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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활 기록 - 서미자
나의 본적은 우리나라 최남단에 있는 그 당시 다리가 없을때라 섬마을 이었다.
시댁은 그 중에서도 더 외진 곳 깊은 산골이었어요. 저희 집에서 약 4, 5십리 떨어진 곳이었는데, 남편은 결혼 후 약 두 달 후에 군에 입대 했지요.
시댁 가족은 몸이 불편하신 왕 할머님(대 소변을 받아내는)과 시 부모님,두 분 여동생 두 명 남 동생 한명 이렇게 살았어요. 갓 시집와서 낮선 가정이고. 또 같은 시골이지만 저희 가정과 사는 방법이 너무 달라서 불편 한 게 이루말할 수 없었지요. 그런 사정은 말씀을 듣지 않아도 짐작하시겠지요? 울며 겨자먹기로 그럭 저럭 살다보니 몇년이지나 남편 전역하는 날 첫 아이를 출산했어요. 모든 분들이 다 함께 축하해 주었으나, 유독 아버님께서는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어떤 표현으로도 나타내기가 어려웠어요. 그 이유는 그 아이 임신했을 때 시골이라 검사하는 것도 모르고 있을 때인데, 아버님께서는 조상 묘비를 세우면서 가족난에 뱃속에 있는 아이를 태몽이 아들이라면서 표석에 아들 손자 이름을 새겨 넣을 정도 였어요, 그런 손자가 태어나니 본인만 손자 있는 것처럼 착각 할 정도로 자랑을 입에 달고 사셨지요. 주무시는 시간만 제하시고 아침부터 저녘까지 아이 담당을 하시는 거였어요. 애들 아버지가 약 이십리 산골 길을 걸어서 통근을 할 때의 일이었어요. 해가 진 후에 퇴근해서 오시는데 몇 시간 전부터 손자 업고 나가시어 길목을 지키고 계셨지요. 기쁨으로 그런 생활을 겨우 약 일년 정도 하시다가 급성 충수염으로 세상을 하직하셨지요. 아버님이 계시지 않은 우리가정은 슬픔에 잠겨 너무 허전하고 불편한 게 많았지만, 그럭 저럭 세월이 해결사 되어 두 분 동생 다 출가하고, 남 동생도 교대를 졸업하고, 결혼해서 자녀들 잘 기르며 행복하게 살고 있담니다. 그런데 저는 처녀 시절엔 무엇보다 건강은 자신이 있었으며 지인들께서도 미자는 감기 몸살도 안한다고 할 정도이었는데 결혼 후 얼마 안되어 여기 저기 아프기 시작하더니 병원에 입원하기를 밥 먹듯하게 되고 맨날 암탉이 쪼그리고 우장 쓴 모습을 하고 있듯이 날개를 움추리고 있는 모습으로 쭈그리고 다니는 병든 사람이라는 표를 받게 되었지요,
저는 그게 제 운명이라 생각되는데 지인들의 말씀에 왕 할머니의 수발드느라 위가 상해서 그런다고들 했어요. 무슨 이유인지는 잘 알 수 없지만 병원에 가도 특별한 병명도 나오지 않고, 몸은 더 쇠약해져서 처음에는 진도 읍내 병원 다음은 목포, 광주, 서울, 서울에서도 서울대 병원,한양대 병원, 서울 중앙병원 그때 새로 생긴 원자력 병원까지 다 다니면서 검사하고 치료를 받았지만 위, 간, 심장, 여기 저기 다 나쁘다고 하며 치료를 받아도 몸은 차도가 없었지요. 그러면서 시골에서 일상 적으로 하는 무당을 불러 작게는 방안에서 하는 굿은 물론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고 마당굿은 밤을 세워하고 곡식이며, 현금도 이만 저만한 금액이 아니었는데, 그런 굿도 엄청 많이 했어요. 그걸 큰 굿을 해도 별다른 변화가 없었지요. 그래도 우리 어머님께서는 무당집 찾아다니시기를 그치지 않으시며 어머님 말씀이 우리재산 다 팔아도 며느리 살려야 한다고 하셨지요. 사흘걸러 무당굿하고 병원다니며 치료 받기를 반복해도 제 몸은 치료가 되지 않아 집안의 지인분들과 의논을 한 결과 신앙생활을 하기로 결심을 하고 진심으로 하나님께 의탁하고 1985년 침례를 받고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려고 노력하며 받은 사랑을 조금이라도 갚는 의미로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려 내 주위에 있는 몇분과 우리 시어머님, 친정어머니, 언니등 약십여 분이 침례를 받았어요, 믿음으로 생활한 결과가 조금은 적용이 되었는지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심으로 언제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한 보따리씩 갔다 쌓아두고 먹고 마시던 약을 끈을 수 있는 놀라운 기쁨을 맞이하게 되었답니다. 나의 오늘을 있게 하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기도를 드립니다. 또한 저에게 아버지를 알게 해 주신 진도 남부교회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고, 특별히 강공수 목사님 조옥인 집사님 김옥동 장로님 심삼례 집사님 등 나를 사랑하시는 모든 분들 그리고 불교만 고집하시던 우리 시어머님과 남편,기타 모든 분들에께도 감사드립니다.
