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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김정식(가수 겸 작곡가)
가을의 정취를 느끼기에도 너무 이른 새벽길을 달려 경기도 수지에 있는 상현성당에 닿았다. 이 성당 노인대학의 어머님 아버님들을 만나는 시간이다. 그리 자주는 아니지만 노래와 함께 나누는 내 강의일정에 노인대학이 더러 있다. 노래도 배우고 그 노래를 중심으로 복음적인 삶의 나눔도 하게 된다. 이런 강의가 ‘노인들에게 가능할까?’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없지 않지만,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노래를 너무 좋아하기에 사이사이에 노래를 부르면서 진행되는 강의는 늘 인기가 많은 편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뒷 강의를 빼고 계속 하자는 분들도 있고 점심식사 후에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노래를 몇 곡 더 듣고 싶다는 분도 계신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고은 의 시 ‘그 꽃’ 전문)
노인들은 죽기만을 기다리는 생산성 없는 세대쯤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스스로에게 주어진 하루 혹은 한 시간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깨어 산다면 젊은이 못지않은 기쁨을 누릴 수도 있다. 가령 특별하게 큰 힘 들이지 않는 일이라면 함께 사는 가족들이 바쁜 일상에 쫒겨 미처 정돈하지 못한 집안정리를 돕는다든가, 요즘 같은 가을철에 시골길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코스모스나 구절초 몇 송이를 꺾어다가 꽂아 둠으로써 가을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일쯤은 노인이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렇게 해 두면 가족들이 얼마나 기뻐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미리 웃음 지어보는 것만으로도 삶의 기쁨을 누리기에 충분하다. 하늘나라는 엄청나게 훌륭한 일을 하거나 그저 열심히 기도하고 봉사했던 사람들이 가는 곳이 아니라 작은 것 안에서 기쁨을 일구어 내는 사람이 지금 이 순간 누리는 곳이다.
이런 잔잔한 얘기와 노래를 듣고 부르면서 어르신들의 볼이 상기되기도 하고 웃음이 피어나기도 하는 것을 보니 먼 길을 달려왔던 피로가 가시고 나 또한 기쁨을 함께 누리게 된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나태주의 ‘풀꽃’ 전문)
평생을 시골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시다가 교장으로 정년퇴임을 하신 시인께서 아이들을 데리고 산으로 가서 풀꽃을 그리자고 하였을 때 아이들이 물었다.
“선생님. 풀꽃이 뭐예요?”
도시 사람들은 풀꽃이 뭔지 잘 알고 있다. 정원에서 가꿔지거나 화원에서 팔고 있는 이름 있는 꽃들이 아닌, 아무데서나 피어나 이름도 얻지 못했거나 이름이 있다 해도 잘 알려지지 않은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작은 꽃들을 말한다. 그러나 화원이나 정원을 자주 접해보지 못한 시골 아이들에게는 그런 가늠이 잘 안되기에 따로 풀꽃이라고 정해놓은 꽃을 알지 못하겠다는 뜻에서 그리 물었을 것이다.
“자세히 봐. 그래야 예쁘다. 오래 봐. 그래야 사랑스러워. 니들도 그래.”
이름 없이 산다고 해서 삶이 의미가 없지 않다는 것을 풀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잎을 돋우고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어 남기고 이우는 것. 이것이 세상에 태어난 가장 아름다운 뜻이라는 것을 풀꽃을 보면서 가슴에 새기게 된다. 세상에 태어나 특별히 이름을 남기지도 못했고 호적 외에는 어딘가에 따로 등록되지도 않았지만 그저 자식을 낳아 키우고 열심히 가르쳐서 세상에 살아남게 해 주는 일로 한 평생을 바치고 늙어버린 이 어르신들의 야윈 얼굴들이 모두 풀꽃으로 다가온다. 오늘은 시골 들판으로 가 아무데서나 피어난 풀꽃 향기를 만나고 싶다.
김정식 (로제리오)
가수 겸 작곡가로 생활성가의 개척자이며,
파리국립음악원에서 그레고리안과 지휘법을 공부하였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돕기위한 자선음악회와
환경보전과 인권회복을 위한 사회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으며
어린이들을 위한 노래와 예술가요 및 연주곡 등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만들고 부른다.
첫댓글 이 노래 참 좋습니다.
노래는 짧지만 생각을 깊게 남는 곡.
제비꽃, 파꽃, 싸리꽃... 참 예쁘네요.
노래는 무조건 퍼갑니다.
카페로~^^
이런 노래는 많은이들에게 들려져야 하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