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에 관한 예단은 헛된 것이었다. 금요일의 비, 그리고 걷는 토요일 아침의 바람 때문에 오늘 걷기는 회색빛이라고 생각 했지만, 출발 직전 동백공원 광장에서 모여 인원 점검 및 준비 운동을 하는 동안에 날씨는 청명하다 못해 온천지가 빛이나고 봄기운이 넘쳤다.
기온이 차고 쌀쌀한 속에서도 춥고 칙칙하던 시대는 지나고 온 천지가 소생의 기운과 기쁨으로 뛰놀았다.
지난해 마지막 걸었던 기장 해파랑길의 파랗게 질려 딱딱하게 차가워 가던 바다가 아니고 이제는 부드럽게 풀려서 다정하게 가까이 다가오는 바다의 모습이었다.
우리는 단지 길만을 걷는 것이 아니었고 시간과 풍경 속을 걸었었다. 2012년 3월 24일 토요일의 낮 시간은 봄과 겨울이 교차하는 초봄이 주는 생명력과 약진의 모습을 만나게 해주었다.
그 속에 놓여 있는 건물들, 나무들, 동백꽃들, 바다 모습들, 바닷가로 산책 나온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걸었다.
우리는 해운대 바닷가에서 어슬렁거리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해운대에서 송정까지 긴 길을 보병들처럼 걸어가는 사람들이었다. 초봄의 시간과 풍경 속을 걸으면서 느끼고 생각하고 대화하는 사람들이었다.
또 한번 독특한 하루의 기억이 경험과 추억이 되어 나의 내부에 축적되는 시간인 것이다.
보면서 무엇을 느꼈는가.
동백공원에서 보이는 허허벌판의 그곳에 나타난 초고층 아파트와 광안대교의 모습과 누리마루의 자태를 볼 때, 옛날의 어쩐지 때국 끼고 좀은 을씨년스럽던 동백공원의 모습은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었다.
걷기 길을 포함하여 모든 것은 완벽하게 정비되었다. 허나 걷는 동안 내내 누리마루 정상 회의실을 보는 순간에 내게 밀려들던 잔영들이 따라다녔다.
한복 두루마기를 입고 어색한 표정을 짓던 부시 대통령, 그리고 영화처럼 이락을 폭격하고 부활절날 그곳의 참전 용사들을 찾아간 그가 들고 미소 짓던 커다란 칠면조 요리. 그 부시는 지금 뭘 하고 보낼까.
매일 걷기는 할까. 장발의 일본 고이즈미 총리는 잘 지내고 있을까.
그때 모였던 21명의 정상들 중에 지금도 여전히 정상인 사람은 몇명이나 될까하는 생각을 하였다.
휴식시간에 저 둥근 수평선을 바라보면서 그들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그곳은 해운대에서 가장 멋진 바다전망을 가지고 있는 포인트였다. 그곳은 사람들 가슴을 울렁이게도 하고 시원하게도 하고 어떤 그리움으로 울게도 한 곳일 것이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 대통령을 한 사람까지도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절망의 극단을 생각할 때, 삶이란 항상 이렇게 잘 닦여진 길이 아닌 것이었다.
최진실 정몽헌 헤밍웨이 활복의 일본 작가들, 성적 때문에 투신한 중 고등학생들......
그들은 생명에 대하여 감사하지 않는 사람들인가. 아니 걷기를 하지 않는 사람들인가. 그들은 노숙자를 사랑하지 않은 사람들일까. 그리고
난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
인간을 죄의 절망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한 예수님의 죽음 즉 우리가 보는 사람 나무 꽃 바다 물고기들을 만드신 하나님의 죽음을 깊게 생각해 보았다.