남편 회갑 때 자녀들이 외국 여행을 의논하게 되어서 평소 마음에 그리고 있던브라질에 계시는 숙부님 댁을 방문하면 어떻겠냐고 하니, 자녀들이 다 찬성해서 그대로 결정하고 여러 가지 준비를 완벽하게 갖추어 주어 가게 되었어요.
마침 그 무렵 숙부님 내외분이 미국에 사는 아들집에 계시어서 미국에서 약 10여일간 머물다 브라질에 가게 되었어요. 미국에 머물면서 여기 저기 구경을 다녔으나 미처 깨닫지 못하고 기록을 남기지 않아 많은 세월이 흘러 기억나는게 별로 없으나 대충 떠오르는게 요세미쯔, 그랜드캐년,헐리우드, 등 또 질녀 결혼식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결혼식도 우리나라와는 너무 다른게 많았어요. 우선 신랑 신부 각각 들러리가 두분씩인데 그분들 옷을 맞춰 입히고 미리 여행 연습 하는 결혼식 전날부터 다 함깨 예식장에 가서 연습을 하고 식장에 오실 분은 미리 접수 받아 식탁에 좌석을 정해 놓고 결혼식이 끝나고 신부 쪽 하객 먼저 자리 잡고 앉은 후 신랑쪽 하객은 식탁에 앉아서 식사를 했어요.
브라질에 가서 쌍파울로에 사시는 숙부님 댁에 지내는 동안 놀라운 게 너무 많았어요. 특히 한국에서 이민가서 사시는 분들의 그 뜨거운 사랑과 끈끈한 우정을 누가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어요. 또 넓고 넓은 벌판에 방목하는 가축들 우리나라에선 엄두도 내지 못하게 놀라운 광경이었지요. 그 유명한 이과수폭포 높은 동산에 우뚝 세워진 예수님 동상 그곳에 가서도 안개 낀 날에는 보기 힘든 일이라는데 그날은 운 좋게 날씨가 맑아서 자세히 볼 수 있어서 참 좋았어요.
그럭저럭 자녀들 4남매 낳아 키워서 가르치는데, 큰 아들이 고등학교를 광주에 다니게 되어 광주에 가서보니 처음으로 객지에 보내게 되어 낮선 집에 맡기는게 마음에 내키지 않아 할 수 없이 숙모님 댁에 억지로 맡기게 되었어요, 학교도 멀고 집도 협소하며 집안에 환자도 있어 데리고 살 형편이 아닌데 제가 억지로 맡기니 마음씨 착하시고 심성이 고우신 숙모님이 어쩔 수 없이 받아 주셨지요. 그 이듬해는 하숙하고 또 다음은 할머님께서 수고하시고 우리 딸 고등학교 입학하면서 오빠와 동생 두 명 뒷바라지를 하면서 학교를 다니는데 그 때만해도 급식 같은 거 없고 해서 도시락 8개를 싸면서 학교 다니다가 딸아이가 건강이 나빠져 힘들때도 그 일들을 멈추지 않고 견디어 낸 내 딸 지금 생각하니 너무 미안하고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 딸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한다.
그리고 애들끼리 있을 때 원래 광주에 살고 계시는 숙모님과 우리 동서가 있기에 그나마 가능한 유학생활을 할 수 있었음을 두분께 다시 한번 감사의 뜻을 되새기며 죄송하고 고맙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자녀들 권유로 광주로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광주에 와서 보니 시골 생활에 비교도 안될 만큼 도시에서는 좋은 게 많았습니다. 우선 복지관에 다니면서 컴퓨터와 여러 가지 취미생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남편과 함께 댄스 스포츠 사교댄스 등 그리고 문화센터에 늘푸른 대학을 다니고, 서창농협에서 운영하는 장수대학 여기저기 취미 생활이 너무 즐거웠어요. 여러 가지 수업 중 특히 시 암송반에 다니기 시작 하면서 내 생에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음을 다시 한번 감사 할뿐입니다.
제가 원래 외우는 걸 좋아해 마음에 와 닿는 좋은 글을 접하면 외우려고 애쓰고 노력하는 편이어서 성경 말씀은 물론이고 마음에 와 닿는 시를 접하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외우고 또 외우고 암송을 반복하는 일은 정말로 기쁨 그 자체였습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신경 쓰게 되는 심란한 일이 있을 때에도 무조건 시를 외우면서 마음에 안정을 얻곤 합니다. 시 암송은 내 몸의 건강을 지켜주는 치료제이며 완전한 보약이 되었습니다. 시를 한편 한편 외어 암송 목록에 쓰고 컴퓨터에 저장하여 USB 에 담는건 그 기쁨이 얼마나 큰지, 황금보다도 더 중요해요. 귀중한 보석함에 보석을 저장하시는 분들은 이런 마음일까요? 어느 무엇과도 비교 할 수 없는 시, 처음 시반에 입학하게 해 주신 이옥자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혼신을 다 해 사랑으로 지도해주신 잊지 못할 문길섭 선생님, 오소후 선생님, 양명희 선생님, 김정희 국장님, 박애정 선생님, 김종 교수님, 강만 회장님, 이명란 선생님 등 모든 분들 은사님들께 진심으로 깊은 감사를 드림니다,
노년을 취미 생활로 잘 보내고 있을 무렵 남편의 건강 검진 중에 발견된 식도암진단의 시련.....
