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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 성경학과 기독교 설교(1) / 한제호원장/ KIRP, 대한신학연구원 교수 | 펌
개혁주의 성경학과 기독교 설교(1)
특별기고 / 한제호원장/ KIRP, 대한신학연구원 교수
The Reformed Bibliology and Christian Preaching
머리말
개혁주의 신앙 즉 프로테스탄트(개신교) 신앙은 예수님과 사도 바울의 신앙관을 바르게 이해하였던 어거스틴(Augustine, 354-430)과 존 칼빈(J. Calvin, 1509-1564)의 성경적 신앙관을 계승한다. 개혁주의 신앙은 특히 칼빈의 경건하고 정확하고 깊은 성경이해에 의하여 확립된 후, 그를 바르게 추종했던 17세기 이후의 영국의 청교도들과 화란의 개혁주의 교회와 18세기 이후의 미국 정통장로교회(구 프린스턴<1812년 개교> 학파 및 웨스트민스터<1929년 개교> 주경학파 <The Westminster Exegetic School>)에 의해 보수되고 계속 연구되고 전하여 오는 신앙조류이다.
J. 칼빈은 하나님의 계시가 인간에게 필요한 근본 이유를 이렇게 제시한다: "인간이 자신의 운명의 주인과 그 결정자가 되려는 욕망이 모든 인간의 본성에 뿌리깊게 박혀 있다. 이것은 인간의 교만이며 자신의 노력이 자신의 최종 운명에 영향을 미치리라고 믿는 인간의 (그릇된) 확신이다. 이것은 각 인간이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하나님을 움직이려고 하는 경향이다. 하나님만이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심을 계시해 주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과 만나게 될 때 철저하게 도전을 받게 되는 것이 바로 이와 같은 인간의 보편적 충동이다."
기독교에 있어서의 성경의 결정적 중요성과 그 성경에 대한 개신교(Protestant) 신앙의 자세에 관하여 G. 보스(Vos, 1862-1949)는 말했다: "예언을 통하여 성경적 종교는 비로소 진리의 종교, 믿음의 종교, 경전(經典)의 종교가 되기에까지 이르렀다. 이런 점에서 선지자들은 적어도 형식적인 관점에서나마 프로테스탄티즘(Protestantism)의 선구자들이었다.
선지자들의 시대에 이르러서 그 이전의 어떤 시대에서 보다도 이스라엘의 종교 의식(意識)은 하나님의 계시(啓示)라는 주요한 사실과 밀착하게 되었다. 여호와의 이스라엘에로의 접근은 무엇보다도 말씀에 의한 접근이었으며, 하나님은 그 자신을 인간에게 그 자신의 입의 말씀을 통하여 주신다."
J. 칼빈의 성경해석과 설교에 관한 견해를 정성구 교수는 이렇게 요약했다: '칼빈은 설교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옳게 해석하는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설교자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학자가 될 뿐 아니라 동시에 생도여야 한다고 여겼다. 먼저 사람이 성경을 연구하면 비로소 성령께서 그로 하여금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칼빈은 설교에 있어서 또한 청중을 중요시했다. 그리고 청중이 해야 할 일은 그들이 들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개혁주의 신앙의 생명은 바른 성경 이해이며, 그 성경 연구 즉 신학의 목적은 바른 목회와 설교이다.
"사람이 성경을 연구하면 성령이 그를 사용하신다"는 투철한 성경중심 사상과, "신학의 최후언어는 설교이다" 라는 바른 설교관이 개혁주의 목회의 토대와 척주이다. 기독교도 다른 종교와 같이 실천(practice)이 최후 목표이다. 실천(열매)이 없는 기독교는 죽은 작위(feasance)이다. 그러나 실천은 이론의 열매이다. "실천을 위한 가장 큰 조력자는 바로 좋은 이론"이기 때문에 신학이 필요하다.
B. F. 웨스트?(Westcott, 1825-1901)은 그의 저서 {부활의 복음}(The Gospel of the Resurrection, 1866년 초판, 1884년 5판)의 제3판 서문에서 교회 지도자들의 성경 연구와 교회사 연구의 필요성 및 그 바른 방향을 아래와 같이 제언했다:
기독교 교리의 연구가 심오하여지는 그만큼 그에 비례하여 우리는 그리스도 자신의 사상과 그의 성육신, 십자가, 부활, 승천, 그리고 그 모든 교리의 핵심인 그의 성품(Person)과 사역(Work)을 우리의 마음에 간직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개인의 신앙 지식을 성령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시게 되는 주요한 길은 성경 연구와 교회사 연구이다. 이 양면의 연구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성령을 의지하여 하는 것이므로 우리는 이것을 담대하게, 철저하게 해야 하며, 그렇게 할 때 우리는 교리와 의식(儀式)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 '확증'(proof)이라는 말은 귀납법이나 연역법이나 어떤 방법도 적용될 수 없는 말이므로 사용하기에 위험한 말이나, 이 양면의 연구는 인간의 지성 뿐 아니라 영혼까지도 절대적 확신을 가지고 그 위에 설 수 있는 바 기독교 진리에 대한 확증을 우리로 하여금 얻게 한다.
웨스트콧이 위에서 말한 예수의 '성품'과 '사역'에 대해 H. 바빙크(Bavinck, 1854-1921)는 기록한다: "구약의 전체 계시도 그리스도에 집중한다. 구약이 예언하는 바는 하나의 새 율법, 새 교리, 새 제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성품(person)이다. 하나의 성품(인물, 위격)은 하나님의 완성된 계시이다. 즉 '인자'는 하나님의 소유한 유일한 독생자이다.
구약과 신약의 관계는 율법과 복음의 관계와 같은 것이 아니다. 그 관계는 차라리 약속과 성취의 관계이며(행13:12, 롬1:2), 그늘과 실체의 관계이며(골2:17), 그림자와 참 형상의 관계이며(히10:1), 진동할 것과 진동하지 않을 것의 관계이며(히12:27), 속박과 자유의 관계이다(롬8:15, 갈4장).
그리고 그리스도는 구약 계시의 참 내용이었으므로(요5:39, 벧전1:11, 계19:10) 그는 새 언약의 세대에서도 또한 그 정점(頂点)이며 왕관이다. 그는 율법의 완성이며, 모든 의(義)의 완성이시며(마3:15, 5:17), 그의 안에서 얼마든지 '예'와 '아멘'이 되는 바 모든 언약들의 완성이시며(고후1:20), 이제는 그의 피 안에서 그 목표와 목적을 달성한다. 그리스도는 그 모든 것들의 성취인데, 첫째는 그의 성품과 나타나심에서, 다음으로는 그의 말씀들과 사역들에서, 그의 탄생과 생애, 그의 죽으심과 부활, 그의 승천과 하나님 우편의 좌정을 통하여 그러하였다."
민경배 교수(연세대)는 그의 저서 {한국 기독교회사}의 결론 부분에서 우리 나라에서는 비 보수적 진영에 속하는 학자 두 분의 다음과 같은 견해들을 소개하면서 아울러 자신의 동일한 견해를 피력했다. 먼저 그가 소개한 김정준 교수(한신대,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의 견해는 이렇다: "지금까지 (한국) 신학자들이 전통적인 것은 무조건 일단 거부, 아니면 배척하는 데서부터 시작한 오류에 대하여 (김정준)은 단(斷)을 내렸다. 그리고 그는 '한국교회와 신학의 건전한 방향은 역시 올바른 성서신학(聖書神學)의 재발견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때가 바로 1971년도 한국 교회와 한국의 신학이라고 생각한다'고 결론 지었다.
