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마을 -7
무적검비(無敵劍碑). 그것은 지난 날 만상문을 세웠던 삼광유자
(三狂儒子)가 세웠다는 전설의 비가 아닌가?
유천기는 경이의 눈으로 비석을 바라보았다. 그의 뇌리에 만상부
에서 보았던 삼광유자의 유서가 떠올랐다. 삼광유자는 송대(宋代)
의 기인으로 한때 검왕(劍王)이란 칭호로 무림을 주유했었다.
당시 그는 천하에서 적수를 찾을 수 없자 황산에 올라가 스스로
무적검비를 세웠다고 했다.
지금 유천기의 눈 앞에 우뚝 솟아 있는 낡은 석비에는 희미하게
무적검비(無敵劍碑)란 글씨가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유천기는 만감이 교차하는 것을 느꼈다.
'아, 이것이 바로 삼광조사께서 세우신 무적검비라니, 유구한 세
월에 검비는 닳았으나 이것이야말로 바로 본문의 유적(遺跡)이 아
닌가?'
그는 만상문의 이대문주의 신분이었다. 삼광유자가 남긴 무적검비
는 문중의 보물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유
천기는 무적검비 앞에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절로 숙연한 마음
이 일어나고 있었다.
"엇, 그렇다면 이곳이 바로 시진봉(始眞峯)......!"
잡자기 그렇게 부르짖은 유천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는
무적검비가 세워진 곳이 황산 시진봉이라는 사실을 뒤늦게서야 떠
올린 것이었다.
실로 공교로운 일이었다. 우연히 올라온 곳이 바로 그토록 찾아
헤매던 시진봉이었다니!
그는 가슴이 뛰었다. 주위를 새삼스럽게 둘러보며 그는 자신도 모
르게 긴장되는 것을 느꼈다. 봉우리 위는 평탄하여 대략 두 마장
정도 되는 공지가 형성되어 있었다.
한쪽은 비스듬히 경사진 채 봉우리로 오르는 길을 형성하고 있었
다. 그러나 삼면은 깎아지른 절벽이었다.
북쪽 벼랑 가에는 노송(老松)이 십여 그루 자라 있었고, 그 아래
장방형(長方形)의 커다란 바위가 있었다. 바위는 평평했으며 방원
십여 장이 넘어 보였다.
다른 곳도 살펴 보았으나 눈이 쌓여 있어 자세한 지형은 알아 볼
수가 없었다.
'분명 이곳에서 십전대회가 벌어진다고 했다. 하지만 아무도 없지
않은가? 그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을까? 대회가 무산되었을까?'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럴 리는 없다. 옥환맹의 많은 사람들이 황산에 운집한 것은 틀
림없는 사실이다. 게다가 천사교에서 길목을 지키고 있는 것만 봐
도 대회는 예정대로 개최되었다.'
유천기는 벽에 부딪친 느낌이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시진봉은
그에게 막막한 기분을 주었다. 과연 이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
지 알아낼 길이 없었다.
유천기는 다시 한 번 시진봉을 둘러보다가 눈빛을 빛냈다.
'어쨌든 이곳에서 십전대회가 벌어졌다면 분명 흔적이 남아 있을
것이다. 비록 폭설로 인해 감추어졌다 해도 자세히 살펴보면 반드
시 단서가 나올 것이다.'
그는 시선을 돌려 주위를 살피다가 장방형의 바위에 고정시켰다.
어쩐지 바위 쪽에 마음이 끌리고 있었다.
'저 바위는 위쪽이 평평한데다 꽤 넓어 많은 사람들이 올라 있어
도 좁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 어쩌면.....'
그는 신형을 날려 바위에 내려섰다. 그러나 눈이 수북히 쌓여있어
무릎까지 빠져 들었다.
그는 눈을 치우지 않고는 아무 것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
고 공력을 돋궜다. 이어 장력으로 바위 표면을 서서히 밀어 냈다.
스스스......!
그는 순양지기(純陽之氣)를 발출했다. 그러자 수북히 쌓였던 눈이
녹기 시작했다.
잠시 후에는 그 많은 눈이 거의 녹아 버리고 바위의 면이 드러났
다. 과연 그곳은 편편하여 사람이 앉기에 불편함이 없어 보였다.
유천기는 면밀히 바위 표면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는 사소한 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자세히 살펴보았다.
잠시 후 그는 안색이 변했다.
"이것은 피(血)!"
그렇다. 바위의 표면에는 점점이 얼룩진 선혈이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적은 양이 아니었다. 바위의 여기저기 선혈이 떨
어져 있었다.
