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의 단풍이 웅장하다면 도봉산의 단풍은 아기자기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지 보는 단풍마다 다르다는 걸 산의 특징적에서 느끼게 하는 차이인진 몰라도.
샛파랗고 샛빨갛고 유치한 듯해도 이런 색의 조화가 어디 있겠어!!! 하며 건강한 웃음이 절로 난다.
어딜 가나 붉고 노란색으로 덮였으니 하다못해 동네 한 바퀴 아파트를 돌아도 지천으로 깔린 단풍이건만 유독 산에서 찾는 단풍은 공기 좋아설까 단풍색 자체가 청청해 보인다.
좋은 곳 혼자만 다니지 말고 한 번쯤 데려가 달라는 선배 되시는 분에게 이번 가을 단풍 구경시켜 줘야지 하는 생각으로 먼저 " 단풍 구경 갑시다 "하고 연락하고 함께 찾은 산행이다 뭐 굳이 산행이랄 것도 없이 둘레길 정도였다.
도봉산 입구에 들어서자 그 많은 인파라니 놀랄 정도였지만 어느 정도 단풍길 따라 걷다 보니 그 많은 사람들이 어디론가 다 스며든 듯 울긋불긋한 호젓한 단풍길로 접어들게 된다.
도대체 도봉산의 면적이 얼마이길래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간혹 보일까??? 희한하다 하면서도 아름다운 산길에 넋을 잃을 정도....
곁에 말없이 걷던 선배도 좋은지 좋다... 좋아...만 하신다.
능원사能園寺
쉬운 길을 찾아야 하기에 도봉산 옛길로 접어들었다가 첫 번째 보이는 도봉산 능원사能園寺이다.
입구에 보니 금빛 찬란한 절이란 느낌... 절이 부자다... 라는 생각뿐이었다.
여긴 현판이 대웅전이 아니라 용화전이라고 되어 있다. 용화전이 뭔가 알아봤더니 용화전이라는 이름은 미륵불이 용화수 아래에서 성불해 용화세계를 펼칠 것이라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특히 지붕의 대마루 양쪽의 새 모양이 뭔가 했더니 금시조라고.
용화수(보리수, 석가모니가 그 아래에서 변함없이 진리를 깨달아 불도를 이루었다고 하는 나무)
불교계에 따르면 금시조는 ‘가루라(迦樓羅, 인도 신화에 나오는 상상의 새)’라고 하며 용을 잡아먹는다는 조류(鳥類)의 왕이다. 모습은 독수리와 비슷하고 날개는 봉황의 날개와 같으며 한번 날개를 펴면 360리, 즉 141㎞나 펼쳐진다고 한다.(검색)
아름다운 은행나무 앞을 지나며 툭~~~ 찍어 대고 조금 더 올라가 보는 길 옆 도봉사라는 절이 눈에 들어 온다.
도봉사 道峯寺
도봉사 앞을 그냥 지나갈까 하다가 요런 것이 있단다. 그래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목탁이 있다고... 보고 갑시다 하고 좀 가파른 듯했지만 동행인 선배도 오케이 하길래 올라가 봤다.
여기도 얼마나 절이 호사스러운지.. 여긴 능원사와 다르게 용으로 치장되어 있네... 대웅전이라고 쓰여 있고!!!.
도봉사는 고려시대인 968년(광종 19년)에 혜거 국사(惠居國師가 창건한 오래된 절이었네
열린 법당 옆문을 통해 들여다보니 정말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목탁 진짜 크네에~~~..ㅋ
대웅전에 있던 삼존 불상 중앙의 도봉사 철불 좌상(道峰寺鐵佛坐像)은 2002년 8월 16일 서울특별시 유형 문화재 제151호로 지정되었고 현재 서울특별시 종로구 원서동의 한국 불교 미술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고려 시대 초기의 철불로서 118㎝의 크기로 같은 시기 장신 계열의 대표적 불상으로 평가되고 있다.
손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으며, 복식 등의 측면에서 고려 초기 불상의 특성이 잘 드러나 있다.
대웅전을 돌아 보고 내려오려니 손님과 이야기하던 처사님 차 한잔하고 가라고... 친절한 말에 미소 또한 얼마나 기분 좋게 하시는지...그냥!!!