다음으로 안병욱(한신대, 숭실대) 교수를 '신학과 예배에 대한 칼빈의 경건을 묵상하면서, 사변적 유희가 아닌, 실제적이고도 실천적인 훈련으로서의 신학을 표방한' 학자로 소개한 민 교수는 다음과 같은 안 교수의 말을 인용했다: "요새 유행하는 신학은 한약의 감초 또는 경기장의 박수 같은 인상을 준다. 모든 분야에 간섭하지 않는 데가 없다. …… 이것은 신학이 제할 과제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일거리를 찾아 헤매는 것인지도 모른다. …… 신학은 필연적으로 해석사(解釋史)라는 계보(系譜)에 서게 되는데, 교회의 전통(傳統)이 바로 그것이다."
"기독교의 전통"이 무엇인가?
C. 핫지의 진술에서 우리는 그 핵심을 발견할 수 있다: "성령에 감동되어 말했던 사람들은 이렇게 주저없이 말했다. '하나님이 자기 피로 교회를 사셨다(행20:28).' 또는 '영광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박혔다'(고전2:8). 따라서 그리스도에 의해 바쳐졌던 순종과 그가 인내했던 고난이 신성(神性)의 인격자에 의한 것이었으면, 우리는 오직 경외심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입을 다물고 경배하며, 그리스도의 이 순종과 수난의 공효(功效)가 땅 위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인에게 칭의(稱義)를 주기에 충분함을 확신할 뿐이다."
G. 보스(Vos)도 교회의 전통적 신앙의 핵심인 그리스도의 성품의 역사적 가지성(歷史的 可知性, the historically intelligible-ness)에 관해 이렇게 기록한다. "예수는 권위적으로 말하였을 뿐 아니라, 진리의 영역에서(in the sphere of truth) 주권적으로 말하였다. 우리는 이념세계에서의 그의 권위는 이념이 소속되어 있는 현실계(the realm of realities)에 대한 그의 주권 위에 서 있음을 감지(感知)하게 된다. 그는 하나의 새 윤리 체계를 고안해 낼 한 사색자로 온 것이 아니라, 하나의 도덕적 실현체로서의 왕국을 불러내기 위해 왔다. 그는 그 자신이 그 중심이며 주권적인 요소로 서 있는 바 한 위대한 구속적 운동의 중심에 서서 거기서 발언하고 있다. 이런 심오한 인식 안에서 그의 메시야적 이념이 그의 모든 높은 윤리적 이상주의의 기본을 이루고 있으며, 이 인식만이 그의 메시야 의식을 역사적으로 이해 가능케 만든다.
고린도전서 15:3-4의 "성경대로 죽으시고 성경대로 살으심"에서의 '성경대로'는 인간을 위한 믿음의 기초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의 기초도 된다(마26:24,53,54). 그리스도와 신자의 부활은 성경에 부활이 있다는 계시적 증거 때문에 실현되었다는 것이 바울의 논증이며, 교회의 전통이다. 개혁주의 신앙은 기독교회의 전통적 성경해석을 승계하고 발전시키는 일을 학문적 연구의 중심 과제로 삼는 신앙이다.
필자는 이하에서 개혁주의 신앙의 성경 이해와 그것의 설교와의 관계를 개괄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1. 개혁주의 성경학의 구성
개혁주의 신앙의 성경연구 방법이 이른바 "역사적(=과학적) 검증(historical verification)"의 방식을 수용하는 원칙에 관해 H. 바빙크(Bavinck, 1854-1921)는 말한다: "성경 전체는 비록 그것이 역사적으로 기록되었을지라도 그것은 마치 어거스틴의 말같이 하나님이 하늘에서 땅에 있는 그의 교회에 보내신 편지와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성경의 각 책의 기원(genesis)에 관한 '역사적 검증'은 그 오용(誤用)을 피하기만 한다면 특히 하나님이 성경을 지으신 그 놀라운 솜씨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데 있어서 적절한 방법이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러나 바빙크가 경계했던 성경의 "역사적(과학적) 검증"의 연구 방법의 오용은 18세기 이후 특히 독일 신학계에서 큰 혼란을 일으켰던 사실은 모두가 주지하는 바와 같다.
18-19세기에 대두하여 20세기 초반까지 전성기를 구가했던 구라파 대륙에서의 반기독교적 성서비평학은 금세기 후반에 이르러 현저하게 퇴조했다. G. 보스(Vos, 1862-1949)는 1948년에 간행된 그의 주저(主著) {성경신학}(Biblical Theology)의 서문에서 "우리 시대의 반지적(反知的), 반교리적(反敎理的) 성격 때문에 많은 수난을 겪었던 신학은 금세기 초부터 보다 나은 대접을 받게 되었다"고 술회하므로써 금세기 초 이전까지의 기독교 신학의 황량하던 부정적 경향과 그 이후의 신학의 완만한 정로(正路) 복귀의 징조를 시사했다.
H. 리더보스(Ridderbos)는 2차대전 후 자유주의(The Liberal School) 신학의 여러 연구는 현저히 소멸되고, 그 대신 유대 묵시 문학과 연결시키려는 연구 방향으로 변했다"고 보았다. 리더보스는 자유주의 신학의 복음서 기록들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적 자세를 지적하고 나서 "W. 브레데(Wrede)나 R. 불트만(Bultmann)의 비평주의는 부활의 근원자(the Origin)를 설명해야 도움을 얻게 된다. 비평주의는 수수께끼를 수수께끼로 풀려는 악덕의 순환(vicious circle)이다" 라고 진단했다.
G. W. 브로마일리(Bromiley, 미국 풀러신학교) 교수는 1960년대 초에 "20세기에 이르러 교회가 성경을 되찾았으니 모든 신학자들은 주경학(註經學)에 힘을 배가하고 집중하자"고 호소했는데, 그의 호소는 세계적 반향을 일으킨 듯하여, 금세기 후반은 주경학 내지는 성경신학의 큰 발전을 보게 됐다.
문동학 교수(장신대)에 의하면 근년 북미의 구 신약학 교수들의 8할 정도가 이른바 [북서지방 셈어 비교언어학](North-West Semitic Comparative Linguistics) 연구에 종사하고 있는데, 그 목적은 이른바 예수의 육성(ipsissima verba) 찾아보기, 즉 예수가 사용했던 언어(The mother tongue of Jesus)인 아람어(Aramaic) 자체를 규명하므로써 예수의 교설들의 독특성(uniqueness) 또는 시원성(始元性, originality)을 확립시키려는데 있다고 보았다.
