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자 소관 / 심월
수탉이셨던 아버님은 횃대에 오르셔서 날갯짓을 하며 암탉들을 꼬셨다
각기 다른 세마리의 암탉을 거느리셨던 수탉의 위용은 어디가고
토종암탉에서 병아리 셋, 레그호온에서 병아리 넷, 검정암탉에서 셋
모이도 제대로 주지않는 주인집 닭장에서 병아리들은 오종종 떨었다
그나마 병아리들이 스스로 모이를 찾을 때쯤에는 간이 딱딱해지고 말았다
햇볕좋은 봄날 병아리들이 성장해 중탉이 되어갈 즈음,
그 서슬 모두 팽개치고 마지막 발을 탈탈 털으며 고개를 외로 꺾으셨다
뱀이신 어머님은 그 닭을 비비꼬아 차가운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서늘한 뱀의 보이지 않는 냉냉함이 칼날처럼 가슴에 박혀보아라
어떤 위로도 맥을 못추고 어떤 서슬도 빗겨나가지 않겠는가
염소인 나는 뱀에 놀라고 늘 일정한 거리를 두고 맴돌기만 했다
나는 소를 내 각시로 들인 후 더욱 외로워지기 시작했다
싸늘한 뱀과 무뚝뚝한 소 사이에서 염소는 자지러지게 울어야 했다
아 그 수탉이라도 내 곁에 있으면 이리 외롭지는 않았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