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룡전설 1권- 第二章

[고향설]

주가장이 있는 서현은 하남 남쪽에 있다. 남으로 가면 그
리 멀지 않은 곳에 무당산이 있고 북으로 한참을 올라가면 숭
산이 나온다.
  그 서현의 가장 큰 장원이 주가장이다. 장주는 금을 검 대
신 휘두른다는 금검 주진한이 맡고 있다.

  주유성은 세 살에 처음 책을 잡더니 곧바로 천자문을 뗐다.
그 날 당소소는 장원의 무사들에게 휴가를 줄 정도로 좋아했
다. 주진한이 주변의 아는 사람들에게 신동 아들 뒀다고 자랑
하면서 산 술이 백 항아리가 넘었다.

  주유성의 재능은 그 정도로 그치지 않았다. 천자문은 단지
시작이었다. 기억력이 좋고 이해력이 높아 나이에 비해 훨씬
어려운 책도 쉽게 읽었다.

  주가장에 찾아온 사람들은 주유성을 보면 으레 학문에 관
한 것을 물어보았다. 주유성이 곧잘 대답하면 그들은 크게 칭
찬을 했다.

  "어허허. 녀석. 그 어린 나이에 벌써 그 책을 읽었단 말이
냐? 미래가 기대되는구나."
  "이 녀석, 이대로만 자라면 틀림없지 장원급제는 문제없을
거야."
  "너는 신동이다. 신동."

  방문객들은 돈 안 드는 칭찬을 하는데 아낌이 없었다.
  주유성은 처음에는 칭찬에 신이 나서 열심히 공부했다. 그
러나 그 소리를 이 년 정도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듣고 나자
자기가 정말 신동임을 깨달았다.

  다섯 살이 넘어선 후에도 주변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하지
만 주유성이 변했다. 이제 더 이상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다.
타고난 머리는 어디 가는 것이 아니라 책을 쥐어주면 쉽게 공
부했지만 그뿐이다. 기회만 생기면 게으름을 피웠다.
  그리고 주유성이 일곱 살이 됐다.


  주유성은 정자에서 뒹굴며 놀고 있었다.
  주진한이 그 모습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에휴. 저 녀석. 오늘도 하루 종일 뒹굴고만 있네. 다른 집
아이들은 뛰어다니느라고 바쁜데 저 녀석은 왜 저리 게을러?"

  옆에 선 당소소가 한마디 했다.
  "게으른 거야 가가네 집안 내력이지요. 우리 당문 사람들
은 다들 부지런하다고요."
  "하긴. 저 녀석이 여러 가지 면에서 나를 닮았지."
  "헤에. 그렇게 생각해요? 외모를 보면 나를 쏙 닮았어요.
가가 닮은 건 게으름뿐이네요. 무경아. 그렇지 않니?"

  두 사람의 뒤에는 스무 살의 젊은 무사 진무경이 서 있었
다.
  진무경은 주진한의 제자다. 그는 당소소의 난처한 질문에
화들짝 놀랐다. 주진한의 눈치를 살짝 본 그는 침을 꿀꺽 삼
키고 대답했다.

  "유성이는 당연히 사모님을 빼다 박으셨습니다. 판박이죠.
벌써부터 십 년 뒤가 기대된다고 하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
다."
  "호호호. 역시 우리 무경이는 눈썰미가 제법이야."

  주진한이 진무경을 보며 눈썹을 찌푸리고 말했다.
  "무경아, 넌 이 금검의 제자다. 지난 십오 년 동안 내가
너를 열심히 가르쳤다. 너는 강하다. 뭐가 두려워서 거짓을
말하는 거냐? 설마 사나이 대장부가 아녀자를 두려워하는
게냐?"

  거기까지 들은 진무경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툴툴댔다.
  "사부님, 정말 열심히 가르쳐 주셨습니까? 저는 귀찮은 거
참고 대충 가르치신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이 녀석아. 나도 그렇게 배웠다. 거기서 뭘 얻는지는 네가
하기 나름이지."

