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구분을 포함하여 아르헨티나 탱고의 여러 스타일들이 궁금하시면 아래에 소개한 [읽을꺼리]들을 읽어보세요~
앞에 글 속 EBS 지식채널e에서 탱고의 태동과 역사를 간략하게 훑어보았는데,
아래 글은 조금 더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글의 출처는 "정호진"이라는 분이 쓰신 논문
"아르헨티나 탱고(Argentine Tango)의 특성에 관한 이론적 고찰"(2004년 이전)입니다.
아래는 이 논문중에 나타난 탱고의 역사와 여러 스타일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만 발췌했습니다. 발췌라고 했지만 전문의 70~80%에 해당하는 부분이니 전문이 궁금하시면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인터넷에서 검색되는 탱고 역사의 대부분이 여기서 발췌된 듯.. 꽤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 강습날까지 기다리기 지루하실것 같아서 읽을꺼리를 준비해봤습니다.
이 내용은 이제 탱고를 시작하는 초급분들께는 내용도 이해가지 않고, 읽어서 부담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ㅎ
이런걸로 시험을 보는것은 아니니까, 신문기사나 소설 읽듯이 편안하게 읽어보세요.
춤을 오래 추게되고 이런 내용이 궁금해지는 날이 올때, 이 게시판에서 [읽을꺼리]로 검색해서 한번 더 찾아볼 수 있게 된다면 좋을것 같네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이나 현상은 언제나 변화를 거듭해 그 모습을 바꾸어 나간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지구라는 거대한 행성조차도 오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변화 -생성과 소멸, 진화를 포함하는- 를 거쳐온 산물이다.
그러한 변화는 문화적 측면에서도 예외일 수 없다. 문화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의 하나인 예술분야는 창조와 진보의 욕구로 가득 찬 수 많은 예술가들과 예술을 향유하고자 하는 다수의 열망으로 특히 그 면면이 다채로운데, 이는 변증법적 단계를 거쳐 세계 예술사에 그 흔적을 드러내는 예술 사조들을 통해 증명되고 있다. 1. 이마미치 도모노부(1988) 美論 정음사 p. 186
움직임 예술 - '춤'이라고 표현되는, 인간의 신체를 이용한 예술의 분야 또한 원시 시대의 제례나 통과 의례와 관련된 단순한 춤의 형태에서부터 오늘날의 자유롭고 형식을 파괴하는 수많은 종류의 춤들에 이르기까지 그 면모를 달리해 왔다. 제르멘느 프뤼도모(1995) 무용의 역사1 삼신각 p.27
춤은 형식에 있어서 미를 목적으로 예술성을 강조하는 데 중점을 둔 극장 예술로써의 춤과 여가적이고 오락적인 측면을 보다 강조하고 사회적 요인으로써 사회에 기능적으로 기여하고자 하는 목적을 지니는 사회 춤의 두 부분으로 나뉜다. 사회 춤의 대표적인 예로써 세계각국에 국가적 특성을 지닌 채 존재하고 있는 볼룸 댄스(Ballroom Dance)는 1991년 그 다양함 속에서 공통적 분모를 수집하여 총 10개 종류의 춤을 묶어 댄스스포츠(Dance Sport)라는 명칭으로 새로이 출발하였다. 특히 댄스스포츠는 춤 예술 영역에서 탈피하여 Sports 영역에 포함되기 위한 노력을 계속되고 있다. 이 같은 노력의 궁극적인 목표는 올림픽정식 참가종목의 하나로 승인 받고자 함이다. 이러한 현상 또한 시대의 요구에 따른 변화의 한 과정이라 하겠다.
탱고(Tango)는 댄스스포츠의 한 종목으로 스탠다드(Standard) 영역에 속하는데, 나머지 4개 종목의 춤들과는 구별되는 특징을 지닌다. 퀵 스텝(Quick Step), 비엔나 왈츠(Vienne Waltz)와 폭스 트롯트(Fox-trot)가 기본적으로 모두 왈츠(Waltz)에서 사용되는 풋 워크(Footwork)와 움직임의 원리를 따르는데 반해 탱고는 풋 워크와 기본자세, 워킹(Waling)등의 기본적 요소에서 자신만의 독특함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탱고가 발생 배경에서부터 다른 춤들과는 구별되는 측면을 지니는 것에서 부터 유래된다. 또한, 탱고는 현재 서로 다른 몇 가지 스타일로 나뉘어져 있다 . 댄스스포츠에 포함되어 널리 알려져 있는 유럽스타일의 콘티넨탈 탱고(Continental Tango), 미국에서 자국내의 국민들을 상대로 널리 보급되어 추어지는 아메리칸 탱고(American Tango) 가 있다. 그 외에도 우루과이에서 추어지는 탱고와 핀란드에서 추어지는 탱고 스타일이 있는데 서로 매우 다른 형태를 지니고 있다. Simom Collier (1997) Tango!: The Dance, The Song, The Story Thames & Hudson p.33
본 연구에서는 탱고가 탄생한 곳인 부에노스 아이레스(Buenos Aires)에 자리잡고 현재도 전 세계에 그 아름다움을 알리고 있는 아르헨티나 탱고(Argentine Tango)의 탄생과 그 발전 과정 그리고 기본이 되는 몇 가지 동작들을 분석하여 아르헨티나 탱고(Argentine Tango)가 위에서 언급한 모든 형태의 탱고의 기원임을 규명 하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아르헨티나 탱고(Argentine Tango)만이 갖는 몇 가지 특성들을 인터내셔날 스타일(International Style)의 탱고, 즉 콘티넨탈 탱고 와 비교하여 그 상이점에 대해서도 살펴 보기로 한다.
