학 박사를 간단히 소개했다.
한반도 연구전문으로 잘 알려진 레닌그라드국립대 출신의 란코브 교수는 오랫동안 한국에 머물고 있다.
3단체(그중 하나 새고려신문사)가 공동주최한 <사할린 만남>프로젝트의 첫 초대손님으로 란코브 교수는 5년 전에 처음으로 사할린을 방문했다. 이번 방문은 2번째였다.
이날 만남의 주제는 <남과 북의 현 실태>였다. 남과 북에 친척이 있는 사할린동포들은 이 주제에 더욱더 특별한 관심을 가졌다.
란코브 교수는 우선 현재 북한 경제사회에 일어난 많은 변화, 즉 민영화 상황을 소개한 다음 동포들의 많은 질문에 답변했다. 이날 시한인회를 20대부터 80대까지 찾아 질문 자체가 다양했다. 젊은이들은 특히 북한 사람들의 사상, 현 실태를 많이 궁금해 했고 북한과 한국에 친척이 있는 사람들은 남북관계의 전망에 대해 의견을 알아보기도했다.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는 란코브 교수는 이날 거의 2시간 동포들과 풍부한 정보의 자리를 함께 했다.
끝으로 박종철 시한인회장은 란코브교수에게 사할린 기념품을 선사했다.
<사할린 만남>행사를 앞두고 새고려신문사 배순신 기자는 안드레이 란코브 국민대학교 교수와 인터뷰를 가졌다.
- 교수님은 세계적으로 위신있는 칸베라대학교(호주) 교수였었는데 그만두시고 한국으로 가신데 대해 후회 되지 않으세요?
- 아니요. 후회하지 않아요. 어떤 사람들은 이 결정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호주는 편하게 살 수 있는 나라이고 사회적 보장이 잘돼 있는 국가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처음부터 이 나라에서 살기가 심심했다고 할까요. 거기에 머물고 있은 동안(1996년부터 2004년까지) 코리아 역사, 북조선을 효과적으로 연구하려면 한국에 가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한국이 아니라도 좋은 한국학 연구가가 될 수 있지만 저 같은 경우엔 아닌 것 같아요.
한국에 머물면서 제가 좋아하는 연구를 할 수 있으니 만족합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다른 나라와 달리 대학교수라면 정말 존경받고 위신있습니다. 한국에서 조교수의 노임도 비교적으로 평균임금보다 더 높습니다.
- 교수님껜 제자가 많습니까?
- 대학생들이 제 수업을 듣고 있지만
북한 연구를 전문으로 하고싶은 사람들은 주로 러시아와 외국(호주, 영국 등)사람들입니다. 이 분들은 주로 지도교수 이름을 선택해서 논문을 쓰고 연구를 하거든요. 또 제가 실질적으로 연구를 도울 수 있는 것을 그들이 중요하게 여기거든요.
- 제가 알기엔 교수님이 최근년에는 북한에 가보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북한 연구를 어떻게 하시는가요?
- 네, 맞습니다. 마지막으로 북한에 2008년에 가보았거든요. 사람들을 만나서 알아보기도 하고 중국 등에 가서도 연구를 하는 거죠. 모니터링도 하고요. 그리고 잘 되면 이번 연말, 아니면 내년에 북한을 다녀가려고 합니다.
- 탈북자들과는 자주 만나세요? 현재 한국에 탈북자 수는 어떻게 됩니까?
- 일주일에 5번 혹은 3번, 또는 10번 만나요. 탈북자들과 함께 하는 프로젝트들이 여러가지 있거든요. 현재 한국에서 탈북자 2만5000명정도 살고 있습니다.
- 주로 어떤 연구를 하세요?