현대 성서신학의 개척자로 알려진 두사람 J. 콕세이어스(Cocceius, 또는 Koch, 1603-1669, 화란)와 J. P. 가블러(Gabler, 1753-1826, 독일) 중에서 가블러는 당초 전통교리와 성경 본문의 완전한 단절을 목적했었다. 그 당시의 교회의 교리편중 성향을 지양시키고, 교리와 구별된 성경연구를 교회에 도입하려던 것이 그의 목적이었고, 그 이후의 구라파, 특히 독일 신학이 가블러의 목적했던 방향을 얼마나 지나치리만큼 충실하고 철저하게 추구했던 지는 역사가 보여주는 바와 같다. 그러나 19세기 말에서부터 20세기 전반까지의 신학의 전환기(轉換期)에 성경비평학의 주제는 역설적으로 성경의 본문 자체와 기독교 교리의 핵심인 그리스도의 품성과 사역에 대한 교리적 관계성의 철저한 규명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품성(person)과 사역(work)에 관한 초대교회 이후 금일까지의 논의를 개괄하고 G. 보스는 아래와 같이 결론짓는다.
"구약과 신약에서 이 두 개념의 밀접한 관계는 기독교 신앙의 타당성과 진실성을 위해 최고의 중요한 사실이다. 왜냐하면 예수는 이스라엘에게 약속되었던 그리스도, 즉 메시야라는 고백은 기독교의 심장이며, 이것이 다른 모든 종교와 구별되는 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사실은 유대인, 모하멧교도들, 기타 모든 이교도(異敎徒) 국민들의 신랄한 공격을 받았고, 오늘은 기독교인이라고 자칭하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도 이 사실이 공격받고 있다. 그들은 주장하기를 예수는 자신을 결코 메시야로 생각하거나, 자신을 그런 존재로 나타낸 일이 없었고, 기껏해야 그는 그의 내적(內的) 종교 의식(意識)이나 높은 도덕적 사명감을 메시야라는 당시의 유행하는 형식으로 표현하려 했지만, 그 형식은 지금 우리에게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부정적 견해에 대하여 H. 바빙크는 이렇게 답변한다:
"신약 성경의 증거들은 이와 같은 반대의 태도를 매우 오래 유지하기에는 너무나 많고 강한 증거들을 담고 있다. 따라서 극히 근자에는 전보다 더 극단적인 반론을 펴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이 사람들은 예수가 자신을 메시야로 자처했고, 모든 종류의 초자연적 특성들과 능력들을 행사한 사실을 부인할 수 없게 되자, 이 사실을 승복하고 예수의 자증(自證)대로 그를 받아들이는 대신, 그들은 예수가 환상, 광신(狂信), 여러 가지 탈선을 저지른 다만 하나의 인간이었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예수의 높은 자의식(自意識)을 예수의 심신(心身)의 여러 가지 질병 탓이었다고 주장한다.
근년에 와서 다시금 가중되고 있는 이 예수의 품격(person)에 관한 논쟁은 과거에도 '너희는 그리스도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이 제기되었던 것처럼 오늘 다시금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으며, 그들의 마음을 분렬시키고 있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혹은 세례 요한, 혹은 엘리야, 또는 예레미야나 선지자들 중의 하나라고 추측했고(마16:13,14), 또 어떤 이들은 예수가 미쳤고, 귀신이 들렸다고 생각했던 것과 같이(막3:21,22), 이런 오해들은 수십세기 동안 계속되었고, 오늘도 여전히 그러하다. 오늘도 그리스도를 한 환상가요, 광신자로 보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그가 선지자이기는 했으나 우리가 하나님의 그리스도라고 고백할 수는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자신이 하나님의 그리스도라는 이 칭호를 철저하게 주장하며, 다른 칭호로는 만족하지 않으신다. 그는 사람이었고, 신약 성경 전체는 그렇게 기록했다. 그는 비록 영원한 말씀이었으나 시간 속에 탄생했다(요1:14, 빌2:7). 그는 우리와 같은 혈육을 가졌고, 모든 일에 그의 형제들과 동일했다(히2:14,17). 그는 육신적으로는 조상들에게서 나셨고(롬9:5), 아브라함의 자손이었으며(갈3:16), 유다 지파의 출신이었다(히7:14, 계5:5). 그는 다윗의 후손이었고(롬1:3), 그는 여자에게서 나셨다(갈4:4). 그는 육체를 가지신 온전하고 참 의미에서 한 인간이었다(마26:26). 그는 혼을 가지셨고(마26:38), 영을 가지셨고(눅23:46), 사람의 마음(눅2:52)과 사람의 의지(눅22:42)와 사람의 기쁨 슬픔 노여움 자비심을 가졌고(눅10:21, 막3:5), 사람처럼 휴식과 음식물이 필요했다(요4:6,7, 기타).
신약 성경 어디서나 예수는 항상 인간으로 표현되었고, 인간됨이 그에게 이상한 것으로 기록된 곳은 없다. 사실 그는 우리와 같이 모든 일에 시험을 당하셨으나 그에게는 죄가 없으셨다(히4:15).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으며, 그는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을 배우시므로 온전하게 되셨다(히5:7,8).
따라서 그의 동시대인들은 그의 참된 인성(人性)을 잠시라도 의심하지 않았다. 복음서들에서 그는 보통 그의 단순한 이름인 "예수"로 불리웠다. 물론 이 이름은 그의 탄생시에 천사가 해명했던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자"라는 뜻이 있는 이름이다(마1:21). 그러나 이 이름은 이스라엘에서 전부터 흔한 이름이었고, 이 이름을 가진 이들은 신약 성경에서도 여럿이 있었다(눅3:29, 골4:11). 따라서 예수라는 이름만으로는 마리아의 아들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의 이웃들은 보통 그를 예수라는 이름의 사람으로 불렀고(요9:11), 요셉의 아들이요, 목수요, 그 누이들과 동생들을 우리는 안다고 했으며(마13:55, 요6:42), 나사렛 사람 요셉의 아들(요1:45), 나사렛 예수, 또는 갈릴리 사람 예수(마26:69)로 불렀다. 그리고 예수는 선생, 교사를 뜻하는 랍비, 또는 랍오니로 불리웠고(요1:38, 20:16), 이 칭호들은 당시의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에게도 사용되었을 뿐 아니라(마23:8) 예수는 이 칭호를 자신의 것으로 강조하기도 했다(마23:8-10). 그러나 이런 칭호들은 백성들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한 증거는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백성들이 당시 존대어로 사용되던 주(막7:28), 다윗의 자손(막10:47), 선지자(막6:15, 8:28) 등의 칭호를 그에게 사용했을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예수는 진정 참 사람이었으나, 그는 처음부터 자신이 인간 이상인 존재임을 알고 있엇고, 또 그런 존재로 제자들에 의해 점차 더욱 밝히 인식되고 고백되어졌다. 그리고 이 사실은 어떤 이들의 주장과 같이 요한복음과 사도들의 서신들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고, 마태, 마가, 누가의 복음서들에서도 그러하다.