영화 예술이나 매스미디어를 통해 여과 없이 혼돈 된 상태로 일반에게 인식되어있는 탱고의 여러 형태 중, 한 가지 형태를 명확히 규명함으로써 탱고에 관한 일반적인 이해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2. 연구의 제한점 및 방법.
탱고의 발생에 관한 역사적 측면을 다루는데 있어서 주로 아르헨티나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들로 범위를 제한 하였다. 1870년 말에 시작되어 탱고가 오늘날의 형태로 다듬어지기까지의 기간 중 유럽이나 미국에서의 정황들은 기회가 된다면 또 다른 논고에서 더 자세히 다루기로 한다. 또한, 아르헨티나 탱고(Argentine Tango)의 동작들에서는 기초가 되는 몇 가지의 베이직 스텝(Basic Step)들 만을 다루었음을 밝혀둔다. 연구의 방법은 문헌을 중심으로 비디오 물, 관련 사이트와 동영상들을 참조하였다.
본문에서는 첫째, 발생과 역사적 전개를 살펴보고, 둘째, 베이직 스텝들을 연구하여 아르헨티나 탱고(Argentine Tango)만이 갖는 특성들을 도출하였다.
Ⅱ. 탱고의 발생과 전개.
1. 기원과 발전.
탱고라는 용어의 어원에 있어서 가장 유력한 설은 아프리카의 오래된 언어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어떤 장소를 뜻하는 말이 그 기원이라는 것인데, 아르헨티나에서는 칸돔베(Candombe)를 추는 장소를 지칭하는데 쓰여졌다. 일반적으로 `탱고'란 용어는 19C 중반에 지금과 같이 쓰이기 시작한 것으로 보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Simom Collier (1997) Tango!: The Dance, The Song, The Story Thames & Hudson p. 38
탱고의 기원은 많은 논란을 야기시켰고, 지금까지도 각각의 견해에 상이점을 지닌다. 다양한 논의들을 종합해 보면 탱고가 대략 세 가지의 주요한 요인들을 받아들여 만들어진 복합적인 춤이라는 결론에 도달 하게 된다.
첫째 요인인 탱가노(Tangano)는 18세기 초에 쿠바와 하이티에 노예로 이송되어온 아프리카 흑인들에 의해 전해진 아프리카의 춤이다. Eros Nicola Siri Social Dance- A Short History p.178 둘째 요인 하바네라(Habanera)는 `하바나 시로부터`라는 뜻을 가진 말로 열대농장에서 일하던 노예들의 리듬과 음악에서 유래되어 발전한 19세기의 쿠바 춤 이다. 이 하바네라는 현제 비제의 카르멘에 그 형태가 남아있는데 당시 유럽인들에게 `크레올 탱고'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이것을 유럽인들이 도입하여 자신들의것으로 변형시켜 `안달루시안 탱고(Andalusian Tango)'로 불렀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탱고의 기원이 스페인이라는 오해를 일으키게 되었으나, 탱고의 스페인 기원설의 근거인 안달루시안 탱고의 실상은 바로 하바네라였다. Curt Sachs(1937) World History of the Dance - W.W.Norton & Co p.445
세번째 요인인 `밀롱가(Milonga)'는 19세기의 마지막 20년 동안에 부에노스 아이레스 빈민 지역에 성행한 2박자의 음악과 춤이었다. Lisa Lekis(1958) Folk Dances of Latin America - Scarecrow p. 174 19C 후반에 쿠바의 선원에 의해 아르헨티나로 건너간 `하바네라'가 아프리카 노예의 후예들이 중부 아메리카에서 남부로 이동해 들어오면서 만든 음악인 칸돔베(Candombe)와 결합하면서, 하바네라의 우아함이 사라지고 칸돔베의 강한 리듬과 빠른 템포의 형태를 지닌 밀롱가로 재 탄생된 것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흑인지역과 우루과이에서 연주되고 춤추어진 칸돔베는 매우 곡예적이고 남녀가 떨어져서 추는 춤이었다.