- 최근 20년간의 경제적, 사회적 변화를 조사합니다. 시장경제, 민영화 영향 등을 연구하는 거죠. 그래서 전문적 인터뷰를 많이 하죠. 물론 중국과의 경제교류가 북한경제사회발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다들 아시는 사실이고. 그리고 나라에서 개인비즈니스가 강화된 것도 사실입니다. 특히 개인 중소기업이 많아졌고, 대기업은 거의 없구요. 이렇게 보면 서비스분야는 완전히 개인 중소기업의 손에 넘어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소매시장도 대부분 민영화되었고 철도를 제외하고는 시외 차량(버스, 화물차)도 거의 다 개인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공업을 보면 개인탄광도 생겼답니다. 그래도 공업은 그다지 개인업이 많지 않습니다. 수산업은 많이 민영화되었습니다. 수산물은 주로 가공하지 않고 생선을 중국과 일본에 판매합니다. 냉동해서 팔기도 합니다만 전력이 부족해서 냉동을 많이 하지 않습니다. 냉동어는 주로 중국으로 보낸답니다. 해변가에 많은 냉동실도 설치했습니다.
농업에 있는 개편도 재미있습니다. 현재 가족끼리 농장을 운영하여 농장에서 얻은 수입의 70%는 국가에 지급하고 나머지 30%는 가족에 남겨둡니다. 이 정책이 성공했다고 봅니다. 농업이 발전되고 있습니다.
현재 북한 가족 소득을 보면 4분의 3은 개인업에서 얻는 것입니다.
요즘 북한에서 많은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 개성공단 가동은 북한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요?
- 경제적으로 그렇게 큰 영향은 미치지 않았습니다. 수입으로 보아 사할린, 러시아 극동에서 파견 노무자들이 버는 돈 보다 적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정치적 면에서 개성공단 가동 의미가 아주 크고 중요합니다.
- 사할린에 다시 오실 생각은요?
- 바쁘게 지내다(교수활동, 연구, 1년에 6-12번 외국방문/올해만 해도 캐나다, 중국, 호주, 이스라엘, 미국등/, 러어·한국어· 영어 칼럼 쓰기, 라디오프로그램 준비 등.- 기자주)보니 사할린에 자주 오지 못하지만 3-5년에 한번씩은 와보고 싶습니다.
물론 전문적으로 관심이 있기 때문이죠. 사할린, 북한, 한국 등 여러 관계가 궁금합니다. 사할린 한인 역사에도 관심이 있지만 이 테마를 아나톨리 쿠진 박사와 젊은 연구가 율리야 진이 깊이 잘 연구하고 있다고 봅니다. 앞으로도 사할린 한인들과 교제하고 싶습니다.
- 귀한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모저모
올 9개월간 사할린주에 외국인 약 6만7000명 입국
사할린주 이민관리국이 9개월간 사업을 총결했다. 작년 동시기에 비해 사할린주에 들어온 외국인수가 2배 더했다. 이와 같은 증가는 왁카나이-코르사코브간에 관광교류범위에서 운행하는 여행선박 때문이라고 한다.
이민 등록한 외국인수는 작년보다 15,7% 증가해 6만500명에 달한다.
이민하는 주요 목적은 고용노동인데 그 나라들로는 주로 우즈베키스탄과 키르기즈스탄이다.
사할린주이민관리국에 외국인 초청 기관 340개소가 등록돼있다.
연초부터 초청장 7179건이 작성됐다. 이것은 작년보다 32,7% 더하다.
9개월간에 임시체류 허가증은 936건이 발급됐고 211건이 거주등록됐다.
금년에 러시아연방 국적 및 국적회복을 한 국민수가 3%(366명)증가되었다. 그중 44%는 국가프로그램 참가자와 그의 가족들이다.
국가이민정책개념의 주요 방향은 주 경제분야의 고급수준 전문가들을 유치하기 위한 여건과 메카니즘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 과제 범위에서 올해 고급 전문가들에 대한 허가증이 868건 발급됐다. 이것은 작년 지표보다 2,3배 더한 것이다. 이와 같은 허가증발급으로 사할린주는 극동지역연방구에서 1위를 차지한다.
