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가위질> / 박명희1996년,
제27회 동인문학상 후보작
빗소리가 봄을 부르고 있다.
어제부터였다. 겨우내 바싹 여위었던 뜰은 제 몸 깊숙한 곳까지 빗물을 품기 시작했다. 오랜 가뭄 끝이었다. 나는 이삿짐을 꾸리다 말고 벽에 은밀하게 귀를 대 보곤 한다. 하늘로 솟지도 못하고 땅으로 아주 잦아들지도 못한 그 중간쯤에 걸쳐 있는 반 지하실 방이라 흙이 빗물을 받아 마시며 환호하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 오는 것 같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도 계절만은 우직하게 약속을 지킬 줄 안다는 생각이 퍼뜩 든다. 사람들은 생애를 두고 걸었던 언약조차 별 죄의식 없이 깨뜨리곤 하니까.
이 비가 그치면 흙 속에서 뿌리만으로 간신히 목숨을 지탱하던 한해살이 화초들은 또 새 생명을 틔우기 시작할 것이다. 갓난아기 볼때기만큼 여린 이파리들은 세상에 나오자마자 꽃샘바람에 부대끼고, 폭양에 시달리고, 서글픈 잎을 떨궈야 하는, 생에 대한 무거운 사랑을 또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다가 나는 갑자기 목이 메어 버렸다.
다 버려, 여기서 가져갈 것은 아무것도 없어.
칼보다 날카로운 그의 음성이 아직도 내 귓가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방바닥에 나뒹구는 찢어진 육아책 표지가 눈에 들어온다. 엄마와 아기가 서로 마주 보며 막 웃음을 터뜨리는 사진인데, 하필 아기의 얼굴이 찢어져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그 책도 버리려고 탁자 한켠에 밀어 둔 것인데 어찌 된 일인지 책표지만 돌아다닌다. 이삿짐을 싸는 도중에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광화문까지 일부러 나가 꽤 비싼 돈을 치르고 산 책이었다.
다 버려!-이사를 앞두고 그의 입에 후렴처럼 붙은 말이다.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으며 넌더리치는 그의 가느다란 입술 사이로는 이 곳 사람들에 대한 우월감과 멸시가 함께 맞물려 있었다. 얼굴 윤곽이 시원스레 큰 데 반해 희고 섬세한 살빛이었다. 거기에 받쳐입은 짙은 회색 싱글, 크림색 와이셔츠, 자주색의 인디언 무늬 넥타이가 깔끔한 그가 이 지하실 방, 그리고 이 안에 쌓여 있는 물건들과 어울리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값싼 벽지, 그나마 습기 찬 시멘트벽이 드러나는 벽에는 곰팡이가 거뭇거뭇 피어 있고 낡은 비닐장판에는 사철 습기가 배어 있다.
솜이 안에서 뭉칠대로 뭉쳐서 넝마같이 되어 버린 캐시밀론 이불, 내가 들어오기 전에 살던 아가씨에게서 몇 푼 주고 물려받았던 구식 캐비닛, 화장대 겸 책상으로 쓰던 호마이카 탁자, 그 위에 놓인 손바닥 두어 개만한 거울, 그가 숨겨 두라고 각별히 맡겨 두고 아마도 지금은 그 자신도 잊고 말았을 책보따리들, 아! 참, 내 책도 있다. 행여 그의 눈에 뜨일세라 포장지로 표지를 덧씌운 대입 수능시험 준비서들, 어느 것 하나 밝은 지상 세계로 올라 갈 만한 물건이 눈에 띄지 않는다. 딱 하나 이 방과 어울리지 않는 것이 있다. 방 한가운데 버티고 있는 침대다. 지난 여름 물난리를 겪고 들여놓은 거다. 습기로 바닥이 항상 눅눅해 있는 이 방에 침대는 필수품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차피 우리는 이 방바닥에 익숙해져 있었고, 또 곧 이사를 할 참이어서 미뤄 왔었다. 그 밖에 연탄재에 그을린 냄비, 차라리 깨져 버리기라도 했으면 미련없이 버렸을 낡은 사기접시, 귀가 떨어져 나간 밥상, 슈퍼마켓에서 사은품으로 받았던 플라스틱 바께쓰와 반찬통 들을 내놓고 보니 이 많은 잡동사니들이 두 평도 못 되는 부엌 어디에 숨어 있었던가 싶게 너절하다. 다 버려!... 하긴 이삿짐만큼 사람살이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도 없을 것이다. 그는 이 방에서 살았던 흔적들을 말끔히 지워 내 버리고 싶어서, 행여 이 방의 체취가 새 아파트에 묻어 들어올까 두려워 버리라고 더 성화일 것이다. 찾아보면 쓸 만한 것이 없지 않을 텐데도. 나로서도 그의 말대로 하려고 했었다. 그것들을 다 버리고 나면 어쩔 수 없이 앙금으로 더께가 끼어 있는 그 사람에 대한 사무친 열등감까지도 한데 묻어 버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비가 그 일을 가로막았다.
그가 과장스럽게 넌더리를 치며 한 가닥 미련 없이 버리고 싶어하는 것들 중에 혹시 나도 포함된 것은 아닐까. 버릴 물건들을 현관에 내놓다 보니 그 생각이 나를 꽉 붙든다. 한때는 목숨과 맞바꿀 위험까지 감내하면서 간직했던 책들을 헌신짝처럼 버릴 수 있듯이 그는 나와의 지난 생활도 몽땅 지워 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그 모든 것들보다 더 중한 자기 자식의 생명까지도 모른 체 할 수 있었으니까.
아침 텔레비전에서는 이 비가 가뭄을 완전히 해갈시켜 줄 것이라고 흥분했었다. 그러나 이제 비는 해갈시킬 정도로 오는 게 아니다. 오후 들어서부터는 하늘 한구석이 뻥, 뚫린 것 같이 퍼붓고 있다. 나는 아까부터, 정확하게 말하면 빗줄기가 굵어지기 시작한 뒤부터 열려 있는 방문 밖을 자꾸 내다보았다. 세 평짜리 방과 엣 시골집 튓마루만한 합판 마루, 그리고 역시 옛 한옥 댓돌만한 크기의 시멘트 현관은 거의 수평이다. 형광등 불빛 아래 드러난 시멘트 바닥에 아까부터 물이 괴고 있었다. 아침까지만 해도 시멘트를 바른 흙손질 자국이 보였던 배수구가 지금은 물에 잠겨 버리고 말았다. 방수 공사가 잘못되었을 것이다. 집주인은 목수이다. 1년 내내 남의 집 일을 해 주면서도 그는 정작 자기 집안 일에는 등한했다. 작년 여름 이 곳에 물이 들어왔을 때도 그랬다. 장마라고 해도 강우량이 그리 대단찮았는데 물이 방까지 차올랐다. 밤에 자다가 섬뜩한 것이 몸을 감싸는 느낌에 소스라치게 놀라 눈을 떠 보니 깔고자던 요가 흥건히 적셔져 있었다. 방바닥을 더듬으려고 손을 내밀자 뜻밖에도 물이 잡혔다. 불을 켜고 보니 방바닥은 이미 물로 가득한데 전날 밤에 술에 취해 들어왔던 그는 태평하게 잠만 자고 있었다.