결국 현대인들이 주장하려는 역사적 예수와 교회(신앙)의 예수와의 차이는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이다. 현대인들은 예수는 실지 그러했고, 자신도 그러기를 원했듯이 단순한 한 사람의 경건한 이스라엘인, 한 사람의 종교적 천재, 탁월한 청년 교사, 그 전에도 이스라엘에 흔히 나타났던 선지자의 한 사람일 뿐이었다고 주장한다. 그 후에 이런 역사적 예수에게 덧붙혀졌던 모든 것들-그의 초자연적 탄생, 그의 메시야 직분, 그의 속죄의 죽음, 그의 부활, 그의 승천 등-은 그의 제자들이 그들의 스승의 본래 모습에 덧붙인, 그들의 상상의 산물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이해에 대해서는 너무나 많고 중대한 반론들이 있기 때문에 아무도 그런 이해로 만족할 수가 없다. 결국 위에 말한 여러 가지 사실들이 사실이 아니고 모두 예수에게 첨가된 전설일 뿐이라면 우리는 제자들이 어떻게 그런 미신들을 믿게 되엇으며 그 교묘한 우화(寓話)들을 어떻게 그들이 꾸며 내게 되었던가를 설명해야만 한다. 예수에게서 나타나는 그의 인격의 일반적인 인상에서는 그런 환상(幻像)의 근거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에게서 우리가 받는 인상은 그것이 비록 교회가 높이게 된 그의 인격에서 풍겨나는 것이라 할찌라도 교회가 고백하는 그리스도의 인격 구조에서는 그와 같은 환상적 요소가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불신자들은 그리스도의 그러한 인격적 요소들을 그리스, 퍼시아, 인도, 애굽, 바벨론의 종교사화들에서 찾으려 했고, 그렇게 찾아 봄으로써 그들은 기독교의 고유성과 독특성을 훼손하고 이방종교들과 유대교의 이단 사상들에서 기독교가 탄생했다고 주장하려 한다.
그러나 신약 성경의 다른 서책들은 고사하고 그 세 복음서들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확신한 사람들에 의해 기록되었다. 그 복음서들은 교회가 이미 얼마동안 존재하던 때에 기록되었고, 사도들이 당시에 알려진 전 세계에 전도하던 때에 쓰여졌으며, 바울이 이미 여러 서신들을 기록한 후에 쓰여졌다. 그런데도 그 복음서들은 일반에게 수용되었다. 예수의 인격(person)에 관해 그의 초기의 사도들 사이에 어떤 의견 충돌이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진 바 없다. 그들은 하나같이 서서 예수는 그리스도요, 유대인들이 그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그를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고, 그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는 회개가 허락되었다고 믿고 증거했다(행2:22-28).
이 믿음은 처음부터 기독 교회의 기초였다. 바울은 그의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성경에 기록된 그리스도, 죽으시고, 장사되고, 부활한 이 그리스도가 사도들의 전도의 내용이며, 기독교 신앙의 대상이며, 이 두 가지 사실을 떠나서는 믿음은 헛것이요,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들의 구원은 신기루(蜃氣樓)가 된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다음의 두 가지 중 택일하는 외에 다른 길이 없다. 사도들은 하나님의 거짓 증인들이었다고 믿을 것인가, 아니면 그들은 처음부터 그들의 눈으로 보았고, 주목했고, 그들의 손으로 만져 보았던 그 생명의 말씀을 증거하고 선포했다고 믿을 것인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또 그와 마찬가지로 예수는 한 거짓 선지자였다고 믿을 것인가, 아니면 그는 진실한 증인이었으며, 그 증언대로 그는 죽음을 이긴 첫 열매요, 세상의 왕들의 주가 되시고,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의 죄를 씻으시고,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에게 우리를 왕들과 제사장을 삼으셔서 바치신 분으로(계1:5,6) 믿을 것인가 둘 중에서 택일하는 길 외에 다른 길은 없다.
역사적 예수와 교회의 예수 사이에 충돌은 없다. 선지자들의 증거는 그리스도의 자증(自證)에 대한 해석이며 설명으로써 그것은 성령의 인도하에 된 것이다. 교회의 틀은 이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터 위에 서 있으며, 그리스도가 그 모퉁이 돌이시다(엡2:20). 그들이 놓은 터 위에 다른 터를 놓을 자가 없다."
위에서 인용한 H. 바빙크의 술회(述懷)와 같이 그리스도의 품격과 사역 등 기독교의 기본 교리들에 대한 현대주의 신학의 공격은 20세기 후반에 이르면서 현저하게 미약해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기독교회가 계속 경성하여 힘쓸 일은 인본주의적 신학은 쇠퇴하였으나 그것이 뿌려 놓은 무신론적 세속주의가 인류 전반의 실제생활을 더욱 지배해 가고 있는 현실을 주목하고 거기에 대응가능한 전도를 힘쓸 일이다.
이리하여 C. 반 틸(Van Til, 1895-1974)이 말했던 기독교신학의 [무서운 전쟁](The fearful war)의 판세는 금세기 후반부터 전통적 사상의 우세 국면으로 변했다. 이 어간에 성격적 기독교의 핵심인 구속의 교리를 외면하면서 이른바 [문헌학적 편향](philological deflection)에 기울어졌던 비평 진영의 연구서들이 홍수처럼 나타났으나, 그에 못지 않게 이른바 성경의 주경학적 연구와 함께 목회(牧會)에도 헌신할 수 있었던 [성학(聖學)들](The Divines)의 성서 신학적 저술들도 높은 질과 방대한 양을 가지고 나타난 것이 20세기의 기독교학의 괄목할만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B. F. 웨스트?이 130년 전에 당시에 일어나고 있던 기독교의 핵심 사상을 외면한 문헌학적 연구 중심의 성서학을 향하여 "그리스도의 부활을 그의 인격 중심의 교훈보다도 성경 중심의 교훈에 소속시키려는 연구 방법의 오류"를 지적하고, 후자는 기독교를 다만 하나의 "철학적 불멸사상(不滅思想)으로 대치시킬 것이라"고 지적한 점은 중요하다. 웨스트?의 이 지적에서 개혁주의 성서학의 핵심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R. T. 프랑스(France)는 그리스도의 품격 연구에 있어서의 양식사학파의 입장과 연구자의 전제(presupposition) 문제에 관해 이렇게 평한다: "M. 디벨리우스와 R. 불트만의 신약의 기록들의 문학적 분석(literal analysis)에만 집착하고 그 기원(the Origin)에 관해서는 할 말이 없는 현상이 양식사학파가 [역사적 예수]에는 등을 돌리고 [믿음의 그리스도](교회의 고백 대상)에만 치중하는 동기이다. 초대교회의 예수의 추종자들의 신앙이 예수의 실제 언행에 기초 했을지라도 그것은 그들의 주관적 해석(interpretation)일뿐, 예수의 언행의 모사(模寫, transcription)는 아니라고 주장하는 J. M. 로빈슨(Robinson)의 입장(A New Quest of the Historical Jesus)도 기독교의 기원에 대한 판단의 표준이 될 수 없는 까닭은 이 견해가 회의적 전제(sceptical presupposition)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역사에 대한 객관적 접근이란 불가능하다는 인식은 공통된 인식이다. 복음서에 대한 상이한 평가들은 상충하는 증거들의 사용 때문이 아니고, 근본적으로 대립하는 전제(편견)들 때문임을 주목해야 한다. 이 전제들이 가정(假定, assumption)의 자리에서 인정(recogition)의 자리로 나갈 때 진보가 있을 수 있다."
이 점에 관하여 동일한 견해를 가진 J. 예레미아스(Jeremias)는 이렇게 지적한다: "예수의 수난 예고들 중 수난 사건 이후에 교회가 진술한 몇 개의 기록을 교회의 창작으로 단정하는 원리를 모든 수난 기록에 적용(R. 불트만의 입장)한다면 역사의 왜곡이라는 결과를 낳는다."