옛길 둘레길은 아마도 일년 중 가장 아름다운 길일 거라는 생각이 미친다.
시기를 잘 선택한 것인지 진짜 아름다운 단풍이었어요.
올해는 이상하게도 놀러가는 택일擇日을 잘 해요....ㅋㅋㅋ
간혹 보이는 비문이나 비석에도 걸음을 멈추게 한다. 읽어보니 대단한 분들의 공덕비였던 것이다.
어느 정도 걷다 보니 주위에 아무도 없다 단 우리 둘 뿐... 도봉산이 이렇게 넓을 줄이야??? 아닌가 쉬운 길이라 그런가???.ㅋ
동행하는 선배와는 나와 함께 둘이서 얻은 별명이 동삘족이다.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이 같다 해서 모임에서 붙여 준 별명 그래서 선배가 나를 부를 때 동삘(同feel)씨 난 동삘언니라고 부르고...ㅋ
요런 호젓한 길이 얼마 만인지...ㅋ
치매 어머니는 모시고 사는 선배는 어머니를 성인용 기저귀 가방 꾸려서 아가들 어린이 방에 보내듯 기관에 잠시 맡기고 왔다고 한다.
그런 기관도 있어요??? 하고 의아해했더니 아침에 모셔다 드리고 저녁에 모시고 오는 곳이 있다는 걸 난 처음 알았다. 그런 곳이 있다는 것을....
고생스럽지 않으시냐 했더니 그런 말 듣는 것이 제일 싫단다.
자식의 도리라고 생각지 않고 당연한 것. 동생들이 언니,누나 고생한다고 빈 말하면 모셔 가~~~ 라고 한다고.
가장 싫은 것은 아무 일도 안 하면서 가슴 아프다 , 고생한다, 그런 말로 위로하려 드는 것이 제일 밉단다.
요즘 거의 요양원으로 보내는데 그 정도면 요양원으로 보내셔야 하지 않냐 했더니 아니~~~ 하며 고개를 저으신다.
" 그게 바로 고려장이야!!! " 산속에 버려야 고려장이니 바다 건너 남의 나라에 버리고 와야 고려장이냐고!!!"
요양원에 가는 걸 두려워하는 노인네들을 형제끼리 의논해서 기관에 맡기는 건 못 할 노릇이라나...ㅠ.ㅠ
요양소에서도 사람이 하는 일이고 기계가 하는 일이 아닐진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니 난들 못하겠나 싶어서 친정어머니를 모셨단다.
치매 부모 요양원에 모셔 놓고 와서 가슴 아파 글 올리는 사람들이 제일 밉단다. 그렇게 가슴 아프면 모시지 하신다. 아 참 동삘 언냐도 작가 축에 드시는데.
일단 어머니 자신께서 원치 않으시고 어느 형제 하나 원하지 않아 할 수 없이 자신께서 맡으셨다고 하면서 씩 웃으신다.
형제 중에서 고생하신다는 말을 얹으면 말이 미워 듣지 않으신다고.
재산이 많은 것도 아니고 본인 또한 넉넉지 못한 공무원 연금으로 살아가시는데 얼마나 어려울까 하는 생각이.
동삘언니 착하다 했더니 " 아니.. 나~~~안 착해!!!" 하신다...ㅋ
그러나 나이가 들어도 말씨가 참 고운 선배다. 만날 적마다 선배 앞에선 말을 아끼게 하는 힘이 있다.
늦게 만난 인연이지만 간혹 좋은 곳을 가거나 좋은 것을 보게 되면 함께 하고픈 선배이시다.
경치 좋은 곳을 볼 수 있다는 전망대에 올라 주위를 돌아 봤지만 시계視界가 탁탁하다. 안타깝게도...ㅋ
휘휘 둘러보곤 우리도 뭐 쫌 먹어야지 하고 내려와서 가방을 푸시며 라벤더 향기가 나는 향 주머니를 주신다.
지난달 아들이 있는 오스트리아에 가서 사온 거라며 선물로 주기 미안타 하면서 내미신다. 작은 것이라고 하면서....
