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벼르고 별렀던 구본창 사진작가의 <항해>를 보러 갔습니다
그동안 옆지기 입원
소소하게 내 병원
전시회 준비 등으로 얼마나 바빴던지 좋아하는 전시회 노래만 부르고 못갔었습니다
우리나라 사진작가의 1순위라 하여도 아무도 뭐라할 사람 없는 구본창 선생의 전시를 드디어 마주하는 순간입니다
제가 파란색으로 작게 쓴 글씨는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
구본창의 항해
서울시립미술관은 2024년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개관을 앞두고 한국 현대사진뿐만 아니라
동시대 미술을 대표하는 구본창(具本昌, 1953) 작가의 회고전 《구본창의 항해》(2023.12.14.- 2024.3.10.)를 서소문 본관에서 개최합니다.
구본창 작가는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한국 현대사진의 시작과 전개에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가 작가이자 기획자로 개최한《사진 새시좌(視座)》(1988.5.18.-6.17.,
워커힐미술관, 서울)에 출품된 작품들은 '연출 사진 (making photo)'이라는 새로운 형식으로 한국 사진계와 미술계에 일대 파란을 일으켰습니다. 사진이 객관적 기록이라는 전통적 역할을 뛰어넘어 회화, 조각, 판화 등 다양한 매체의 속성을 반영해 주관적인 표현이 가능한 예술 세계라는 인식은 그의 전작품을 관통하며 한국 현대 사진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구본창 작가의 이번 대규모 회고전은 작가가 내성적이고 섬세한 기질을 지녔던 소년 시절부터
현재까지 수집해 온 사물과 이를 촬영한 작품, 중학생 때 제작한 최초의 <자화상>(1968)을 포함한 사진들, 대학생 때 명화를 모사한 습작 등 그간 접하기 어려웠던 작품과 자료를 선보이는
'호기심의 방'으로 시작됩니다. 이어 작가가 유학 시절부터 제작한 <초기 유럽>(1979-1985) 시리즈부터 최근의 <익명자>(1996-현재)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총 50여 개의 작품 시리즈 중 선별한 43개 시리즈의 작품 500여 점과 자료 600여 점을 시기와 주제에 따라 '모험의 여정', '하나의 세계', '영혼의 사원'이라는 부제 하에 전시합니다.
《구본창 사진전》(2001.5.4.6.24., 로댕갤러리, 서울)으로 대중에게 각인된 <태초에>(1991-
2004)와 <굿바이 파라다이스> (1993-2002) 시리즈, 그리고 《구본창》 (2006.77-730.
국제갤러리, 서울)으로 조선백자를 국내외에 널리 알렸던 <백자>(2004-현재) 시리즈는 사실 그의 깊고 넓은 작품세계 일부라 할 수 있습니다. 본 전시는 도시풍경을 스냅 형식으로 담은 작품, 자신을 피사체로 삼아 다양하게 변주한 작품, 자연을 추상적으로 형상화한 작품,
오래된 사물이 지닌 손길과 시간을 섬세하게 담은 작품 등 다양한 소재와 형식의 작품을 폭넓게 선보입니다. 특히 1989년 단체전에서 단 한번 일부 소개됐던 솔라리제이션(solarization) 기법의 <무제>(1989) 시리즈를 전시해 작가의 독특한 초현실적 미감을 보여줍니다. 또한 임진왜란, 일제강점기, 6·25전쟁, 군사독재라는 굴곡진 역사를 간직한 광화문 부재를 낮과 밤에 기록한 <콘크리트 광화문> (2010) 시리즈를 최초로 발표합니다. 이러한 작품에 더하여 주요 관련 자료를 전시하고 충실한 설명을 덧붙여, 감각적인 사진 안 깊은 곳에 켜켜이 쌓인 그의 노고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완전히 드러내 작품의 참모습을 널리 알리고자 합니다. 또한 작가의 성장 과정, 시기별 작품 전개 양상, 국내외 인사와의 인연과 영향, 국내외 전시 참여 계기와 전시기획자로서의 면모 등을 면밀하고 체계적으로 작성한 연보를 통해 구본창 작가와 한국 현대사진이 어떻게 연결돼 발전되었고 해외로 확장됐는지 상세히 파악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는 작가가 지녀 온 오래된 열성적 수집 습관을 바탕으로 작품 및 전시 관련 자료를 소중히 보존해 왔기에 가능했습니다.