유즈노사할린스크, 주내 무용단 공연
10월 24일(금) 17시 유즈노사할린스크 <로지나>문화회관에서 사할린예술콜레즈 55주년 기념행사로 콜레즈 무용과 졸업생들이 지도하는 주내 무용단들의 공연이 개최된다.
1977년에 콜레즈에 무용창작과가 열려 1979년에 첫 무용전문가들을 졸업시켰다. 그후부터 해마다 예술콜레즈는 무용단 지도자-전문가들을 배출한다.
졸업생들이 국내 많은 도시의 문화교육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대다수는 사할린주 무용술을 발전시키고 있다. 오늘현재 그들은 주, 전러시아, 국제 콩클 수상자들이며 <모범> 및 <인민>칭호를 가진 무용단들을 지도하고 있다.
콘서트에는 <엑조틱>인민무용단(지도 나제즈다 구리야노와), <윅토리아>모범무용단(지도자 옥사나 보로두쉬키나), <도라지>무용단(지도자 옙게니야 김) 등이 참가한다. 입장은 자유이다.
돌린스크시 공원에 <마법>의 벤치 설치
사할린 돌린스크시 소공원에 <마법>의 벤치가 생겼다. 화해시키는 이 특이한 벤치는 열성 있는 시민, 기업인들의 발의, 시행정부의 지원하에 설치되었다. 조직자들은 싸웠던 사람들이 이 벤치에서 화해를 하고 서로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지난주에 시내 체호브명칭 소공원에서 <마법>의 벤치 공식 오픈이 있었다고 시행정부 사이트가 알렸다.
지금부터 돌린스크시민들은 다툼 후 평소보다 더 빨리 화해할 수 있다. 화해 벤치에만 앉으면 되니까.
박수와 <만세> 하는 관객들의 응원하에 프로젝트 추진자들이 이 독특한 벤치를 제막했다. 벤치 중심이 좌우의 가장자리보다 낮게 돼 있으니 벤치에 앉은 두 사람은 결국 어깨가 서로 맞대게 된다.
화해의 벤치는 러시아 많은 도시들에 설치돼 있다. 지금은 돌린스크에도 생겼다. 벤치는 안드레이 콜믜코브 단야공이 만들었다.
사할린 연금자 더욱 더 많이 컴퓨터교육 희망
유즈노사할린스크 다기능센터가 개강한 컴퓨터과정을 또 한 노인그룹이 수료했다. 일하지 않는 연금자들을 위한 수업은 무료이다. 노인들이 컴퓨터를 다룰 수 있도록만 아니라 소셜네트워크에서 자신의 페이지와 메일 등록을 하도록 도와준다고 다기능센터 홍보실이 전했다.
노인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컴퓨터 기초와 컴퓨터 술어를 쉽게 설명하고 오피스프로그램의 단순한 작업을 할수 있는 기회도 제공한다.
수업과정은 각 수강생이 연령, 전문, 준비수준에 관계없이 컴퓨터기초를 배울 수 있도록 잘 준비돼 있다.
지난 수업과정과 컴퓨터교육희망신청수에 따르면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현대 생활 리듬에 떨어지지 않고 자기 시야를 넓히려 한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컴퓨터수업을 희망하는 사람은: (4242) 67-22-22로 연락을 하고 신청할 수 있다. 과정은 6주이고 수업은 일주일에 두번이다. 수업은 모든 장비를 갖춘 다기능센터 컴퓨터실에서 수강생들에게 편리한 시간에 실시된다. 컴퓨터교육은 전문교육을 받은 센터 전문가들이 실시한다. (사할린주 언론기관 자료들에서)
25년간 사할린 동포 찍어온 老기자 이예식
1989년부터 사할린 새고려신문사 사진기자로 활동
"동포 생활사에 큰 관심…힘닿을 때까지 찍고 싶어"
오랜 시간 러시아 사할린 동포들에게 천착해왔다
그가 1989년 사할린 유일의 한인 신문사인 '새고려신문'에 들어와 사진기자로 뛰기 시작했으니 올해로 25년째다.