그의 베개 바로 밑까지 물이 차오르고 그의 발목도 물에 잠겨 있었다. 시퍼렇게 변한 발이 꼭 시체의 그것 같았다. 그를 깨우고, 마른 옷으로 갈아입게 하고 방문을 열자 물은 곧 무릎까지 올라올 기세였다. 주인집 식구들까지 손을 모아 밤 내내 물을 퍼낼 때, 주인인 남자는 장마만 그치면 대대적인 공사라도 벌일 듯 떠벌렸었다.
그러나 정작 비가 그치자 주인 남자는 자기가 일이 없는 일요일을 날을 잡아 동료 미장이 한 사람을 끌고 와서 한나절 동안 일했다. 겨우 시멘트 바닥을 뜯어내고 땜질하듯 방수제를 바르는 정도 같았다.
어차피 우린 장마철이 되기 전에 이사 갈 거니까 마음 쓸 거 없어.
일산에 분양받아 놓은 아파트가 있어서 그는 느긋했다. 겨우 스물여덟 평밖에 되지 않는다고 그는 남에게, 심지어는 나에게 말할 때조차 심드렁해 했으나 우리 처지에 그 아파트는 궁전이었다.
군에서 제대한 그는 갈 곳이 없었다. 그와 같이 운동을 하던 동지들은 이미 대학을 졸업하고 뿔뿔이 흩어져 버린 뒤였다. 그들 사이를 맺어 주던 대학이라는 끈이 떨어져 버려서였는지, 아니면 그 같은 사람들이 더 이상 운동을 할 필요가 없는 살기 좋은 세상이 되어서였는지, 그것도 아니라면 그들이 꿈꾸었던 세상은 애초에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깨달았던 것인지 그 이유는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그를 기다리고 있는 친구는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 버린 친구, 언론 기관에 취직을 한 친구, 정치꾼의 비서가 되어 있는 친구, 뒤늦게 고시 공부한다고 두 평짜리 고시원 방에 틀어박힌 친구, 드물게는 노동 현장으로 더 깊이 들어가 버린 친구도 있었다. 노천 광장을 누비며, 그와 뜨겁게 데모를 하던 동지들은 대학을 떠나자마자 어쩔 수 없이 사회인이 되어 버린 것이다. 국민 학교를 졸업하면 좀더 의젓한 중학생이 되듯이 그건 자연스런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당연한 사실이 그에게는 상처가 되었다. 그가 군에 있는 동안, 그들은 그만 덜렁 혼자 내팽개치고 자기들끼리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 버린 것이다. 그는 자기가 속해 있던 조직에서 유독 자기만 감옥에 가지 않았기 때문에 군에 있으면서도 그들에게 늘 죄스런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 마음은 차츰 소외감으로, 그리고 배반감으로 바뀌었다.
모두들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에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 시간에 대 가지 못하고 뒤늦게 쫓아가 보니 아무도 자기를 기다려 주지 않고 떠나가 버린 것 같은 죄책감과 허탈감, 그리고 섭섭함이 그를 끈질기게 붙들고 늘어졌다. 그 때 그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다. 그는 사철 곰팡이 냄새가 나는 이 방과 비 맞은 강아지처럼 초라한 내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 방에 머물러 버린 것 같다. 이전부터 이 방은 그에게 익숙한 곳이었다.
대학교 앞 상가 일대에 학생들의 시위가 황사 바람처럼 어질머리를 일으키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현란하게 꽃을 먼저 터뜨린 나무들이 다투어 잎을 피우기 시작하면 계절풍과도 같이 어김없이 찾아온 최루탄 냄새가 학교 근처를 진동했다. 그 와중에 그는 내가 근무하던 미장원으로 갑자기 뛰어들어, 여자 화장실에 들어온 괴한같이 파란을 일으켰다. 살 한 점 잡히지 않을 깡마른 얼굴에 대학생다운 지성미도 귀티도 나지 않던 그는 경찰에 쫓기는 여느 범인의 형상과 별로 다른 점도 없었다. 그런데 그의 젖은 눈빛과 마주치던 순간, 그를 도와주고 싶은 욕구가 전류보다 더 빨리 내 가슴을 스쳤다. 그의 눈빛은 쫓기는 범인답지 않게 뜻밖에도 고요했다. 물처럼 맑고 순해 보였다. 나는 미장원 마담 언니나 곁일을 거드는 아이들 몰래 그를 뒷문으로 빼돌렸다. 마침 뒷문은 내가 사는 집 골목과 통해 있었다. 불과 백여 미터 거리에 있는 내 지하실 방에 그를 숨겨 주면서 나는 범인을 은닉하고 있다는 두려움보다는 내 등을 짜릿하게 훑어내리는 은밀한 흥분을 느꼈었다. 그 때 나는 내 분수에 맞지 않게 잠시 허영에 들떴던 듯했다. 또한 내가 대단한 일이라도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나를 볼 때마다 내 눈을 피했다. 그가 어쩔 수 없이 나와 함께 있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창피해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참을 수 없는 자괴감이 밀려오면 이게 마지막이지, 하면서도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고, 마지못해 만나 주는 듯한 그와 시간을 보내고, 헤어져 돌아서 걷는 그의 완강한 뒤통수를 바라보며 그 때마다 나는 껄끄러운 우리 사이의 어떤 뒤틀림을 예상하곤 했었다.