그는 핏자국을 조사하다가 그것이 둥근 원진(圓陣)의 형태로 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원진과 그 바깥쪽의 바위 표면을 자
세히 살펴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모두 열 명이다. 바로 십기(十奇)
가 아닐까?'
그들이 십기라면 천하에서 과연 누가 십기로 하여금 피를 토하게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유천기는 의혹을 금치 못했다.
'십기를 공격한 자는 한두 명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흔적이 있
을 것이다.'
그는 다시 바위의 주변을 면밀하게 조사했다. 마침내 몇 가지 흔
적을 발견하는데 성공했다.
바위 주위에는 여러 종류의 발자국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그
것은 다양한 종류였다. 그는 순양지력으로 바위에 쌓여 있던 눈을
녹였으나 바위 표면에는 살얼음이 남아 있었고, 그 살얼음에 발자
국이 고스란히 찍혀 있었던 것이다.
발자국의 크기나 신발 모양으로 미루어, 그 주인을 짐작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으나 어느 정도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참을성 있게 발자국을 관찰했다. 그리고 마침내 결론을 내렸
다.
'세 쌍의 발자국은 여인의 것이다. 그 중 하나는 화혜(華鞋:비단
신)고, 나머지는 피혁신, 또 하나는 초혜(草鞋:짚신)다. 십기 중
우선 떠오르는 여인은 도후(刀后) 축가령이다. 초혜를 신는 것은
여승이 아니면 여도장일 것이다."
도후는 과거 사천제일의 미인으로 꼽힌 적이 있었다. 그런 미인이
라면 가죽신보다는 비단신을 신을 가능성이 짙은 것이었다.
유천기는 끈질기게 바위 면을 관찰해 갔다. 그는 한 점의 단서도
놓치지 않고 살폈다. 다행히도 싸움이 벌어지는 동안 계속 눈이
내렸으므로 발자국이나 핏자국 등이 눈이 덮인 정도에 따라 고스
란히 남아 있어 여러 가지를 추론해낼 수 있었다.
대략 밥 한 끼 먹을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그는 몇 가지 추정을
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십기는 바위 위에 원진의 형태로 앉아 있었다.
그들은 누군가와 내력(內力)의 대결을 벌였다. 그 증거로 그들이
앉아 있던 바위면이 약간씩 패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단단한
바위에 자국이 났다면 그들이 극한의 내공 싸움을 벌였다는 뜻이
된다.
내공 싸움의 결과 십기 중 적어도 육 인이 내상(內傷)을 입고 피
를 토했다. 반면 상대 쪽에서는 열두 명의 인물들이 내력 싸움에
동원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십기와는 달리 직렬로 앉아 있었다. 그 점도 역시
바위면에 난 자국으로 알 수 있었다.
유천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십이 인은 각각 장심(掌心)을 앞사람의 등에 대고 있었다. 이것
은 이른바 차력전력(借力傳力)의 수법이다. 중원에서는 소림사의
연대좌불공(連帶座佛功)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소림사 승려들
은 아니다. 그들이 십기와 싸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주변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발자국들을 통해 이후에 일어
난 일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도 십기를 완벽하게 제압하지는 못했다. 결국 내력
싸움은 끝나고 혼전(混戰)이 벌어졌다. 이 발자국들을 보면... 열
두 명의 발자국 형태가 거의 동일해 보인다. 이런 신발은 중원인
의 것이 아니다.'
유천기의 생각은 계속되었다.
'기이한 것은 발자국이 유난히 깊은 팔 인의 것이다. 이들은 신법
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무거운 것 같다. 게다가 한 번 몸
을 날릴 때마다 껑충껑충 뛴 듯이 보인다. 그런데도 발자국의 깊
이로 볼 때 심후한 공력을 지닌 것 같다. 아마도 십기는 이들에
의해 낭패를 당했을 것이다. 대체 이들이 누구길래......?'
사실 이 정도만 해도 대단한 결론을 이끌어낸 것이었다. 직접 보
지도 않은 상황을 그린 듯이 정확하게 짚어낸 것이었다. 그러나
유천기는 다시 몇 가지를 알아낼 수 있었다.
'십기는 내공 싸움에서 승부가 나지 않자 혼전을 벌였다. 하지만
그들은 자존심이 높고 무공의 종류도 달라 합공(合攻)을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는 연수합격을 했다. 그들은 대략 삽
십여 명이나 된다. 더구나......'
유천기는 바위에서 약간 떨어진 노송 아래 서 있었다. 그곳에서
그는 또 다른 흔적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들 중에는 무공이 극히 뛰어난 삼 인이 있다. 그런데 그들은
한 번도 손을 쓰지 않았다.'