자신의 길을 찾아 용기 내 먼 항해를 떠났던 1979년에서 45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구본창 작가의 작품은 국내외 유수의 미술관에 소장되었고, 전시 역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작가가 그간 작업을 위해서 전국 곳곳을 찾아다녔고 세계 각지를 누비고 다녔으며, 원하는 대상을
만나기 위해서 수년에 걸친 기다림도 마다하지 않았던, 지난하지만 기꺼운 여정 끝에 다다른 눈부신 결과입니다. 그동안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 기획자로 국내외 전시를 통해 한국 사진의 세계화에 이바지했고, 한국 사진계의 선배, 동료, 후배들의 작업을 적극적으로 해외에 알렸으며 시대를 앞서가는 실험적인 작품활동으로 사진을 현대미술의 장르로 확장해 온 구본창 작가의 회고전은 여러모로 유의미한 전시입니다. '구본창의 항해'를 따라 너와 나, 우리의 존재와 삶의 의미에 관해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화상
Self-Portrait, 1972
젤라틴 실버 프린트 Gelatin silver print
11x9cm
친구에게 부탁해 남해 상주 해안가에 앉아
수평선을 바라보는 자신의 뒷모습을 촬영한 사진으로,
언젠가 꼭 저 바다 너머 세상으로 향할 것이라는 다짐을 담았다.
Self-Portrait is a photo of him sitting on
the southern coast of Sangju, looking at the horizon.
It contains a promise that one day he will take an adventure to
the world beyond the sea.
호기심의 방
구본창은 유년 시절부터 사물에 대한 호기심이 남달랐다. 마당에서 발견한 그릇 조각부터 아버지가 해외 출장길에 가져온 인쇄물, 국내외를 오가며 만난 손때 묻은 사물, 심지어 버려진 물건조차 그의 마음에 들어오는 순간 이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진귀한 수집품으로 둔갑했고 이는 종종 작품의 촬영 대상이 되곤 했다. 전시는 그의 수집품을 진열한
호기심의 방으로부터 시작되는데, 이는 근대 초기 유럽의 지배층과 학자들이 자신의 저택에 온갖 진귀한 사물들을 수집하여 진열했던 실내 공간을 의미하는 '호기심의 방 (cabinet of curiosity)'에서 착안했다. 이 내밀한 방에 진열된 사소하지만, 시간의 흐름이 담긴 수집품은 파울로 코엘료(1947)의 『연금술사(1987)에서 연금술사가 주인공 산티아고에게 “삶의 모든 것이 다 표지야(...)천지만물은 그것이 창조되던 태초에는 온 세상이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잊힌 어떤 언어에 의해 만들어졌지. 난 사물들 속에서 바로 이 우주의 언어를 찾는 중이야.”라고 말했던 문장을 떠올리게 한다. 산티아고처럼 자신의 꿈을 찾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모험을 떠난 구본창에게 사물은 그가 자신의 마음에 귀 기울여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이뤄가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표지였다.