사할린 동포들의 영주 귀국, 일본 총영사관 앞 배상 요구 시위 등 굵직한 사할린 한인 역사가 그의 카메라 초점에 놓였다.
한편으로는 유즈노사할린스크 시장에서 채소를 파는, 교외 들놀이에서 몸을 흔드는 이들을 사할린 한인 동포라는 이름으로 필름에 갈무리했다.
그런 그도 사할린 한인 2세대다. 충북 옥천 출신인 아버지가 일제 때 사할린 탄광으로 동원된 후 태어났다. 사할린 주도인 유즈노사할린스크가 고향인 셈이다.
13일 유즈노사할린스크의 신문사 사무실에서 만난 이예식(65) 기자는 25년간 카메라에 담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묻자 '동포 1세대'라고 짤막하게 답했다.
"동포들의 생활사에 관심이 많이 갔다고 보면 됩니다. 주로 동포 1세대, 강제징용을 와서 남게 된 한인들이 어떻게 살고, 지금까지 왔는지를 테마로 다뤘습니다."
그는 학생 시절 건축학을 공부했지만 사진이 좋아 미련 없이 그만뒀다고 한다. 당시에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했는데 공부보다 사진 찍기에 끌렸다고 했다.
그 뒤로 사할린 지역 통신원으로 일하며 구소련 매체들에 사진을 보내는 일을 했고, 새고려신문사에 자리를 잡은 뒤로는 동포 문제로 관심을 옮겼다고 했다.
이씨는 1990년대 초 구소련이 붕괴하고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정책이 본격화하면서 한인 동포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떠올렸다.
그는 "그때 동포들이 굉장히 가난하게 살았어요. 정말로 고생을 많이 했어요"라며 컴퓨터 앞으로 자리를 옮겨 주제별, 시대별로 묶어둔 사진들을 보여줬다.
그가 컴퓨터 마우스를 움직일 때마다 동포들의 시대상이 화면 위를 지나갔다.
불편한 노구를 이끌고 꿈에 그리던 고국으로 떠나는 할머니, 징용 간 남편을 50여 년 만에 만난 여인의 미소, 무를 가지런히 손에 든 아낙네, 흥겨운 장구 장단에 몸을 맡긴 이들 모두가 그의 카메라를 스쳐간 동포들이다.
이제 일흔을 바라보는 그는 지금까지 카메라에 담고, 정리했던 사진들을 한데 모아 한국에서 책을 내는 일을 준비하고 있다.
그저 개인의 작품으로 남겨 두기에는 안타까운 게 너무 많다는 주변의 권유에 따른 것이다. 무엇보다 그의 사진을 통해 자칫 잃어버릴지도 모를 사할린 동포들의 기억을 충실히 기록해둘 수 있다는 설득이 크게 작용했다.
기자로는 한참이나 앞선 그에게 언제까지 카메라를 들고 있을지 묻자 싱거운 웃음이 돌아왔다. 그는 당연하다는 듯 "힘닿을 때까지 해야지"라고 했다.
"전 사진을 찍는 게 아직도 좋아요. 싫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어요. 한동안 안 찍다 찍으면 사진이 더 잘 찍히는 거 같아 그만두지도 못하겠네요."
(서울=연합뉴스) 양정우 기자
한국에서 입수된 소식
내년에도 음성과의 만남 기대
충청북도 음성군, 제5회 사할린동포와 함께하는 한마음대회 개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고향 충청북도 음성 설성공원에서 지난 16일(목)-19일(일)간 오전 10시부터 저녁 늦도록 제15회 음성 품바축제가 거행됐다. 4일간 축제프로그램은 음성군 향토음식경영대회, 현대무용공연, 불꽃놀이, 예술단공연, 비빔밥 나누기, 국악단공연, 노숙인에게 사랑과 희망을, 독거노인에게 사랑과 희망을, 실버가요제 등으로 다양했다. 음성품바축제의 프로그램에 따라 음성 설성공원 야외음악당에서 16일(목) 13시부터 17시까지 <2014년 사랑과 나눔의 음성품바와의 만남>슬로건하에 <제5회사할린동포와 함께하는 한마음대회>가 수백명 사할린동포, 수많은 음성주민들과 봉사원들이 모인 가운데 성대히 진행됐다.