우리가 어제 걸었던 길은 매우 화려한 곳이다. 해운대 해수욕장은 여름 피서지의 절정이다. 그리고 밀집된 고급 호텔들과 달맞이 고개로 가는 길에 있는 유명 겔러리들과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펜션풍의 집들, 그러나 예술 취향과 휴식 시간으로 안주하기엔 인생은 너무 짧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파라다이스 호텔이 끝나는 지점에서부터 옛날엔 그곳이 포장마차 지대였는데 지금은 벽을 만들고 멋진 벽화로 장식되어 있었다. 동백섬 광장에서 여기까지 약 1시간 정도 걸린 것같다. 지금도 태종대 유람선은 다니고 있는가. 건너에 선착장이 보인다. 여기까지가 미포이다. 이제 좌회전 해서 달맞이 대로변 쪽으로 향한다. 중간에서 문텐로드 길로 접어든다.
문텐로드는 짙은 숲길이었다. 나무 사이로 저 아래 내려다보이는 바닷가 풍경이 손에 잡힐 듯하다. 바닷가로 바투 가설된 선로가 보인다. 우리가 문텐로드 길을 걷는 동안 나는 세 번의 기차음을 들었다. 이제 곧 복선 공사가 완성되면 역사 속으로 살아진다고 한다. 그러기 전에 한 번 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문텐로드라는 울림 있는 영어 이름은 달맞이 고래라는 원래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왜 달맞이 길이라는 우리의 멋진 이름을 놔두고 궂이 외국어를 사용하느냐고 구청에 항의도 여러번 하고 데모도 했다는 이야기를 전에 들은 것 같다.
그러나 이 문텐로드라는 이름을 구청은 아마 특허까지 내놓았다고 한다.
달빛 부서지는 밤에 걸어 보지 않아서 이 길이 정말 이름 값을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달밝은 밤,파도 소리를 들으며 손잡고 달빛 속을 걸어가는 데이트 코스로는 최상일 것 같다.
대로변만 걸었지 이 비밀의 길이 있음을 오늘 첨 알았고, 첨 걸었다.
대빵님의 시낭송 장소인 어울마당은 문텐로드 길에서 약간 좌회전 오르막길에 요새처럼 숨겨져 있는 멋진 곳이었다. 공연장소가 굉장히 넓었다. 아무리 시끄럽게 해도 다른 곳엔 전혀 소음공해가 없을 천혜의 장소였다. 이 좋은 공식적인 공연장소에 걸맞게 또 최장 큰형님 답게 시도 우리 시의 원류인 소월 시를 낭독하시고 시를 노래로도 불러주셨다. 앵콜도 터져나와서 두 곡의 노래를 부르셨다. 시 낭송 겸 댓방님의 가곡 무대였다. 감동적이었다.
32세의 요절 시인. 한국 시의 원류. 천재 시인. 오산학교 졸업. 그러나 가슴 아픈 삶의 비극은 천재 시인을 비켜가지 않았다. 생계를 위한 신문지국 경영. 시작 중단. 사업 실패. 실의 좌절로 일찍 생을 마감하고 만다. 그가 오래 살아 건재했다면 그의 많은 시를 읽으며 오늘날 우리는 더 행복했으리라.
길/김소월
어제도 하로밤
나그네 집에
가마귀 가왁가왁 울며 새었소
오늘은 또 몇 십리
어디로 갈까
산으로 올라 갈까
들로 갈까
오라는 곳이 없어 나는 못가오
여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열십자 복판에 내가 섯소
갈래 갈래 갈린 길
길이라도
내게 바이 갈 길은 하나 없소.
소월의 방황과 좌절이 우리를 울리는 것은 여전히 오늘날의 삶에도 비극과 절망과 자살이 존재한다는 데 있다. 대빵님의 소월 시 낭송과 노래를 통하여 우리는 좀 더 정화된 맑은 눈빛을 갖게 되었다.
청사포는 제주 올래길의 어느 한 부분 같은 분위기였다. 회비빕밥의 회는 자연산이라 하니 더 맛있는 것 같았다.
식사 후 구덕포를 향하여 가고 있는 길은 한낮이었지만 백야 같았다. 걷고 있는 사람은 오직 우리 일행 뿐이었다. 이제 목적지 가까이 가고 있는 것이다.
송정 해수욕장에서 많은 학생들이 나들이 나와 있었다. 토요일이라 특별한 봄 맞이이리라. 모래사장이 넓다. 해운대보다 한적해서 더 좋아 보인다.