서울 아산병원에서 수술을 하는 과정 약 10시간 동안 기다리던 그 생각 다시 한번 자녀들에게 고마웠던 그 마음 내 자녀들이 없었다면 그 시간에 어떤 모양이었을까? 어떻게 그 시간을 극복했을까? 아들 딸 며느리 사위 손자 손녀들까지 다....고맙다.
서울에서 치료 받고 둘째가 모시고 광주에 오니 막내가 집 정리하고, 음식 준비까지 죽도 몇 가지를 끓여 놓고 모든 준비를 해놓았다. 수술하고 와서 음식 드시다 목에 걸려 힘들면 시도 때도 없이 응급실가서 마취하고 걸린 거 꺼내고 하는 치료도 셀 수 없을 정도였는데, 그 수발을 막내아들 며느리가 다 해주었어요. 수술한 후에도 성대가 마비되어 여러 차례 서울에 병원을 다니는데 가는 날 마중 나오고 병원 모시고 가고 또 터미널 데려다 주고 그 몫은 큰애 담당이었지요. 그 외에도 이런 저런 일로 모든 자녀들 고생은 또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어요. 서울을 몇 차례 다니고 거의 나았다 싶었는데, 4년 만에 다시 후두에 암세포가 있어 항암치료 방사선 치료를 30회 이상 다니는데, 그 담당은 막내 며느리였어요. 또 다시 막내아들 내외 고생이 시작 되었고, 방사선 치료 과정에 너무 힘들고 피부가 데어서 염증까지 그 고통은 이루 말로 할수 없이 힘든 시간 ..... 상무병원 입원했다 퇴원하고 반복하면서 전전 긍긍 지금까지 삶이 어떻게 사는건지 아무런 낙이 없는 생활이 되어 버렸습니다.
복지관은 너무 멀어 나갈 엄두도 내지 못하는데 다행으로 가까운 곳에 서구문화원이 있어 나의 삶의 안식처가 되어 마음을 달래며 생활하는데, 가끔은 집에만 계시는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 뼈아프게 느껴집니다. 요즈음도 몰핀으로 견디어 내시는 그 모습은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인생은 무엇인가? 허무 허상 소설속에 이야기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진짜 축복받은 삶이란 어떤건지...인간은 다 착각 속에 살고 있는 듯하다 행복한 사람도 없고, 영원한 사람도 없고, 살아간다는 것이 다 인생의 고해라 한다. 그러나 모든 게 다 마음먹기 달려있다고 생각된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긍정적으로 크고 높고 깊고 넓게 생각한다면 모든 게 다 만족할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아를 버리지 못하는 성향이 있다. 남의 허물을 보지 말고 나 자신의 잘못된 습관 성질을 탈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을 지킬 수 있을 만큼의 목표를 세우고 포기하지 말고 어떠한 약속도 잘 지키며, 요행을 바라는 일은 하지 말고 비밀은 남의 것이라도 꼭 지키며, 후회하지 않도록 미리 계획하고 실천 하도록 자신이 먼저 변화되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
입이 중요한가? 말이 중요한가?
법정스님의 유언 중에 무소유의 정신, 세 치의 혀바닥이 여섯자의 몸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고 하셨다. 그 말씀을 마음 깊이 새기며....
오늘도 아무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대문이 열리며 서울에 사는 큰 아들 며느리가 들어왔다. 뜻밖의 일이라 당황 했지만, 반가웠다. 친구들 체육대회가 있어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무화과와 이런 저런 걸 많이 사와서 먹고 저녁에는 살렘 부폐에 가서 식사를 맛있게 했다.
8월 15일 광복절엔 우리 막내 내외가 아버지 모시고 바람쐐러 가자고 했다. 정말로 고마웠다. 무조건 따라 나섰다. 휠체어까지 싣고 와서 여기 저기 담양에 있는 메타세퀘이아 길 등 구경 잘하고 이것저것 음식도 새로운 것 여러 가지 다 사주어 먹고 하면서 다시 한번 막내 아들 며느리에 대한 사랑과 정성이 보이는 행복한 하루를 설렘의 마음으로 아름다움 자연의 순수한 그 자체를 즐기며 하얀 종이위에 쓰고 싶은 사랑 그 두 글자를 써본다.