  천애고아인 진무경은 다섯 살에 주가장에 들어왔다. 그 당
시 스무 살이던 주진한은 상당히 게을렀다. 그는 항상 수족처
럼 부릴 수 있는 심부름꾼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래서 자질
이 무척 뛰어난 진무경을 일찌감치 제자로 삼았다.

  그 의도야 어쨌든 주진한은 책임감이 조금은 있었다. 그는
진무경에게 어릴 때부터 주로 돈을 퍼부었고 무공도 틈틈이
전수했다. 원래 자질이 뛰어났던 진무경은 스스로 노력을 거
듭해 이제는 상당한 무위를 이루었다.

  진무경의 입장에서 주진한에게 받은 은혜는 크다. 하지만
당소소 역시 그에게는 누나 같기도 하고 엄마 같기도 한 사람
이다. 두 사람이 결혼하기 훨씬 전부터 당소소는 진무경을 꽤
나 귀여워해 주었다.

  그래서 누구하나 편들기 곤란한 진무경이 변명했다.
  "며칠 전에 마신 국에 독이 들어있었습니다. 이상하게 제
밥에는 자꾸 독이 들어옵니다. 그거 해독하느라고 참 고생했
습니다. 그 날도 제자가 감히 사부님의 편을 들었거든요. 아무
래도 우연 같지가 않아 말하기가 조심스러워집니다."

  주진한이 피식 웃었다.
  "난 그런 밥 먹은 지 오래됐다. 이제 독에 내성이 다 생길
지경이다."
  "저도 마찬가지란 말입니다. 이제 간단한 독은 배탈도 나
지 않습니다."

  당소소가 그런 두 사람을 곱게 노려보았다.
  "가가, 그리고 무경아. 두 사람 설마 나를 의심하는 건 아
니지요?"
  주진한이 급히 손을 저었다.
  "그럼. 설마 착한 우리 소소가 그랬을 리가 없어."
  '진실이 꼭 밝혀져야 하는 건 아니지. 암.'

  "그럼요. 선녀 같은 사모님은 절대로 그러실 리가 없지
요."
  '이제 독탕은 지겹거든요.'
  진무경은 더 이상 당소소의 외모에 속지 않는다. 그는 당소
소가 왜 사천나찰인지 아주 잘 안다.

  주진한이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서 말했다.
  "좋아. 내가 저 녀석의 게으름을 고쳐주겠어. 이제부터라
도 나의 강력한 무공을 전수해 주지."

  당소소가 웃었다.
  "어머나, 강력한 돈이 아니고요? 그리고 유성이는 무림인
으로 만들지 않을 거라는 것, 가가도 동의하셨지요?"
  "걱정 마. 자기 몸 지킬 만큼만 시킬 거야."
  주유성의 자질이 평범하기만 하면 그 정도로 끝낼 생각이
다.


  장주의 방에 주유성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 앞에서 주진한이 무게를 잔뜩 잡고 말을 시작했다.
  "유성아. 너도 이제 나이가 일곱이 됐으니 슬슬 공부를 할
때가 됐구나."

  주진한의 말에 주유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공부는 사 년 전부터 시작했잖아요?"
  "이 녀석아, 네가 잘 하는 건 글공부지. 글공부만 잘해서는
이 험한 세상을 헤쳐 나가기 쉽지 않다. 너는 다른 공부도 해
야 한다."

  "다른 공부요? 혹시 상업이나 무공을 익히라는 말씀이세
요?"
  "맞다. 우리 집은 비록 장사를 하지만 무공 또한 남부럽지
않다. 장원의 무사들을 봐라. 일은 안하고 다들 무공수련만
하잖느냐? 그게 다 우리 집이 무가이기도 해서 그런 거란다."