그가 최전방 군부대로 끌려갔을 때, 그와 알게 된 후 나는 처음으로 꿈을 가졌었다. 조금은 앙큼하고 비열한 음모일 수도 있었다. 그가 외로울 때, 어려울 때, 그의 빈 가슴에 내가 비집고 들어가기는 한결 수월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마음먹고 먹을 것, 입을 것들을 싸 들고 그를 찾아다녔다. 푸른 하늘을 거침없이 내닫는 바람이 살을 벨 것같이 휘몰아쳐서 나의 긴 머리카락이 손수건처럼 휘날리고 있어도 그는 거기까지 찾아간 나에게 눈 한 번 맞추어 주지 않았다. 최전방에 있는 그의 참호로 돌아가면서 그의 시선은 언제나 내 어깨 너머 먼 하늘가에 머물러 있었다. 그가 바라보는 곳이 안양 구치소라는 것은 나도 후에야 알았다. 그 곳은 그의 동지들이 있는 곳이었다. 그가 내 지하실 방 안에 숨어 있는 동안 그들이 모두 경찰에 잡혀 갔다고 했다. 그리고 그 동지 중 하나는 여자였다. 그 사실을 몰랐던 나는 내 살이라도 깎아 그에게 몰아치는 바람을 막아 주고 싶어 애타게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설령 알았다 해도 나는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가 그 사실을 털어놓으며 자기를 찾아올 필요가 없다고 말한 뒤에도 나는 그를 계속 찾아갔었으니까. 그 여자 친구분이 나올 때까지만 찾아오겠어요, 내가 그 비슷하게 대답했던 것 같다. 다행히 그가 군에 있는 동안 여자는 오지 않았다. 구치소에서 나온 여자는 그를 찾아오는 대신 미국으로 떠났다고 풍문으로 듣긴 했다. 나는 그 사실을 차마 그에게 말해 줄 수 없었다. 내 입으로 그의 기다림을 꺾기는 싫었다. 그가 뒤통수를 외틀고 시리도록 푸른 하늘을 이고 있는 막사 저 쪽으로 사라져 버릴 때마다 전선에 부는 매운 바람보다 더 차가운 얼음조각 같은 것이 내 가슴을 옭아맸다. 그에게 나는 아무 위로가 되지 않아, 그런 생각이 든다 싶으면 울음이 저 먼저 알고 어느새 내 볼을 후드득 타고 찾아왔다. 이게 마지막일지도 몰라.
마지막, 내 운명에 대한 암시 같은 그 말은 불쑥불쑥 나타나 내 가슴을 얼어붙게 했다. 그를 만날 때마다 나는 유서를 써 가지고 다니는 여자마냥 그와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다녔다.
그는 한낮의 해가 반 지하실 방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천장 가까이 달린 창문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을 때까지 잠을 잤다. 군에서 제대한 직후의 일이다. 나는 소리 내지 않고 출근 채비를 했다. 사실은 그가 잠에서 깨지 않은 것이 아니고 깨지 않은 척한다는 것을 내가 깨달은 것은 꽤 시간이 흐른 뒤였다. 나는 잠자코 그의 점퍼 안주머니에 있는 지갑을 꺼냈다. 역시 비어 있었다. 나는 만 원권 한 장을 그 안에 집어넣어 제자리에 돌려 놓았다. 그 즈음 나는 퇴근 전에 손님들에게서 팁으로 받은 천 원권을 만 원권으로 바꿔 놓곤 했다. 변두리 작은 미장원이라 팁을 주는 사람이 많지 않아 만 원이 모아지지 않는 날이 많았다. 그런 날은 은행 문이 닫히기 전에 일을 서둘러야만 했다. 나는 날마다 돈 만 원을 확보해 두는 일에 급급했다. 어느 날 나는 그의 대학 마지막 학기 등록 영수증을 만 원권과 함께 그의 지갑에 넣어 두었다.
내가 퇴근하고 돌아오면 그는 어김없이 방을 비웠다. 몸만 빠져나간 이불, 꽁초가 수북하게 쌓인 담배 재떨이, 갈아입고 벗어 던진 속옷, 그런 것들만이 나를 맞았다. 밤이 늦어서야 그가 다시 돌아왔다. 그가 밖에서 돌아와 한 마디 말도 하기 전에, 아니 그가 무어라고 대답을 해야 할 때, 이를테면 내가 어딜 다녀오셨어요? 누구 만났어요? 하고 물으면 그는 어김없이 내 몸을 끌어당겼다. 꼭 내 입을 틀어막듯이, 그는 매번 쫓기는 사람처럼 허겁지겁 나를 덮쳐 왔다. 나는 처음에는 그것이 사랑의 행위라고 믿었다. 시간이 지나자 무의식중에 감지되는 것이 있었다. 이것이 사랑은 아닐 거라는. 오래 참았던 소변을 한꺼번에 쏟아 놓듯 그는 무척 서둘렀다. 일을 끝내고 담배 한 대를 피워 문 그는 어김없이 담배 연기보다 더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 숨이 내 숨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내가 그의 장애물은 아닌가. 그의 곁에 있을수록 나는 그를 잃고 있는 것이나 아닌가.
대학을 마치고 일을 갖게 되자 그는 갑자기 변했다. 아니, 순서가 틀렸다. 그가 뒤늦게라도 그의 대학 친구들처럼 변해야 한다고 몸부림쳤기 때문에 대학 졸업을 앞두고 그토록 열심히 취직 시험준비를 했을 것이다. 증권 회사에 입사해서도 그는 학벌 좋은 남자답게 투자 분석부로 배정되었다. 증권 시장에 상장된 회사들의 재무 사랑을 정밀 분석해서 증권 투자 전망을 하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증권 시장과 자료실, 어떤 때는 가까이 있는 공공도서관까지 뛰어다니며 그는 제 몫의 일에 열심히 이었다. 나는 그런 그가 좋게 보였다. 대학 때는 경찰에 쫓겨다니던 그가 대단해 보이더니, 군에서 제대하고는 무위도식하는 그가 가난한 옛 선비같이 청초해 보이더니, 일에 열중하는 그에게는 또다른 매력이 있었다. 능력별로 받은 보수가 내 예상을 훌떡 뛰어넘었다. 그는 증권 시장에 상장된 회사들의 재무 구조에 대해 해박했고 숨막히게 급변하는 국제 경제계의 움직임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투자가들을 끌어들이는 설득력 또한 뛰어났다. 고액 예탁자가 그에게 모여들었다. 그는 예사롭게 0자가 눈알이 튀어나오게 많은 은행 통장을 나에게 내보이곤 했다. 물론 그의 돈은 아니었다. 나는 내가 혹시라도 0자를 잘못 헤아렸나 싶어 몇 번이나 헤아려 보곤 했다. 일, 십, 백, 천, 만... 일, 십, 백, 천, 만... 내가 서투르게 숫자를 헤아리고 있으면 그는 자리에 벌렁 누워 버렸다. 그리고 탄식처럼 말했다. 돈이 돈을 버는데 말이야....
