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양윤영(梁允永) - 천국은 놀라운 음악의 세계 2. 통일원리와 인연
1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매일의 일상이 거의 예수님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맺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사변 후 당시 유행하던 말세관이 내게도 강렬하게 부딪쳐 와 어려운 시련 속에 빠지게 됐다.
2 마음 놓고 잠 한숨 잘 수가 없었다. 촛불을 켜 놓고 성경을 읽다 그대로 잠들면 재림에 관한 꿈을 꾸곤 했다. 예수님은 공중에서 나팔소리와 함께 내려오셨는데, 예수님을 따라 옷깃을 붙잡고 공중으로 올라가다가 놓치면 뚝 떨어져 내리는 꿈이었다.
3 말세와 성경, 그대로 불심판과 구름 타고 강림하시는 재림을 믿어야 할 것인가. 과학적인 토대로 다른 식으로 해석을 해야 할 것인가. 과연 어떻게 믿어야 좋을 것인가. 나는 밤마다 그 악몽 같은 말세의 꿈 때문에 공포감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4 그 무렵 내가 새로운 종교를 접하게 되었는데 바로 ‘여호와의 증인’이었다. 그들의 독특한 성경해석에 매력을 느껴 5개월 동안 다니면서 새로운 신앙을 찾아보고자 했으나, 내가 믿어 온 삼위일체론과 영혼불멸의 원착론에서 너무 거리가 멀어서 끝내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5 다시 나는 새로운 신앙에 대한 갈급함으로 방황하기 시작했다. 하루는 부산에 있던 동생이 편지 하나를 보여 주었다. 유효원 씨가 선생님께 보내는 편지 내용이었다.
6 자기는 이제껏 신앙과 생활의 일치점을 찾지 못해 자살까지 하려고 했으나 살아계신 부모에게 불효가 될까 두려워 죽을 목숨을 산 목숨처럼 살아왔는데, 선생님의 ‘원리노트’를 읽고 새로 부활된 입장에서 삶의 목적을 찾았기 때문에 선생님의 뜻을 따르겠다는 내용이었다. 유효원 씨의 편지는 불안과 두려움 속에 방황하던 내게 섬뜩한 길을 열어 주었다.
7 동생에게 문 선생님에 대한 얘기를 들으며 나는 어쩌면 하늘이 내게 소생하는 은혜를 주실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다음날, 그때가 바로 1953년 10월 18일이었다. 서울 수송국민학교 앞에서 하숙하고 계시는 선생님을 찾아 뵈었다.
8 잠바와 바지 차림이었지만 선생님의 얼굴에는 범상치 않은 기운이 떠돌고 있는 것 같았다. 선생님은 처음 찾아간 나와 동생에게 말씀을 해주셨다. 당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아 이 길을 걷게 된 동기와 인간 구원에 대한 내용이었다.
9 당신의 열변의 말씀 중에는 크게 북받치는 설움과 힘이 담겨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앞에 놓여 있는 성경 책을 들었다 놓으시면서 아담 해와의 타락으로 어지러운 세계를 이 성경만 가지고 구원할 수 있느냐고 외치시면서 하나님의 진리를 찾기 위해 논두렁에 물이 흘러가듯이 눈물을 많이 흘리셨다고 하셨다.
10 겨울 방학이 되어 마침 집에 있었는데 부산 동생으로부터 편지가 왔다. 효원, 효민, 효영 씨들 일족이 모두 문 선생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교회가 크게 부흥되어 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11 부산으로 당장이라도 내려가고 싶었으나 내려오라는 말이 없었기에 내려가지 못하고 있던 중 심한 감기를 앓았다. 기침은 3개월이나 계속되었는데, 아마 내 영혼이 선생님 말씀에 크게 감명되었는데도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적극적으로 따라나서지 못한 탓이 아니었던가 싶다.
12 다음 해(1954년) 4월 초였다. 유효원 씨로부터 원리강의를 들려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효원 씨는 나와는 인척 관계였다. 어릴 때부터 마을에서나 학교에서 신동이라는 말을 들어오던 유능한 젊은이였다.
13 그가 경성제대 재학 시절에 나와 몇 번 만나 많은 얘기를 나누기도 했으나 병으로 휴학을 하고 고향으로 내려 간 후 만나지 못했다. 내가 그를 다시 만난 것은 1.4 후퇴 때 부산에서였다. 그는 당시 자기가 연구한 ‘레자’를 만드는 공장을 차리고 동생 효영 씨와 함께 있었다.
14 그러던 효원 씨가 그런 일들을 모두 팽개쳐 버리고 서울로 올라왔다는 것과 내게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 원리강의를 해주겠다고 제의해 온 것이다. 나는 효원 씨가 혹시 이단의 집단 - 나는 끝내 선생님의 교회가 그 무렵 유행하던 이단의 집단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었다 - 에라도 빠진 게 아닌가 싶어 만나면 그를 설득해서 구원해 내리라고 다짐했다.
15 그래서 내가 효원 씨를 찾아간 것이 그해(1954년) 4월 3일 아침이었다. 그때 효원 씨는 동생 효민, 효영 씨와 함께 북학동(북한동)에 있었다. 나는 그때 생각했다. “미쳤구나, 모두 어쩌려고 이 모양들이야”
16 그러나 한편 예수님을 따라나섰던 베드로와 요한, 야곱이 생각되기도 했다. 효원 씨는 이 길을 걷게 된 동기를 얘기했다. 그는 병으로 7년 동안 누워 있으면서 성경을 공부하던 중 ‘로마서’를 해석할 수 없어 영어 끄릭어까지 동원해 연구하기도 했으며, 자기가 의학을 전공하게 된 것도 인간의 육체까지도 구원하겠다는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다.
17 그러나 그는 자기의 높은 꿈과 이상을 실현시킬 수 없는 현실과의 갈등으로 많은 고민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만나 뵙고 싶었으나 선생님이 부산에 계시지 않았기 때문에 김원필 씨로부터 원리노트 9권(원리원본)을 빌려다가 단숨에 읽었다는 것이다.
18 오랫동안 방황해오던 그는 비로소 광명을 찾은 기쁨으로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선생님에게 함께 이 길을 가겠다는 맹세의 편지를 드리고 나서 이 길로 들어섰다는 얘기였다.
19 나는 평소 그의 사람 됨됨이와, 너무나 진지한 신앙의 간증을 통해서 하나님은 이 사람을 결코 ‘이단’에 버려둘 수는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선생님의 교회에 대해 자세하게 알아봐야겠다는 결심으로 원리강의를 듣기로 했다.
20 그 후 유효원 씨로부터 들은 원리강의는 내 정신을 완전히 사로잡고 말았다. 이제까지 신앙을 통해 의심나고 미심쩍었던 일들이 하나 둘 풀려 갔고, 의혹으로 쌓였던 마음 한구석을 통쾌하게 무너뜨리면서 나를 신비경으로 몰아갔다. 이것은 이단 교회가 아니라 진짜 복음의 말씀이라는 판단이 섰다.
21 그리고 이런 진리를 만들어 내신 분은 보통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에 가까운 분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원리를 선포한 주인공은 도대체 누구일까. 불현듯 그분을 만나 뵙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22 그분을 만나면 무언가 굉장히 많은 것과 보다 경이로운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나는 강의 도중에 우선 원리를 선포한 장본인을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곧 만나게 될 테니 염려 마시오’ 하면서 원리강의만 했다. |
첫댓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