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영화
강혜정 (주) 외유내강 대표
1. 영화하면 당신은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영화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무엇인가? 다양한 의견들이 있겠지만, 대부분 ‘기억’ 혹은 ‘추억’으로 가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한국인들에게 영화라는 매체는 따뜻하고 다정한 매체이다. 컴컴해지는 극장 안에 영사기가 돌아가고, 밝은 화면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관객들은 술렁이다가 이내 곧 이야기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우리는 모두 일정금액을 지불하고 극장 안에서 함께 두 시간 남짓 동안 같은 것을 경험한다. 그리고 그 기억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저장하고 돌아온다. 얼마나 낭만적인가? 그러나, 한 편의 영화를 기획하고 제작하여 극장에서 관객들과 만나도록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와 아픔이 있는지 관객들은 알기 어렵다. 아니, 사실 소비자라 할 수 있는 관객들이 알기는 너무 먼 매체이기도 하다. 그냥 편하게 한국영화를 만들면서 맞닥뜨리는 이런저런 일들을 나누는 작은 시간이길 바란다. 그래서 한국영화에 대한 여러분의 기대와 사랑이 커질 수만 있다면. 반대로 실망만 하게 된다면, 그것은 무조건 강의를 지루하게 만든 본인의 탓으로만 돌려주시길 간곡히 바란다.
2. 나는 어떻게 영화계에 입문하게 되었는가?
92년 대학졸업 후, 지금과 같은 취업난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열심히 영어와 학과점수에 매달리지 않았던 대학생활의 후유증은 취업에 대한 불안감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다행히 이러저런 인연으로 사립 고등학교 임시교사 생활을 반 년간 할 기회가 있었으나, 영 내 적성은 아니었다. 나름 고민이 깊어갈 즈음, 우연히 발견한 ‘독립영화 워크숍’이라는 너덜너덜한 광고 문구에 눈길을 주게 되었고,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로도 상당거금이었던 35만원을 덜컥 지불하고 독립영화협의회 주관의 필름 워크숍에 참여하게 되었다. 정말이지 그 당시까지 만해도 나는 일 년에 영화를 두 편 이상 볼까 말까 할 만큼 영화에는 무지하고 관심이 없던 사람이었다. 돌이켜보면 그날 내가 발견한 광고 전단이 운명을 바꾼 셈이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당시에 영화를 만드는 일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대학교 영화과를 가는 길뿐이었다. 따라서, 영화 비전공자가 영화 만드는 일을 접할 수 있는 기회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독협과의 만남을 통해 나는 영화를 만드는 일의 매력에 끌렸고, 95년 ‘영화로 밥벌이를 할 수 있으면 행복하겠다.’는 결심 속에 소위 충무로라 불리우던 한국영화계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첫 월급 55만원을 손에 쥐었을 때의 기분은 상당히 묘했다. 살인적인 노동 강도와 크리에이티브에 대한 압박 속에서 농담처럼 주8일을 일하고 받은 월급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내 대학동기들의 대기업 평균 초봉이 연봉 2400임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러나, 지금도 그렇지만 나의 일은 돈으로 가격이 매겨지는 일이 아니라는 자부심과 최면 속에서 평생의 일을 취미삼아 하는 이 행복감으로 오늘도 영화계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3. 영화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한편의 영화가 만들어지는 공정을 기계적으로 설명하자면 의외로 간단하다.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가진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첫 아이디어 구상으로부터 시작하여, 어떤 드라마를 가지고 있는가를 설계하는 시나리오 작업을 거친다. 영화 제작에 있어서 가장 지루한 작업이며 동시에 가장 재미있는 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시나리오 작업 기간은 수많은 아이디어와 캐릭터들이 동시에 쏟아져 나오며 그것들을 원하는 이야기에 맞추어 정리하며 이야기로서의 틀을 갖추어 나간다. 지난한 시나리오 작업이 끝나면 캐스팅 작업과 투자, 배급사 미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가장 피가 마르는 시간... 그리고 캐스팅과 투자사 확정이 이루어진 후 본격적으로 스탭들을 구성한 후, 제작의 일정에 들어가게 된다. 보통 한편의 영화제작에 필요한 시간은 해당 영화의 장르와 규모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2~30억대의 한국영화 평균을 기준으로 볼 때 사전작업 3개월, 본 촬영 3개월, 후반작업 3개월이 소요되는 것을 기준으로 삼는다.
4. 그렇다면 제작자는 무슨 일을 하는가?
영화제작자는 한편의 영화의 제작과 관련된 모든 책임자로서 일한다. 그는 기획을 시작으로 한편의 영화가 만들어지는 전 과정에 참여하며, 감독의 선임과 배우의 캐스팅. 적절한 예산의 운용과 스케줄 관리까지 책임지고 진행하는 역할을 맡는다. 권리보다는 책임이 많은 자리라고 생각한다.
5. 영화인이 되기를 희망하는 당신에게
각설하고, 영화인이 되려는 당신에게... 좋은 책을 많이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요즘은 워낙 디지털의 빠른 변화로 자고나면 무엇이건 순식간에 바뀌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 하나는 ‘깊이’를 가진 이야기만큼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없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리고, 그 깊이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다듬는 소위, 창조적인 역할을 하는 영화인이 되고픈 후배들에게 나는 늘 ‘인문학 없는 영화는 없다’고 힘주어 말한다. 철학, 역사 그리고 문학을 아우르는 인문학적 토대는 빠르고 또 빠른 21세기에 그대가 진정한 Only one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키워드라고 말하고 싶다.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본적인 안목과 소양은 훈련으로 쉽게 얻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책을 통해 인문학적 소양을 닦은 이들에게 훨씬 유리한 직업인 것만은 확실하다. 자극적인 영상보다 깊이 있는 이야기를 읽어냄으로서 닦아진 다양한 훈련들이 영화를 풍부하게 한다는 것에 대해 어떤 이견을 달 수 있을까?
그리고 한 가지를 더 첨언한다면, 좋은 영화들 중 고전 영화들을 많이 볼 것을 추천한다. 그 이유는 고전영화들은 21세기 지금 우리가 매일 만나는 영화들처럼 엄청난 시각효과의 도움을 전혀 기대할 수 없었기에 전적으로 드라마를 통해 감정을 전달하고 인물들을 그려낸다. 따라서 깊이 있는 영화읽기, 더 나아가 영화 만들기를 위한 가장 좋은 훈련 중 하나는 훌륭한 고전영화들을 통해 보는 감각을 업그레이드 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6. 최근작 <부당거래>를 중심으로.
이것은 각자 보신 분들의 개인적인 의견이 강할 것으로 생각되므로, 질의&응답으로 대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