그까짓, 몇 푼이나 번다고... 그가 나에게 미장원을 그만두라고 하면서 하던 말이다. 언제는 자기 지갑에 마르지 않는 샘처럼 날마다 용돈 만 원이 솟아나게 해 주었던 미장원 일이 대견하다고 했으면서. 어느 날, 그는 나에게 통장을 훌떡 던져 주었다. 넣어 둬! 여러 번 0자를 세어 볼 만큼은 아니어도 두 번, 세 번은 세어야 할 만큼 꽤 많은 돈이 들어 있었다.
증권 경기가 좋지 않아서 내 주식을 잠시 빼냈어. 어떻게 된 게 증권 시세가 전혀 이론대로 움직여 주지 않아. 그러니 백 번 분석하고 전망해 보아야 다 헛거야. 손 큰 놈들이 워낙 장난을 쳐서 말이야. 이론대로, 정석대로, 노력해서 살아가는 사람이 바보가 되는 참 괴상한 나라야, 이놈의 나라는.
그의 입술까지 바싹바싹 타 들어갔다. 어떨 때는 통장을 들고 나가며 혹시 나에게 돈이 더 없는가 묻기까지 했다.
지금 큰손들이 움직일 때 왕창 집어넣어야 이삭이라도 줍는 건데, 돈이 눈앞에서 널려 다니는데도 줍지 못하고 있으니, 없는 놈들은 움치고 뛰어 보았자 있는 놈들 손바닥 안에 있어.... 이렇게 해서 언제 돈 모아?
말을 밖으로 내뱉은 것이 아니고 입 안으로 주워 담듯 중얼거리는 그가 퍽이나 가난해 보였다. 옛날 나에게서 용돈 만 원을 넌지시 받아 쓰던 그 때보다 더.
그렇게 시간이 흐른 것이다. 미장원을 그만두고 낮 시간이 나자 나는 아무도 몰래 대입 검정 고시반에 다시 등록했다. 고등 학교 1학년을 중퇴하고 서울에 온 뒤 벌써 세 번째 했던 등록이었다. 그러나 주간반에 다니게 된 것은 처음 일이었다. 미용사가 되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시골에 더 이상 아버지 약값을 보내지 않아도 되었을 때, 나는 고등 학교 졸업 자격이라도 따 두고 싶었었다. 밤에 검정 고시 준비학원에 다녔다. 그 즈음 그가 나에게로 왔었다. 나는 그에게 내가 다닌 학교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 그역시 무심결에라도 그에 대해 물은 적이 없었다(물론 그 부분에 대해 모르는 체 해준 그의 배려가 지금도 고맙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고등 학교 졸업을 못 했노라는 말을 못 했다. 그래서 지난 봄, 대입 검정 고시에 합격했다는 말도 할 수 없었다.
아파트가 당첨됐다고 그가 말했을 때 나는 왠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파트가 생긴 것은 그에게 갈 곳이 생긴 것이고 그렇다면 그가 나를 떠나갈 것 같은, 당연히 그래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내 지하실 방은 그가 비를 피해 가기 위해 잠시 머물렀던 쉼터였을 뿐이고, 이제 비가 그쳤으니 그는 그의 원래 자리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았다.
갑자기 그가 입주하게 될 아파트 명의를 내 앞으로 해 놓겠다고 했다. 나는 싫다고 했다. 그는 그렇게 해야 자기 마음이 편할 것 같다고 했다. 나에게 진 빚을 갚고 싶다고 했다. 그건 빚으로 드린 것이 아니었어요, 나는 그 말을 하지 못했다. 그에게 나는 무엇인가? 그를 부담스럽게 하는 빚쟁이 정도밖에 되지 않았을까? 우리는 사람들 앞에서 서서 엄숙한 결혼 서약 같은 것을 한 적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그와 단둘이 미래에 관한 어떤 이야기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나에게는 미래에 대한 꿈만 있었지 계획은 없었다. 나는 그저 오갈 곳 없는 그가 구름처럼 내 집에 머물렀다 바람처럼 가 버릴 것이라는, 일종의 피해 망상증에 시달리며 살았었다. 그런 내 마음이 그에게 전해졌던지 그는 가만히 내 머리를 감싸안았다.
솔직히 말할게, 나 이 회사에 오래 다닐 생각 없어. 어느 정도 돈이 모아지면 내 사업을 해 볼 계획이야. 사업에는 위험 부담이 따르니까 당신 앞으로 아파트를 해 놓으려고 해. 그 뜻도 있어.
정말일까? 의심이 연기처럼 일었다. 그리고 생각하니 내 인감 도장은 아예 그의 손에서 그의 것으로 쓰여지고 있었다. 어떻게 돈을 벌지? 아스라이 눈빛을 모으며 허공을 바라보는 그의 눈초리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들먹이며 비도덕적인 자본가들을 매도하던 그 때의 눈빛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았다. 나는 머리를 세차게 내저었다.
그의 손가락 사이로 내 머리칼이 흘렀다.
당신 머리카락은 맨살 끝에 와 닿는 봄바람 같아! 푸릇푸릇한 들판 위로 아지랑이를 몰고 다니는 부드런 바람 말이야.
오랜만에 보는 그의 젖은 눈빛이 까닭 모를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뜨거운 그의 입김이 내 머리칼에 닿았다. 부드럽고 윤기가 자르르한 생머리였다. 내 머리칼은 그 동안 벌써 그의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그가 갑자기 내 머리채를 잡아 젖혔다. 그의 입술이 거센 숨결을 내뱉으며 내 얼굴을 덮쳐 왔다. 목을 타고 내리는 그의 뜨거운 숨결에 내 숨을 합하고 있는 동안 내 머리칼은 내내 그의 손아귀에 잡혀 있었다.
당신 머리는 수풀이야. 향기를 가득 품은... 긴 숨을 뿜어 낸 그가 나른한 웃음을 흘렸다.
가슴에 얹혀지는 꽃다발 같은 그의 웃음을 왠지 나는 애써 외면하려고 발버둥쳤다. 그런 내 심사에 자칫 놀라기도 했다. 행복이 내 몫이 되지 않을 것 같은 불안한 암시가 계속 나를 뒤쫓아다녔다.