그의 눈은 노송 아래에 멎어 있었다. 노송 아래에는 눈이 쌓여있
지 않았다. 노송의 무성한 가지와 잎 때문에 눈이 떨어지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그곳에는 어떤 식물의 씨앗의 껍질이 어지럽게 많이 떨어
져 있었다. 말하자면 누군가 여유있게 씨앗을 까먹고 있었던 것이
다.
유천기는 씨앗 껍질을 주워 살펴 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은은히
놀라는 빛이 떠오르고 있었다.
'이건 향일화(向日花:해바라기)의 씨다. 혈전이 벌어지고 있는 상
황에서 태연히 씨를 까먹다니...... 그들은 혈전을 관전하며 여유
를 즐기고 있었다. 더구나 장시간 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발자국
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이들의 내공은 이미 조화
지경에 접어들어 몸이 깃털처럼 가볍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천기는 의혹을 느꼈다. 무림에서 과연 누가 향일화의 씨앗을 까
먹는 버릇이 있는지, 그는 기억을 더듬어 보았으나 떠오르는 인물
이 없었다.
씨앗을 까먹는 것은 어린아이나 하는 짓이지 초상승의 무공을 익
힌 고수가 그런 버릇이 있다는 것은 들은 바가 없었다.
그는 계속 추론해 보았으나 그 이상의 것은 알아낼 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싸움의 결과도 미지수였다. 바위면이 여기저기 패여져
나가고, 선혈이 여기저기 얼룩져 있는 것으로 미루어 가공할 혈전
이 벌어진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어느 쪽이 승리했는지는 짐작이 가지 않았다. 다만 삼인의
고수가 싸움에 끼여들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십기가 무사하지는
못했으리라 여겨질 뿐이었다.
그는 탄식을 금치 못했다.
"아, 정말 답답하구나. 대체 그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
가?"
그때였다. 그의 눈길이 절벽 가에 서 있는 노송에 가 멎었다. 그
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 노송은 다른 노송보다 유난히 굵어 보
였다.
그는 무엇인가 느낀 바가 있어 신형을 날려 노송 아래 내려섰다.
"이, 이 자는......!"
그는 노송에 붙어 있는 눈을 털어낸 후 아연하여 부르짖었다.
알고 보니 노송이 굵어 보인 것은 그곳에 한 명이 기댄 채 죽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위로 눈이 덮여 나무처럼 보인 것이었다.
죽어 있는 시체는 일신에 황색의 괴상한 형태의 법복(法服)을 입
은 노인이었다.
법복의 가슴 한복판에는 태양(太陽)을 상징하는 문양(文樣)이 수
놓아져 있었다. 게다가 그는 머리에는 관(冠)을 쓰고 있었는데 관
의 이마 부분에도 태양 모양의 문양이 수놓아져 있었다.
노인은 눈을 부릅뜬 채 죽어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놀라움과 분
노가 어려 있었다.
사인(死因)은 그의 가슴에 나있는 선명한 장인(掌印)이었다.
유천기는 괴상한 차림의 시체를 살펴보며 의아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 복장은 중원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생각을 더듬던 그는 홀연히 떠오르는 한 인물이 있었다.
"그렇군, 이 사람은 바로 십기 중의 광명교주(光明敎主)로 구나!"
광명교주는 태양신(太陽神)을 받드는 이교의 교주였다. 그는 수천
명의 교도들을 거느리고 있으며 십기 중에서도 오래 전부터 이름
을 떨치고 있는 자였다.
유천기는 자신의 추측이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그는 광명교주의
가슴 옷자락을 헤쳐 보았다.
가슴의 살이 드러나자 마치 피가 뚝뚝 흐르는 듯한 선명한 손바닥
자국이 나 있는 것이 보였다.
"이건, 혈(血)...... 수(手)...... 인(印)!"
그는 해연히 놀라 부르짖었다. 놀랍게도 그것은 밀종(密宗) 혈수
인이 남긴 장인이었다.
그는 과거 혈수인을 상대한 적이 있었다. 바로 철금산장에서 화신
(火神) 범패륵이 그 무공을 사용했던 적이 있었다.
유천기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천축인에게 당했단 말인가? 범패륵은 천축에
서 혈수인을 배운 자다. 그러나 이 장인의 색과 깊이로 볼 때 범
패륵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내력이 깊은 자다.'
광명교주의 가슴에 새겨진 장인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선명한 핏
빛이었다. 금세라도 피가 뚝뚝 떨어질 것 같았다.
