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에베소서6: 4절 // 제목: 아비들아 // 2024년 어린이주일 // 찬송: 556 557
부모의 영향력? 유전자 영향력, 정신적 영향력 절대적이다. 곱슬머리, 왼손잡이, 고혈압, 알러지, 비만, 부모시력, 정신적인 것 조현병, 자폐는 90%, ADHD 80, 대머리50%, 씽가플/// 화살코 큰눈 ,작은눈...
부모는 아이의 스승이다.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
“아비들아”라는 말씀에서 교육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말씀해주고있습니다.
이 말이 자녀를 양육함에 있어 어머니의 책임이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책임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약에 보면 아버지가 그 가정이나 가족 중에서 일종의 제사장이었습니다. 그가 대표로 하나님께 나갔습니다. 그는 자신의 신앙에서만이 아니라 자녀들을 교육하기위한 책임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들은 좋은 부모가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즉 자녀들을 가르칠 사람은 학교의 선생님이 아닌 부모들이다. 그런데 우리네의 현실은 모두 학원 아니면 학교에 위임해 버린 상태이다. 성경은 교사 중에도 부모만한 교사가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부지런히 가르치고 교육할 것을 강조한다.
이스라엘이 강한 것은 교육 때문이라고 한다. 이스라엘의 교육은 바벨론 포로기를 중심으로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포로기 전까지는 학교가 없었다. 가정교육이 전부였다. 부모가 교사요, 성경과 전승과 부모의 삶 자체가 교과서였다. 그러던 것이 포로 후기를 지나면서 학교가 생기고 회당이 생기게 된 것이다.
교육은 근본적으로 부모가 감당해야 한다. 선다싱은 “어머니의 가슴은 나의 신학교였다”고 했고, 임마누엘 칸트는 “나는 우리 어머니를 영원히 잊을 수가 없다. 나의 어머니는 나에게 하나님을 알게 했고, 선에 대한 씨를 뿌려주셨다”고 했고, 허버트는 “백 명의 교사보다도 한 사람의 어머니가 낫다”고 했고, 스펄전은 “가정에서 성경 읽는 소리와 기도 소리가 그치는 자는 화가 있을지로다”라고 했고, 링컨은 대통령 취임시에 낡은 성경을 들고 “어머니가 주신 이 성경책으로 말미암아 오늘의 내가 있습니다”라고 했고, 페스탈로치는 “가정은 도덕을 위한 학교”라고 했다. 이 모두는 가정에서의 부모의 역할을 강조하는 말들이다. 자녀들을 가르고 교육하는 주체는 회당도, 학교도, 사회도 아닌 가정이요, 그 교육의 일차적인 책임은 부모에게 있다.
◈ 양육의 대상
‘자녀들’이라는 말씀은 양육의 대상을 밝혀낸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적인 자녀관을 정립해야 한다. 어디서 잘못되는가 하면 자녀를 마치 자기 것인 양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또는 비인격적으로 취급하는 데서 문제가 비롯된다. 자녀의 특성, 자녀의 생각,자녀의 장점과 단점을 알고 양육해야 함에도 부모가 무모하고 무지해서 무조건 내생각을 주입시키고 명령하고 지시하고 훈계하고 가르쳤습니다.
성경적인 자녀관은 이렇다. 먼저 자녀는 하나님이 주신 기업(시 127:3)이라는 것이다.내자녀가 아니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또한 자녀는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선물(창 33:5)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는 하나님의 자녀를 맡아서 기르는 청지기 의식을 가져야 한다(시 127:3,4, 삿 13:2). 결코 내 물건, 내 소유가 아니다. 하나님의 것이다. 여기서부터 자녀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질 수 있고, 교육 내용이나 방법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세자교육을 담당하는 사람처럼 귀하고 존귀하게 여겨야합니다. 왕세자가보다 귀한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자녀의 인격을 존중해주고 인정해주고 격려와 칭찬을 통해 돌보아야할것입니다. 칭찬받지 못하면 열등감에 사로잡혀삽니다. 공부를 해도 만족이 없습니다. 반에서 30명중 15등하면 관심도 갖지 않습니다. 30등을 해도 인정받고 살면 나중에 행복한 인생을 살게됩니다. 반에서 1등하면 전교1등못한다고 흠을 잡고 전교1등하면 전국1등 못한다고 합니다. 격려와 칭찬을 받지못하면 열등감에 사로잡혀 사회생활을 할 때.. 학교, 교회..회사생활을 하면서도 매사에 반항적이고 불평적인 아웃사이더로 성공적인 삶을 살지못합니다. 칭잔을 소홀히하면 노여움이 오래가게합니다.
