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문 1 외 4편
박용숙
그해는 바람이 바람을 불게 하였다
펜타곤 숭배하는 소도시, 그해 유월은 시절보다 이르게 찾아온 더위 탓인지 소문이 무성하게 자라났다 푸른 붓과 붉은 칼의 대결이 칼의 승리로 끝나자 새바람이 낳은 복두쟁이는 살생부를 소설처럼 읽어 내렸다 시민들은 4년 만에 흥행하는 이야기에 점점 귀가 자라났고, 음유시인들은 당나귀 귀라며 큰소리쳐 보지만 속내는 여름밤 뻐꾸기처럼 잠 못 들었다
전설 횡행하는 여우골, 그해 팔월은 일찍 찾아온 선선한 가을바람 탓인지 소문은 금세 풀이 죽었다 먹잇감 기대했던 까마귀는 허공만 배회했고, 실개천의 흰 두루미는 속 빈 우렁만 바라보며 목 길게 빼었다 처음부터 사람들은 이마의 땀 식혀 줄 선풍기는 바라지도 않았다 언감생심, 부채 하나씩은 어찌어찌 탕감해주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에 잠자리 뒤척였다
사람이 사람을 간택하던 그해는 가슴에 구멍 숭숭 난 불면증 환자만 양산했다.
풍문 2
빛 좋은 어느 날 열어젖힌 항아리 한 줄기 바람마저 임자 술맛이 제일이라며 귀엣말로 속삭이던 그날 밤이었을 거야 대청마루 거닐던 대감마님 헛기침만 해대던, 장작 패던 노총각 꺽쇠 킁킁거리며 기웃대던 그날 밤 이후
이녁의 성주단지 비워지는 날 없고, 한겨울 구들장 식을 걱정 없는지 달항아리처럼 살 올랐다며 동네 아낙네들 해 지는 줄 모르고 빨래 방망이질해대는데
취한 달빛이 게슴츠레 뒤뜰로 불러내니 장독대 맨드라미 수줍게 얼굴 붉히고, 이녁 젖가슴같이 허옇고 통통했던 감꽃 소리죽여 고개 떨구던 그날 밤, 성질 급한 밤꽃 내음에 자리 내어주는 오월 부둥켜안은 거라고
산달 맞은 직박구리 시끄럽다.
숨비소리
누구도 가르쳐 준 적 없는
신들린 몸짓
뭍에 나가 살고 싶다던 바람은
파도 소리에 호오이 던져 버리고
해류 따라 떠밀려온 사내 닮은 스티로폼
둥글납작하게 깎고 다듬어져
한 송이 꽃이 되었다
바농질로 이불 천 싸매느라
불턱의 모닥불 밤새 꺼질 줄 몰라도
물질은 더 깊이 더 길게
소라 멍게 전복 해삼 따면서도
사내의 자연산 감정 따고 싶었다
씨알 굵은 별똥별 가득 담긴 테왁에 몸 기대면
든든한 사랑꽃 하나 피어나는 것이어서
감귤보다 탐스러운 젖가슴
갈치보다 빛나는 몸뚱이
파도에 맡겨 춤도 추고 싶었다
제주 앞바다, 사내의 부표 사라지던 날
호오이 호오이 꽃보다 처연하게
갈매기도 숨죽여 울었다.
꽃샘추위
광개토대왕이 말 달리던 이전부터
동토는 본디 내 영토였다
수다쟁이 봄꽃 처녀의 살 뜨거운 콧소리
귀 후끈 달아오르게 할 때도
의기양양 칼바람으로 옷깃 세우던 나였다
조바심 난 벌과 나비들
잠자는 초경 깨워 붉은 입술 터트릴 때도
나의 건재함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나이테 한 줄 더 그려주며
우주 섭리란 말로 그럴싸하게 포장하여
계절 뒤꼍으로 밀어내려 할 때나
대문 가로질러 써 붙인 立春이란 글자에
점점 의식 희미해져 갈 때도
그저 잔기침만 콜록거렸다
세상의 바람난 꽃들이여!