그는 한 번도 동창회나 친구들 모임 같은 곳에 나를 데려간 적이 없었다. 연말에 이곳 저곳에서 동부인해서 오라는 초대장이 쌓였어도 그는 나에게 같이 가자고 하지 않았다. 또한 친구나 동료가 우리 집에 온 적도 거의 없었다.
딱 한 번, 그의 친구가 우리 지하실 방에 다녀갔다. 그가 경찰에 쫓겨다닐 때는 가끔 보았던 친구였다.
선이 씨한테 가 보아야지. 그의 친구가 하던 말이 자꾸 나를 따라다녔다. 꼭 칠성판 크기의 수술대 위에 누워서 수술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나는 도리질을 해 가며 선이라는 이름에서 벗어나려고 애썼다. 그가 보던 책갈피, 노트 같은 것에서 숱하게 보아 왔던 이름이었다. 그날, 맹세코 나는 그들의 대화를 귀여겨 들으려는 의사는 없었다.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방에서 그들의 대화가 들려 왔다. 내가 왜? 하는 그의 대답. 선이 씨가 온 게 언젠데 정말 면회 한 번 안 갔단 말이야? 응. 어쩌다 그런 모진 병이 들었지? 고문 후유증이겠지. 그러지 말고 한번 가 봐, 국립 정신병원이래, 중곡동에 있는 거. 이제 와서 그럴 필요가 있을까?
야, 아무리 선이 씨 부모가 널 떼어 놓으려 딸을 미국으로 빼돌리기는 했다지만 그렇게 돼서 돌아온 선이 씨가 안됐잖아? 지난번에 가보니 상태가 좋지 않았어. 내가 넌 줄 알고 니 이름을 부르며 매달리는데, 차마 못 보겠더라. 더구나 선이 씨네 집도 망해 버리고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형편이 말이 아닌가 보던데. 가만가만 말하던 친구의 음성이 어느새 커져 있었다.
알고 있어. 짧고 명확한 그의 대답.
알고도 안 가 본 거야? 어처구니없어하는 친구. 그러나 곧 부드럽게 그를 달래는 음성이 들렸다. 친구의 설득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빠른 음성이 들려 왔다.
다 철없던 때 소꿉장난 하던 이야기다, 지금은 나 살기도 바빠. 그보다 너, 이젠 제발 그만두고 빨리 울산을 떠나와. 내가 네 일자리를 알아봐 줄 수도 있어. 큰돈을 주물럭거리는 사람들을 내가 많이 알거든. 남들은 하루 스물네 시간이 모자란다고 아우성치며 뛰고 있는데, 우린 낭비할 시간이 없어. 시대도 바뀌고 네 나이도 더 이상 방황할 때가 아니야.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 난 우리들의 동지였던 선이 씨를 어떻게 돕자는 말을 하고 있어. 지금.
날 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야? 갑자기 그의 목소리가 벼락처럼 울렸다. 잠시 침묵, 그의 무거운 음성이 다시 들렸다.
두 번인가 병원비를 보냈어. 익명으로.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야. 나는 지금 과거로 돌아갈 수도, 그럴 마음도 없어. 더 이상 나를 그쪽에 연결시키지마!
내 심장 뛰는 소리가 내 귀에도 들렸다. 나는 그 소리가 방에까지 들릴까 봐 얼른 지하실 밖으로 나와 버렸다. 속없이 선이 씨라는 여자가 가여웠다.
옛날 그의 쓸쓸해하던 얼굴 위에서 나는 언제나 직감적으로 그녀의 이름을 읽었다. 그들의 대화로 미뤄 보면 이제는 그의 마음에서 선이라는 지문이 말끔히 지워졌다는 것일 텐데 왜 기쁘지 않고 썰렁한 기류 같은 것이 내 마음을 얼어붙게 했다.
날 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야? 그의 그 물음은 어느새 나를 향해 있었다. 나는 저녁상을 내 갈 생각도 못하고 골목 밖으로 나와 버렸다. 목에서 올라오는 건구역질이 끊임없이 나를 보챘다.
그 와중에 난생 처음 나에게도 어설프게나마 미래를 그려 볼 계기가 마련되었다. 아기가 생겼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알렸을 때 그는 다짜고짜 내게 사과부터 했다. 병아리나 강아지 같은 짐승의 새끼들만 보아도 못 견디게 아기가 갖고 싶었던 내 기쁨을 그에게 알릴 짬도 없었다. 미안해, 내가 실수했어, 지금 형편에 당신에게 애까지 낳아달라고 할 염치가 없어, 내가 아버지가 될 능력도 없고.... 아이를 서두를 거 없잖아? 이 지하실 방에서 생겨난 아이에게 무슨 꿈이 있겠어? 나는 내 자식만은 책임 있게 낳아 보란 듯이 키우고 싶어.
좀더 있다가, 사업 시작해서 기반이 잡히면, 그 때 아이를 가져도 늦지 않아. 자신의 당황함을 내게 숨기려고 그는 말을 길게도 했다. 그리고 끈질기게 설득했다. 아기를 돈으로 키우는 것은 아니라고 나는 서투르게 그를 이해시키려 했다. 그는 나를 거침없이 비웃었다. 옛날이라면 자기도 그렇게 말할 수 있었다고, 그러나 정작 그가 세상에 대해 눈을 뜨고 보니 그건 꿈속의 환상에 지나지 않았다고, 가진 자들에 비해 우리 사는 방식은 하루살이 날벌레나 다름없다고, 죽도록 일해 한 달에 한 번 봉급받아 한 달 먹고 살면 또 일해서 또 다음 달을 꾸려야 하는 우리 살림이 하루살이와 뭐가 다르겠느냐고, 자기 자식만은 사람 사는 것같이 살게 할 거라고 했다.