주관은 대한적십자사봉사회 음성지구협의회, 후원은 충청북도 음성군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대한적십자사 봉사회 음성지구협의회 봉사원들은 행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음성여성문화회관 식당에서 사할린동포들에게 푸짐한 밥상을 마련해주니 감개가 새로웠다.
이날 행사장에 이필용 음성군수와 함께 사할린주 녜웰스크시 박 블라지미르 시장과 공식인사들이 입장하자 사할린동포들은 일시에 환성과 환영의 박수소리를 터뜨렸다.
이필용 음성군수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고향을 찾은 녜웰스크시 박 시장을 비롯 녜웰스크시청 대표들과 사할린영주귀국자들을 환영했다. 음성군은 사할린동포들을 위해 5번째 만남의 장소를 마련했다. 앞으로 음성군과 녜웰스크시는 자매결연을 맺을 준비를 하
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뒤를 이어 감사의 인사를 한 녜웰스크시 박 블라지미르 시장은 <녜웰스크시에서 러시아 음악을 가져왔다>라고 하고 계속하여 그는 음성군에서 전국에 귀국한 사할린동포들을 위해 특별축제를 이미 5년째 마련해주는 이필용 군수에게 진심으로 깊은 사의를 표하고 녜웰스크시청 상장과 선물을 증정했다. 이날 포상된 분들 중에는 음성사할린동포봉사회 유동식 회장도 있다. 실은 유동식 회장 역시 5년째 한마음대회를 조직진행하는데 정성껏 협조했다. 이날에도 유 회장은 축하공연 및 한마당잔치에서 사회하랴, 통역하랴 수고 많았다. 축하콘서트는 녜웰스크시 예술학교 바이올린 연주자둘(20명, 지휘자 러시아문화공훈일꾼 윅토리야 유흐마노와)의 좋은 공연으로 시작됐다. 사할린동포 - 노인들은 수십년동안 경청해온 러시아 민요, 가요, 클래식 음악을 만끽하면서 러시아에 거주하는 자녀들과 손자들을 그리워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전국에 흩어져 거주하는 사할린 동포들은 오래간만에 만나 얼싸안고 기뻐하기도 했다.
한국 초대인기가수들이 사할린동포들의 명절기분을 고조시켰다. 가수들의 노래가락에 노인들은 혈육에 대한 걱정을 임시라도 내려놓고 흥이 나 춤판을 벌였다.
이전 <사할린>예술단원들인 현재 김포 한강신도시 솔터마을 거주 윤민자 씨와 안산시 거주 김경진 씨, 그리고 전국 20여 개 지역에서 활동하는 사할린동포사회단체장들의 명의로 무대에 나선 김포 한강신도시 솔터마을 사할린영주귀국자사회단체 박정자 회장의 열창에 관람객들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이날 사할린동포 장기대회에서는 9명이 치열한 대결을 벌였다. 결국 서울거주 오현일 사할린동포가 1등상을 취득했다. 장기대회를 인천 거주 박원식 씨가 고맙게도 도맡아 진행했다.
한마음대회에서 좋은 시간을 보낸 사할린동포들은 충청북도 음성군 이필용 군수, 남궁유 의장을 비롯 대한적십자사봉사회 회원 여러분에게 삼가 사의를 표하고 내년에도 음성과의 만남을 기대했다.
유동식 회장의 말에 의하면 녜웰스크시 예술학교바이올린연주자오케스트라는 파주, 서울, 대구에서도 러시아의 감미로운 선율을 선보여 절찬을 받았다.
김포 한강신도시에서 안춘대
사할린 한인의 대한민국 국적회복을 위한 시민운동
(전호의 계속)
사할린 한인의 국적에 대한 일본의 태도는 이중적, 기회주의적이었다.