하룻밤의 찬 인연일지라도 섭섭하다 생각지 마라
시샘이나 부리는 투정쟁이라 헐뜯지도 마라
그대 응원할 연합대군 동남풍으로 몰려온다 해도
비겁하게 꼬리 내릴 내가 아니다
세상 모두 내 편이 아니라 해도
아직은 알뿌리 튼실한 붉은 동장군이다.
달걀을 까다가
박용숙
껍질 까다가 속살 툭 떨어져 나갔다
손에 쥐기도 뜨거운 것을
소지 올리듯 요리조리 후후 불며 재촉하더니
참을성 없이 지내 온 내 삶처럼 부서져 내렸다
달빛 한 줌 넣어 다시 살살 발라보지만
손에서 떠났다면 이미 내 것은 아닌 것
뜯기고 깨져 울퉁불퉁해진 자태에 짜디짠 소금 세례
한때는 쓰리고 아픈 벌인 줄 알았는데
세상사, 너무 순탄해도 재미없는 것
오늘은 우묵한 곰보조차 환한 정월대보름
달무리 한 입 부럼처럼 베어 무니
아, 숨어 있는 황금 덩어리
아픔 뒤에 찾은 보석이다.
박 용 숙
어머니는 양은 쟁반에 콩 한 바가지 또르르 부으시고 침침한 눈 비비시며 마치 제 새끼인양 손바닥으로 휘 어루만지십니다. 쭈글쭈글 못 생기거나 한쪽 귀퉁이가 떨어지고 썩어 뭉그러진 것들은 고달팠던 인생 바가지에 따로 담깁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애처로운 시선은 쭉정이를 떠나지 못하십니다. 잘못 골라낸 녀석은 없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십니다. 그리고는 이도 저도 쓸모없는 것들을 퇴비장에 던지시며 다음 생에는 꼭 알곡으로 자라라는 당부의 말씀도 잊지 않으십니다.
지금까지 저는 부모님께서 지어 주신 이름 석 자는 온데간데없이 누구누구의 엄마라는 이름으로, 무슨 무슨 팀장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왔습니다. 자존감이 낮았던 저는 늘 쭉정이였습니다. 그러던 중 제게도 행운의 여신이 찾아왔습니다. 도서관에 근무하게 되면서 시라는 새로운 세상과 마주하게 되었으니까요. 언젠가는 푸른 싹을 틔울 수 있을 거란 꿈도 꾸게 되었습니다.
쓴 시를 책상 위에 또르르 부어봅니다. 알곡보다 쭉정이가 많은 것을 보니 아직은 어리숙한 농부입니다. 시를 쓰기엔 생각의 근육이 밋밋하고 싱거워 소금을 짠하게 쳐보기도 하고 달달한 설탕을 뿌려보지만 도무지 감칠맛이 나지 않아 제 길이 아닌 듯하여 몇 번이나 되돌아보곤 합니다.
애지 신인문학상은 제게 ‘시인’이란 새로운 이름을 주셨습니다. 새 이름의 설렘 위에 두려움이란 간을 살짝 얹어봅니다. 아직은 어색하고 낯선 제 이름에 노란색 프리지어 한 다발을 선물하며 응원도 해봅니다. 제2의 인생 전환점을 마련해주신 반경환 대표님을 비롯한 심사위원님과 시적 상상력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키워주시고 백지에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갈 수 있도록 지도해 주신 박주용 시인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늘 젖은 그늘처럼 저를 걱정하시는 팔순 노모를 비롯한 가족들, 시 쓰는 엄마를 은근히 응원해준 딸과 아들, 지인을 비롯한 시를 사랑하는 여러 문우와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좋은 콩으로 정성껏 발효시킨 친정집 칠갑산 청국장처럼 두고두고 먹어도 질리지 않고 깊은 맛을 우려내는, 가마솥 장작불처럼 세상 향해 따뜻한 손 내밀 줄 아는 그런 시인이 되겠습니다.
박용숙 충남 청양 출생. 계룡시청 공무원. 향적시 동인. 이메일 pyss710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