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것이 부족하던 시절에도 못생긴 데다 맛까지 없다며 외면당한 음식이 있다. 아무리 배가 고팠을 때도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하던 음식이었는데 먹을 것이 풍부해지고 영양이 넘치는 현대에는 오히려 값도 비싸고 인기 식품이 됐으니 사람 입맛 간사하기가 이루 말할 수도 없고, 세상일이란 것이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겨울철 별미로 꼽히는 아귀찜 이야기다.
콩나물 넣고 찐 아귀찜은 흐물흐물하고 물컹물컹한 껍질을 씹었을 때의 식감, 퍽퍽하면서 담백한 고깃살이 콩나물과 조화를 이루며 내는 맛이 묘미다. 여기에다 씹으면 톡하고 터지는 미더덕이 아귀찜의 맛을 더한다.
전국적으로 아귀찜은 마산 아귀찜이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지역에 따라 아귀찜도 특징이 있다. 마산 아귀찜도 유명하지만 군산 아귀찜도 유명하고 요즘은 전남 남해안의 여수에도 아귀찜 거리가 생겼을 정도로 여수 아귀찜이 떠올랐다. 맛의 미묘한 차이를 구분할 수 있고, 또 식도락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지역별로 아귀찜을 맛보며 맛의 차이를 음미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마산 아귀찜은 말린 아귀를 쓰는 것이 특징이다. 겨울에 잡은 아귀를 차가운 눈바람을 맞히며 꾸덕꾸덕하게 말려서 콩나물을 얹어 찌는 것이다. 얼마나 잘 말리는지가 아귀찜 맛을 좌우한다고 하는데 바닷바람에 잘 말린 아귀는 생선 비린내가 전혀 없고 쫄깃쫄깃 씹는 맛이 좋으며 깊은 맛이 난다.
반면 군산 아귀찜은 말린 아귀가 아니라 생아귀를 써서 요리한다. 그리고 마산 아귀찜과 달리 콩나물이 아니라 미나리를 함께 내놓은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전국이 하나의 생활권으로 통합된 요즘에는 마산, 군산, 여수 등 지역 특산이라는 간판을 내걸었어도 지역적인 특징은 점차 사라지는 것 같다. 물론 아귀찜만 그런 것은 아니다.
아귀찜은 지금 많은 사람들이 겨울철에 즐겨 찾는 인기 식품이 됐지만 사실 아귀는 잘 먹지 않던 생선이다. 예전에는 어부들이 그물에 아귀가 걸려 올라오면 재수 없다며 바로 바다에 던져버렸다. 그래서 일부 지방에서는 아귀를 물텀벙이라고 부르는데, 어부가 아귀를 바다에 던져버릴 때 ‘텀벙’ 소리가 난다고 해서 생긴 별명이다.
오죽하면 생선 이름이 아귀일까. 조선 후기의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아귀어(餓鬼魚), 혹은 조사어(釣絲魚)라고 했는데 모두 생김새에 빗대어 부른 이름이다. ‘조사어’는 낚싯줄 닮은 물고기라는 뜻으로, 아귀는 머리에 낚싯줄 같은 촉수가 달려 있어서 헤엄칠 때 좌우로 흔들어 먹이를 혼란시킨다고 한다.
아귀는 불교 경전에 나오는 굶주림과 목마름의 형벌을 받은 귀신의 이름이다. 입이 비정상적으로 크고 흉하게 생긴 모습과 아무것이나 닥치는 대로 먹는 먹성이 아귀를 연상시켜 생긴 이름인데, 얼마나 먹성이 좋은지 ‘아귀 먹고 가자미 먹고’라는 속담까지 생겼다. 아귀는 입이 엄청나게 크니까 큰 물고기도 통째로 집어삼킬 수 있다. 그래서 아귀 배 속에 통째로 집어삼킨 값비싼 생선이 들어 있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바로 아귀가 가자미, 도다리를 잡아먹은 경우다. 천덕꾸러기 아귀를 잡았는데 도다리, 가자미를 얻었으니 뜻밖의 횡재를 했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아귀는 인기 없는 물고기였던 만큼 향토 음식으로 개발된 지도 그다지 오래되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아귀를 널리 먹게 된 것은 한국전쟁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한다. 잘 먹지 않던 생선인데 전쟁 때 피난민이 마산, 부산 지역으로 몰리면서 먹을 것이 턱없이 부족해지자 아귀까지 먹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귀찜이 만들어진 것은 1960년대라고 한다. 원래는 주로 아귀를 손질해 탕으로 끓여 먹었는데 안주로 만들어달라는 손님의 요구에 따라 콩나물을 넣어 찐 것이 마산 아귀찜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찜으로 만든 아귀 조리법이 사람들의 입맛을 끌면서 향토 음식에서 전국적인 인기 식품으로 발전한 것이다.
옛날에는 구박받던 천덕꾸러기였지만 요즘은 남부럽지 않은 인기를 누리는 음식들이 꽤 있다. 남해에 아귀찜이 있다면 동해에는 도루묵이 있다. 그리고 서해의 짱뚱어는 스태미나 식품으로 소문이 나면서 수요가 크게 늘었다. 미꾸라지 대신 아귀가 용이 됐다.
#음식#역사일반#음식으로읽는한국생활사글 윤덕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