R. 리더보스(Ridderbos)는 "위대한 전제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지식이다"라고 단언한다. G. 보스는 더 나가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증거하는 교회의 권위를 이렇게 설명한다: "사실 예수는 자신의 지상에서의 사역을 진리에 대한 궁극적 해설자(exponent)의 활동으로 제시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보다는 자신을 해설되어야 할(to be expounded) 하나의 위대한 사실로 제시했을 뿐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과 자신의 해설자(교회)를 분리하지 않고, 오히려 그 해설자에게 절대적 권위와 정당한 지식을 부여함으로써(요16:12-15) 자신과 교회를 일체화시켰다. 그리고 성령 부여에 관한 약속과 그 실현으로써 그는 그 일체성을 현실화시켰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것을 취하셔서 그것을 받는 자들에게 나타내신다."
20세기의 자유주의 신학이 크게 주력했던 복음서에 대한 [편집비평학](redaction criticism)에 대하여 D. 거스리(Guthrie)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편집 비평의 이론들 중에서도 문제점들을 일으키는 것들이 있다. 그런 이론들을 받아들이게 되면 신약 신학을 통합적으로 받아 들이기가 더욱 어렵게 된다. 예를 들어서 각 복음서들의 기자들의 독자적 신학이라는 것들을 그 기자들이 기록한 복음서들의 대상인 예수 자신의 가르침보다 중시한다면 그것은 신약 신학을 하나의 통일된 개념으로 보기보다는 여러 가지 상이한 신학들을 집성한 것으로 제시하는 격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쓴 신약 신학에서는 본문들을 예수의 가르침을 신빙성있게 기록한 권위있는 말씀들로 취급했다. 예수의 어떤 가르침들을 진정성이 없는 것으로 보는 자들은 자연히 그 기록들을 동일한 비중으로 대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그런 구절들을 복음서 기자 자신의 생각이 반영된 것으로 간주해 버릴 것이다. 이런 입장을 따르는 자들은 똑같은 증거들을 놓고서 그것들이 예수의 참 말씀으로 전부 수락되는 경우와는 달리 그 말씀들의 권위성에 대해 각각 차등 대우를 할 수밖에 없다."
H. 보스도 기독교학에서의 문헌학적 연구(philological study) 중심의 경향을 경계하여 "하나님의 말씀의 진실성을 그 외부성(externality)과 객관성(objectivity) 만으로 증명하려는 연구 방법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보스는 예수의 성품(nature)과 행동(action)보다도 그의 사상(thought)과 교훈(teaching)에 치중하는 연구는 종교를 외부적 규범(norms)과 힘(force)보다는 그 내부성(interiority)에 편중하여 평가하는 현대주의의 위험을 내포한다고 분석했다.
지난 300년 동안에 경이로운 업적을 남긴 개혁주의 성경학은 크게 원전학, 정경학, 주석학, 성경신학, 해석학의 5분야로서 구성되고, 여기서 조직신학, 역사신학, 실천신학, 설교학, 기독교교육학, 기독교철학, 기독교사회학, 성서고고학 등이 파생한다. 교회사와 교리사는 주로 이 성경학의 사회와 교회 안에서의 반응지시(反應指示, indicator) 기능을 한다.
⑴ 원전학(Textual Criticism)
정경학(正經學)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원전학(原典學)은 성경의 원전(Text)의 정체성(identity)에 대한 일차적 규명을 목적한다.
성경의 원본이 하나도 없고, 사본(寫本, manuscript)뿐인 현 상태에서, 신약의 특정 사본의 문서적 신빙성, 저자의 규명, 공인사본(Received Text)의 유지, 사본들의 대조를 통한 원저(原著)의 의미의 추정 등이 그 주요 과제이며, 신약성경의 원전학은 에라스무스(D. Erasmus, c. 1466-1536)의 초기 연구와 B. F. 웨스트?, F. J. A. 홀트(Hort, 1828-1892) 양인의 공동연구의 결과 장족의 발전을 보았다. B. B. 워필드(Warfield, 1851-1921)는 19세기 말에 "원전비평학의 발달로 말미암아 우리는 지금 [실질적인 원저자의 본문](The substantially autographic text)을 소유하게 됐으며, 앞으로 신약원전학은 1000단어 중 한 단어도 의심치 않게 됐다"고 했다.
개혁주의 성경학은 이처럼 성경원전학의 충실한 연구를 높이 평가하면서, 원전학의 이해를 통해서 성경의 일차적 정체성 위기(The first identity crisis)를 극복한 전도자가 성경의 문서적 권위를 확신하고 그것을 설교하도록 권장한다.
⑵ 정경학(Canonics)
정경학(正經學)은 성경의 영감문제, 성경 각서의 정경성에 대한 교회의 승인과정의 역사성 등을 취급함으로써, 원전학에 이어 성경의 제2차 정체성 위기를 해소시키는 기능을 가진다. 즉 성경 영감의 이성적 이해를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정경 제정(制定)의 성경적 근거에 관해 H. 바빙크는 말한다: "우리는 정경을 교회가 만들었다거나,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글에 교회가 권위를 부여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차라리 그 기록들은 그것들이 기록된 즉시 교회안에서 권위를 행사케 되었으며, 교회의 생활과 믿음의 지침이 되었다. 처음에는 기록되지 않았고, 후에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그 권위를 사람에게서 부여받은 것이 아니며, 신자들에게서 부여받은 것도 아니고, 오직 성경을 감찰하시고 그 반포(頒布)를 주장하시고 계시는 하나님으로부터 그 권위를 부여받았다."
정경학은 4세기 말에 정경학 자체 뿐 아니라 교회사와 교리사에 하나의 뚜렷한 이정표(里程標)를 제시한 사건을 거침으로서 그 연구 방향에 명료한 하나의 표준을 가지고 있다. 주후 360년의 라오디게아 대회(The Synod of Laodicea)와 396년의 누미다아(Numidia)에서의 힙포 레기어스(Hippo Regius)회의, 끝으로 397년 제3차 칼타고 회의에서 현존 66권의 정경성을 교회가 마침내 승인한 사실을 말함인데, 이 역사적 사실이 교회에 주는 매우 중요하고 핵심적인 교훈은 교회의 정경 검증 작업에 있어서의 이성(理性)의 결정권(prerogative, 大權)의 확립이다.
이 원리는 첫째로 제1세기에 성령을 통하여 사도들에 의해 기록된 신약성경에서는 첫째로 예수와 사도들의 구약성경 승인의 사실을 통하여 예수의 신성(神性)이 입증되고, 둘째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정경성이 누구보다도 그리스도 자신의 승인을 통해서 확정된 것으로 증명되었다.
다음으로 이 원리는 이처럼 성경의 정경성이 교회의 승인(reception) 또는 승복(submission)을 얻게 되기까지에는 만 300년에 이르는 장기간에 걸친 초대 교회의 이성적 검증 작업, 이른바 [시간과 사용]의 원리(time and use)의 적용이 선행(先行)했던 사실을 보여준다. 이로써 성경의 영감은 인간의 이성적 승복과 성령의 날인(捺印)의 양면을 통해 인간에게 이해된다는 원리의 담보를 교회가 확보하게 되었고, 이 정경성 검증에 있어서의 이성의 중요한 기능 수용의 원리는 그 이후 기독교의 성경해석, 교리, 생활, 전도에서 기본적 원리로 정착되었다.