하바네라와 칸돔베가 융합 된 밀롱가가 생겨나 유행되던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16세기 스페인들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흑인들이 많이 살던 지역이다. 이 지역의 주인인 팜파스를 지배하던 인디오 가우초(Gaucho)들에 탈영병들이 합류하기 시작하였고, 아르헨티나의 통일 대통령이 된 훌리오 아르헨티노 로카 장군은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이 지역의 원주민 가우초들을 몰아내고 새로운 목장과 농장을 세우게 된다. 그 결과, 아르헨티나는 경제적인 급성장을 이루고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여 이민자들을 받아들이게 되었는데 이민자의 절반을 이탈리아인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Ibid. p. 205
1880년대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빈민지역 춤인 밀롱가는 새로운 세대의 전환에 앞서 오늘날과 같은 완전한 탱고의 면모를 갖추며 변화 되어갔다. 1870년대에 탱고를 완성시키는데 기여한 것은 인디오와 니그로 그리고 스페인의 혼혈인 가우초의 후예 콤빠드리토(Compadrito)들이다. 이들은 1870년대 말 밀롱가를 바탕으로 해서 탄생한 새로운 춤과 음악을 `탱고'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역설적인 것은 흑인들이 춤을 추는 장소를 부르는데 썼던 탱고라는 용어를 콤빠드리토들은 밀롱가가 변화된 춤의 이름으로 사용하고, 탱고를 추는 장소를 `밀롱가'라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Jose Gobello Caras Y Caretas 1920 p.56
새로운 감각의 현란하고 고도로 에로틱한 춤이었던 탱고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하층계급의 소굴에서만 추어졌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춤의 형태가 약간 품위 있게 변화 하였다. 심야의 손님들을 위해 소규모의 악단이 탱고 음악을 연주 해 주는 장소가 증가하여 탱고가 여전히 비합법적인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악단의 규모는 커지기 시작했다. Dance in Society Karl Mannheim - Arboa Scientia p.191 약 1910년경에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방문한 파리의 흥행사들이 탱고를 발견했고, 그 즉시 파리에서 연주할 수 있는 몇몇의 최고 악단들과 계약을 맺었다. 탱고음악은 파리와 다른 도시들에서 즉각 성공을 거두었으나, 춤은 일반인들이 수용할 수 있게 되기 전 까지 많은 부분이 수정되었다. 탱고는 서서히 적응되어갔고 에로틱한 요소들이 버려지거나 완화되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보다 고상한 `아르헨티나 탱고(Argentine Tango)'가 탄생되었고, 이것이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재 유입되었다.
하층만의 문화를 멸시하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중산층과 상류층은 탱고를 금기시하고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지만, 탱고가 파리에서 굉장한 인기를 얻게 되자 서서히 받아들이려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그 발생지에서 탱고가 일반의 수용을 얻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도 중, 상류층의 아르헨티나 인들은 탱고를 추지 않았으나, 결국엔 탱고를 잘 추는 것이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사회적인 성공을 거두는 척도가 되었다. 그리하여, 이전의 하층민들이 길이나 광장에서 추던 오리제로 탱고(Tango Orillero)나 칸젠게 탱고(Tango Canyengue)는 사라지고, 실내의 마루바닥에서 추는 살롱탱고(Tango Salon)가 발전하게 되었다. 고급 살롱과 무도회장의 마룻바닥에서 추어진 탱고는 칸젠게나 오리제로의 거친 스타일과 달리 미끄러지는 듯하고 느린 살롱 탱고로 발전하게 된다. 이 살롱 탱고가 현대적인 아르헨티나 탱고의 바탕이 되었다. Simom Collier (1997) Tango!: The Dance, The Song, The Story Thames & Hudson p.85
2. 황금기와 음악적 발전.
탱고에 있어서 황금기는 1930년대 말부터 2차 대전이 일어나기 전 까지를 말한다. Dance in Society Karl Mannheim - Arboa Scientia P.192
탱고의 황금기를 주도한 것은 음악에서부터였다. [..중략..(탱고 음악의 역사는 다른 읽을꺼리에서 소개할게요)]
스타들을 배출하면서 하나의 계보를 이루기 시작한 음악과는 달리 춤은 조금 더 시간이 걸려서야 그 축을 이루는 거장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중략...]
탱고의 황금기에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의 살롱이나 밀롱가는 춤추는 사람들로 언제나 북새통을 이루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의 시작과 새로운 모습의 경쾌한 스윙과 같은 춤의 출현으로 탱고는 점차 세력이 약화 되었다.
3. 쇠퇴와 새로운 부활.