시계바늘이 자정을 넘어서 버리면 술 취한 채 운전을 하고 돌아오는 그를 나는 방에 앉아서 기다리지 못하고 기어코 대문 밖까지 마중 나가곤 했다. 마름모진 보도 블록이 깔린 기다란 골목 안에는 오래 된 가등조차 꺼져 버리고 전봇대만한 가로등 기둥만이 고단하게 새벽을 기다리고 있었다. ㄱ자로 꺾인 골목을 돌아가자 불빛이 환히 비쳤다. 어느 대문 문설주에 켜 놓은 외등이었다. 한참 그 빛을 바라보고 서 있자니 눈물이 소리 없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어둠 속에 홀로 켜 있는 불빛이 따스해 보이지 않고 어딘지 서러워 보였다. 나는 가만히 그 불빛이 비치는 빛의 둘레에 서 보았다. 혹여 내 그림자가 안으로 비칠까 조심하며 나는 문설주 틈으로 그 집 안을 기웃거려 보았다. 안에서 불을 밝혀 놓고 가족을 기다리는 그 집의 여자도 잠을 못 이루고 있을 것 같았다. 다른 가족들은 모두 잠이 들었어도 그 여자만은 기다림의 촉수를 세우고 문 밖의 발걸음 소리가 그 여자에게 헛된 바람을 안겨 줄까 봐 걸음 소리를 죽이고 걷다 보니 나도 모르게 무거운 한 숨이 터졌다. 사랑이란 그렇게 고단한 것인가. 그 여자의 사랑도 나의 그것처럼 이렇게 무거울까? 그 때 갑자기 안에서 갓난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 왔다. 무슨 요술에 걸린 것마냥 순식간에 외등빛이 따스하게 변했다. 그 빛은 이미 외로운 기다림의 빛이 아니었다. 따뜻한 아랫목을 준비해 놓고 고단하게 돌아올 가장을 기다리는 아기 엄마의 꺼지지 않는 따뜻한 불빛이었다.
그 때 낯익은 차가 오고 있었다. 그였다. 갑자기 부끄러웠다. 한 밤중 남의 집 앞에서 혼자 서 있는 내 보잘 것 없는 모습을 그 앞에 드러내기 겁났다. 어쩐지 그가 나를 반기지 않을 것 같아서. 나는 외등빛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빠르게 몸을 숨겼다. 그는 느릿느릿 걸어왔다. 어둡고 긴 그림자를 거느린 그의 발걸음 소리가 무겁게 골목 안을 저벅거렸다. 그의 걸음이 잠시 멈추었다. 외등이 켜진 집 앞이었다. 아기 울음소리가 다시 들리고 있었다. 그는 그 집 문설주에 등을 기대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금방 한 숨이라도 터질 것 같은 몸짓이었다. 잠시 후 그가 다시 걷기 시작하자 나는 소리 죽여 집으로 돌아왔다.
늦으면 먼저 자라고 했잖아? 양복을 받아 거는 나에게 그가 말했다. 부드럽지만 메마른 음성이었다. 아기 말인데.... 그가 말을 하기 전에 나는 얼른, 원하지 않는 아이를 낳아 그에게 족쇄를 씌울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나 자신도 생각 못 했던 말이 불쑥 튀어나온 것이다. 그게 아니고 내 말은.... 그가 당황해 나의 말을 잘랐다. 됐어요, 제가 알아서 해요. 나는 야멸차게 대답했다. 내 자신이 놀랄 만큼 단호한 음성으로. 그리고 그에게 등을 돌리고 돌아누웠다. 눈시울이 뜨겁지도 않았는데 눈물이 주루룩 눈가로 흘러내려 베개를 적셨다. 그가 허둥지둥 달래려 했어도 나는 그에게 눈물을 들킬까 봐 그를 향해 돌아눕지 못했다. 마침내 그가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탄식하듯 말했다.
당신이 알아서 해. 뭐, 별다르게 사는 인생이 따로 있겠어? 정말이야, 당신 뜻대로 해.
이 세상 모든 의욕들을 다 포기해 버린 듯한 한 숨 같은 말투가 나를 서럽게 했다. 눈물이 체면 없이 계속 나왔다. 맘대로 하랬잖아? 그가 나를 달랬다. 아주 오랫동안. 그러면서도 그는 차마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는 못했다. 그의 눈은 아직도 거짓말에 익숙하지는 못했다.
그 다음 주, 나는 산부인과 병원을 찾았다. 그 날 아침에 나는 그에게 오늘 병원에 가요, 하고 말했다. 그는 아무 대답도 없이 지하실을 나갔다. 내 말을 듣지 못한 사람처럼. 그러나 그는 다시 들어왔다. 그리고는 병원에 같이 가 주겠다고 했다. 가서 꼭 확인해야겠느냐고 나는 어깃장을 놓으면서 그의 제안을 뿌리쳤다. 마취 주사를 놓자마자 나는 보이지 않는 나락으로 떨어져 내렸다. 헤아릴 수 없는 공포가 엄습했다. 어디까지 떨어져 내릴까? 그 때 웬 여자가 보였다. 내가 본 적도 없는 선이 씨라고 했다.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묘한 웃음, 반색도 아니고 조롱도 아닌, 그러나 서서히 그 웃음은 쓸쓸함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그리고 곧 슬픔으로 바뀌었다. 고속 촬영으로 찍어 낸 필름처럼 그 얼굴이 흐느끼는 모습으로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 여자인지 나인지 모르는 여자가 고개를 떨구고 통곡했다. 그리고 나는.... 몰랐다. 아무것도 몰랐다. 내 자식이 죽어 가는데도 몰랐다. 마취제란 참으로 편리한 약이었다.
마취에서 깨어나자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직도 여자의 통곡을 듣고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내 팔을 붙들고 있는 링거 줄을 뽑아 버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심한 현기증이 몰려왔지만 나는 꼿꼿이 섰다. 거짓말처럼 몸이 말짱했다. 지하철을 타고 오면서 빈 자리가 있는데도 서서 올 정도였다. 어쩌면 그는 또 나에게 미안해, 라고 말할 것이다. 나는 그와 함께 병원에 가지 않기를 잘 했다고 생각했다. 그가 미안해하는 꼴이 보기 싫어서. 미안해, 미안해, 그는 그 즈음 걸핏하면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나는 그 미안하다는 말이 진저리쳐질 만큼 싫었다. 그와 내가 부부가 아니라 계약을 맺은 고용 관계나 되는 듯이, 그래서 제때 임금 지불을 못 해주는 사업주처럼 그는 내 앞에서 당당하지 못했다.
아기가 세상 밖으로 소리 한 번 못 질러 보고 수포보다 가볍게 떠내려가 버렸는데도 세상은 여느 날과 똑같았다. 변함없이 바람은 서슬을 세우고 달려들었고, 사람들은 춥다고 엄살을 떨면서도 제 할 일은 다하고 다니는 듯 분주해 보였다. 길이 밀린다고 아우성치면서도 차들은 땅 위를 잘도 구르고 다녔고, 콜라병 그림을 앞세운 대형 기구(氣球)는 신명나게 하늘을 날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산도 강도 모두 그대로였다. 나는 그 무심함이 견딜 수 없이 억울했다.