기회주의적으로 사할린 한인을 이용한 일본은 국적을 해석하는 데에도 이중성을 피하지 못한다. 일본은 1946년 일소회담에서 사할린에 남은 일본사람들을 일본으로 귀환시킴에 대해 회담하면서, 귀환대상자를 첫째, 일본군 포로, 둘째, 일본 국민, 셋째, 자의적인 귀환희망자로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서 사할린 한인을 누락시키고 있다. 그렇지만 1946년부터 1949년까지 있었던 제1차 사할린 일본인 일본 귀환 시, 일본 외무부는 사할린 한인은 일본 국적을 보유하고 있다고 엉뚱한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왜 일본인만 귀환대상자로 선정했는가?
1952. 4.28에 발효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제2조(a)항에 의하면,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승인하고,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를 포함하는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 소유, 및 청구권을 포기한다'고 하였는데, 일본 최고법원은 이 조항으로 일본은 한국의 영토 주권을 포기함과 동시에 한국에 속하는 사람에 대한 주권을 포기하였다고 해석함으로 이 조약이 발효됨과 동시에 한국인은 일본국적을 상실했다는 견해를 취하였다. 그러나 사실은, 이 조약 안에는 한국인의 국적 처리에 관한 규정이 없고, 한국이 조약 당사국이 아니므로 국적처리는 불확실한 것이다. 더군다나 1952년 이전의 사할린 한인의 경우 귀환을 희망했어도 그들을 무국적자로 취급하여 귀환을 거부한 일본이 아닌가? 그러니 일본은 자국 국민인 사할린 한인을 내버린 법적 책임을 분명히 갖고 있다.
1955년에 소련 정부가 사할린 한인이 소지하고 있던 신분증에 의해 무국적자 영주권을 발급해 줄 때, 그 영주권에는 '어디에서, 언제 사할린에 왔는가?;라는 항목이 있었는데, 거기에 1945년 소련군대로부터 해방되어 이곳에 왔고, 마지막 국적은 (전)일본이었다고 적혀 있었다.
이렇게 보면, 사할린 한인에게는 대한민국의 해방과는 별도로 일본 국적과 연결되어 있었고, 따라서 사할린 한인에게 식민지였던 조선의 국적이 살아있다고 보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사할린 한인을 다른 나라에 사는 한인과 똑같이 생각하여, 사할 린 한인이 보유하고 있는 대한민국 국적을 부정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대한민국은 사할린 한인을 어떤 국적으로 생각하는가? 대한민국이 러시아와 수교한지 벌써 20여 년이 지났지만, 대한민국은 사할린 한인의 국적회복에 대한 아무런 언급도 제시도 하지 않고 있다. 이것으로 보아 대한민국은 그 때 그 시기의 사할린 한인의 역사를 잊고 있거나 버리고 있음이 분명하다.
역사의 특수성은 어느 장소나 어느 시기에나 있을 수 있다. 그것은 또한 존중되어야 한다. 사할린의 역사를 다른 나라, 다른 장소와 똑같이 취급하면 처리하기는 쉬울지 모르지만, 역사의 고통과 의미는 시간에 묻히기 마련이다. 그러면 고난 당한 사람들만 불운한 사람, 피해자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슬픈 역사는 또 다시 일어나게 될 것이다. 고난의 윤회, 이것은 누구도 원하는 일이 아닐 것이다. 적어도 대한민국과 같이 자랑스러운 문화를 지닌 나라라면 역사의 수레바퀴를 멈추게 하고, 과거의 잘못과 오류를 수정하고 바로잡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할린 한인의 역사 회복, 국적 회복은 중요하다.
사할린 한인에게 대한민국 국적은 실종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사할린 한인은 러시아에 살고는 있지만 정말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디로 가더라도 우리는 이방인 취급을 당해야 한다.
(계속)
(사할린 한인의 대한민국 국적회복을 위한 시민운동 본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