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일이 있고 난 다음 해방전선으로 보낼 성미를 모곡했다. 지난번 일도 있어 차무집 어른은 남보다 많은 쌀을 냈다. 예전 당두집 머슴에서 자립한 덕출이 면에서 나온 인민위원장 옆에 붙어 서서 이 집은 한 가마니를 온전히 내도 부족하다고 해서 몸을 피한 아들에 대해 행여나 다른 소리가 나올까 봐 미리 입을 막듯 쌀 두 가마니를 내놓았다. 아들만 성하고 집안만 성하다면 어떤 일로든 부딪치지 않는 게 수였다.
남보다 쌀을 많이 내고도 소까지 빼앗긴 건 며칠 후의 일이었다. 그날은 차무집 어른도 새댁도 집에 없었다. 난리 중에도 사람들은 난리와는 상관없는 일로 병들고 앓고 목숨을 잃었다. 새댁의 친정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고 기별이 왔다. 난리와 상관없는 일이어도 겹치면 그게 또 난리 중에서도 제일 큰 난리와도 같은 일이 되었다. 배 속에 아이까지 가진 새댁을 그냥 기별꾼하고만 보낼 수 없어 세일 어멈이 납돌 집 앞까지 데려다주고 왔다. 그리고 이틀 후 장례를 치르는 날 차무집 어른이 사돈집으로 갔다.
바로 그날, 쌀을 실은 수레를 끌고 갈 소를 징발하러 군인과 함께 면인민위원회 사람들이 왔다. 덕출도 지난번에 차무집이 자신의 말 몇 마디로 쌀 두 가마니를 낸 것이 과하다고 느꼈던지 그들을 데리고 회나무집으로 갔다. 이번에도 덕출이 김 영감과 실랑이를 하고, 따라온 군인은 옆에 총을 들고 서 있었다.
“글쎄, 이 동네에서 쌀 여덟 가마니를 끌고 소목고개를 넘을만한 소가 회나무집 소밖에 없다니까요.”
“왜 없다는 거야. 요 바로 위에 차무집 소도 힘이 얼마나 좋은데 그래.”
“그 집은 지난번 성미를 낸 것만으로도 충분하고요.”
“그깟 쌀 두 가마니하고 소를 대느냐고?”
“어이구, 쌀 두 가마니를 그깟이라고 하는 양반이 엊그제 성미 낼 때는 왜 쌀 한 말 가지고도 바들바들 떨었소? 그래서 여기로 온 거니까 얼른 비켜요.”
덕출은 죽창을 비껴 세우며 땅을 굴렀다. 그러나 김 영감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 소를 끌고 가면 동네 전답은 뭘로 갈아?”
“그거야 다른 집 소로 갈면 되지요. 차무집 소도 있고, 진재집 소도 있고, 유복이집도 소가 있고.”
“여보게 덕출이, 올해도 골 이쪽 안의 전답은 이 소가 다 갈았다구. 차무집은 소가 있으나 마나여. 벌써 몇 해째 남한테 빌려주지 않잖어.”
덕출도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 소는 볓 해째 동네일에 나서지 않는 소였다.
“동네를 위해서도 이 소가 남아야 한다구. 그리고 진재집 소도 쌀 여덟 가마니 정도는 거뜬하게 끈다구. 그 집도 엊그제 성미 많이 낸 게 아니잖어.”
김 영감은 외양간 문에 바짝 붙어서서 팔을 벌렸다.
“우리가 가진 게 뭐가 있다고 그래. 살림 때문이면 차무집으로 올라가라구. 그 집은 살림도 좋고, 소도 남 빌려주지 않으니까.”
“이보시오, 동무!”
이번엔 저쪽 군인이 나섰다. 그는 어깨에서 총을 내려 김 영감의 가슴에 댔다.
“셋을 셀 때까지 죽고 싶지 않으면 나오시오!”
그러나 김 영감은 비키지 않았다. 식구들은 모두 흙빛이 되어 김 영감과 저쪽 군인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떨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사시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듯했다.
“하나!”
“.......”
“둘!”
정지된 시간 속에 군인은 일정한 간격을 두어 숫자를 세었다. 김 영감은 외양간 문에 두 팔을 벌리고 버티고 선 채 눈을 감고 미동조차 않고 있었다.
“지도원 동지!”
앞으로 나선 건 덕출이었다.
“차무집으로 가지요. 말을 들어보니 차라리 그 소를 가져가는 게 나을 것 같수. 남한테 빌려주는 소도 아니고.”