'혈수인은 만악(萬惡)의 본산이라는 천축 소뢰음사(小雷音寺)에서
파생한 무공이다. 그렇다면 이곳에 소뢰음사의 마승들이 왔단 말
인가?'
그는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사실 천하의 마공은 대부
분 소뢰음사에서 염원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만일 소뢰음사
의 마승들이 중원에 들어왔다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었다. 아니
그보다도 소뢰음사가 천사교와 손을 잡았다면 그야말로 보통 심각
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십기와 내공을 겨룬 자들도 소뢰음사의 마승이
아닐까?'
광명교주가 죽은 지는 이미 오래된 듯 시신은 꽁꽁 얼어 있었다.
유천기는 다시 봉우리 위를 면밀히 검사해 보았지만 더 이상의 단
서는 찾아낼 수가 없었다.
그는 더욱 근심이 되었다.
'숭녕도의 세 분 어른도 이곳에 왔다. 그 분들도 광명교주와 마찬
가지로 당했단 말인가?'
그는 문득 한 가닥 울분이 치솟는 것을 느꼈다. 그는 답답한 마음
에 울화가 겹쳐 참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고개를 들어 길게 장
소를 발했다.
"우......!"
한 가닥 웅후하기 그지 없는 장소성이 메아리치며 멀리 퍼져나갔
다. 그 소리는 눈보라와 강풍을 뚫고 산봉우리와 계곡을 메아리치
며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어찌나 웅후한지 눈보라가 회오리
치고 봉우리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유천기는 한 차례 울분을 토하자 어느 정도 가슴이 후련해지는 것
을 느꼈다. 그는 절벽 아래를 향하고 서 있다가 서서히 돌아섰다.
바로 그때였다.
"흐흐흐......."
문득 음침한 웃음소리와 함께 가슴으로 막대한 음풍이 밀려오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워낙 기척도 없이 갑작스럽게 밀려왔으므로 가슴 앞 한 치
에 이르렀을 때야 간신히 느낄 수 있었다.
유천기는 깜짝 놀랐다. 대체 누가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 접근하도
록 그가 눈치를 챌 수가 없었단 말인가?
그러나 상대를 확인할 여유가 없었다. 막 돌아서는 순간 이미 음
풍이 가슴에 적중되었던 것이다.
그의 몸이 뒤로 벌렁 넘어갔다. 두 발은 절벽 가에 간신히 대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젓혀진 몸은 뒤로 완전히 수평으로 눕혀져
절벽 밖으로 나가 있었다. 그것은 철판교의 신법이었다.
우웅!
음풍은 그의 가슴을 스치고 지나갔다.
"크흐흐흐......!"
이번에는 더욱 음산한 웃음소리와 함께 태산같은 장력이 떨어졌
다. 그러나 이번에는 유천기도 대비가 있었다. 그는 한쪽 발끝을
중심으로 몸을 팽이처럼 회전시켰다. 그러자 그의 몸은 절벽 밖에
서 안쪽으로 향하게 되었다.
그 바람에 상대방의 공격은 또다시 허공을 치게 되었다. 유천기는
퉁기듯이 솟구쳐 올랐다. 허공으로 이 장 가량 솟구친 그는 비로
소 자신을 공격한 것이 두 명의 괴승(怪僧)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
다.
그들은 일신에 핏빛의 가사를 걸치고 있었는데 생김새가 중원인과
는 틀렸다. 피부가 희고 코가 높았다. 이마에 계인(戒印)을 찍지
도 않았고, 목탁 대신에 놀랍게도 사람의 해골을 들고 있었다.
해골은 특수하게 처리한 듯 작은 공처럼 크기가 작았으며 표면에
는 반들거리는 윤이 나고 있었다.
유천기는 허공에 떠올랐다가 서서히 걸어 내려왔다. 그야말로 불
가사의 신법이었다. 마치 허공에 보이지 않는 계단이라도 있는 양
천천히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
"......!"
두 명의 혈포승은 크게 놀란 듯 했다.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더니 뭐라고 중얼거렸으나 유천기로서는 그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한어(漢語)가 아니었던 것이다.
유천기는 마침내 바닥에 가볍게 내렸다. 눈 위에 내려섰으나 발자
국이 전혀 찍히지 않았다. 그는 냉랭한 눈으로 괴승들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누구냐? 무슨 일로 암격하는 거냐?"
그는 상대가 이미 정통 불문의 인물이 아님을 느꼈으므로 처음부
터 살기를 띄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역시 한
어를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대신 괴승들은 서로 눈짓을 주고 받더니 동시에 손을 뻗었다.