말과 행동으로 사랑을 표현해주어야합니다. 안아주고, 스킨쉽,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도 표현입니다.
◈ 양육의 방법
본문에서 양육의 방법으로는 부정적인 방법과 긍정적인 방법을 말하고 있다. 소극적인 방법과 적극적인 방법을 동시에 가르쳐 주고 있다. 세 가지로 가르쳐 준다.
♥ 노엽게 하지 말라. 격노케하지 말라. 화나게하지말라. 자극시키지말라.화가나면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부모가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며 소리를 질러대면 , 귀는 열려있지만, 마음의 귀를 닫게 되므로 어떠한 말도 그의 마음을 감동시키지 못합니다. 또한 어떠한 말도 들리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부모에 대한 복수심까지 갖게 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징계와 분노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자녀가 잘못하면 징계를 한다(잠 13:24, 19:18). 그러나 분노를 일으키게 해서는 안 된다. ‘노함’에 대하여 공동 번역에서는 “마음에 상처를 입히지 말라” “감정을 건드려 화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응어리와 한과 아픔과 쓴뿌리를 부모가 만들지 말아야합니다. 책망을 받을 때 최고의 화가치밀어 오른다고함니다. 책망이 도를 지나쳐 자녀를 노엽게합니다.
그러면 어떤 경우에 자녀들이 마음에 상처를 입고 감정이 상하게 되는가? 이에 대하여 핸드릭슨은 6가지를 지적한다. (1) 과잉 보호: 지나친 통제입니다. 부모님이 핸드폰과 노트북을 몰래 사설업체에 맡겨서 행킹한 사실을 알고 경악을 했습니다. 이로인해 대인기피증과 조울증을 앓고 살아갑니다. (2) 편애 :에서와 야곱 , 야곱이 요셉을 편애마흐로 형제들의 분노를 자극하여 비극을 가져옵니다. 박한상의 누나와의 편애... 편애는 차별입니다. 편애도 학대이다. 편애받는 아이도 망치고 편애당하는 아이도 망칩니다. (3) 낙심케 하는 일 (4) 의견의 불일치 (5) 자녀들에 대한 소홀함 :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고 감동을 주었지만 자식교육을 실패자입니다. 자신이 형제와부모로부터 무시당하고 들에서 양을 치며 방치되어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기름부을 왕을 뽑을 때 8형제중 0.1%도 마음에 두지 않은 방임과 무관심의 아들이었습니다. 무관심이 삶을 비참하게만듭니다. 우울하고 분노하게만듭니다. 그래서인지 자녀들을 방치했습니다.
요즘은 부모와 자식관계가 법적인 관계만 유지하고 있습니다. 부모와 자녀사이를 끈끈하게 이어주는 애정이 있어야합니다. 애정이 부모 자녀사이을 잘 유지시켜줍니다. 애정은 자녀를 이해해주고, 존중해주고 배려해줄 때 깊어집니다. 가출소녀의 90%는 애정결핍증에 걸려 있었다고합니다. 따뜻한 사랑 스킨십입니다. 안아주고 쓰다듬어주어 행복 유전자를 만들어주어야합니다. 강아지만 쓰다듬어주지말고 자녀를 어루만져줍시다.
(6) 가혹한 처벌이 주어질 때라고 했다.
바클레이는 세 가지로 지적했다. (1) 시대의 변화에 민감하지 못할 때이다. 즉 ‘내가 너 만할 때는 그런 일을 안 했다’는 식의 꾸지람이다.라떼꼰스타일의 부모유형 반감을 가져옵니다. (2) 지나친 통제 때문이다. (3) 격려에 인색할 때이다. 비난,비평,꾸지람... 부모들은 다른 자녀들과 비교하지 말아야 합니다. 비교는 열등감을 갖게 합니다. 비교는 자녀를 망치는 가장 강력한 독입니다. 자녀들이 열등감을 갖지 않게 하려면 칭찬을 해주어야 합니다. 많이 격려하고 인정하고 작은 일에도 칭찬하는 것입니다. 찾아내어서 격려해주어야합니다. 잘한일이 있으면 오래오래 기억하도록 칭찬해주어야합니다. 장점을 극대화시켜주어야합니다. 자녀를 노엽게하면 낙심합니다. 무기력증에 걸립니다.골3:21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사울은 아들 요나단을 친구 다윗과 비교하며 끊임없이 비난합니다. 그것도 부족해서 부인까지 욕을 합니다. 네가 그러는 것은 네 엄마가 패역 부도하니까 너도 네 엄마 닮아서 그러는 것이다”라며 아들만 욕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까지 비난하며 저주했습니다(삼상20:30). 먹지도 않고 좌절감에 빠져서 다윗과 더 친밀한관계를 형성합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이스라엘 자손으로 낙심케하여서 여호와께서 주신 땅으로 건너갈수 없게하느냐
에스겔 골짜기에 올라가서 그 땅을 보고 이스라엘 자손으로 낙심케하여 ... 하나님이 주신 땅으로 갈수 없게만드느냐? 아내음식칭찬...남편칭찬....