어... 나에겐 아닌데...ㅋ
내가 좋아하는 라벤더 향기... 슬슬 오스트리아에서 하루도 빼지 않고 거닐며 다닌 여행이야기도 풀어 놓으신다.
한국 관광객이 넘치는 유럽여행은 우리나라에 온 요우커 욕할 거 하나도 없다나... 울긋불긋한 옷 무리들 보면 영락없는 한국인들...ㅋ 등등 ... 이야기 하며 쉬기도 하고 좋은 공기 팍팍 들이시고 내쉬고...ㅋ
깊은 산속... 누굴 보라고 저리도 단정하게 쌓아 놓았는지..
너무도 예쁜 단풍에... "동삘 언니야... 나 이쁘지.. 좋은 곳으로 모셨으니 "하면서 떠세를 부려 봤더니 " 늘 신통 방통해 "...ㅋ
산길을 걸어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보이는 길 안내판에 왕실 묘역 길이라는 것이 보인다.
왕실 묘역길??? 역사 공부나 좀 해 보자는 서로의 의견에 동의를 하니 궁금증 유발은 역시 우린 동삘족이렸다...
거의 주택가에 자리 잡고 있던 정의공주... 정의공주는 들어 보지 못한 공주 언제 적 공주일까???
검색해 보니 세종과 소헌왕후 심씨 사이의 8남 2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나서 2녀중 장녀 정소 공주가 일찍 죽었기에 세종의 사랑을 독차지 하였단다 총명하고 민첩하여 학문에도 힘쓴 공주였다고.
정의공주貞懿公主
태종 15년 1415년 8월16일(음력 7월12일)에 태어나 1428년(세종 10) 정의공주로 책봉되어 관찰사 안망지(安望之)의 아들 연창위(延昌尉) 죽성군(竹城君) 안맹담(安孟聃)에게 하가(下嫁)하였다.
출가를 하가(下嫁) 라고 하나???...ㅋ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 때 문종, 수양대군(훗날 세조), 안평대군과 함께 많이 도와주었다고 한다. 1469년(예종 1)에 정의공주는 남편인 안맹담이 죽자 남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장보살본원경(地藏菩薩本願經) 상·중·하를 간행하였다. 이 책은 대한민국 보물 966호로 지정되었다. 성종 8년 1477년 돌아가시다.
정의공주와 관련된 흥미로운 기록은 《죽산안씨대동보(竹山安氏大同譜)》에 훈민정음 창제와 관련된 기록이 있다는 사실이다 *** “世宗憫方言不能以文字相通 始製訓民正音 而變音吐着 猶未畢究 使諸大君解之 皆未能
遂下于公主 公主卽解究以進 世宗大加稱賞 特賜奴婢數百口”
훈민정음을 만들었으나, 변음과 토착을 다 끝내지 못하여서 여러 대군에게 풀게 하였으나 모두 풀지 못하였다.
드디어 공주에게 내려 보내자 공주는 곧 풀어 바쳤다. 세종이 크게 칭찬하고 상으로 특별히 노비 수백을 하사하였다(검색)
***
정의공주의 남편 안맹담安孟聃 조선 전기의 서예가. 초서(草書)에 능하였고, 사어(射御)를 잘 하였으며 음률(音律) ·약물(藥物)에도 밝았다
양효 안공 신도비(良孝 安公 神道碑 )
안맹담(安孟聃)의 본관 죽산(竹山). 자 덕수(德壽). 시호 양효(良孝). 1428년(세종10) 세종의 딸 정의(貞懿)공주와 결혼하였다.
죽성군(竹城君)에 이어, 연창군(延昌君)에 봉해졌고, 뒤에 연창위(延昌尉)로 개봉(改封)되었으며 1455년(세조 1) 원종공신(原從功臣) 1등에 책록되었다. 초서(草書)에 능하였고, 사어(射御)를 잘 하였으며 음률(音律) 약물(藥物)에도 밝았다.
또 연산군묘가 있다는 말에 왜 우린 반가웠지???...ㅋ
연산군묘
연산군하면 폭군으로만 기억이 되지만 의외로 현명한 왕이기도 했다고 본 기억이 나는 왕으로 폐비 윤씨를 어머니로 둔 연산군이라는 건 상식이지요...ㅋ
왕이었으면 왕릉일 텐데 왜 왕실 묘역이라고 했을까 뭔지 이상타 했더니 왕릉과 묘역은 차이가 있단다.