드디어 목적지인 죽도 송일정이다. 시간은 정각 오후 3시였다. 10시에 모여서 해단식 선포까지 5시간이다.
오늘 걷기도 내 안에 경험과 추억을 새겨 넣어 주었다.
집 나올 때의 예단은 성립되지 않았다.
밝고 맑은 초봄을 만끽하게 하였고 느끼고 생각하고 깨닫게 하였다.
후기도 또 한 번 써보게 되었다.
오늘 함께 걸었던 모든 회원님들과 나에게 오늘과 같은 평화와 밝음과 소망의 노래가
늘 강물처럼 흘러넘치기를 기도하고 싶다.
첫댓글 조금 힘들지만 그러나 걷기는 제게 늘 위력적이었습니다. 23
화창한 날씨속에서![~](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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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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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운 님들과의 행복으로의 걷기는
또 한주를 살아가는데 커다란 활력소인거같다
님의 세심하게 또 무게있게 어제의 그 걷기의 시간들의 순간 순간을
이야기 해줌으로써 또 한번 더 걸어봅니다
평안한 휴일 되세요
오리나무 순이 봄인사 젤루 먼저 하는 봄길 걸어서 좋았습니다~
부시는 지금 뭘할까... 고이즈미 총리는 잘 있을까....
아이고 ~ 리본님 머리 복잡 하시긋 심미다...^^
후기 글이 올라 오지 않아 사실 걱정을 했습니다.
툭툭 자판치느라 애쓰셨고요... 고맙습니다. 리본님~
언제나 좋은 후기...같이 하지못한 분들도 함께 할수있는 자리...감사합니다.
리본님의 글을 읽고있으니 지난 토요일 우리들이 지나온 길으 다시걷는 느낌이 옵니다
세심하게 기록하심 즐감입니다.
걸을 땐 생각못했던 주변상황을 올려주신 글을 보며 하나하나 기억을 더듬어 보게되는군요..감사드립니다.
다 함께 걸었으면서도 리본님은 어찌도 그렇게 많은 상상과 많은 풍경과 많은 느낌을 가지셨을까? 다음 걷기의
후기가 기다려집니다...
후기,,,쓰고 싶어도 능력이 없어 못쓰는데...
문장가 리본님~ 참말로 부럽습니다 그리고 존경스럽구요.
잘 읽었습니다...감사합니다^^*
오늘도![실망](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_32.gif)
을 주시지 않으시는 후기가 하루를 ![즐](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12.gif)
감 하게 하는군요.![~](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항상 글로써 일깨워 주는 우리의 걷기 .....다시 또 한번 걷고 갑니다
리본님 뜻깊은 하루 보내셨네요.. 난 늘 내 생각만하고 내 맘 들여다 보는데만 급급하는데... 두루두루 들여다 보며 생각 할 수 있는 여유가 부러워요.. 많은 이들이 죽음을 한번쯤은 생각하며 살아가지 않나 싶은데.. `지금 죽어도 나는 괜찮은데.. ' 하면서 이 핑계 저핑계 죽지 못하는 이유들을 나열하기도 하지만 이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죽음 앞에서는 두려워지는 모양입니다.. 핑계거리들이 많으니.. 많은 것을 내려 놓고 스스로 죽음을 생각하는 일은 없어야겠죠.. 걷을 수 있는 여유로움이 이런 생각들로 부터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있지 않을까요..^^*
분에 넘치는 많은 분들의 댓글, 깊이 감사드립니다.
함께하지못함을 리본님의 후기글로 대신합니다.. 그날의 하루를 생각하며 걷는 즐거움을 느껴봅니다~~~
리본님 어쩌면 그렇게 세세하게 잘 표현하시는 지요 항상 감탄스럽습니다. 걸으시면서 온갖 생각 다하셨군요
리본님! 아리따운 oo분일거라는 내 생각은...이제 망각속으로...
안녕! 온종일 비오는 금요일을 뒤로 하고 화창한 토욜 우리 걷기는 행복했습니다.
리본님의 글에 감동할 따름입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