2차 세계대전은 세계 전역을 암울한 침묵 속으로 빠져들게 하였고, 더 이상 새로운 음악이나 문화가 유럽으로 수입되지도, 수출되지도 않았다. 독일에 진주한 러시아군은 반도네온의 명기 `Doble A' 제작 공장을 폐쇄하였고, 사람들은 더 이상 댄스 홀에서 탱고에 열광하지 않았다. 더욱이, 2차 대전이 끝난 후에도 아르헨티나는 불안정한 사회 상황 속에서 군사정권이 들어서서 계엄령을 선포하였고, 저녁에 사람들의 모든 집회를 금하였다. 더 이상 댄스모임이나 밀롱가를 갈 수 없었다. 탱고 카페와 밀롱가들은 문을 닫았고, 밴드들은 해산되었다. 공산주의자였던 푸글리에세와 같은 연주자는 감옥에서 더 많은 세월을 보내야 했고 탱고는 점차 쇠퇴하여갔다.
아르헨티나가 침체기를 겪는 동안 탱고는 파리와 다른 유럽지역에서 꾸준히 발전하여, 탱고 하면 일반적으로, 영국에서 규격화된 콘티넨탈 탱고를 의미하게 되었으며, 그 외에 미국의 아메리칸 탱고가 아르헨티나 탱고보다도 더 많이 알려졌다.
계엄령이 풀리고 다시 탱고 카페가 문을 열었지만 아르헨티나의 젊은이들은 탱고와 밀롱가 대신 로큰롤과 스윙을 추면서 탱고를 늙은이들의 문화로 치부해 버렸다. 60년대부터 이어진 계엄과 군사정권, 그리고 급격히 유입된 미국문화에 의해 탱고는 잠식당했다. 이에, 아르헨티나 정부는 탱고를 보호하기 위해 싸울 것을 표명하고, 1966년 정부의 소위원회를 결성하였다. Simom Collier (1997) Tango!: The Dance, The Song, The Story Thames & Hudson p.63
하지만, 계엄령 아래에서 탱고가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저녁의 댄스파티는 불가능했으나 여전히 탱고는 추어졌고, 코페즈를 비롯한 프로무용수 들은 배우지도 가르치지도 않는다는 밀롱게로와 달리, 동작을 분석하여 오늘날 표준이 된 8스텝 베이직(살리다)(8Step Basic(Salida))나 오쵸(Ocho), 간쵸(Gancho), 히로(Giro)등을 규격화 시켰다. 또한 밀롱가나 살롱에서 더 이상 춤을 출 수 없게 된 코페즈는 새로운 형태의 무대 공연, 즉 뮤지컬 형식의 탱고 쇼를 고안해 내었다. 콤파르디토들의 남자끼리 칼을 들고 추는 무술 탱고, 술 취한 콤파드리토들의 취무, 귀족들의 살롱탱고 등을 줄거리로 하는, 공연으로서의 탱고 쇼(Tango Show)는 당시에는 충격적인 것으로 받아 들여 졌으나, 쇠퇴 해 가는 탱고가 나아가야 할 마지막 방안이었다. 70년대에 정부의 문교부 산하 문화 위원회의 협력 아래 음악가와 탱고 무용가, 뮤지컬 제작자들이 모여 만들어 낸 탱고 쇼 `Tango Argentino'는 브로드웨이와 동경 등 전 세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화려한 무대와 매혹적인 전시용의 쇼 `Tango Argentino'는 탱고를 구식이고 볼품없는 과거의 것으로만 치부해 버렸던 아르헨티나의 젊은이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중략...]
70년대의 탱고 쇼`Tango Argentino'에서 쓰인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연속되는 오쵸(Ocho)와 간쵸(Gancho), 그리고 볼레오(Boleo)의 발 동작 및 곡예 적인 회전들은 전통적인 밀롱게로들의 혹독한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탱고 쇼는 80년대까지 그 성공이 이어졌다. 또한, 전문적인 무대 무용수를 체계적으로 양성해 내기 위해서 후안 브루노(Juan Burno)와 토데로(Todero)가 세운 `Todero School'이 배출해낸 뛰어난 젊은 무용가들이 탱고 X 2'를 만들어 저마다의 역할을 하였다. Simom Collier (1997) Tango!: The Dance, The Song, The Story Thames & Hudson p.153
90년대는 탱고의 또 다른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다. 유능한 탱고 무용수들이 미국과 유럽으로 이주함으로써 아르헨티나 탱고가 각국에 소개되고 있고, 인터넷을 통한 정보와 위성방송에서 볼 수 있는 아르헨티나 탱고 프로, 유명감독들의 잇따른 탱고 영화 제작이 쏟아지고 있는 재도약의 시기라 하겠다. Tango Argentino'의 뒤를 잇는 새로운 쇼 Forever Tango'의 세계적인 성공으로 한껏 고무된 아르헨티나 탱고가 21세기의 변화에 더욱 부응해 나아가야 할 시점인 것이다.