그래서 루터는 이런 말을 한다. “아끼면 자식을 버리게 된다. 그러나 채찍 옆에는 사과를 놓아 두어 자식이 잘 했을 때에는 그 사과를 주라”.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녀들이 마음의 상처를 입는 이유로는 이해의 결핍에서 오는 대화의 단절을 들 수 있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다. 부모는 부모대로 자녀는 자녀대로 평행선상을 달리고 있다. MK와 MT세대의 차이를 인정하기 못한다. 부모가 자기중심적일 때 자녀들을 노엽게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조부모와도 말이,생각이 통한다. 어느 유치원에서 아이들에게 도화지와 크레용을 나누어 주면서 어머니를 그려보라고 했다고 한다. 한 어린아이가 특이하게 어머니를 그렸다. 그것은 입과 손만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그것도 기형적이리만큼 크게 말이다. 그래서 물어보았더니 “우리 엄마는 나만 보면 잔소리나 하고 조금만 잘못해도 손으로 때려요”라고 대답하더란다.
청소년 자녀들의 집을 나가는 이유를 분석한 통계입니다.
1)부모와의 갈등 48%는 화가나서 나갑니다. 화나게하면 자녀의 마음문이 닫혀버립니다. 귀도 덩달아 닫혀버립니다.2)친구 따라 20%,3)개인적 요인 19%,4)돈벌기 위해 8%,5)기타 5% 이었습니다.가장 큰 충격은 "부모와 갈등 때문에 가출하는 자녀"들이 거의 48%나 된다는 사실입니다. 자녀문제는 단순히 자녀들 자신의 문제나 사회적인 문제라기보다는 부모의 문제가 단연 으뜸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도대체 아이들의 말을 들어 주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서로 대화가 되지 않는다. 주고 받고가 되지않으니까 답답해서 입을 열지 않습니다. 여기서 아이들은 상처를 입는다.
부모들은 자녀들과 의사소통할 수 있는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현대의 가장 큰 위기는 대화의 단절입니다. 함께 살고 있으나 부모와 자녀들이 극단의 고독과 소외감 때문에 병들어가고 있습니다. 자녀들의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깊은 대화를 나누어야 합니다. 한 조사에 의하면 일주일에 아버지가 자녀를 만나는 시간이 7분 30초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자녀들을 만나면 사랑으로 격려하기보다는 행동이나 점수에 대해 꾸짖을 때가 많습니다.
듣지 않고 다짜고짜 화부터냅니다. 부모는 자녀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과 호흡을 같이하고 그들의 눈으로 보려고 하고 그들의 귀로 들으려고 하고 그들의 가슴으로 같이 느껴 보려는 경험을 갖지 않고는 진정한 의미의 가정교육은 어렵게 될 뿐이다. 왜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라고 했는가. 그것은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맡기셨습니다. 왕세자를 대하듯 대해야합니다. 그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하나의 인격체이다. 골로새서 3:21에서 “자녀들이 낙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 주의 교양으로 하라.
여기 ‘교양’이라고 하는 말은 영어로 ‘training’ 또는 ‘disciple’로 번역한다. 이것은 ‘행동을 통한 교육’을 의미한다. 부모의 행동 하나하나가 자녀들에게는 산교육이 된다. 나 교양있는 여자야!! 외이래...... 무례하지 말라. 부모의 무례함이 상처와 고통을 받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습니다. 예의를 지킵니다. 부부간의 문제도 무례함 때문에 깨집니다. 때로는 꾸짖기도하고 매도 들때있습니다. ..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자식을 미워함이라... 필요하면 매도필요합니다. 꾸짖고 매질을 할때도 저들의 인격은 존중해주어야합니다. 인격을 무시당하면 폭력이됩니다.