저물어 가는 나의 생활은 부모님 모시고, 남편 뒷바라지하며, 자녀들 키우는 평범한 일생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우리 자녀들 아들 딸 며느리 사위 손자 손녀들 살아가는 그 모습을 보면서 내 삶엔 비교 할 수도 없을 정도로 어쩌면 그렇게 모든 일에 빈틈이 없이 잘하고 있을까 탄복 할 정도이다. 지금까지 일어나고 있는 일상을 다 이야기로 역으면 자화자천이 될 것 같아 조심스러워 자세한 이야기는 끝내고 무엇이든지 다 부족한 할머니 할아버지 닮지 않고, 지혜롭게 이 험한 세상 헤쳐 나가는 내 아들 딸 며느리 사위 손자 손녀들 모두에게 감사하며 이 글을 마무리 하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가족, 자녀들 가정,가정.모든 이웃들 온 세상의 모든 분들이 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안에서 축복받는 삶이 되시면 참 좋겠습니다.
발 뒷꿈치도 따라 갈 수 없는 나의 어머니!
서미자 광주 광역시 서구 마재로 57 주은 아파트 102동 1407호
전화 010 – 9942 – 3472 이메일(smj0592@hanmail.net). 자서전반
아직 부모님이 생존해 계시는 분들에게 인생 선배로서 감히 부탁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부모님이 항상 곁에 계시지는 않아요 무슨 뜻 인지 잘 아시겠지요?
어머니! 지금 계신 그곳은 근심과 걱정, 고통, 아픔도 없이 편안 하신지요?
가정의 달을 맞이하니 어머니와 함께 오손 도손 살던 옛 추억이 새록 새록 그리워 집니다.
지금부터 우리 어머니의 걸어오신 옛 추억의 길을 더듬어 보렴니다.
우리 어머니는 어린 나이에 결혼하시어 중병을 앓고 계시는 홀 시아버님을 모시면서 많이 힘드셨어도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으시고 정성을 다해 극진히 모시어 가정과 이웃 친척은 물론이고 주의에 모든 지인분들에게 귀감과 모본이 되시어 효부상을 받으시고 그 후에도 이런 저런 상을 세 번이나 더 받으신 덕이 많으신 장하신 분이랍니다.
비록 시골 생활에 힘드시지만 우리 오남매 남부럽지 않게 가르치시며 다복하게 사시면서 언니와 나 출가 시키시고 부모님 닮아서 착하고 머리가 좋은 아들 삼형제 가르치는 보람을 목표로 삼으시며 살아가시던 중 아버지께서 갑자기 병환으로 50세의 연세로 세상을 하직 하셨지요. 큰 아들 고 일학년 때 였어요, 청천 병력의 큰 고난의 시련이 우리 어머니 앞에 닥쳤지요 그러나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그 말씀이 우리 어머니에게 적용 되었나봐요.
우리 어머니는 슬퍼할 겨를도 없이 밤 낮을 가리지 않고 손 발이 다 닳고 허리가 꼬부라 지도록 허리끈 졸라메어 눈물로 밥을 삼고 힘쓰며 정성을 다해 노력 하심과 또 머리 좋고 심성고운 삼형제가 다 사랑으로 연합하여 끈끈한 줄이 되고 버틸목이되어 어머니의 뜻을 잘 받들어 한마음으로 효도한 덕으로 큰 어려움 다~ 극복하고 지금은 그런대로 남부럽지 않을 만큼 잘 살고 있지요.
아버지를 떠나 보내신지 어~~언 오십여년이 지났네요. 우리 어머니는 지난해에 저 세상에 깊이 잠드셨어요.
이제와서 뒤 돌아보니 어린시절 어머니께서 들려 주시던 옛날 이야기 생각이 떠오름니다. 우리 어머니는 한글도 모르시지만 기억력이 남 달리 좋으셔서 이야기 꺼리가 참 많으셨지요 춘향이, 심청이, 흥부놀부는 기본이며 장화홍련, 콩지팥지, 호랑이, 토끼, 이수일과 심순애, 유관순, 안중근, 김삿갓, 이순신, 기타 등등 감히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들려 주셨는데 그때 좀 더 자세히 귀담아 듣고 기록해 두었으면 참 좋았을텐데 이미 때는 늦어 후회스러울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 어머니는 항상 상대를 먼저 배려하시고 생각하시며 무슨 일이 있어도 잘못은 다 자기 탓으로 여기시고 어른을 공경하며 아랫 사람은 사랑으로 감싸 주시면서 옳고 그름을 잘 판단하시는 지혜로우신 삶의 본 보기가 되시는 분이셨지요, 그래서 저 자신도 어머니의 걸어오신 길의 발 뒷꿈치라도 따라가고 싶은데! 흉내라도 내며 살고 싶은데! 뜻대로 잘 되지 않으며 생각하면 할수록 눈물만 나오네요, 이런 제 마음을 알아 주는 듯 지금 밖에는 비가 주룩 주룩 내리고 있네요,
어머니는 무엇이든지 맛있고 좋은 음식은 당신이 드시지 않으시고 다른 누구에게 다 주시곤 하셨지요 그런 어머니를 보며 자란 철없던 막내 동생이 생선을 다 발라 먹은 후 생선 머리, 꼬리, 뼈만 남은 걸 가지고 와서 이건 엄마 드세요.