Ⅲ. 아르헨티나 탱고의 동작적 특성
[...중략...]
Ⅳ. 다른 형태의 탱고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시작된 탱고는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프랑스와 영국과 같은 유럽지역과 북미에까지 보급되었고, 각 국의 문화적인 정서와 특성에 따라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발전하였다.
1. 영국 및 유럽
1910년 파리의 흥행사들에 의해 발견된 탱고가 프랑스에 건너갈 즈음에, 탱고에 관한 많은 풍문들이 영국, 런던의 사람들에게도 전해졌다. 1911년 여름 이후 Dinard와 Deauville, 그리고 다른 카지노타운에서 탱고를 본 사람들은 런던에서도 탱고를 요구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Tango Teas'가 유행되었다. 그로부터 거의 두 시즌에 걸쳐 런던은 탱고의 열기로 가득했다. 1913년과 1914년에 Tango Teas는 춤출 수 있는 플로어가 있는 거의 모든 호텔과 음식점에 자리 잡았다. 그 외 개인의 Tango Teas 또한 각각의 사회계층의 저명한 인기물이 되었고, 탱고를 열망하기는 하지만 경험이 없는 상류사회 부인들은 자신의 응접실에서 비공식의 Tango Teas를 열기 위해 알아야 할 모든 지식을 얻는데 성공했다. 그것은 글래디스 크로저(Gladys Crozier)가 탱고에 대해 40,000단어에 걸쳐 세부적으로 묘사한, 1913년 말 영국에서 출판된 `The Tango and how to dance it'이라는 제목의 책을 통해 가능했다. 이제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빈민가에서 생겨난 탱고는 그 지리적인 거리만큼이나 정서에 있어서도 먼 거리에 와 있었다. Dance in Society Karl Mannheim - Arboa!
Scientia p.192
언론들은 탱고에 관한 맹공격을 퍼부었고, 그러한 언급에 따라 메리 여왕은 궁정에서 그 춤을 금지했다. 그러나, 1914년 여름 켄우드의 미첼 대공이 주관한 무도회에서 당시 시범 무용수였던 마우리스(Maurice)와 플로렌스 왈튼(Florence Walton)의 7분에 걸친 탱고를 보게 된 여왕은 충격을 받기보다 매우 즐거워 하였다. 이로써 영국에서 탱고는 더욱 그 세를 확장해 갔다.
1914년에 출판된 버논 캐슬(Vernon Castles)의 책 `Mondern Dancing'안에 포함된 탱고에 관한 부분도 탱고 추종자들에게 좋은 참고자료가 되었다. 각각의 출판물 속에 묘사된 탱고 스텝들은 서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A.H. Franks의 견해에 따르면 캐슬의 저작이 크로저의 것보다 이후 영국에서 발전한 스텝에 좀더 근접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누구도 멈추게 할 수 없을 것으로 보였던 탱고의 열기가 급격히 사라진 것은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사회적 분위기가 가라앉은 데서 기인하지만 또 한 부분, `래그 타임(Ragtime)'이라는 새로운 춤과 음악의 출현이 크게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1920년대 중반에 들어 영국이 `Dance mad'의 열기에 가득차게 되었을 때, 탱고는 `New French Tango'라는 이름으로 2번째의 전성기를 맞았다. 그러한 분위기는 런던(London)에서 프로방스(Provinces)까지 퍼져나갔고, 심지어 1925년 가을에는 런던 서부지역에 위치해있고, 큰 상점과 극장 등이 많은 도시인 웨스트엔드(West End)에서 몇몇의 사람들이 정기적인 개인교습을 받기 위해 100 마일을 달려오곤 했다.
1930년대에 들어서서 탱고에는 주목할만한 전환의 시기가 도래했다. 연주 밴드들은 좀 더 많은 스타카토의 효과를 얻어내기까지 강력한 비트(beat)를 요구하는 압력을 받았으며, 탱고 무용수들은 탱고 본래의 몽환적이고 느긋하며 자유로운 방식으로 탱고를 추는 대신에, 특히 경쟁적으로 손과 발, 몸통의 스타카토 움직임으로 춤을 강조하게 되었다. 또한 과장된 고개 짓이나 어깨의 움직임, 규격화된 리듬으로 완전하게 전환된 춤을 새로이 만들어 냈다. Dance in Society Karl Mannheim - Arboa Scientia p.193
이와 같이 새로 탄생된 모던탱고(Modern Tango)는 분당 33소절의 템포로 춤추는 스타카토 댄스(Stacato Dance)이다. 이 춤은 1920년대의 영국 무용교사협의회에 의해 정형화되어진 것으로, 19세기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금지된 춤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한 예로 아르헨티나 탱고는 상체의 중심이 아주 약간 앞으로 기울어 피라미드 형태같이 잡게 되어 상체를 이용한 움직임이 거의 없는 대신 발의 사용이 다양하고 발로도 상대를 리드할 수 있다. 그러나, 아주 다른 모습으로 발전된 새로운 탱고가 그 원형인 아르헨티나 탱고에서 파생된 것임을 증명해 주는 감각적인 `OverSways'와 고양이 같은 미끄러짐 등의 요소가 새로운 모던 탱고의 동작 안에 포함되었다. Dance in Society Karl Mannheim - Arboa Scientia p. 193
이 모던 탱고가 발전하여, 오늘날 아르헨티나 탱고보다 세계적으로 더 널리 보급된 유럽 스타일의 콘티넨탈 탱고가 되었다. 이 춤은 영국에서 경기용 무도로 틀이 잡혀갔고, 현재 댄스스포츠(Dance Sport)의 한 종목으로 각광 받고 있다.