B. 파스칼(Pascal, 1623-1662)은 기독교와 이성의 관계를 이렇게 진술했다: "인간의 부도덕과 외소함을 생각하면 믿기 어려운 일 같으나 하나님은 인간과 자신을 한 자리에 두실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일을 기쁘게 하실 수 있다.
솔직히 말해서 이런 논의의 대부분은 감상적이지만, 그러나 이 논의의 중심에는 비록 그 불완전성을 가차없이 논단했을지라도 이성의 작용이 존재하는 그것이다. 우리는 진리의 추구에 관해 무관심을 고집하는 편보다는 그 노력을 최소한으로라도 계속해야만 한다.
우리가 진리 추구의 노력을 계속해야 할 또 다른 하나의 이유는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비참하면서도 위대한'(wretchedness-greatness)인간의 모순이 해결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없이는 하나님을 아는 일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알아도 무익하다. 이신론(理神論)은 실제에 있어서 무신론 만큼이나 기독교에서 멀다. 인간의 위대성을 구성하는 것은 오직 이성(思考, pens es, 팡세) 뿐이며, 따라서 이성은 인간의 실상을 규명할 권리와 의무를 지닌다.
인간 본성의 모순성과 양면성은 참된 종교가 풀 수 있고, 또 풀어야만 할 수수께끼이다. 도성인신과 속죄의 교리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타락의 교리가 유일한 대답이다. 타락이 없었다면 인간은 지금도 행복했을 것이며, 속죄가 없었다면 인간은 언제까지나 비참할 것인데, 도성인신에서 하나님은 유한한 이해력을 가진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모습으로 자신을 인간에게 계시하셨던 것이다. 인간의 이해력은 부한소(無限小)와 무한대(無限大) 사이에서 불확실한 균형을 유지한다.
그리스도는 인성에 동참하심으로서 동물도 아니요, 천사도 아니라, 그 양면을 지닌 인간의 실존을 성화시키셨다. 인간은 뱀의 거짓말대로 하나님과 같아질 수가 없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이며 사람이신 그리스도를 따를 때 하나님이 인간이 되시고, 하나님의 축복이 인간에게 임한다."
성경의 정경성 승인을 확정케 하는 성령의 날인 역사와 그 예비 단계로서 그것에 선행(先行)하는 교회의 이성적 검증의 관계에 대한 칼빈의 견해를 E. F. 해리슨(Harrison)은 이렇게 정리했다:
"칼빈의 성경 교리에 대한 공헌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신을 그가 가르친 데서 나타난다. 칼빈의 견해에 의하면 이 확신은 강도(講道) 중에 읽혀지고 들려지는 말씀과 함께 역사하시는 성령의 증거에 의해 주어진다.
아주 분명하게 성령의 이 역사는 주로 복음 메시지의 중심 문제와 관계된다. 그러나 이 성령의 역사가 정경의 한계를 해결하는데도 나타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성령의 역사는 초대교회가 신약성경의 주요 문서들을 승인하기 위해 기울였던 객관적(이성적=역자) 노력에 부가하여 주관적인 면에서 다소 기여했다. 즉 논리상 외적(이성적=역자) 검증이 먼저 온다.……성령께서 성경 목록 중 어떤 한 책과 다른 책과의 차별점을 직접 인간에게 지시하신다고 인식하기는 곤란하다.
만약 성령의 내적 증거가 정경성 분별에 충분하다면 이 근거에서 신약 성경의 모든 논란되는 본문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보게 되고, 그리하여 원전비평학(原典批評學)의 필요성의 제거가 가능해질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정통한 사람이면 아무라도 성령의 증거가 이 분야에서 적절히 요구될 수 있다고 확언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것이 칼빈의 입장이다.
성경의 영감에 관한 개혁주의 주경학의 표준적 견해의 하나는 B. B. 워필드의 디모데후서 3:16의 [하나님의 감동]에 대한 해석인데, 그는 [하나님의 영감]은 결과 면에서보다도 원리면에서 더 중요하다고 풀이함으로서 영감의 외래성(外來性)을 확립시켰다. 즉 성경의 기록상의 오류의 유무(有無)보다도 성경에 내재(內在) 하게 된 하나님의 뜻(구속계시)의 외부로부터의 초자연적 투입이 영감의 주요 목적이라는 것이다.
합리주의 및 이신론(理神論)의 계시관에 대한 G. 보스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이와 같은 그릇된 영향에 반대하여서 계시의 문제를 취급하는데 있어서 우리가 추종하는 다음의 원리들을 명백하게 제시하는 일은 중요하다. ① 모든 정당한 신학적 용어(用語)에 있어서 필수적인 계시라는 어휘의 무오(無誤, infallible)의 성질을 인정(recognition)할 것, 이것이 유신론의 진수(眞髓)이다. 만일 하나님이 인격적이시고 의식적인 존재이시라면 그가 자신을 계시하시는 모든 표현에서 그는 그의 성품과 목적을 그릇됨이 없이 표시하시리라는 생각은 불가피하다.
그는 세계를 향하여 그의 사상에 신성(神性)의 인을 쳐서 전달하실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이 세계의 제한성과 상대성 안에서만 자신을 계시해야 하고, 그의 표현의 수단이 세계와의 교통에 방해가 되는 이유를 하나님의 존재 안에서 찾아야 하게 된다. 이와 같은 견해의 배경은 분명히 유신론이 아닌 범신론이다. ② 성경신학은 또한 계시의 기초의 객관성(objectivity)을 인정((recognition)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참된 교통은 외부(ab extra)로부터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사실을 [기계적 영감설](dictation view)이라고 무시하는 태도는 공정하지 못하다.
'구술'(dictation)의 개념이 천시될 이유가 없으며, 하물며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는 더욱 그렇다. 또 계시를 받은 사람들이 이 방법으로 받은 적이 흔히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부인하는 일은 과학적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입장은 모든 계시가 이와 같은 객관적 방법으로만 왔다는 것은 아니다. '주관적 계시'라고 정당하게 부를 수 있는 요소가 있다. 즉 인간의 의식의 저변에 성령이 역사하여 거기로부터 하나님의 목적하신 사상이 솟아오름을 말한다. 이와 같은 계시의 표본을 시편에서 보게 되며, 선지서에 나타난 시편을 닮은 계시들에서도 볼 수 있다.……여기서 계시와 영감이 연합된다.……
③ 성경신학은 영감의 문제와 깊이 관련된다. 우리의 연구 대상이 무엇에 기촐를 두었느냐가 여기서 모두 결정지어진다. 만일 우리의 연구 대상이 인간들이 과거에 믿었고 숭배했던 것들로만 이뤄진다면 그 대상이 전에 한 때 유행하던 것들보다 제아무리 참되고 고등한 내용이라 해도 또는 그것이 본질적으로 참되건 그릇되었건, 그것들은 중요하지 않다. 이와 같은 성경신학은 역사신학으로 분류될 수는 있을지언정 주경신학으로 분류될 수는 없다. 그런 성경신학은 성경시대의 교리의역사일 뿐이다. 반대로 우리의 연구의 입장은 그 대상을 하나님의 계시에 둔다. 그러므로 계시의 요소는 우리가 연구한 '진리'가 하나님의 권위에 의해서 우리에게 보장된 것임을 나타내는 것이 된다.