할 정도 였으니까요,
세월이 지난후 생각하니 우리집에 계실 때에 우리 어머니께서 쓰시던 방안에 들어가면 어머니의 고소하고 달콤한 사랑의 향기가 제 마음을 울컥치받치게 하는 건 어머니께서 하시는 말씀을 좀더 신중하게 귀담아 듣지 않고 건성으로 듣고 그 사랑의 깊이를 알아드리지 못함이었기 때문입니다.
제 몸이 심하게 아파서 고통을 받을때는 주무시지도 않고 물수건으로 제 몸을 맛자시 해 주시며 기도 하시던 일이며 녹두 죽을 끓여 입으로 호호 불어 떠 먹여 주시던 일들 모든게 우리 어머니의 그 크신 사랑이었다는걸 진정으로 느껴지는 이시간 심장이 오그라드는 아픔 어떻게 무엇으로 위로를 받을수 있을까요?
그 때는 왜 몰랐을까요, 후회가 막심할 뿐입니다 어머니를 사랑하고 존경 한다는 그 말 한마디를 왜 못했을까요?
여기에 제가 어머니의 입관때에 암송 해 드렸던 시를 다시 올려 봅니다.
어머니 – 김초혜
한몸이었다 / 서로 갈려 / 다른 몸 되었는데
주고 아프게 / 받고 모자라게 / 나뉘일 줄 / 어이 알았으리
쓴 것만 알아 / 쓴 줄 모르는 어머니 / 단 것만 익혀 / 단 줄 모르는 자식
처음대로 / 한몸으로 돌아가 / 서로 바꾸어 / 태어나면 어떠하리
어머니 다음 세상에 태어나게되면 이 시 구절처럼 어머니와 저 서로 바꾸어 태어나서 나도 어머니처럼 그렇게 겸손하고 현명하며 상대를 배려하는 베품의 사랑을 하면서 살아보았으면 참 좋겠습니다.
어머니의 그 깊은 사랑 깨닫지 못함을 뼈저리게 후회하고 반성해도 아무런 이유가 되지 않고 오직 가슴만 미어지네요 모든게 저만 생각하는 이기심 때문이었겠지요? 그렇게 자녀들만 생각하시고 희생하며 사신 어머니께 나는 무엇을 해드렸을까요! 아무것도 해드리지 못하고 있는 우리를 남겨 두시고 어머니께서는 이미 영원히 오시지 못할 먼 곳으로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어머니가 가신 그 곳은 얼마나 먼 곳인지요 다시는 못오실 그 곳 온갖 힘을내어 불러봐도 대답 없는 어머니 지금 이 시간도 어머니 사진을 들여다 보며 불러봅니다. 보고 싶은 어머니 모습을 그리며~~ 꿈에서라도 만나 보려는 희망을 간직하고 잠자리에 들려고 함니다. 어머니 제 소원을 꼭 들어 주실줄 믿습니다. 어머니! 머~언 어머니! 한 없이 사랑하고픈 어머니 그리운 어머니 나의 생을 다 마칠때까지 사랑하렵니다.
♡행복을 주는 말♡
용해원의 말은 우리의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
정다운 인사 한마디가 하루를 멋지게 열어주지요, 짧지만 이런 한마디 말이 우리를 행복하게 합니다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 잘했어!기도해 줄게! 넌 항상 믿음직해!
넌 잘 될거야! 네가 곁에 있어서 참 좋아!
벤자민 플랭클린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성공의 비결은 험담을 하지 않고, 상대의 장점을 드러내는데 있다
우리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 사람이 사용하는 말은 그 사람의 삶을 말해주지요.
오늘 우리도 주워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 말을 해 봅시다!
우리 곁에 있는 사람이 행복할 때 우리는 더욱더 행복해 진답니다.
*나이가 들수록 깨끗하게 잘 입고 다니고
각종 모임이나 결혼식 또는 문상에 잘 찾아다니고
마음의 문을 열고 남의 말을 잘 들어주고 가급적 말은 적게 한다
또 노욕을 부리지 말며 웬만한 것을 포기하고 기분 좋은 얼굴에 즐거운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돈 내는 것을 즐기고, 건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 최성환(직장인을 위한 생존 경제학) 중에서 -
나이가 들수록 마음도 크고 농 익어야합니다
작고 옹졸한 마음가짐보다는 상대를 먼저 배려하는 크고 너그러운 마음이 필요합니다. 자기의 주장을 펼치기보다는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려 노력하고 내 기분에 따라 행동하기보다는 상대의 마음과 표정을 살피며 뒤를 돌보는 여유롭고 멋진 사람으로 나이들고 싶습니다.
아름다움을 꿈꾸며
서 미 자
내가 지금까지 맞이한 명절중에 올해 2016년 제 나이 76살 지금 맞이한 이 가배절이 가장 의미있고 보람과 뜻 깊은 명절이라고 생각하게 됨니다.