2. 미국
유럽지역에서 발전된 콘티넨탈 탱고와 별도로 미국에 건너간 탱고는 다시 미국의 국민적 정서와 문화에 맞는 그들만의 아메리칸 탱고로 자리잡았다. 미국에서는 아메리칸 스타일(American Style)의 탱고 대회가 매년 열리고 자국 내 많은 국민들 뿐 아니라, 미국의 영향력이 세계적인 데서 기인하는 문화적 잠식으로 그 외의 지역에서도 이를 즐기고 있다. 아메리칸 탱고에도 몇 군데 아르헨티나 탱고의 모습이 남아있음이 보여진다.
3. 우루과이
남미지역에서도 아르헨티나와 이웃 해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넓은 강인 Rio de la Plato를 공유하는 우루과이에는 그들만의 탱고가 있다. 우루과이 사람 들은 강과 마찬가지로 탱고도 아르헨티나와 공유하고 있다는 뜻의 `Tango Rio de la Platenese'라는 이름으로 탱고를 불렀다. 이 두나라는 서로 많은 탱고 음악가들과 무용수들을 상대국으로 출입 시켰는데, 황금기의 거장 중 한 사람인 프란시스코 카나로(Francisco Canaro(1888 - 1964))와 최근 사망한 반도네온의 거장 위고 디아즈(Hugo Diaz)가 우루과이 출신 탱고 음악가다. 가장 유명한 탱고 연주곡 'La Cumparsita'의 경우 우루과이에서 먼저 생긴 탱고 음악인데, 아르헨티나 탱고와 콘티넨탈 탱고에서 함께 사용하고 있다. 다만, 유럽의 연주는 그들의 탱고 비트를 넣어 좀 다른 느낌이다. 탱고에 관한 기여도에 있어 아르헨티나에 비해서 그 역할이 다소 뒤지는 추세이다. Lisa Lekis(1958) Folk Dances of Latin America Scarecrow Press p. 82
Ⅴ. 결론
사회 춤의 분야에 속해서 순기능적 기능을 담당하던 볼룸댄스가 오늘날에는 댄스스포츠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통합되어 그 역할과 범위를 넓히고자 하고 있다. 그 중에서 탱고는 그 음악적인 매력과 춤이 주는 강렬함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배우고 싶어하는 열망을 갖는다. 이전과 달리 탱고와 접할 수 있는 많은 기회가 다양한 방법을 통해 제공되고 있으나, 각기 판이하게 다른 형식의 춤들이 탱고라는 동일한 명칭으로 보급되고 있음으로 해서 혼란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 탱고의 대표적인 2가지 형식인 아르헨티나와 유럽의 탱고가 모두 부연 설명 없이 탱고라는 이름만으로 공연되거나 경기를 갖기 때문 이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다양한 형식의 탱고 중에서 한가지 형식이라도 명확히 그 특성을 규명하여 그러한 혼란을 없애는데 목적을 두었다.
연구의 결과 다음의 몇 가지 사실을 도출해 냈다.
첫째, 탱고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1870년대 말에 최초로, 그 용어의 사용과 함께 등장한 것으로 보여지며, 특히 아르헨티나 탱고는 그 역사적인 발생의 시작점에서부터 맥을 함께하여 왔다.
둘째, 탱고의 기원을 이루는 몇 가지의 요소 중, 밀롱가는 초기의 모습에서 다소 완화되고 대중화되기는 했으나 현재까지 아르헨티나 탱고의 동작들 속에 그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셋째, 아르헨티나 탱고를 제외한 다른 종류의 탱고 형식들, 즉, 콘티넨탈, 아메리카 등의 탱고가 모두 아르헨티나 탱고가 성행하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그들 지역으로 건너갔다는 점이다.
위와 같은 결과는 각각의 지역에서 그 지역의 문화적 정서와 시대 상황에 맞게 다른 모습으로 발전된 다른 형식의 탱고들이 모두 아르헨티나 탱고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뒷받침해 준다.