유년 시절을 거쳐
독일로 유학 간 그의 작품들이 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초기 유럽 작품들이네요
이런 영화 포스터 작업도 했군요
손 시리즈
로스트 파라다이스 시리즈
숨
<문라이징 III> Moon Rising III 2004-2006
구본창은 1989년 우연히 조선백자 달 항아리와 그 옆에 앉아 있는 여성의 사진을 보고 타국에 있는 조선백자에 안타까움을 느끼며 해외로 유출된 조선백자를 촬영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2004년, 일본 교토를 여행하다 잡지에 실린 백자 사진을 우연히
만나면서 그 사진이 떠올랐고 조선백자를 촬영하기로 결심한다. 일본 교토 고려미술관에 간곡히 쓴 편지를 보내 조선백자 소장품을 촬영한 <백자 KRO 01>, <백자 KRO 02> (2004) 등이 최초의 <백자> 시리즈다. 2005년에는 국립민속박물관과 호암미술관을 비롯해 프랑스
파리 국립기메동양박물관 (Musée Guimet), 일본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The Museum of Oriental Ceramics, Osaka),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등 세계 각국의 박물관을 다니면서 각 기관이 소장한 주요 조선백자 컬렉션을 촬영했다. 마침 영국 런던 대영박물관(The British Museum)에서는 작품 속 달 항아리를 촬영할 수 있었다. 이는 본래 버나드 리치(Bernard Howell Leach, 1887-1979)가 한국에서 구매한 달 항아리였다. 달 항아리는 일제강점기에 들어서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 1961) 등이 일본에서 조선 민예품 전시를 열면서 관심을 끌게 됐다. 백자 달항아리(백자호)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백자로, 17세기 후기부터 18세기 전기의 약 1세기 동안 사옹원(司饔院)의 분원(分院)에서 만들어졌다. 이는 보통 높이가 40cm 이상 되는 대형으로, 크기가 커서
한 번에 물레로 올리지 못하고 상하 부분을 따로 만든 후, 두 부분을 접합하여 완성하기 때문에 만들기와 굽기가 어렵다. 전체적으로 둥글지만 접합면으로 인해 살짝 이지러져 방향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모양을 갖기도 한다. 불완전한 아름다움이 달 항아리가 가진 큰 미덕이다.
바닥지름이 입 부분 지름보다 짧으며, 유백색(乳白色)의 둥근 형태가 보름달을 연상시켜 일명 '달항아리'라고도 불린다. 이러한 백의 미와 둥근 조형미는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우리나라 백자의 대표적인 형식이다. 항아리마다 백색의 정도가 다르고, 한 항아리에도 불완전 연소나 산화로 다양한 백색이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수화 김환기(樹話 金煥基, 1913-1974)는 이러한 특징을 “나는 달 항아리에서 어떤 결함도 본 적이 없다. 그것은 둥글지만 항상 같은 모양은 아니다. 그것은 흰색이지만 항상 같은 흰색이 아니다. 그것의 단순한 둥근 형태와 순백의 색에서 신비롭고 복잡하며 섬세한 아름다움이 나온다.”라고 정확히 표현했다. 야나기와 친분이 있던 리치는 한국 골동품점에서 달 항아리를 샀고 1935년 귀국하면서 “이것을 영국에 가져가는 게 나에게는 더없는 행복이다”라고 말했다. 리치는 전쟁을 피해 그의 제자 루시 리(Dame Lucie Rie, 1902-1995)에게 이를 맡겼고, 리가 사망한 뒤 대영박물관이 한빛문화재단과 화정박물관 설립자인 화정 한광호 박사(1923-2014)의 기부금으로 리치의 달 항아리를 소장할 수 있었다. 구본창은 이를 포함해서 국립중앙박물관, 호암미술관, 호림박물관, 아모레퍼시픽 미술관(2점), 파리 국립기메동양박물관 (2점), 교토 고려미술관, 도쿄 일본민예관(2점),
오사카시립동양도자박물관 등 각기 다른 곳에 소장된 달 항아리 12개를 촬영해 <문라이징 III>을 제작했다. 각기 다른 흑백조를 지닌 달 항아리의 나열은 달이 뜨고 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듯하다. 달 항아리의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그의 창조적 발상과 표현을 보여주는 대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나머지는 내일 올리겠습니다
첫댓글 _()_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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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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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신 와중에도 좋은 사진전 둘러보고
작품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이 이리도 다양하고 드라마틱한 예술인 줄 미처 몰랐습니다.
사진도 미술이나 음악처럼 독자적인 예술영역임을 느낍니다
고맙습니다 _()_
유명한 작가는 뭔가 다르겠죠..
나름 자신의 세계를 구축할 것이며 보는 눈도 다르고 추구하는 가치도 다르겠지요
얼마나 인류애가 있으며 휴머니즘적이고 평화를 강조했느냐하는 점은 잘 알지 못해서 모르겠군요
자연적인가도
창조적 작품을 만들려고 한 것 같아보이네요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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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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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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