……[완전영감설](doctrine of plenary inspiration)을 부인하는 부분영감설은 성경의 기본 구조에는 없는 현대의 고안물이다. 신약이 구약의 영감에 대하여 말할 때는 언제나 극히 단정적이고 철저한 용어로 표현한다. 이 문제에 있어서 성경 자체의 의식을 살펴보면 우리는 즉시 완전영감설을 깨닫게 되고, 그와 반대되는 입장은 전무함을 깨닫게 된다." H. 리델보스는 튀빙겐(T bingen) 학파 등의 자유주의 신학을 [부끄러운 새 연구 방향]으로 규정한다.
다음으로 성경의 정경성에 관한 개혁주의 성경학의 중요한 연구 결과의 하나는 정경성과 그리스도와의 관계이다. 과거 200년 간에 개혁주의 주경학은 정당하게 복음서 연구에 치중하였고, 그 결과 "이제 복음서 연구는 더 나갈 데가 없을 정도까지 진전됐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발전했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연구가 크게 진흥된 것이 20세기의 성경학의 한 특징이 되었다. 그리하여 성경의 정경성과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대하여 개혁주의 성경학은 "성경의 정경성의 기본 원리는 모든 성경이 그리스도를 증거 한다는 사실에 기초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G. 보스는 성경과 그리스도와의 기본적 관계에 대하여 "계시는 속죄(redemption)의 해석이며, 하나님의 말씀은 불가피하게 그의 구속 행위를 주제로 삼는다. 사실에 있어서 구속을 떠나서는 계시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으며, 계시는 공중에 뜨고 만다"고 보았다.
⑶ 주경(註經, Exegesis)
주경의 과제는 성경 원어 및 그 배경사(背景史)의 이해 등의 기초적 연구를 통하여 성경의 본문 자체의 의미를 있는 그대로 해득함에 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인간의 수동적 자세가 기독교의 근본 성격이며, 동시에 주경이 기독교학에서 반드시 우선시 되어야만 하는 이유가 설명된다고 G. 보스는 지적했다.
해석학과의 밀접한 관계 밑에 일찍 기원전 1세기의 유대인 학자들, 힐렐(Hillel)과 샴마이(Shammai) 등에 의해서도 이미 그 원리들에 관한 연구가 있었고, 어거스틴도 주경의 이론을 개진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성경해석사에서의 어거스틴의 위치가 그의 성경 원어 이해의 부족, 그릇된 풍유적 해석, 과도한 교리화(敎理化)의 오류의 선례를 남긴 인물로 기록된 점은 유감이다. 주경의 바른 원리들은 그후 10세기를 기다려서 종교개혁자들의 시대에 이르러서야 세워졌다.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전2:11)하신 성경의 원리에 근거하여 신학의 4대 분야의 구분-주경신학, 역사신학, 조직신학, 실천신학-에서 주경신학이 수위에 오는 이유를 고찰할 수 있다. 주경신학의 수위성의 이유는 신학 연구에 있어서는 그 연구자가 언제나 수동적이고 수용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본연적 인식이 그 기저(基底)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태도의 전제는 모든 참된 주석학의 특징이다. 주석이란 단연코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인간은 듣는 과정이다.
G. 보스는 또 시편과 같이 저자의 주관적 활동을 허용하는 성경의 영감성에 관하여 이렇게 풀이한다: "시편의 기록은 계시와 영감이 주관적 형식으로 유착(癒着, coalesce)된 형태, 즉 계시의 본래 성격인 외래성(外來性)과 주관적 계시의 성격이 겹쳐진 형태이며, 이 주관성을 여타 모든 성경 계시의 이해에 적용하려는 현대주의의 연구는 경계해야 한다. 계시의 본성은 외래적이며, 따라서 주석의 기본 자세는 수용적(receptive)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계시의 해석자의 지위와 능력은 계시 자체의 성격인 은혜성에 따라서 하나님께로부터 해석자에게 주어져야 함을 예컨대 예레미야서 1:7-10, 6:27 등에서 볼 수 있다. G. 보스는 하나님께서 모세로 하여금 바로에게 신(神)이 되게 하셔서 하나님의 계시의 권위적 대언자와 해석자를 삼으셨는데(출7:1),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그 권위의 근거를 설명하실 필요가 없이 모세가 그것을 이해한 사실은 계시 해석자의 지위와 능력의 은혜성을 설명한다고 보았다.
프란시스 베이컨(F. Bacon, 1561-1626)이 "성경의 예언들은 즉시 정확히 성취되는 것이 아니고, 어떤 예언의 핵심이나 그 충만한 성취가 어떤 한 시대와 관계가 있을지라도 예언의 대다수는 여러 세대에 걸쳐서 샘솟듯이 또는 생물의 성장과정 같이 점진적으로 성취되어 간다"고 본 점이나 "성경은 언제나 정연한 이론과 이를테면 전능자에게 사람이 기대할만한 총괄적인 기록을 제시하는 글이 아니라"고 지적한 울리(P. Woolley) 교수이 말은 계시 해석자에게 신중성과 준비성이 요청됨을 보여준다.
개혁주의 성경학은 주경을 한 경건생활로 간주하며, J. 칼빈의 [기독교강요]의 부제(副題)가 "경건총론"(Summa Pietatis)이였음을 항상 기억한다.
H. 바빙크의 제자였던 란드베르(Landwehr)는 바빙크 교수가 강의 시간에 진리에 의한 감흥(感興)이 일어나면 그의 강의는 설교로 변했다고 전한 사실이나, 그가 임종시에 남겼다는 다음의 말은 개혁주의 성경 학자의 정신을 대언한다: "이제 내 학문은 내게 아무 쓸모가 없고, 내 교의학도 그렇다. 나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내 믿음 뿐이다."
R. B. 개핀 교수가 "구속사적 성경해석의 입장은 한낱 주석적 사치(exegetical luxury)가 아니라고 말한 바와 같이, 개혁주의 성경학은 과도하리만큼 철저한 주경을 힘쓰는 동시에, 그것이 한낱 현학(衒學, illuminati)에 이르지 아니하도록 경계한다. 이점은 이하에서 자주 거론될 개혁주의 성경학의 성경 이해들 중 중요한 항목의 하나인 복음서들의 기록의 생략적 성격(elliptic character)이 성경해석과 설교에 미치는 중요한 영향을 논할 때에 상세히 취급될 것이다.
⑷ 성경신학(Biblical Theology)
1948년에 초판이 발행된 G. 보스의 {성경신학}의 서문에서 저자는 종래의 신학의 4분야(주경신학, 역사신학, 조직신학, 실천신학)에 성경신학을 주경신학 다음에 삽입시켰다. 그는 개혁주의 신학 자체가 성경신학적 성격을 소유한다고 보았으며, 성경신학의 확립과 발전에 일생을 바쳤다. 그 후 그의 영향을 받은 대학자들의 노력으로 말미암아 성경신학이 20세기 후반의 가장 중요한 신학분야로 정립된 경위는 위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다.