  "아하."
  "아하는 무슨 아하. 네 속은 다 들여다보이니 이제 와서 알
아챈 척 하지 마라. 너도 이제 무공을 배우자."
  "그냥 글공부나 하면 안 될까요? 그것 참 쉽고 편한데."

  주진한은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미끼를 내밀었다.
  "우리 가문이 보유한 무공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에 특
히 분광검법과 단심법이 유명하지. 이게 뭔지 알고 있니?"

  "분광검법은 삼백 년 전에 천하십대검법에 한 번 들었고,
단심법은 오백 년 전에 천하십대심법에 한 번 들었다고 알고
있어요."

  "그렇지. 그러니 네가 이 두 가지를 익히면 너는 천하에서
십위 안에 드는 고수가 될 수 있단다. 그렇게 되면 악당들도
마음대로 무찌르는 영웅이 될 수 있지."
  '요 녀석. 일단 미끼를 물고 무공을 익히기 시작하게 되면
더 이상 게으름피우지 못할 거다. 그게 얼마나 빡센데. 나도
하기 싫어 죽을 뻔 했던 거다.'

  주유성은 시큰둥하다.
  "어느 책에 보니 지난 무림 역사에서 한 번쯤 십대무공에
들어간 것을 세보면 수백 개는 된다고 하던데요?"

  "그런 건 다 오의가 빠진 거야. 그저 구결만 전수되거나,
그나마도 제대로 가지고 있지 않은 거지. 제대로 된 위력이
날 수 없다. 하지만 우리 가문에 전해지는 것은 알토란 같은
진짜다."

  철모르는 어린 것이라면 넘어가고도 남을 유혹이다. 하지
만 주유성은 노는 쪽으로 머리가 발달한 신동이다.
  "무릇 하나를 깊게 파는 것이 열 개를 훑는 것보다 낫다고
했어요. 저는 이미 글공부에 뜻을 뒀으니 무공까지 손대는 것
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글공부에 둔 뜻은 이미 다섯 살 때 땅에 파묻어 버렸
다. 하지만 주유성이 보기에 육체적 수련을 거쳐야 하는 무공
보다는 쉬엄쉬엄 해도 좋은 성과가 나는 글공부가 훨씬 쉬워
보인다.

  일곱 살짜리가 아무리 논리적으로 반박해도 가장인 주진한
은 절대 권력자이다.
  '스스로 따르면 더 좋았을 것을. 이렇게 나온다면 할 수 없
지.'
  "시끄럽다. 네가 내 뒤를 이어 이 집에서 편히 지내려면 무
공을 익혀야 한다. 무공이 싫으면 지금부터 나가서 일을 배워
라. 아니면 앞으로 용돈은 없다."

  금검 주진한의 장기는 돈으로 공격하는 것이다. 어린 주유
성으로서는 상대할 수 없다.
  주유성이 눈이 서서히 광채를 발했다. 지금까지의 흐리멍
덩함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맑은 눈이다. 주유성의 똑똑한 머
리는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빠르게 돌아가며 손익
계산을 했다. 어차피 결론은 하나뿐이다.

  주유성이 당당하게 대답했다.
  "사실 무공이 꼭 배우고 싶었어요."
  '무공은 배우는 시늉만 해도 되겠지. 난 아마 무공에 재능
이 없을 거야. 틀림없어.'

  주유성은 돈에 무릎을 꿇었다. 주진한은 아무리 자기가 황
금을 검 대신 휘두르는 금검이라고 해도 이런 성과는 예상 이
상이었다.

  "네 녀석은 무공을 익히기 전에 정신 무장부터 해야겠구
나. 자고로 무인은 돈에 얽매여서는 안 되는 법이다. 무공을
수련하여 스스로를 갈고닦아야지.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찾는 것이 무인의 길이다."

  주진한의 말에 주유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버지. 우리 집은 무가이고 아버지도 진정한 무인이죠?"
  주진한이 자랑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
  "그렇지. 하남 무림에서 내 이름이 차지하는 바가 결코 작
지 않다."