자녀는 부모를 닮으면서 성장한다. 하나님을 통하여 부모를 보는 것이 아니라 부모를 통해서 하나님을 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부모님 따라합니다.
부모가 자식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입니다.
부모들은 항상 옳은 말만 한다. 그러나 정작 행동해야 할 상황에서는 스스로 한 말을 부정해 버린다. 정직을 이야기하면서도 거짓말을 밥 먹듯 한다. 남을 도우라고 하면서도 자기 실속 챙기기에 바쁜 모습이다.자기 자신은 속일지 모르나 어린아이의 눈은 못 속입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가식을 너무도 잘 봅니다. 그러므로 자식들 앞에서 높은 영적 수준과 도덕적 수준의 생활로 본이 되어야 합니다. 절대 진실하고 아주작은 약속이라도 반드시 지켜야합니다. 불신하게 되게 의심하게됩니다. 신뢰를 잊어버리고 삽니다.
부부싸움과 말다툼 : 자녀를 노엽게 만든것입니다. 자녀들은 희생양이된다. 몹시 불안해한다. 방황한다. 전쟁같은 싸움을 하면 아파트에서 뛰어내리면 안싸울까? 모든 원인이 자기탓으로 알고 무조건 빈다. 잠시행복해도 언제 깨질지 몰라 불안해한다.
어느 부모가 일곱 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놀이동산에 놀러 갔다고 한다. 매표소 앞에서 표를 사려고 하는데 ‘6세 이하는 무료’라는 안내문을 보았다. 곧 아버지는 아들에게 “누가 물어보면 여섯 살이라고 해라”로 하였다. 그러자 아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아버지에게 반문했다. “나보고는 거짓말 하지 말라더니 지금은 거짓말을 하라고요?”하더란다. 말 따로 행동 따로 이것을 따로국밥이라고 하던가. 그러고도 그 자식이 정직하기를 바란단 말인가.
이런 예들은 가정에서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전화가 걸려오면 “나 없다고 해라”고 아이에게 일러준다. 부모들은 텔레비전을 보면서 자식들은 들어가 공부하라고 한다. 부모들은 밥상에 앉기만 하면 입맛이 없다느니 어쩌니 하면서도 자녀들에게는 때마다 밥 안 먹는다고 타박이다. 부모들은 자주 싸우면서 자녀들에게는 싸우지 말라고 한다. 이런 것들이 얼마만한 설득력을 가지겠는가. 여기서부터 교육은 잘못되고 있는 것이다.
말 가지고 교육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행동을 통하여 모범을 보여야 할 때다. 원만한 부부관계, 부모들의 신앙인격, 안정된 가정, 교회생활의 헌신과 봉사, 이런 것들이 모두 산 교육의 내용이 됩니다. 자녀들은 귀로 배우고 눈으로 배우는 자들이다. 부모의 삶은 자녀들에게 유산이 된다. 그래서 본문은 “주의 교양으로 교육하라”고 말씀한다.
♥주의 훈계로 하라. [교과서: 성경입니다] 경고, 교훈...철로와 열차, 배와 항로... 인간과 성경...
여기 ‘훈계’라고 하는 것은 영어로는 ‘instruction’으로 번역한다. 이것은 ‘말씀을 통한 훈련’이다. 사도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딤후 3:14)고 한다. 특히 디모데후서 3:16,17에서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고 했다. 하나님을 닮은 사람으로 온전케 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자녀들에게 훈계한 중심은 여호와에 대한 경외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어린이들은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쉐마를 배우게 됩니다. 쉐마 들으라. 하나님을 말씀을 들으라...하나님 경외가 신앙의 중심이요, 교육의 중심이요, 사람이 지킬 본분입니다.
신명기를 보면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신6:6-8) 고 하였습니다.
가정은 작은교회이다. 가정이 건강해야 교회도 건강하고 교회가 건강해야 사회도 건강해집니다.
가정은 작은 천국이다. 하나님의 복은 가정을 통해서 들어옵니다. 천국이 되어야할 가정인 미움,갈등,분노,다툼, 무관심, 원망, 불안,응어리가 맺히고 마음의 쓴뿌리를 내리게하여 가정이 붕괴위기를 가져왔습니다. 청소년의 가장 심각한 문제가 폭력입니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심각합니다. 유대인 부모들은 지금도 자녀들이 침대에 잠들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줍니다. 우리는 잠잘 때 귀신이야기들으며 자랐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어렸을 때부터 계속 들려주어서 마음 깊이 하나님의 말씀이 스며들도록 하였습니다.. 시편에는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이다.”(시 119:105)라고 하였습니다. 자녀들이 밝은 길을 걷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어야합니다.
