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땅 – 뉴 멕시코
부제: 리오 그란데에서 본 물고기
아리조나 석화 산림 공원에서 오후 늦게 저녁을 먹고 나서
오늘 밤 예약을 한 뉴 멕시코 겔럽에 있는 El Rancho Hotel로
40 East 하이웨이로 지는 해를 등지고 1시간 반쯤 달리니
한적한 철길 옆 마을에 호텔 현판의 네온 사인들이 현란하다.
Hotel EL Rancho – Charm of Yesterday, Convenience of Tomorrow
어릴 적에 수도 없이 보았던 할리우드의 서부 영화들!
존 웨인, 케서린 헵번, 헨리 폰다, 진 오트리, 커크 더글라스, 그레고리 펙 등
유명 배우들이 영화를 찍고 쉴 수 있도록 만든 곳이 관광업소로 변했고,
최근엔 코로나등으로 손님이 없어서 주에서 제정을 도와 주고 있다고 한다.
운 좋게 213호 험프리 보가트의 방에 들었다. 하룻 밤 $123으로!
뉴 멕시코는사막과 초원과 고원 선단과 눈 덮힌 산 봉우리를 가진
미국에서 가장 다양한 지형을 가지고 있다.
북부의 1/3은 록키의 남단인 산그레 데 크리스토 산맥의 산림지대가,
동부의 1/3은 광대한 초원 지대로,
북서는 콜로라도 고원 지대로 건조한 관목 지대를 이루고,
남부는 북미에서 가장 큰 치후아후아 사막 지대가 펼쳐져 있다.
해서 대체로 동북 지방은 산맥 지형으로 인해서 춥고,
이에 반해 남서 지방은 건조하고 따뜻하다.
뉴 멕시코 영토의 1/3이 년방 소유이고,
선사 시대 때부터 고대 푸에블로 인디안의 문화와
유태, 나바호, 아파치와 고만치 부족들의 흔적이 있어
3개의 유네스코 유산지가 있다.
주요 사업들을 살펴보면 광산과 석유 채굴, 군방산업과 항공 산업,
메디아와 영화 산업과 관광업등이 발전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부지런히 하이웨이 25를 타고 남하해서
알라모 고르도 인근의 흰모래 국립 공원에 도착하니 오후 1시다.
툴라로사 분지의 한가운 데 275 평방 마일의 모래 사막들이
눈빛 찬란한 모래들 만의 경이로운 세상이 있다.
난 모래가 좋다.
세계에서 가장 큰 Gypsum Sand Dunes.
Gypsum 은 황산 칼슘질로 CaSO₄·2H₂O로 표기 되어 있다.
바람이 심해 16마일을 천천히 드라이브해서 돌아나오니 45분 정도 걸린다.
국도 82를 타고 흰 모래 국립 공원에서 링컨 국립 산림지를 가로 질러
하이웨이 82를 타고 칼스베드에 도착하니 3시간 반 정도가 소요된다.
칼스베드 BW 호텔에서 무료 숙박을 하고 아침 식사를 두둑히 먹고
칼스베드 동굴로 들어선다.
고대 바다의 깊은 바위 케년과 선인장과 사막의 생물들이
치후아후아 사막 표면 위를 장식하고 있는 가 하면,
표면 아래에는 100여개가 넘는 황산에 의해 깍여진 크고 작은 라임 스톤 동굴이
위 아래로 자라나 펼쳐져 있다.
내려오는 Stalactites 와 올라 가는 Stalagmites가 마주 붙어 칼럼 기둥이 되겠지.
년중 40만이 넘는 관광객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왜 인간은 동굴을 좋아할까?
프로이드는 동굴이 어머니의 자궁을 상징한다고 했던가?
태초의 편안함을 느끼는 걸까…?
뉴 멕시코의 한 가운데를 북과 남으로 흐르는 대하 리오 그란데를 따라
크고 작은 도시들이 성장해 왔다.
그 중에 가장 큰 도시 Albuquerque(ABQ) 인근에는
수많은 화산들의 흔적들과 함께 그 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화산암에 새겨둔
형상과 상징( Petroglyph)들이 남아 있다.
Boca Negra Canyon에서 Mesa Trail을 따라 가다보면
20만년 전에 6개의 화산들이 17마일 (27 km)에이르는연쇄 체인 폭발로
Mesa, a volcanic basalt escarpment를 이루고 용암이 녹아 케년이 형성되면서
주변에 Basalt Rock들이 산재하면서 이 바위에 약 2만 4천여 이미지들이
수백년 또는 수천년 전에 원주민들이 자신들의 삶과 영적 갈망들을
바위위에 새겨 둔 것들을 Petroglyph National Monument 에서 볼 수 있다.
상당 수의 형상들이 동물들과 사람과 단순한 십자가등으로 인식되지만
다른 그림들은 복잡하고 아마도 바위에 세긴 진정한 의미는
작가 본인 만이 알 만한 것들도 눈에 띈다.