  정확히 말하면 금검의 돈이 차지하는 바가 적지 않다. 금검
의 무공이 꽤 강력하지만 그는 직접적인 무력행위는 거의 하
지 않는다.
  "그런데 왜 우리 집은 이렇게 부자이지요?"

  주유성의 말에 주진한의 얼굴이 다시 굳었다.
  '요 어린 녀석이 지레짐작하는구나. 네 녀석이 내 재산을
알 리가 있냐?'
  "상업은 가업이다. 재산은 부모님이 물려주신 것이다. 자
식 된 도리로 잘 관리했을 뿐이다. 주신 것을 지키는 것도 효
도이니라."

  "잘 관리하는 정도로 하남십대부자가 될 수 있나요?"
  "어험. 이 녀석. 워낙 많이 물려받아서 그렇단다."

  "할아버님 대에는 오십대부자에도 겨우 들었다고 알고 있
는데요?"
  "우, 운이 좋았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버지는 나이 열 살이 넘기도
전에 상재에 눈이 뜨였다고 하셨어요. 당시에 별명이 돈에 미
친 귀... 아, 그게 아니라 돈 귀한 줄 아는 분이었다고 하시던
데요? 그 재능을 살려 이미 이십대 중반에 하남십대상인이 되
셨다고 하셨어요."

  "소소가 그런 것까지 말해줬냐?"
  "원래 부지런한 성격이 아니지만 그래도 돈 벌 때만은 열심
히 한다고 하셨어요."

  주진한은 할 말이 없어졌다. 사실 그는 돈이 좋기는 좋다.
  "요 녀석. 어쨌든 어린 나이에 돈을 너무 밝히는 것은 좋지
않다."
  "어머니 말씀이 아버지의 그런 성격은 참 보기 좋으니 소
자가 훌륭한 학자가 되는 사이에 혹시 시간이 남으면 상인도
돼보라고 하셨어요."

  주진한은 팔불출이다.
  "소소가 그랬어? 흐흐."
  기분이 좋아 웃던 주진한은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아들을
발견하고 즉시 정신을 차렸다.
  '요 녀석. 내가 이래봬도 무림명이 금검이다. 괜히 금(金)
자가 들어가겠냐? 네 녀석은 그래봐야 일곱 살이다.'

  좋은 생각이 난 주진한이 새로운 미끼를 던졌다.
  "알았다. 알았어. 네가 정히 그리 생각한다면 우리 거래를
하자꾸나."
  "소자 가진 것이 워낙 없어요. 역시 먼저 한몫 주셔야 거래
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네가 가진 돈으로 하는 거래가 아니란다. 무공으로 하는
거래지."
  "무공이요?"

  주진한이 나름대로 인자한 웃음을 짓고 말했다.
  "그렇지. 무공을 배울 때 네가 분광검법 한 초식을 제대로
익히면 은자 한 냥을 주마. 어떠냐? 이만하면 거저먹기 아니
냐?"

  주유성이 그런 부친을 보고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공맹을 읊고 사서삼경을 외운다고 해도 그건 모두 책에 있
는 내용이다. 세상의 일은 전혀 다르다.
  주유성은 지금까지 읽어서 어려운 책은 없었다. 자기가 남
들보다 훨씬 쉽게 학문을 익힌 것을 잘 안다. 무공이라고 별
거냐 싶었다.

  '좋았어. 아마 난 무공에도 큰 재능이 있을 거야. 초식 하
나에 은자 한 냥이면 돈 필요할 때 하나씩 익히면 되는 거잖
아?'
  조금 전에 무공에 대한 재능이 없는 아이일 거라고 확신했
던 것은 이미 십 리 밖으로 던져 버렸다.

  "아버지 뜻이 그러시면 따라야지요. 하지만 원래 용돈은
그대로 주세요. 거기에 한 초식 익힐 때마다 은자 한 냥씩 주
시는 거로 해요."