년 초에 문화원 수업 개강 할 때에는 몇 번이나 수업에 참석할수 있을까? 하면서 접수를 했었는데 지금까지 거의 결석하지않고 참석할수 있게 해 주신 애들 아버지께 감사, 오늘 한가위를 맞이하여 며느리들은 음식 준비하고 아들들과 같이 시골에있는 납골당에 성묘를 가게 되었는데 애들 아버지께서도 함께 동행하시게 됨을 감사, 그런데 시골에 사는 절친한 동생벌되는 분이 몸이 많이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 뵙고 싶었는데 저희집 사정이여의치 않아서 가보지 못하다가 오늘에야 찾아가 보니 항상 밝은 모습으로 혼신을 다해 봉사 하시며 사시던 분인데 오늘 그 모습보는 순간 너무 안타까워 눈물만 나오며 할말을 잃어버렸어요, 그 밝고 맑은 모습은 다 사라져버리고 형체도 알아볼수 없어 너무놀라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치료 과정이 너무 복잡해서 치아가 다 빠져버리고 음식도 먹을수 없어서 콧줄을 끼고 거기에 음식을 넣어 준다고 하더라고요, 얼굴형체도 변하여 버리고 자신이 할수있는건 아무것도 없고 앓는 소리와 눈물만 흘리는 그 모습, 차라리 찾아뵙지 않았다면 옛날 그 모습 간직할수 있었을텐데하는 아쉬움만 남네요, 그러나 한편으론 참 흐믓한 일로 감사, 성묘하고 바닷가를 둘러보게 되었는데 그 맑은 하늘에 두둥실 떠있는 뭉개구름.... 산꼭대기에 우뚝솟은 나무들은 구름이 떨어질까봐 온 힘을 다해 떠 받히고 끙끙거리는 듯 떨고 있네요, 또한 바다에는 물때가 되면 고기잡이를 나가려고 선착장에 매달아 놓은 돗단배들 기다리는 휴식시간이 여유로와보였어요, 옛날엔 깊은 산골이었지만 지금은 그 깊은 산속에 국립국악원이 설립되고 또 바닷가에는 아리랑 마을이라고 이름하는 웅장한 건물들이 깜짝 놀랄 만큼변하여있고 환경을 따라 변하게 되었는지 자리는 그대로 이지만 바다와 산의 모양이 전혀 달라져 있는 듯 했습니다.
그렇게 산천 초목이 변하듯 우리인생도 아니 내 모습도 너무 많이 변하여있어 의아해하며 되돌아보니 나의 이팔청춘이 보이지 않아 자세히 들여다 보니 그 시간이 그시간이고 그날이 그날인 것 갔지만 하루 이틀 1년 2년 아니 내 인생의 모든 것을 세월이란 도둑놈이 다 훔쳐 간것일까요? 다시 찾을 길은 없는 걸까요?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생각해보니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지혜로운 사람은 아닌 듯 합니다 그 지식으로 인해 오히려 오만하게 되기도 하지요, 지혜를 아는 건 고개를 숙일줄 안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그 지혜의 문만 열게되면 모든 난관들을 슬기롭게 해쳐나갈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지혜를 구한 솔로몬 왕처럼요, 인생의 불빛이 되어주는 지혜 그 지혜로움으로 우리인생 아니 내 인생도 밝은 태양처럼 환히 밝혀졌으면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때에 맞는 좋은 말을하는 사람입니다 뿌리도 없고 입도 가지도 없는 말, 그 말은 참으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말이 천냥 빛을 갚는다는 옛말이 있듯이 그 말 한마디가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도하고 죽이기도하는 큰 힘과 능력이 있다는 것을 세삼 느끼게 합니다.
오늘은 특별한날 내가 집에만 있었다면 듣도 보도 못했을 일 우리 자서전반 교수님의 안내로 다형문화제 축전과 임원식님의 출판 기념회에 참석하여 너무많은 대접을 받고 뜻 깊은 시간들을 보내면서 그분의 과거를 또한 현재일도 장차의 계획의 다짐을 듣고 보면서 진정 훌륭하신분의 그 모습은 보통 사람들이 엄두도 내지못할 일인 것을 가슴깊이 느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나에게 이런 사람이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죽도록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미치도록 좋아하는 사람도 아닌 괜찮은 사람 하나 있었으면 좋겠어요, 삶이 버거워 희청거릴 때 조용히 어깨를 내어주고 사심없는 마음으로 손을 잡아 줄 수 있는 괜찮은 사람 내 모습 전부를 보여주고 돌아서서 후회라는 단어 떠 올리지 않아도 될 사람 일상에서 문득 그 모습 떠 올리며 그 사람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떠올라 빙그래 미소가 지어지는 그런 사람하나 있었으면 참 좋겠어요, 가장 무서운 사람은 나의 장 단점을 알고 있는 사람이고 가장 경계해야 할 사람은 두 마음을 품고있는 사람이며 가장 간사한 사람은 필요로 할 때 이용하는 사람, 가장 나쁜 친구는 잘못한 일에도 꾸짖지 않는 사람이고 가장 해로운 사람은 무조건 칭찬만 해주는 사람이며 가장 큰 도둑은 무사 안일하여 시간을 도둑질하는 사람입니다.
