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에 대하여는 상세하게 명상 수행란에 기록한 바 있습니다.
이 곳에서는 그저 화두의 원리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와 위의 명상란에 적지 못한 내용을 추가 합니다.*
화두는 깨닫기 위한 짧은 단어나 문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모든 화두는 의정을 일으켜서 생각을 묶어 두는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화두 그 것이 진리이기에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선 의정을 일으키는가 아닌가에 따라서 그 중요도가 달라 진다고 할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화두도 당해인에게 의정을 일으키지 못하면 "죽은 화두"라고 말해집니다.
의정이 어떤 것인가에 대하여는 일단 경험하여 보아야 압니다만,
라마나 마하리쉬님의 "내가 있다는 느낌" 과는 그 역할 면에서 비슷한 것 같습니다.
조주의 "무"라는 화두의 경우 "왜? 무인가?" 하는 의심에 있어서 그 의심을 불러일으킨 사정에 대하여는 잊어버리고 다만 그 의심하는 마음 또는 의식상태가 의정이고 이를 계속 유지 시키는 것이 화두 공부입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화두에는 정해진 답이 없습니다.
선문답의 경우 그것이 의심을 일으킨다면 그 당해인은 깨달음이 없거나 있더라도 그 선문답을 알기에는 모자라는 상태이며, 따라서 그 의문을 일으킨 선문답 자체가 "화두"가 된다고 할 것입니다.
따라서 대 부분의 선문답들은 일정한 답이 없습니다.
동일하거나 비슷한 선문답의 경우에도 많은 선사님들이 다르게 또는 모순(상반)되게 말하곤 합니다.
사실 답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이해를 구하여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깨달은 의식을 간단하게 표현하는 것으로 그러한 의식이 없다면 전혀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행동(할이나 방망이, 또는 무위)로 답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몇 몇 선문답은 그 어느 책에도 그 답이 전혀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답은 감히 누구든지 그 답을 쉽게 달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이 선문답을 타파한 사람은 쉽게 알게 됩니다.
이 경우의 선문답은 대게 그 답의 유형이 상당히 적어서 한 두가지 밖에는 안되고 그 답을 적어 놓으면 그 선문답은 그 생명을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금성철벽처럼 보이나 그 답이 알려지면 그 생명이 그냥 끝나게 되는 것으로는 다음을 꼽을 수 있습니다.
다만 읽은지 오래 되어서 그 내용을 정확히 기술치 못합니다.
그 점 양해 하시기 바랍니다.
1. 저 것을 00산이라고 하면 집착하는 것이요, 아니라고 하면 단견에 빠지는 것이다.
2. 과거심, 현재심, 미래심,
3. 만법은 하나로 그리고 그 하나는 어데로 가는가?
4. 아래는 독사들이 우글거리고 위에는 사자가 으르릉 거리고 밧줄에 매달려 있는데 쥐가 이 줄을 끊고 있고 매달려 있는 당사자는 꿀을 먹는,,, 등입니다.
특히 위의 세 가지는 특히 이러한 특성이 강합니다.
또한 어느 선사분인가(조주로 기억되는데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가끔 선문답중에 "참으로 훌륭한 '한물건' 이군" 등의 형식으로 답변을 하신 분이 있습니다.
이 답변은 어떤 선문답이든 그것을 위의 몇 가지 화두처럼 그 형태를 변형하는 효과는 있습니다만, 위와 동일하지는 않습니다.
원래 화두는 그 수행이 세속을 떠나서 스승님을 모시고 수행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처음부터 화두수행을 하는 것은 좋지 않고 일반적인 주문 수련 등을 한 후에 시기를 보아서 하는 것이 좋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어떤 수행을 하였든 끝에는 화두수행을 하는 것이 옳습니다.
이유는 화두가 타파되어야 그의 깨달음이 올바른 것이기 때문이며, 화두의 구조를 보면 그 깨달음의 깊이에 알맞도록 여러 가지 심층적인 것들이 있어서 깨달음에 대하여 완벽을 기할 수 있습니다.
기존의 명상가나 학자들 가운데에서는 화두의 이런 성질을 알지 못하고(이는 결국 자신의 깨달음이 그 것에 미치지 못하는 것임) "화두의 언어적 유희" 라는 논문을 발표하는 예도 있습니다.
그러나 화두는 그렇게 평가되어야 할 대상은 전혀 아닙니다.
기타 화두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명상 수행란에 상세히 기록하였습니다.
**언젠가 수행자(화두 수행자로 보여집니다)인 도반으로부터 묘한 선문답을 강요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그 분이 인터넷 상으로 그 어느 책에도 없는 몇 지 선문답을 강요하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여러 가지 대화 끝에 "점심 하였습니까?" 라고 묻기에 그저 편하게 대답하면, 한참 후에 "그 점심이 아니고, 과거심, 현재심, 미래심의 그 어느 심에 점을 찍었습니까? 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 그 분이 아마 몇 몇가지 책에도 전혀 언급이 없는 그러한 화두에 대하여 알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위의 화두는 그저 떠오르는데로 한마디 하였습니다. 그후 그와 비슷한 여러 가지 유형의 화두를 점검한 결과 그 화두의 특성은 누구라도 답을 남기면 그 화두의 생명이 짧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금은 어느정도 후희를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