묘의 조성 과정에 있어 능, 원, 묘의 차이는 왕족의 무덤은 능, 원,묘로 구분을 하는데 능은 왕과 왕후의 무덤을 말하고 원은 세자, 세자빈 또는 왕을 낳은 친아버지,친어머니가 묻힌 곳을 말하며 묘는 그 외의 왕족의 무덤을 묘라고 한다,
연산군 및 광해군 묘소의 경우는 한때는 왕이었으나 폐위되어 군으로 격하되었기에 능이 아닌 묘로 불리게 된 것이란다.
이 곳에는 연산군 외 딸, 사위와 태종의 후궁의 묘까지 5기가 있었다.
맨 위의 연산군과 부인 거창 신씨의 묘와 망주석,비석과 상석,문인석과 장명등!!!...
원래 왕릉이는 문인석과 무인석이 있는데 여긴 군의 묘라서 문인석만 각각 2기 세워져 있다.
이곳에선 역사에 조예가 깊으신 어른 두 분이 나누시는 말씀을 귀동냥식으로 옅들었다. 여기 상석이 잘못되어 있다고 TV에서 하는 말을 들었단다.
하얀 돌 선이 죽은 자와 산자의 경계선이라나 상석은 밑으로 내려와 있어서 산자가 제사를 지낼 수 있어야 한다고.
어느 방송에 나온 이야기 인지 찾아봐야겠단 생각이 든다는 말에 우리의 동삘언니.. 꼭 찾아서 알려달라나!!!..
둘째 단은 태종의 후궁 의정궁주 조씨묘
의정 궁주 조 씨는 본관이 한양인 조뢰의 딸로 태어나 세종 4년(1422)에 태종의 후궁으로 간택되었지만 곧 태종이 흥하하여 반으로 책봉되지 못하고 궁주의 작호를 받았다.
의정궁주 조씨 묘사 연산군 묘역에 있는 이유는 이땅은 원래 세종의 아들 임영대군의 땅이었으며 임영대군은 왕명으로 후사가 없던 의정 궁주의 제사를 맡게 되어 현 위치에 의정궁주묘를 조성하였단다.
그 후 임영대군의 외손녀인 거창 군부인 신씨(연산군의 부인)의 요청에 의하여 의정궁주 묘 위쪽에 연산군묘를 이장 한 것이라고
맨 밑단은 연산군의 사위(구문경)묘와 연산군 딸 묘
연산군은 군부인 거창신씨와 폐 숙의 윤씨 등 후궁, 숙의 사이에 많은 자녀를 출생하였으나 어린나이로 요절한 왕자들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종사유령부념성 여하인완아상정 연연사자별여몽 애루천행편탁영
아들 넷을 해마다 잃은 연산군의 애닳은 시...였네!!!
은행나무
연산군 묘역에서 내려다 보니 은행나무 앞에 사람들이 사진들을 찍는다.
저 은행나문 뭐지 하고 가까이 다가가 보니 830년 짜리 라고 푯말이 보인다....
꼭 영물靈物인 듯한 은행나무...ㅋ 너무 커서 카메라에 다 담아지지 않는다.... 해서???
서울시 지정보호수 제1호로 높이 24m 둘레 9.6m 수령 800~1000년으로 서울시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나무라 하는 것을 이날 여기서 보다니!!!...ㅋ
이곳에 불이 날 때마다 나라에 큰 변이 생겼다고 하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단다.
고봐요~~~ 영물 같다잖아요...ㅋ
간단한 산행에 역사 공부도 좀 곁들였다는 단풍놀이였다고 해야 하나???...ㅋ
아름답다 느낌과 동시에 가버리는 가을.
잠시 은행나무 건너편 벤취에 앉아 휘리리~~~떨어지는 은행잎들을 보며 약간 서러운 듯한 감정이 곁들여지는 건 웬지 모르겠네...ㅋ
글, 사 진 / 松軒 (emlql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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