산타 페의 북쪽 산타 크루즈에서 가까운 이 작은 마을 가운데 위치한
경당 치마요는 수세기동안 치유의 장소로 알려진 곳이다.
태와 인디언들은 이 곳에서 온천이 마른 후의 땅이 환자를 치유한다고 믿었고
12세기 전부터 인디언들은 초자연적 힘이 깃든 곳으로 축복받은 땅이라 했다.
이후 스페인 정복이후에 카톨릭 성지로 변형되었지만 변치 않는 것은
치유의 기적을 바라는 모든 이들에게 매력적인 풍광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산타 페를 거쳐 치마요를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자석같은 끌림에 홀려
성지 치마요로 올라가 잠시 아무 생각없이 멍하게 앉아 있어 본다.
Dios Te Salve Maria, Llena Eres Gracia, El Senor Es Contigo...
주께서 마리아를 경축하니, 은총이 가득하시도다, 주께서 함께 계시니...
오후 늦게 타오스로 향해 리오 그란데 다리를 건너다가
문득 장자의 물고기를 생각해 본다.
Rio Grande란 스페인어가 ‘큰 강’이라 말인 데 리오 그란데 강이라고
말하기가 우습기도 하지만 이 또한 언어의 조화이니…
옛날 옛날에 어느 따뜻한 봄 날
장자와 혜시가 교외로 산책하러 갔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 본 강물속에서
물고기가 헤엄치는 모습을 보며
기분이 좋아진 장자가 말했다.
“저기 바위사이를 오가는 뱅어들을 보게 !
제네들 엄청 재미있게 놀고들 있군”
“잠깐! 자네가 물고기도 아닌데
물고기가 즐겁다는 것을 어찌 아나?” 혜시가 반문하자,
“자네도 내가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 내가 물고기가 즐겁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을
또 어떻게 아나?”라고 장자가 되묻는다.
혜시가 대답했다.
“그렇지. 난 자네가 아닐세.
그래서 물고기가 즐거운지 아닌지를
자네가 아는지 모르는지 모른다네.
그럼 자네도 물고기가 아닌데
물고기의 기분을 어떻게 안단 말인가?”
빙고!
그러자 장자는 이렇게 말했다.
“물고기가 즐거운 지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었는가?
자네는 지금 내가 물고기가 즐겁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을 전제로 질문한 것이 아닌가?
내가 어떻게 물고기가 즐거운지 알았느냐고?
이곳에 서서 한 번 보게. 바로 알 수 있다네.”
억지 빙고!
이 대화는 누가 맞고 틀린 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장자란 신비주의자와 혜자란 논리 실증주의자가
서로 절친이면서도 서로가 정반대 성향으로 절대 지지 않으려한다.
내 개인적인 입장에서 장자보다 혜자가 더 체질에 맞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이 고사에서
서로 논박을 즐기는 ‘양행兩行’의 원칙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바로 누가 맞고 누가 그른 것이 아니라
둘 다 맞다는 뜻일 수도 있으며
이 글을 기록한 장자의 의도는
‘자신의 눈으로 세상의 재미를 발견하는 능력’을 강조하는 기록일 것이다.
긍극적으로 재미의 법칙의 한 단편을 엿볼 수 있다.
한 여행자의 눈에 보이는 사물에 대한 다양한 묘사는
시간과 장소에 따른 각종 미세한 상황과 기후와 계절이란
객관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보는 자의 주관적 심적 상태도 중요한 요인이 된다.
이를 기본적인 일차 변질이라면
이차 변질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의 제한과 제약으로 느낌이나 사고를
언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생긴다.
장자는 자신의 다이내믹한 내적 시적 시야가
혜시의 과학적 Static한 현실에 대비해서 논쟁이 될 수는 있지만
옳고 그름의 문제로 서로를 비하하거나 적대시 해서는 안됨을 상기 시킨다.
칸트도 사물의 관찰에 대한 인간의 능력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제한되고 제약되어 있기때문에
서로의 다른 점들이 상호 보완적될 수 있기위해서
적대시 하는순간 제대로 된 관측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오늘 날의 극한 대치로 치닫는 이념 대립의 정쟁 대립이
그 도를 넘어 감을 목격하면서 인간 군상의 정치적 진보는 한치도 성숙되어 가지
않는 것 같다는 심정을 피할 수가 없다.
문명과 과학의 발달이
인간의 사고와 이해력과 정비례해 나가고 있지 않음이
여지 없지 증명되는 것 같아 습쓸한 기분이 든다.
칸트나 장자의 요점은 인간의 이해력은 무진장하게 넓지만
옳고 그름이나 궁극적인 진리에 대한 것에 대해서는
우리 서로가 절제와 겸손과 자제를 해야 한다는 말이
왜 그렇게 요원하게 들릴까….?
The ability of human beings to understand is without limit.
About the ultimate things we cannot speak.
By presuming to speak of ultimate things,
We must put restraints on our ability to underst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