  주유성의 말에 주진한이 함빡 웃음을 지었다.
  '요 녀석. 걸려들었군. 초식이라고 하는 것이 그리 쉽게 익
혀지는 것인 줄 알았더냐? 내공도 없는 녀석이. 게다가 네 녀
석의 용돈은 이제 평생 동결이다. 과자 조각이나 사 먹을 만
큼 작은 용돈으로 언제까지 버틸지 두고 보마.'

  "알았다. 무르기 없기다. 이건 소소가 와도 못 무른다. 사
나이 대장부의 약속이다."
  주진한이 손가락까지 내밀고 말했다. 주유성이 조그마한
새끼손가락을 마주 걸었다.
  그들 부자는 서로 이겼다고 믿었다.


  주진한이 연무장에 주유성을 세워놓았다. 당소소도 그 모습
을 구경했다. 힘들게 무공 수련 하지 말고 쉽게 살아가라던
당소소도 내심 자신의 무공과 독공을 몇 수 정도는 가르치겠
다는 욕심이 생겼다.
  '암기술은 유성이가 힘들어하지 않을 만큼 쉬운 것 몇 개
만 가르치면 되겠지. 독이야 이론으로 가르치고.'

  한쪽에서 당소소가 구경하는 것을 의식한 주진한이 검을
기운차게 뽑았다. 칼날에 푸른 기운이 자르르 흘렀다.
  "네가 들어봤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가문의 분광검법은 모
두 열 개의 장으로 되어 있다. 각 장은 다시 열 개의 초식으
로 이루어져 있다."

  주진한의 말에 주유성의 머리가 빠르게 돌았다.
  '다 익히면 은자 백 냥이군. 아싸. 돈 필요할 때마다 하나
씩만 익히면 평생 우려먹을 수 있겠다.'
  주유성이 공부하는 실력은 대단하다. 그러나 돈 쓰는 손까
지 크지는 않다. 아이에게 백 냥이면 계산이 어려울 만큼 충
분히 크다.

  아들이 가문의 무공에 대해서 무슨 불경한 생각을 하는지
알지 못하는 주진한은 계속 말을 이었다.
  "너에게 먼저 우리 가문의 분광검법 제일장을 맛만 보여주
마. 제일장의 초식들은 입문 단계라 그다지 어렵지는 않다.
하지만 이것도 내공이 있어야 제대로 펼칠 수 있으니 지금은
그저 보기만 해두어라."

  말이 끝남과 동시에 주진한이 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그의
앞쪽으로 칼날이 만드는 밝은 빛이 연이어 번쩍였다. 간단한
시범을 마친 주진한이 어떠냐는 듯한 표정으로 주유성을 보
았다.

  "네가 본 것을 말해 보아라."
  초보자에게 가능한 대답이 아니다. 주유성은 어린 마음에
도 어이가 없었다.
  "반짝이는 것이 참 멋지네요."

  주진한이 통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으하하하. 반짝이는 것이 멋지다? 단순히 그것만 보였지?
그건 네가 아직 실력이 부족해서 검법에 숨은 변화를 보지 못
하는 거란다. 방금 본 것이 네가 익혀야 할 분광검법이다. 가
장 쉬운 제일장 제일초식이지."

  "에에? 그게 겨우 한 초식이에요?"
  '변화가 엄청난데? 저걸 힘들게 언제 배워. 나 이제 거지
되는 거야?'

  주유성이 당황하는 모습을 본 주진한이 기분 좋은 듯이 말
했다.
  "시범은 이것으로 마치고 본격적인 수련은 무경이를 보내
서 하마. 내공은 나중에 내가 따로 가르치고."

  구경하던 당소소가 조금 당황해서 말했다.
  "가가, 설마 벌써 끝난 거예요? 그리고 가가가 한다고 해놓
고 벌써 귀찮아서 무경이에게 넘겨요?"
  "어허. 하수는 하수가 가르치는 것이 낫지. 내가 가르치면
수준이 너무 높아서 안 돼."