가장 가난한 사람은 많이 가지고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며 가장 크게 후회할 사람은 부모님께 불효하는 사람이다.
가만히 눈을 감으니 주마등처럼 떠오르는 그리운 얼굴을 만나 슬플때나 기쁠때나 함께 걱정하며 좋은 일은 기쁨을 서로 나누며 아름다운 이들 서로 아껴주며 축복의 기도를 해주는 좋은 사람들.......
이런 사람들로 인하여 나의 삶은 복되고 더욱더 밝고 맑은 태양이 환희 빛나는 그런 세상의 아름다움을 꿈꾸며 좀더 보람있고 알찬 이웃에 모범이 되는 노년의 삶이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건강한 사회 - 경로효친
우
리나라는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으로 불리며 대가족제도와 경로효친(敬老孝親)사상이 윤리의 근본을 이루며, 효경의 말처럼 ‘효를 백가지 행실의 근본’으로 여기어왔습니다. 그러나 현대산업사회는 핵가족화와 물질만능주의로 인한 가정교육의 부실로 말미암아 경로효친의 의미가 퇴색되어 가고 있으며 사회적․도덕적 문제점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에 전통문화(傳統文化)를 계승 발전시켜온 어르신들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하여 제10회 노인의 날 ( 10월 2일 ) 및 경로의 달을 맞이하여 노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우리 고유의 전통미풍양속인 경로효친사상을 확산시켜 약화된 도덕성 회복과 윤리가치관을 확립하고자 합니다.
◉ 경로우대제도
☞ 시행근거 : 2005년 7월 13일 법률 ( 3 )로 개정된 노인복지법 제26호
☞ 경로우대제도 사례
구분
종류별 할인율
공영
운임료
고속철도(KTX)
( 4 )
(토․일․공휴일제외)
지하철/버스
100%
입장료
국립박물관 100%
국립국악원 50%
민영
운임료
국내항공기 10%
국내여객선 20%
표 (대상 : 65세 이상 노인)
◉ 노인결연사업
▶ 목적 : 복지시설에 보호 받고 있는 노인과 공공단체, 기업체, 지역주민 등과 결연을 맺어 노인에게 정서적 안정을 주고 경로사상을 고취
▶ 사업시작 : 1986년 4월
▶ 결연사업수행기관 : 한국노인복지시설협회(전화(02-712-9763))
어르신 인터넷 과거시험
응시번호 : 제주청 - 성명 :
■ 제한시간 : 1시간 20분
■ 참가자 유의사항
① 문서작성은 한글프로그램으로 제한하며 “한글97”, “한글2002”,
“한글2004”에서 택일하여 사용한다.
② 디스켓 저장 파일명은 “응시번호-성명”으로 한다.
예) A:\23-홍길동.hwp
- 파일 저장이 올바르지 않을 경우에는 실격 처리된다.
③ 시험 중 안전한 파일의 저장을 위하여 저장은 수시로 한다.
④ 정보검색에서 얻어진 정답을 이용하여 문서를 작성하되, 최종 제출문서는 A4용지 1페이지 세로 서식 문서로 지시사항에 따라 작성한다.
- 정보검색의 정답은 최종 제출 문서 작성에 사용되며, 별도로 제출하지 않는다.
⑤ 제출할 문서는 왼쪽․오른쪽 여백은 각각 20㎜로, 위․아래 여백15㎜,
머리말․꼬리말 여백은 각각 5㎜, 제본여백은 0㎜로 작성한다.
⑥ 모든 글자체는 “굴림”을 사용하고, 글자크기는 별도의 지시사항이 없는 한 “13pt(포인트)”로 한다.
⑦ 문서에 포함된 개요1,개요2에 대한 개요번호모양【한글97】․문단부호/글머리표【한글2002,한글2004】및 스타일을 아래와 같이 지정하여 편집하도록 한다.
스타일이름
개요번호모양【한글97】
문단부호/글머리표
【한글2002,한글2004】
스타일
개요1
없음
글꼴 :궁서체, 글자크기 :15pt
개요2
□
왼쪽여백 : 6ch【한글97】,15pt【한글2002,한글2004】
글꼴 : 신명조, 글자크기 : 13pt
자간 : -10%, 속성 :진하게
⑧ 문제에 주어지지 않은 조건은 프로그램의 기본 설정값(Default) 또는
주어진 모양대로 작성 한다.
⑨ 기타 사항은 과거시험 감독자 감독에 따른다.
제주체신청
정 보 검 색
※ 다음 문제를 읽고 정확한 정답을 검색한 후 문서 작성시 정답을 활용하여 답안을 완성하십시오.
① 한국정보문화진흥원은 국내외 정보격차해소전담기관으로, 모든 국민이 정보화의 혜택을 함께 누리는 디지털 참여복지사회 건설을 앞당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국정보문화진흥원 홈페이지에서 아래와 같은 이미지를 찾아 문서에 삽입하십시오.