기독교인 부모들을 대상으로 설문지를 조사한 적이 있다. “자녀 때문에 실망했을 때가 언제냐” 순위는 다음과 같다. 1위는 대학에 떨어졌을 때, 2위는 결혼 생활에 실패했을 때, 3위는 대학졸업 후 취직이 안 됐을 때, 4위는 자식이 입원했을 때, 5위는 부모에게 반항할 때, 6위는 무단가출했을 때, 7위는 신앙생활 잘못할 때였다. 순서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분명히 신앙인이면서 신앙교육에는 별로 무관심한 상태인 것이다. 자식들이 학교 한 번 빠지면 큰일 나는 줄 알면서도 교회 한두 번 빠지는 것은 예사로 생각하고 있다. 여기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내자녀 성적떡어지면 안달을 하면서 학원도 더보내고 야단법석을 하는데 신앙이 떨어지고 믿음이 떨어져 태평합니다. 학교에 무단 결설하면 난리가 납니다. 교회에 출석하지 않으면 심각하지 않습니다.
자녀들에 대한 말씀 교육은 어릴수록 효과가 크다. 사람의 뇌는 만 4세까지 95%가 발육되고 나머지 5%는 성인이 되기까지 발육된다고 한다. 5세이전에 암송교육을 시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쉐마교육,,,들으라교육....
잠언 22:6에 보면 "마땅히 행할 것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고 했고, 잠언13:24에서는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했으며, 잠언29:15에서도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행하게 버려 둔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 고 했습니다.
제사장 엘리는 자식들이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못된 짓을 해도 가만히 내버려두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격노하셔서 그 자식들은 한 날에 다 전사하고 이 소식을 들은 엘리는 쓰러지면서 목이 부러져 죽는 비참함을 당했습니다.
따라서 사람의 기본 성격은 만 4세 이전에 형성된다는 이야기다. 그러기에 자녀들이 어렸을 때부터 말씀 속에서 자라도록 해야 한다. 사실 디모데가 디모데 될 수 있었던 것도 어렸을 때의 말씀 훈련 때문이다. 그는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를 통하여 어려서부터 말씀을 들으면서 성장했다는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오직 주의 훈계로 양육하라”고 말이다.
자녀를 낳거든 제일 먼저 다른 데 가기 전에 교회에 데리고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예물도 드리며 축복기도를 받도록 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은지 8일 만에 성전에 데리고 가서 제물을 드리며 결례예식을 하였습니다. 예수님도 나은지 8일 만에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비둘기 한 쌍을 제물로 드리면서 결례 예식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자라면 유아 세례를 받게 하고 무엇보다도 먼저 반드시 교회에 출석할 것을 가르쳐 주고 규칙적인 신앙생활을 확실하게 가르쳐야만 됩니다.
엘리라는 사람은 자식들이 패역한 일을 행하며 죄악을 범하는 것을 보고도 방관하다가 결국 자신은 목이 부러져 죽고 패역한 아들들은 전쟁에 나가 모두 전사를 하였습니다
결론
현재 미국에서 살고 있는 유대인의 수는 전체 인구의 3%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런데도 노벨 문학상 수상자 가운데 31%가 유대인이고 약 70만 명의 변호사 가운데 20%가 유대인이며 미국의 유명 대학의 교수 가운데 35%가 유대인들이라고 한다. 그들이 각계를 주름 잡는 실질적인 세력들로 부상하게 된 것은 바로 어렸을 때부터 받아온 신앙적인 교육 영향 때문이었다고 한다. 성경은 말씀한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 길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 22:6)
훌륭한 인물 배후에는 반드시 훌륭한 믿음의 부모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자식들에게 좋은 부모가 되고 있는가? 자녀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있지는 않는가?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고 있는가?
부모의 손끝축복으로 자녀를 만들어갑니다. 자녀들의 행복불행은 부모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노엽게하지 말고 교양, 훈계로 양육할 때 축복의 자녀가 될줄 믿습니다. [ 디자인 된다. 설계한다 ]
나무토막: 가구장인 / 정원사: 정원 / 천:최고의 의복 / 물감과 : 최고작품
이삭의 축복기도: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네게주시기를 원하노라.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에 네게 굴복하리라.
야곱의 축복 :창세기 48:15-16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이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네 아버지의 축복이 내 선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 없음 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라”(창49:26절)
노아의 자녀축복 : 야벳을 창대케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