  주진한은 막상 모든 검법을 직접 가르치려니 너무 귀찮다.
  당소소도 생각해보니 나쁜 일은 아니다.
  '하긴. 건강을 위해서 기본만 가르치는 거니까. 그리고 무
경이라면 내 손아귀에 있지. 잘 타일러서 쉬엄쉬엄 가르치게
해야겠다.'


  진무경은 주진한의 유일한 제자다. 주진한에게 제자를 두
명이나 가르치는 부지런함은 기대할 수 없다. 그의 정체를 아
는 사람들은 한 명을 둔 것도 기적이라고 말한다.

  주진한이 진무경을 앉혀놓고 말했다.
  "내가 명색이 금검이다. 금검의 아들이 무공 하나 못한다
면 내가 어디 가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지."

  당소소를 편든 죄가 있는 진무경은 순순히 동의했다.
  "물론입니다. 유성이가 사부님을 닮았으니 그 재능이 적지
않을 겁니다. 제대로 배우기만 하면 하남십대고수는 너끈하
다고 제가 자부합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혹시나 열심히 한다면 말이지요.'

  주진한의 얼굴이 환해졌다.
  "녀석. 역시 너는 내 제자다. 사람 보는 눈이 있구나. 하
하하."
  "다 사부님의 가르침 덕분입니다. 제 무공 중에 저 혼자 얻
은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적어도 그걸 익히는데 필요한 돈은 주진한이 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주진한이 진무경에게 얼굴을 바짝 들이댔다.
  "내가 유성이에게 내공을 가르치겠다. 내공심법은 자기와
의 고독한 싸움이니 내가 아주 자세히 가르치겠다. 문제는 검
법이다. 검법을 익히려면 무척 힘든 수련이 필수적이지. 하지
만 소소는 그 꼴을 보지 못해."

  "확실히 사모님은 유성이를 무공고수로 만들고 싶어하지
않으시지요."
  "그래. 자기는 당가의 동년배 중에 손에 꼽히는 고수면서
유성이는 기껏해야 제 몸 겨우 지킬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
하지. 나한테는 수련하라고 그렇게 바가지를 긁었으면서. 이
거 생각하니 억울하네."

  주진한이 투덜댔다. 사실 그게 억울하다. 당소소는 집안의
안전을 위한다는 핑계로 주진한에게 무공 수련을 무던히도
시켰다. 사랑하는 여자가 독촉하는데 안 할 수도 없어서 억지
로 수련한 주진한은 놀고먹는 아들을 보자 슬슬 본전 생각이
났다.

  그걸 보면서 진무경은 입을 다물고 생각만 했다.
  '사모님이 안 그러셨다면 사부님 성격에 지금 실력을 얻었
겠습니까?'

  주진한이 정색을 했다.
  "여하튼 내가 심하게 가르치려 한다면 틀림없이 딴죽이 들
어온다. 이런 처지에 내가 검법을 가르치면 유성이는 절대로
고수가 될 수 없어."

  주진한의 말은 청산유수다. 다 핑계다.
  진무경이 조금 불안한 얼굴로 질문했다.
  "사부님의 말씀은..."
  "네가 유성이에게 검법을 가르쳐라. 모든 것은 내가 책임
지겠다. 죽지만 않을 정도까지 확실히 훈련시켜라. 유성이의
무공도 무공이거니와 게으름병을 고치려면 그것뿐이다."

  진무경의 무공은 주진한에게 배운 것이다. 그러니 무공이
높은 주진한이 아들에게 검술을 직접 가르치는 것이 더 효과
적이다.
  그런데 내공과 검술은 가르치는 데 들어가는 노력의 양이
서로 다르다.