지하철역에서 집에까지 오는 동안, 그 때만은 내 몸에서 지워 버린 아기처럼 그에 대한 미련도 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를 향하는 내 마음을 쉽게 지워 버릴 수야 없겠지만 내 몸을 그에게서 떠나게 할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그에 대한 내 마음이라는 것도 결국은 나의 집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큰 욕심이 생기기전에, 절대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에 대한 미움이 내 마음 속에서 싹트기 전에. 나로 인하여 그가 더 괴로워하기 전에.
다 버린다고 생각하니 꾸릴 짐도 별로 없다. 나는 이제껏 이사를 해 본 경험이 없다. 서울에 올라와 미장원 귀퉁이에 따라붙은 골방에서 끼여 자는 생활을 하다 처음 세들었던 곳이 이 지하실 방이었다. 그러고 보니 꼭 가져가야 할 것이 있기는 하다. 당장 입을 옷 가지들과 가위집을 꺼낸다. 누빈 천으로 만든 가위집을 열면 그 안에 수술장에 진열된 기구처럼 수십 개의 가위가 들어 있다. 멀리 청동기 시대부터 인간이 사용했다는 가위는 발명품치고는 드물게 지금까지 큰 개량 없이 남아 있는 드문 예라고 했었다. 왜 이렇게 가위를 좋아했는지는 모르겠다. 쌍둥이 마크의 독일 제품, 미국산 듀라사프, 상표도 없이 메이드 인 저팬이나 프랑스라고 표시된 제품도 있다. 남대문 도깨비 시장이나 미용 재료상에 들렀을 때 질 좋은 가위가 눈에 뜨이기만 하면 나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어떨 때는 이발용 가위뿐 아니라 손톱 소제용이나 자수용, 병원용 가위까지도 집었다. 흡사 작가가 쓰기에 감촉 좋은 만년필을 수집하듯이 가위 수집은 미용사인 나의 유일한 취미이자 사치다. 어려서부터 나는 유난히 가위질을 좋아했다. 나는 무엇이든 가위로 베어지는 것이면 가위를 들이댔다. 하다못해 신문지만 보아도 오리고 싶었다. 여배우 사진, 만화, 낱말맞추기 퀴즈, 연재 소설..., 시골 살림에 오릴 만한 종이가 많을 리 없었다. 그렇다고 오려 낸 것이 소중해서도 아니었다. 소복이 발 밑에 오려진 배우 얼굴이나 읽지도 않은 신문 기사 따위는 곧바로 쓰레기통으로 가져갔다.
무신 콩만헌 가시내가 먹고 헐 일이 없으믄 자빠져 잠이라도 잘 것이지 하리 점드락 가새질만 혀싼데야! 신문지는 돈 아녀? 저 지지배, 저러다가 지 손모가지까장 비어 내 뻔질 것이고만, 평생 가새질만 히먹고 살어라.
계모의 악담대로 나는 미용사가 되었다. 나이가 들면서부터 나는 종이를 오리는 대신 동네 아이들 단발머리를 내 손으로 잘랐다.
이발소나 미장원이 읍내까지 나가야 있었고, 무엇보다도 돈이 들었으므로 동네 아낙들은 자기 아이들의 머리를 깎아 주는 공짜 미용사를 서로 불러 갔다. 그러나 나에게도 베어 내기 싫어하는 것이 있었다. 내 머리였다. 저년이 지 에미 잡아먹드만 인자 나까장 잡아먹을라고 이 더운 복중에 머리는 산발허고 자빠졌어? 당췌 정신 사나 죽겄네 그냥! 학교에서 돌아오기가 바쁘게 양갈래로 땋았던 머리를 풀어 빗질을 하고 나면 계모가 비명을 질러 댔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을 듣지 않았다. 평ㅅ에 내가 고분고분하게 군 것을 만만하게 보았던 계모가 마침내 내 머리에 가위를 들이댔다. 나는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계모를 밀쳐 냈다. 계모가 얼결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지고 있었는데 내 머릿속에는 환영처럼 피를 뚝뚝 떨어뜨리는 가위가 보였다. 계모가 다시 나에게 달려들 사이도 없이 나는 마당에 쌓아 둔 짚더미를 내던지며 동네가 떠나갈 만큼 소리를 지르고 울어 댔다.
나는 가위집을 꺼내 방바닥에 내려놓는다. 밖은 벌써 오래 전에 어두워졌을 것이다. 낮에도 형광등 불빛 아래 생활하는 이 곳은 시간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빗소리는 여전히 기운차게 들린다. 벽시계를 올려다보려다 말고 나는 시선을 방문 쪽으로 돌린다. 이사 준비를 위해 오늘은 되도록 일찍 돌아오겠다고, 내가 부탁도 안 했는데 그가 먼저 말했었다. 그렇다고 화가 나는 것은 아니다. 나로서는 예상했던 일이다. 지하실 바닥을 훑어 온 물이 방문 안으로 밀고 들어온다. 순간 나는 묘한 기분에 휩싸인다. 혼자 자는 동안에 물이 방을 넘어오면..., 어려서 나는 자주 그런 공상을 했었다. 계모 밑에서 사는 나날에 이런저런 서러운 일이 많던 날이었던 것이다. 내가 사는 곳과 멀지 않은 서해 바다 변산 반도는 간조의 차가 심했다. 썰물이 지기 시작하면 바다는 차츰 그 바닥을 드러내어 넓고 너른 평원으로 변했다. 수평선 멀리 작은 물갈기를 세운 파도만 아스라이 보일 뿐 눈길이 닿는 곳은 모두 촉촉한 모래밭이었다. 발에 밟히는 가는 모래바닥은 파도의 문양을 따라 이랑져 있었다. 나는 그 곳 물가, 물꽃이 어른대는 곳 어름에 누워 잠들고 싶었다. 밀물이 들기 시작하고 쉼없이 모래톱을 갉으며 넘실대는 파도가 내 몸을 간지럽힐 것이고 파도 소리는 자장가가 되어 줄 것이다. 무심한 물살이 내 몸을 덮고 모래바닥에 다시 파도가 밀려오면 나는 곧 물이 될 것이다. 그런 상상을 하는 내 얼굴도 물 속에 잠긴 것마냥 눈물로 질펀하게 젖어 있었다.
몇 시나 되었을까? 빗소리가 자장가 소리 같다.
방 안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방바닥에 꾸려 놓은 이삿짐들을 침대 위에 올려놓는다. 색이 누렇게 바랜 사과 상자를 들어 올리려는데 갑자기 상자 밑바닥이 내려앉으며 책과 인쇄물들이 와르르 쏟아진다.
