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평>
유년의 기억 너머 애잔한 그리움의 자화상
최현희 님의「아버지의 자전거」와「화장하는 날」두 편을 당선작으로 선정한다.
먼저, 「아버지의 자전거」는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유년시절의 그리움에 대한 슬픈 자화상이다. 그 애잔한 그리움은 상처뿐인 아픈 추억의 편린이지만, 이제 중년이 된 화자는 그 상흔까지도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다. 어느 날 동네를 산책하던 중 자전거 대리점 앞을 지나치다가 힘 빠진 바퀴를 빵구 때우러 온 어르신을 보는 순간, 화자는 어린 시절 자전거에 우편물을 싣고 마을 구석구석을 다니시던 아버지 생각에 빠진다. 아버지는 집배원이셨다. 아버지의 자전거는 일곱 식구의 생계수단이었고 없어서는 안 될 운송수단이었다. 다섯 자매의 생계를 책임지신 아버지는 늘 점심 도시락을 갖고 다니셨고 숙직하시는 날에는 초등학생인 화자가 저녁 도시락 심부름꾼이었다. 그때 어린 소녀의 눈에 비친 커다란 우체국 건물에 위축돼 사무실 문도 제대로 열지 못한 채 얼굴만 빼꼼히 들이밀던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최유철 씨, 도시락 갖다 드리려고 왔어요.”하고 조그만 목소리를 내곤 하였다. 아버지의 직장 동료인 집배원 아저씨들은 어서 들어오라고 손짓하시며 칭찬해 주셨다.
“네가 공부 잘한다는 둘째 딸이로구나.” 그럴 때마다 나는 어깨가 으쓱해졌고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곤 했다. 아버지도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고 점심때 드신 네모난 검은색의 낡은 도시락 가방과 함께 심부름 값으로 10원짜리 동전 두세 개를 내 손에 꼭 쥐여 주셨다. 나는 넙죽 인사를 하고 성내동에서 홍제동 집까지 20여 분을 신나게 걸어왔다. 빈 도시락 안에 수저가 들어 있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달그락달그락 소리가 났다. 주위 사람들에게 들릴까 봐 신경이 쓰였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10원짜리 동전 하나하나가 소중했고 잃어버릴까 봐 주머니에 몇 번씩 손을 넣어 확인했다.
어느덧 중년이 된 화자는 ‘아버지의 월급날에는 아버지가 들고 오는 검은 비닐봉지에 담긴 귤과 굴뚝 과자가 어찌나 반가웠던지 아버지를 기다린 게 아니라 맛난 간식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라고 유년의 솔직한 심정을 고백한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6년 전, 화자는 작고한 친정엄마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문득 아버지의 일기장을 발견한다. 그 일기는 1963년 한 해 동안을 기록한 것으로, 아버지께서 서른 살 청년임에도 일이 너무 힘들고 고단하여 거의 매일 막걸리 한 잔을 들어야 하루를 마감할 수 있었다는 대목에서 목이 메인다.
아버지 떠나신 지 어언 사십여 년… 아버지의 모습은 빛바랜 사진 속에 남아 있다. 화자는 아픈 아내와 다섯 딸을 남기고 어떻게 눈을 감으셨는지, 아버지가 돌렸던 자전거 페달의 바퀴가 얼마나 무거우셨을까를 생각하면 언제나 그립고 애잔하다고 말한다. 그런 연유로 화자에게 아버지는 정말 보고 싶고 오랫동안 불러보고 싶은 이름이다.
인생에서 지나간 것은 모두 아름다운 것이다. 설령 그것이 절망의 계절이었다 할지라도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처럼 그것은 순수한 동심의 세계이다.
「화장하는 날」은 화자가 공직생활 중 특별한 근무처에 발령을 받아 그곳 책임자로 매일 보고 느낀 체험의 단상을 그린 작품이다. 그곳은 매일 ‘산 者’를 마지막 떠나보내는 장례식장의 풍경이다. 누구나 한번은 가야 할 그 마지막 길에서 인간 군상의 애환을 목격하며 화자는 지극히 담담한 심정으로 죽음의 문제를 받아들이고 있다. ‘화장하는 날’에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화자의 절제된 감정과 서사이다. 자칫 주관적 감정에 빠질 수 있는 이런 생과 사의 문제를 제삼자적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냉철하게 묘사한 점이 이 작품을 돋보이게 하며, 이 점 작가의 역량이 결코 가볍지 않음을 보여준다 하겠다.
청솔공원에 근무하는 동안 수많은 유택을 보며 ‘나도 언젠가 돌아갈 곳이 저곳이구나’ 생각했다. 죽음에 대한 거부감보다는 오히려 삶을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더 많이 했다.
그리움이나 아쉬움이 있는 이별은 아름답다. 오늘 하루를 잘 사는 것, 삶을 잘 살아야 죽음도 편안할 것이다. 인생은 화려한 꽃으로 빛나기보다 좋은 열매를 맺는 게 더 가치 있게 느껴진다. 앞으로 인생에 화려한 마침표를 찍기 위해 애쓰기보다 소박하고 아름다운마침표를 찍기 위해 순간순간의 삶에 충실하고 주어진 삶을 사랑하며 살 것이다.
하이데거가 말하듯 ‘존재의 집으로서 언어’는 문장 속의 글이 되고 그 글은 작가의 분신으로서 그의 思考를 지배한다. 그런 의미에서 최현희 님은 오랜 공직에서 체험한 다양한 경험과 깊은 성찰을 통해 삶의 희로애락을 형상화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이 뛰어날 뿐 아니라 문장력 또한 군더더기가 없고 탄탄해 앞으로 여류수필가로서 대성이 크게 기대된다.
‘신이 주신 축복’인 글쓰기-그러나 그 뒤안길은 피를 찍어 쓰는 형극의 가시밭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좋은 글을 쓰는데 더욱 정진하기를 바란다. 특별히, <영동수필문학회> 회장인 최현숙 친언니의 뒤를 이어 영동수필 나아가 강원수필의 큰 별이 되기를 기원해 마지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