  내공은 한 번 가르치면 반은 끝난다. 그나마도 말로 때운
다. 그 다음부터는 문제점을 지적해 주고 의문점에 대답해 주
면 된다. 거의 모든 과정을 입으로 한다. 주진한이나 주유성
모두 입 놀리는 것 하나는 귀찮아하지 않는다.

  반면에 검술은 초식 하나하나를 일일이 가르쳐야 한다. 그
리고 그것들을 시범 보여야 한다. 수련하는 것을 살피다가 잘
못된 것이 있으면 직접 찾아 충고해야 한다. 수시로 대련도
해야 한다. 그 일은 대부분 몸으로 때워야 한다.

  진무경도 상황을 완전히 눈치 챘다. 주진한이 그 위에 말을
얹었다.
  "무경아. 나를 믿고 밀어붙여라. 내가 너를 지켜주마."
  진무경의 눈빛은 확신으로 반짝거렸다.
  "저만 믿어주십시오. 사부님."


  당소소가 조금 뾰족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가가께서 너한테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당소소의 앞에는 진무경이 공손한 자세로 서 있었다.
  "예, 사모님. 철저히 가르치라고 하셨습니다."

  당소소가 진무경을 향해 눈을 가늘게 뜨고 질문했다.
  "가가가 이렇게 나오기야? 그래서? 무경이 네 생각은 어떤
데? 가가의 말씀 따라 유성이를 강하게 만들 거야?"

  미인의 눈빛은 청년의 마음을 떨리게 한다. 하지만 진무경
은 예외다. 당소소의 저 눈빛을 우습게보다가 고생한 일은 책
으로 쓰면 책장을 채우고도 남는다. 진무경이 즉시 고개를 흔
들었다.
  "그런 생각이 있었다면 사모님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힘이 들어갔던 당소소의 눈이 조금 풀렸다.
  "그래도 가가는 네 사부다. 네 사부의 명령을 그리 쉽게 어
겨도 되겠냐?"
  "사부님이 사모님과 관련된 일에서 책임져 주시기로 하고
정말 그리하신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당소소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살짝 웃었다.
  "어머, 무경아. 그렇게 말하니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내가
너한테 심하게 한 것 같잖니?"

  진무경은 항의하고 싶었다.
  '이젠 맞는 것에 익숙해져 제 맷집이 장난이 아닙니다. 독
을 하도 먹었더니 이제 중독 될 때마다 짜릿함까지 느껴집니
다.'

  하지만 그걸 입 밖으로 꺼낼 만큼 어리석지는 않다. 대신에
당소소가 좋아할 것 같은 제안을 했다.
  "유성이를 가르치는 건 적당히 문제를 일으켜서 없던 일로
만들겠습니다."

  당소소가 고개를 작게 저었다.
  "네가 유성이를 가르쳐라."
  진무경이 의아한 눈으로 당소소를 쳐다보았다.
  "네가 안 하면 가가께서 삐진다. 내가 그걸 어떻게 보니?
그러니 일단 가르쳐라."

  진무경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얼굴로 당소소를 쳐다보았
다.
  "그럼 유성이를 제대로 훈련시키란 말씀이십니까?"

  당소소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다만 가르침에 있어서 적당히 해라. 누차 말하지만 유성
이에게 무공은 제 한 몸 지킬 정도면 충분한거야. 난 내가 했
던 그 지옥 같은 수련을 내 아들에게도 시키고 싶지 않아. 그
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야."

  그리고는 진무경을 째려보았다.
  "대신에 조금의 무리도 하지 마. 만에 하나 팔이나 다리에
알이라도 박히면 죽을 줄 알아."

  "알겠습니다. 사모님의 말씀을 사부님의 명령보다 우선해
서 명심하겠습니다."
  '사부님. 죄송합니다. 제자는 살고 싶습니다.'

[올포유]

즐감 하고 갑니다

[규돌짱]

고맙습니다

[칠뫼]

ㅎ늘 감사 히 잘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