물 위로 한꺼번에 쏟아지는 책들 중 하나가 펼쳐진다.
'한국 사회 구성체 논쟁' 이라고 쓰인 글자가 보인다. 나는 얼른 그것을 집어 들어 내 웃옷 앞자락으로 물기를 닦아 낸다. 그가 책보따리를 나에게 맡기고 군으로 떠나며 몇 번이고 하던 말은 오직 그 책들을 잘 보관해 달라는 거였다. 물에 젖은 책상자를 허겁지겁 들어 침대 위에 올려놓는데 날카롭고 무거운 것이 아래로 툭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책을 밀치고 보니 아까 꺼내 놓았던 가위집이 보인다. 황급히 가위집을 펴 보니 가위 하나가 날이 부러져 버렸다. 부러져도 날 한가운데가 대책 없이 끊어져 버린 것이다. 순식간에 하찮은 쇳덩이가 된 가위를 보는 일이 참으로 무참하다. 내 인생의 끈 어디가 무자비하게 동강난 느낌이다. 나는 망가진 가위를 차마 버리지 못하고 그것들을 조심스럽게 싸 둔다.
책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침대 위에 올려놓고, 뭐, 더 올려놓을 것은 없나 싶어 방 안을 휘 둘러본다. 거울이 보인다. 손바닥 두어 개만한 거울 안에 내 머리가 있다. 어깨를 넘실거리고 덮은 머리칼에는 윤기가 무심하게 흘러내린다. 그가 언제쯤 올까? 벽시계를 올려다보다 섬뜩한 생각에 거울을 떨어뜨리고 만다. 만약에 그가 이 밤 안에 오지 않는다면?
물은 침대 밑에 조용히 누워 있고 침대 위의 나는 섬 위에 앉아 있는 느낌이다. 이런 것이 외로움인가 싶다. 뼈끝까지 사무치는 외로움. 난생 처음으로 그가 밉다. 나는 고개를 흔든다. 그를 미워하면 내가 미워진다. 어차피 나는 그에게 나의 미래를 걸지 않았었다. 오직 서울에서 나 혼자만 겪어 내야 하는 수많은 외로운 밤이 싫어서, 사람의 훈기가 그리워서, 내 앞에 떨어진 노란 은행잎을 줍듯 그를 내 방으로 끌어들인 것 뿐이다. 깊은 산중에서 한 줄기 햇살을 받아 가까스로 피어난 풀꽃이 저 혼자 지듯이 나도 그렇게 가면 될 것이다.
그의 책들을 다시 꾸리다가 말고 나는 가위를 찾는다. 가슴에서 울컥 올라오는 충동에 나는 책상자를 사납게 잡아당긴다. 전태일 평전, 나는 그것을 가만히 잘라 본다. 베어지는 감촉이 부드럽다. 책 표지를 열고 한 장 한 장 오려 낸다. 나로서는 두렵기만 하던 그 책, 어쩌면 그 속에 그의 젊음이 있었고 이상이 있었을 책, 이제는 그에게서 깡그리 잊혀진 책들이다. 아마도 그가 다시 이 책들을 본다면, 오직 젊음만이 가질 수 있었던 이상이었노라고, 흡사 어린 시절에 아끼던 장난감 보듯 그렇게 즐겁고 아련하게, 그러나 철없던 때의 위험한 놀음이었다고, 익살스럽게 아슬아슬한 표정을 지으며 넘길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 스쳐 간 소꿉친구처럼 내 이름도, 그리고 어쩌면 선이 씨의 얼굴도 그렇게 그의 기억에서 묻히리라. 그가 나에게서 영영 달아나 버리면 그와 함께 나눈 자잘한 추억들도 서서히 말라 가리라. 낙엽처럼. 그가 세상 넓은 줄 모르고 겁없이 퍼덕거렸던 이상의 날개를 접고 자기의 자리로 되돌아갔을 때, 선이 씨와 나는 그 날개 끝에서 무심히 뽑혀 나온 깃털처럼 메마른 땅 위를 구르리라.... 나는 그 깃털을 잘라 낸다. 당에서 지속되어서는 안될 것들이라는 책 표지, 알튀세르라는 책의 저자의 이름도 서슴없이 잘린다. 다시 쓰는 현대사, 철학의 철학 서적 이해, 대중 파업론..., 거의 6년 가까이 보관하고 있으면서도 한 번도 읽지도 듣지도 알지도 못한 책들이었다. 로자 룩셈부르크, 라이트 밀즈..., 나는 정신없이 잘라 낸다. 미련을 잘라 내듯이. 마침내 더 이상 자를 것이 없어진다. 그래도 미진함이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무언가 지금 당장 잘라 내지 않으면 안 될 것이 있을 것 같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을 다 도려 내고 싶은 살의가 울컥 올라온다. 나는 이미 폐휴지가 된 책장들을 다시 집어 들고 가위를 들이댄다. 책장들이 마침내 미세한 종이 알갱이가 되어 물 위로 뿌려진다. 침대 주변에 모자이크처럼 떠 있는 빛바랜 종이 가루들, 그 속에 거뭇거뭇 보이는 잘려 나갈 글씨들이 장송 행렬의 만장(輓章) 같아 보인다.
침대 바닥에 나뒹구는 거울 속에 내가 있다. 어느 겨를에 사납게 변해 버린 눈초리, 퉁겨져 나온 광대뼈, 눈 아래로 기다림의 흔적처럼 내려앉은 기미, 아픔을 내뿜지 못하고 혼자 삼키려 꼭 다물어버린 입술에서 낯선 살기가 전해져 온다. 오직 한 가지 무심하게 있는 것은 물결처럼 흘러내리는 머리칼 뿐이다. 당신 머리칼은 살끝에 와 닿는 봄바람 같아, 그 소리가 환청인 듯 싶다. 그의 숨결이 닿는 순간 살아 숨쉬던 머리칼의 감촉도 환각인 듯 싶다. 나는 와락 내 머리채를 잡아 가위를 들이댄다. 한 움큼의 머리카락이 뭉턱 잘린다. 내 손아귀에서 빠져 나간 머리카락이 만장 같은 종이가루 위를 덮친다. 당신 머리는 수풀이야, 향기를 가득 품은..., 그의 음성이 들려 오는 것도 같다. 사악, 사악, 나는 그 소리마저 머리칼과 함께 잘라 내기 시작한다. <끝> - 현대문학, 1996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