성경신학은 이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조직신학이 기정화(旣定化)된 계시를 논리적으로 배열(교리화)하는 임무를 수행함에 반하여, 성경신학은 계시의 발전 과정의 역사적 검증(historical verification of the progressive process of revelation)을 과제로 삼는다. 보스가 [성경신학]이라는 명칭보다 차라리 [특별계시사](History of Special Revelation)라는 명칭을 선호했던 까닭이 여기 있다.
T. D. 버나드는 하나님의 유일하고 완성된 계시에 대한 인간의 점진적 이해의 단계들을 아래와 같이 고찰했다. 그 목적은 "사건들의 시대적 연속성을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상의 실제적 발전성을 추리할 목적에서였다"(p.7).
"그러나 신약에 오면, 전진은 빠르고 계속적이다. 전에는 일보(一步)가 천 년 같았으나 이제는 수년으로 단축된다. 베들레헴의 구유로부터 시작하여 하늘에서 내려오는 도성 예루살렘까지의 위대한 사건들이 우리 앞에서 한 번의 정지도 단절도 없이 전개되어 나간다. 그것은 자연의 과정이나 인간의 감정과도 일치하는데, 준비는 서서히 되나 최후의 단계는 신속히 매듭지어지는 것과 같다. 삶이 박진(迫眞)해지면 전진은 지체됨이 없으며, 완만한 진보는 있을 수 없다"(p.37-38).
"이와 같이 시작된 교훈의 발전은 계시된 진리와 그것을 받는 지성의 상태의 합작물이었다(p.29, 215). 이와 같은 기독교의 진리를 인간이 이해해 온 역사는 어떤 의미에서 전진의 역사이며, 거기에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시고 하나님 자신의 형성작업이 가담한 진보의 역사였다"(p.30).
"이와 같이 성경의 점진적 교훈(교리)은 교회의 생동적 사역과 관계되어진다. 이 주제가 오늘의 비평적 학문과 어떤 연관을 가지는지는 긴 설명이 필요치 않다. 모두 아는 바와 같이 오늘의 성서 연구는 성서의 각 책의 내부적 특성들과 그것들의 상호 관계에 대한 세밀한 공력을 들이는 분석이며, 더 구체적으로는 성경의 교훈들의 상호 관련성, 그 교훈들의 분량과 형태의 비교를 주안으로 삼는다.
비평학자들의 연구의 실제 방법들을 보고 우리가 염려하고 비탄하고 분노까지 느낄지라도, 그와 같은 연구들을 통하여 계시의 점진적 성격은 교회의 지성에게 더욱 명백히 드러나고 있으므로 우리는 감사할 수 있다. 계시의 점진적 단계들에 관한 어떤 주제의 연구들이라도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구원에 대한 보다 철저한 인식으로 우리를 인도할 것을 우리는 기대해야 하며, 그것은 동시에 성경을 상고하는 사람들을 구원의 계획자이신 하나님의 지식에 보다 밀접한 자리로 안내해 줄 것이다"(pp.20, 27, 186-188, 193).
F. W. 화라(Farrar)는 "성경은……여러 경전들 중에서 명백하게 점진적 계시의 책이라는 점에서 독자적인 자리에 서 있다. 즉 성경 전체를 통하여 그 가치와 중요성이 다 동일하지 않고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의 계시들이 각각 단편적으로 또는 다양하게 주어져 있다. 옛 성인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그것들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언어는 인간 언어의 모든 일반적 조건들과 제약 밑에 놓여 있었다.
랍비 이스마엘(Ismael)이 말했고, 마이모니데스(Maimonides)가 자주 인용했던 격언, '율법은 사람의 아들들의 혀를 통해 말한다'고 한 바와 같다. 그러므로 해석자의 하나의 목표는 그 영감받은 교사(성경기자=역자 주)의 의미하고자 한 특수한 뜻을 청중들에게 전달하는 일인데, 그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증거하려는 성경의 신적 권위는 그 단순한 의미와 본래적 숭고함과 점진적 계시의 다양한 기록으로서의 성경의 권위이다"(p.6).
"성경은 항상 전진하는 계시였다. 따라서 성경해석 원리의 점진성은 계시가 우리에게 주어졌던 조건으로서의 점진적 상태에서 이미 조건지어졌다고 우리는 기대해야 한다"(p.9).
H. 바빙크는 히브리서 1:1에서 하나님의 계시의 "여러 시대와 여러 사건들을 통한 발전성"을 풀이했다.
돌이켜 보건대 성경 전체가 한 권의 [성경신학]임을 우리는 알 수 있으며, 모든 성경 기자들, 특히 선지자들과 사도들은 정당한 의미에서 본격적인 [성경신학자들]이었고,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들과 사도 바울의 서신들에서 이것을 볼 수 있다고 할 만하다.
크리소스톰과 어거스틴 같은 초대교회의 탁월한 기독교 사상가들에서 이미 성경의 이해에는 성경신학적 접근의 중요함이 시사된 바가 있었고, 토마스 아퀴나스(T. Aquinas, c. 1225-1274)에게서는 이교화(異敎化)된 기독교 철학이 성경신학에 접목될 때 어떻게 성경신학 자체와 기독교 자체를 오도(誤導)하게 되는가를 잘 볼 수 있다.
따라서 본격적인 성경신학의 원형을 우리는 칼빈의 {기독교강요}(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에서 만나게 되며, 당연한 결과로서 영국의 청교도와 화란의 개혁교회와 미국의 구 프린스턴의 큰 학자들은 대부분 칼빈의 성경신학적 학풍을 따르게 된 것이었다.
영국의 존 오웬(Owen, 1831-1903), T. D. 버나드(Bernard, 1837-1920), 화란의 A. 카이퍼(Kuyper, 1837-1920), H. 바빙크(Bavinck, 1854-1921), H. 도이빌드(Doyeweerd), 미국의 죠나단 에드워즈(J. Edwards, 1703-1758), C. 핫지, J. G. 메이췐(Machen, 1881-1937), 그리고 근년까지의 현역학자들인 H. 리더보스(Ridderbos), L. 모리스(Morris), J. 예레미아스(Jeremias), R. T. 프랑스(France) 등 저명한 성경학자들 거의 모두가 주경학자들인 동시에 칼빈학파의 성경신학자들인 사실을 보더라도 20세기에 있어서의 성경신학의 위치와 그에 대한 칼빈의 영향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C. 반 틸의 기독교 변증학의 핵심이론인 [전제적 칼빈주의론](Theory of Presuppositional Calvinism)도 그 뿌리는 칼빈주의적 성경신학에 두고 있음은 물론이다. E. P. Clowney는 그의 저서 Preaching and Biblical Theology(Eerdman, 1972)의 전체에 걸쳐서 성경신학을 바로 알지 못하면 바른 설교를 할 수 없음을 역설했다.
"해석자는 역사가여야 한다"는 20세기의 기독교학의 전진적(前進的) 자세와, "구속사(Redemptive History)는 지식이나 교육이 아닌 화육(incarnation)이며 생활이다" 라는 개혁주의 성경학의 전제의 중요성에서 볼 때 성경신학은 앞으로 더욱 관심의 대상이 될 전망이다.
이하에서 성경신학이 무엇보다도 개혁주의적 성경 해석학과 설교학과 어떻게 밀접한 관계에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 계속
출처 :고동엽(ikorea) 교회개혁 공간 원문보기▶ 글쓴이 : 바른교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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