군인이 총을 거두었다.
“성미 많이 냈다는 집 말이오?”
“예. 대신 이 집 소를 두 집 걸로 하면 되지요. 다음에 팔아서 나누든지 반 마리 값을 셈하던지.”
덕출의 말에 김 영감도 문을 막아섰던 손을 풀고 군인 앞으로 나왔다.
“그렇게 하지요. 그거는 하라는 대로 하지요.”
“좋소. 그럼 동무도 함께 갑시다.”
군인과 인민위원회 사람들이 앞서고, 그 뒤에 김 영감이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사립문으로 들어섰다. 마당엔 빈집에 소꼴을 베어주기 위해 삼박골 사위가 와 있었다. 덕출은 차무집 사위에게 수레를 끌고 갈 소에 대해서 말했다.
“안 돼요. 이 소가 어떤 소인데.”
이 집에서는 세일어멈이 외양간을 막아섰다.
“죽고 싶소?”
저쪽 군인은 회나무집에서와는 달리 처음부터 총부리를 세일어멈에게 들이댔다.
“난 그런 거 안 무섭소. 날 죽이든 말든 그건 맘대로 해도 소는 맘대로 못 하우.”
차무집 어른뿐 아니라 세일어멈으로서도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소였다. 급해진 건 오히려 덕출이었다. 덕출은 차무집 사위에게 지난번에 성미를 많이 냈는데도 다시 소를 가지러 온 게 세우때문이라고 했다. 회나무집 소에 대한 얘기도 했다. 세우가 튄 것 때문에 의용대를 뽑던 날 학교에서의 분위기가 어땠는지 사위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이렇게 소를 가지러 사람들이 몰려온 것이었다.
“장모님은 좀 가만히 기셔보세요. 그러니까 덕출이 자네 얘기는 회나무집 소를 공동으로 하란 말이제?”
“그렇다니깐 자꾸 그러네. 지난번에 세우가 튄 것도 그렇고, 또 자네 장인이 누구한테도 소를 빌려주지 않으니 이 소는 동네에 있으나 마나 한 소라구.”
“영감님도 틀림없이 그렇게 하는 거지요?”
사위는 김 영감에게도 다짐하듯 물었다.
“그라믄. 내가 소 반 마리 값을 치르든지 이다음 팔아서 나누든지 한다니까. 아무렴 뿔 없는 소보다야 금이 좋지 않겠는가?”
덕출도 이 일의 증인이 되겠다고 했다. 사위는 김 영감만 약속한다면 소를 가져가도 좋다며 세일어멈을 외양간 문 앞에서 나오게 했다.
“이보시게 삼박골 사람, 아버지 오시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가? 이 소가 보통 소가 아닌 건 삼박골 사람도 잘 알잖는가.”
“알지요. 아니까 이러지요.”
“난 모르이. 이 집 안주인 목숨을 이어받은 소를 보내고도 내가 어떻게 이 집에 살 수 있겠는가. 꼭 가져가려면 날 죽이고 가져가라고 하게.”
“소를 가지러 총까지 들고 온 거라면 차라리 장인어른 안 계실 때 보내는 게 낫지요.”
삼박골 사위는 정말 힘없이 소를 보내고 말았다. 우추리에서는 아직 그런 일이 없었지만 이웃 마을에서는 대통에 피를 담은 사람이 나왔다. 거기에 처남도 의용대 모집에 앞서 마을을 튀어 버렸다. 아무리 장모의 목숨을 이어받은 소라지만 소 때문에 사람이 다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만약 장인어른이 있었다면 소는 소대로 잃고 사람까지 다쳤을 것이라고 했다.
고삐를 푼 사람도 삼박골 사위였다. 그런 중에 삼박골 사위가 한 일이라고는 외양간을 나서며 잘랑거리는 워낭을 외뿔소의 목에서 떼어 벽에 걸어놓은 것뿐이었다. 사립문을 나가며 소는 마당을 돌아보고 구슬피 울었다.
“무우...... 무우...... .”
차무집 어른을 찾는 눈치였다. 낯선 사람들에 둘러싸여 한번 끌려가면 다시 올 수 없다는 걸 외뿔소도 아는 듯했다.
“무우......”
외뿔소는 다시 뒤를 돌아보고 슬픈 모습으로 길을 떠났다.
이 집 안주인이 세상을 떠나던 기묘년(1939년) 가을에 태어나, 수소로서는 십 년도 넘게 차무집 외양간을 지켰다. 그러나 차무집 주인에게 그것은 오랜 시간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