② 한국의 인구 고령화(高齡化)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에 이미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이‘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에는 14.9%로 높아져 ‘고령사회’가 되고 다시 7년 뒤인 2026년에는 20.8%로 ‘초(超)고령사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통계청 홈페이지 추계인구(장래의 인구수를 추계하기 위하여 산출된 인구 데이터)에서 2000년 전체인구에서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을 검색하십시오.
③ 한국노인문제연구소는 노인에 관한 제반문제를 조사 연구하여 우리나라의 노인복지정책 또는 이와 관련된 프로그램개발에 기여하고자 설립되었습니다. 한국노인문제연구소 주소(URL)를 검색하십시오.
④ 보건복지콜센터로 전화하시면 필요한 노인복지, 노인학대, 의료분쟁, 장애인복지, 긴급복지등 보건복지 관련 정보와 상담 서비스를 신속/정확하게 제공하여 드립니다. 보건복지콜센터 전화번호를 검색하십시오.
⑤ 제주의료원 노인전문병원은 2002년 7월 아라동 현지에 이전하여 의료의 질이 높은 병원, 의료서비스가 좋은 병원, 믿고 찾을 수 있는 병원이라는 의료원 Vision을 제시하여 도민에게 보다 높은 의료시해와 노인 및 소외계층에 대한 의료의 질적 향상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57실에 ( )병상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제주의료원 노인전문병원 홈페이지에서 운영 중인 병상수를 검색하십시오.
다가오는 실버파워
우
리나라도 여러 선진국들처럼 실버파워가 강해지면서 단순한 정부 정책의 수혜대상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스스로의 권리를 찾고자 하는 노권신장운동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아울러 대하노인회, 노인유권자연맹, 실버타인스, 실버넷뉴스(www.( 2 ).kr)처럼 노인이 목소리를 대벼낳는 조직이나 단체도 늘고 있다.
한국노인복지학회 회장(3)은 ‘재원을 확보하고 노인 비정부기구간의 연대활동을 강화하면 노인인구(老人人口)가 한국 사회의 가장 강력한 파워 집단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분석했으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실버층이 ( 4 )간에 선거 결과를 좌우할 수 있는 거대한 정치세력르로 성장했음을 알 수 있다.
㉮ 정치세력
■ 선거명 : 제17대 총선(2004년 4월 15일)
■ 산출 비율 :전체 투표자 중 60세 이상 투표자 비율
■ 투표 결과 : 50% 이상 - 11곳, 40% 이상 - 46곳
㉯ 실버산업
구분
주거관련
보험의료
여가활동
생활관련
합계
2000년
4,454
3,757
4,675
4,114
17,000
2005년
7,074
5,967
7,425
6,534
27,000
2010년
10,578
8,897
11,111
10,414
41,000
출처 : 한국보건사회연구원(단위:십억원)
㉰ 문화소비계층
■ 출판계-교보문고 : 2005년 구매액이 가장 높은 연령층 60대
■ 공연계-뮤지컬(노트르담 드 파리) : 매회 50대 이상이 객석의 40% 이상
차지
※ 관련기관
- 한국노인복지시설협회 ☏ 02) 712-9763
- 대한실버산업협회 ☏ ( 5 )
엄마 품 같은 땅 – 서미자
땅은 사람뿐만 아니라
날짐승, 들짐승, 식물까지도
모든 생명의 근원이며
삶의 원천인 것을
박경리 작가의
풍부한 사상을 이루고
자연 주의적 실체가 담긴
그 정성과 노력을 믿는 이유일까요?
모든걸 다 느끼면서
믿고 따르지 못함은
농사꾼이나, 소작인들의
땀과, 노력, 한과, 얼의
상징인 듯 하네요.
단지에 동전이 하나만 있으면 요란해도
꽉 차면 조용하듯
너도, 나도,
자기 마음도 다 헤아리지 못하나
모든 것을 겸허한 자세로
빈 마음이 되어
품어 않으면 만사 형통하리라
뜨거운 엄마 가슴속깊이 안기듯
엄마 품 같은 땅 – 땅은 생명의 등불
서미자
땅땅거리는 땅)
날짐승, 들짐승, 식물까지도
모든 생명의 등불
삶의 원천인 것을
박경리 작가의
언어적 미학
자연 주의적 실체가 담긴
그 정성과 노력을 믿는 이유일까요?
백열등처럼 환한 불빛이 들어왔다
아무 것도 찾지 못했고 불을 끄지도
않고 사라지곤 했던 산자들의 의문
믿고 따르지 못함은
농사꾼이나, 소작인들의
땀과, 노력, 한과, 얼의 상징
자기 마음도 헤아리지 못하고
모든 것을 겸허한 자세로
빈 마음으로
품어 안으면 어머니 가슴깊이
스며드는 생명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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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도 은빛작가 자서전
부정청탁 김영란법 실시 되는 날 9월28일 부터 4백만명의
공직자들이 청렴해야 나라가 편안하다
도둑놈들 차떼기 정당 밷어내야 나랏빛을 탕감하겠지~
운문을 쓰기하는 동기가 중요하다
교정을 해 드리는 기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