넷째, 아르헨티나 탱고의 기본적인 동작들이 공통으로 갖는 특성은 어깨를 마주 대고 상체를 서로 피라미드 형태로 유지하는 그 독특한 Embrache로 인해 상체의 움직임보다 하체의 움직임을 위주로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은 어깨 부위까지 서로 떨어뜨린 상태를 유지하고 늑골에서 골반의 한쪽 면까지를 마주 댄 채 기마자세로 하체의 움직임을 절제하는 콘티넨탈 탱고와 가장 구별되는 점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아르헨티나 탱고는 음악과 매우 밀접한 관게를 맺고 있으며 춤을 출 때 박자를 비교적 자유로이 운영할 수 있음으로 탱고 음악에 대한 풍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는 탱고음악이 반도네온을 사용해 만들어 내는 풍부한 여음을 지니기 때문에 갖는 특성이다.
: 칸젠게 탱고(Tango Canyengue) - 로 왼팔/라 오른팔로 맞잡은 손을 로의 허리춤에 대고 추는 스타일(거의 사라짐)
:살롱탱고(Tango Salon) - 탱고대회에서 Pista(춤을 즐기는 플로어. 마루바닥) 종목에 대비됨. 오초, 히로 등의 큰동작을 할때 두사람이 각자의 축을 유지하고 각자의 공간을 허용하여 아브라소가 살짝 떨어지는 스타일.
※ 피스타는 "에세나리오를 제외한 땅고스타일들을 아우르기 위해 지칭하는 명칭 입니다. 애초에 살롱이나 밀롱게로든 케케묵은 논쟁에서 벗어나기위함" 이라는 매우파랗다님의 댓글설명이 있었네요. 참고해서 보세요.
: 밀롱게로 스타일 - Apilado 아필라도 Style이라고도 함. 세라도로 깊게 안고 추는 스타일. 살롱과 비교하여 오초나 히로를 할때에도 아브라소가 거의 떨어지지 않음.
※솔땅에서 추구하는(?) 스타일. 우리나라에 동호회를 통해 땅고의 씨를 심을때 '성공'님이 가지고 온 스타일이라서 그 정신이 유지되는 것일 뿐, 문화가 개방되고 현지 땅고 마에스트로들이 직접 소개하는 땅고에 의해 솔땅에도 살롱 스타일이 깊이 전파되었다고 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그렇다해도 현재에도 오래된 기수(기준은 불분명 하지만..)와 새로운 기수가 혼재하는 솔땅은 그 기수만큼이나 다양한 스타일이 혼재되어 있는것이 솔땅의 현실인것 같습니다.(유월청 생각). 우리나라 땅고의 시작을 확인할 수 있는 '은주'님의 글을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상기 논문을 보면, 가르침을 주지도 받지도 않고, 새로운 스타일(살롱, 쇼탱고, 누에보 스타일)을 잘 허용하지 않는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스타일 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서로 가르침을 주고 받지 않음으로해서 각자의 스타일이 난무할 수 있으며, 그로 인해 그들이 거부하는(?) 새로운 스타일이 탄생하는 토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유월청 생각).
: 탱고 쇼(Tango Show, 판타지아 탱고Fantasia tango) - 탱고대회에서 Escenario(공연하는 무대) 종목에 대비됨. 스테이지 탱고.
; 미국 탱고-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지만, "아메리카나"라는 동작은 미국탱고에서 나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아르헨티나 탱고, 미국탱고, 유럽탱고의 특징을 간접적으로나마 보여주는 글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더 궁금한 사항은 wikipedia 참조)
: "탱고의 경우는 보통 남자의 오른쪽 가슴과 여자의 왼쪽 어깨 그리고 두 사람의 광대뼈와 이마 사이의 부분을 붙이고 있는데, 얼굴을 상대에게서 될 수 있는 한 멀리 떨어뜨리는 (몸은 붙이고 있으면서) 유럽탱고의 형태와는 반대라고 할 수 있겠죠. 유럽탱고는 로맨틱하고는 거리가 좀 있는 춤입니다. 농담삼아, 탱고는 사랑하는 관계, 미국탱고는 결혼상태, 유럽탱고는 이혼직전. 이라고들 하는게 이 Embrace의 차이에서 나옵니다." (한국재즈댄스협회 홈페이지 "탱고의 기원"인용(2004/11/20))
: (추가) 상기 내용(미국탱고, 아르헨티나탱고, International 탱고 비교)과 유사한 비유를 한 영문 블로그 내용소개
그리고 그 기원에 관심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아르헨티나 탱고를 배웠을 것이고, 학교 동료나 같이 춤을 추던 사람들과 본인들이 배운것을 나누는 커뮤니티가 형성되었을테고.. (여기까지 추측)
그렇게 탱고를 정기적으로(주1회?) 시작한 것이 1999년 대전의 아수까(Azucar)라는 라틴바에서부터라고 합니다.(KATA 협회지 2016 겨울호, 이인경(피쉬) 인터뷰)
그리고 위의 링크에서 확인되는 바와 같이, 방송을 만들던 김성공님이 방송소재로 탱고를 취재하였다가 본격적으로 전파한 것이 2000년도 부터... 서울에 정기적인 밀롱가가 생겼다고 합니다.
이때만해도 라틴속으로의 '솔로땅고'는 여느 지역 커뮤니티와 다를바 없는 작은 모임이었을 텐데.. 몇년 사이에 우리나라 탱고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그룹이 된 것은 인터넷 커뮤니티의 확대에 큰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스타크레프트로 인한 PC방 확대, 각종 채팅 사이트, 이메일을 갖춘 포털 사이트들이 우후죽순 생기던 때가 그 시기였으니...
그렇게 탱고를 배우고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솔땅과 비슷한 시스템의 동호회도 생기고, 아카데미도 생기게 되었을 겁니다.
사단법인 한국 아르헨티나 땅고 협회 Korea Argentine Tango Association (KATA)가 만들어진 것은 2007년 이네요.
이후, 협회는 별다른 활동이 없다가 2015년부터 땅고 콩그레스&심포지엄 개최 및 협회지를 창간했고 조금씩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협회는 2016년도 겨울에 스포츠댄스의 탱고와 아르헨티나 탱고를 구분하기 위하여, 아르헨티나 탱고를 현지에서 부르는 '땅고'로 지칭하고 외래어로 등재 하자는 서명운동을 하기도 했는데, 성공했는지는 모르겠네요.
탱고를 추는 아시아 국가들도 많이 있는것 같습니다. 대만, 홍콩, 중국 등지에서 열리는 국제 행사에 많은 분들이 참가하고 후기를 들려주는가 하면, DJ 교류/초청도 활발하게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아직 견문이 좁아서 그런지.. 이상하게 일본에 탱고 국제 행사를 참가하고 왔다는 분들은 많이 못본것 같네요. 러시아쪽은 간간히 있구요. 반면, 아시아지역에서 우리나라로 놀러 오시는 분들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1년 365일 탱고를 출 수 있는 도시는 그리 많지 않은데, 서울이 그 중 하나라고 하네요.
The only true tango, danced from time immemorial in
the milongas of Buenos Aires. All else is mere superficiality.
There's nothing like the intensity, the contact, and presence of tango
milonguero. Ah...!
For the hoi-polloi. What happens when space is
at a premium. It certainly isn't elegant. They huddle up and
tip-toe around with tiny steps, sacrificing the expression for the
embrace. Doesn't anybody hug these people in their daily lives?
For dodderers! A compensation for a lack of
body contact. They only like staccato music recorded before 1930.
And why must everything be as in Buenos Aires? The tango must change
and adapt to new times and places.
...about the salon style
Elegant, perhaps, but aren't they really afraid of
touching each other? You can do all the figures you need with full
contact. All they want to do is glide around the hall with long strides
to dramatic music like Pugliese, who is played rather sparingly in Buenos
Aires anyway.
The tango has never been as elegant and stylish as in
the 40s. Salon is the most all-around and expressive of all
styles. There's nothing like the intensity, the contact and the
presence of tango salon. Ah...!
The root of nuevo, but they have lost themselves in a
bygone time of tuxedos and cigarette holders. We do all they do in
tango salon and more — in a track suit if need be. And there is a lot
of music from other periods than just the 40s.
...about the nuevo style
Unmanageable exhibitionists who kick everything in
sight! Of no use whatsoever for social tango. And they disrupt
the communication on the pista. Also they only want to dance to
impossible music which nobody in Buenos Aires would dance to, like
Piazzolla. Hrrrmph!
They mostly seem to want to do awkward,
"inventive" figures.Tango
Lesson has done more damage than good.
Do they secretly dream of becoming stage dancers? It's too much — we
don't need all that.
Nuevo is the next step in a natural process of
development. The tango will die unless it grows and changes — and there
is more than just social tango. There's nothing like the intensity, the
contact and the presence of tango nuevo. Ahh...!
첫댓글 우와~
역쉬 유월청님이십니다!!
덕분에 땅고에 대한 궁금증이 화~ㄱ 해소된 듯~복많은 98기 화이팅!!!
세바스티안 동영상 2번3번은 음악스타일에 대한거네요ㅋㅋ,
느리고 진득한 디살리와 경쾌하고 빠른 다리엔소 , 5번 뿌글까지 대표적 음악스타일을 표현한듯ㅋ
존경하고 애정합니다, 유월청님~ㅋㅋㅋ
좋은글 감사합니다.
와 역시 짱
좋은 글 솔로땅고 자료실 까페로 스크랩합니다.(http://cafe.daum.net/solotan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