슈슈슉!
그러자 그들이 들고 있던 해골이 탄환같이 날아왔다.
사람의 해골을 무기로 사용하다니, 듣느니 처음이었다. 유천기는
꺼림칙했다. 해골을 날려 버리자니 어쩐지 찜찜한 기분이었던 것
이다.
그러나 추호도 방심할 수는 없었다. 해골이 쏘아오며 들리는 경풍
소리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좌우로 날아오는 해골을 피하며 신형을 날렸다. 그러나 어찌
알았으랴, 해골은 마치 눈이라도 달린 듯이 방향을 홱 꺾더니 더
욱 빠른 속도로 그를 향해 쏘아오는 것이 아닌가?
"......!"
소름이 쭉 끼쳤다. 마치 죽은 자의 영혼이 해골에 깃들어 있는 것
만 같았다. 그는 할 수 없이 좌수로는 현옥신공을 날리고, 우수로
는 순양의 벽공장력을 밀어쳤다.
두 가지 다 평범한 대응이었으나 그의 손에서 펼쳐지자 천하제일
의 절기로 화한 듯 했다.
하나는 솜처럼 부드럽고, 하나는 비석을 깰 정도로 강맹한 진기였
다. 두 가닥의 진기는 좌우로 쏘아오는 해골을 적중시켰다.
그러자 현옥신공에 격중된 해골은 허공에서 뚝 멈추었으며, 벽공
장력을 맞은 해골은 펑! 하는 소리를 내며 퉁겨 나갔다.
"억!"
두 괴승의 입에서 놀란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들은 다급히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해골은 빙글! 허공을 반 바퀴 회전하다가 다시
세차게 쏘아 나갔다.
이번에는 전처럼 단순하지는 않았다. 하나는 앞에서, 하나는 뒤쪽
에서 공격했다. 두 괴승은 소매를 맹렬히 휘둘렀는데 그때마다 그
들의 소매 속에서는 기다란 물건이 발출되어 날아왔다.
유천기는 처음에는 그것이 일종의 채찍인 줄 알았다. 그러나 지척
에 이른 순간 깜짝 놀랐다. 그것은 한 마리의 뱀(蛇)이었던 것이
다.
그는 괴승들의 무공이 중원무학과는 완전히 상이하다는 것을 깨달
았다. 마침내 그는 등에 메고 있던 칠현금을 꺼냈다.
왼손으로는 칠현금을, 오른 손으로는 묵아를 뽑아냈다.
탕! 하는 소리와 함께 칠현금의 현에 맞아 해골이 튕겨 나갔다.
동시에 유천기는 묵아를 휘둘러 자신의 목을 노리고 쏘아오는 뱀
을 갈라쳤다.
그런데 뜻밖에도 뱀은 영활하게 몸을 비틀더니 오히려 그의 손목
을 물어 뜯으려 하는 것이 아닌가? 그 동작은 눈부실 정도로 빨라
아차하는 사이에 그는 손목이 따끔하는 것을 느꼈다.
어느새 뱀이 손목을 휘감은 것이었다. 이런 종류의 뱀에 독이 있
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유천기는 독에 대해 두려워하는 바가
있었으므로 급히 손목을 통해 내력을 퉁겨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뱀은 그의 웅후한 내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여지
없이 피비를 뿌리며 산산조각이 되어 날아갔다. 그러나 뱀은 이미
그의 손목을 물어 뜯은 후였다.
유천기는 독이 퍼지기 전에 두 괴승을 처치해야겠다고 마음먹었
다. 그는 묵아에 내력을 주입하여 재차 날아드는 뱀을 잘랐다. 이
번에는 미리 천장구검을 펼쳤으므로 한낱 미물이 절정의 검법을
피할 재간이 없었다.
파아.......
비릿한 냄새와 함께 뱀은 여덟 토막이 난 채 날아갔다. 유천기는
지체하지 않고 뒤에서 날아드는 해골을 칠현금으로 쳤다.
쾅! 하는 폭음과 함께 해골은 산산조각이 되어 흩어져 버렸다. 그
여세를 몰아 그는 독수리가 병아리를 채듯 괴승들에게 덮쳐갔다.
괴승들의 안색이 온통 사색이 되고 말았다. 실상 그들이 날린 뱀
은 한 번 물리기만 하면 숨을 두 번 쉬기도 전에 즉사하고 마는
절독을 지닌 뱀이었다. 그런데 상대는 조금도 타격을 받은 것 같
지가 않은 것이었다.
유천기는 두 괴승을 죽이기로 작정한 이상 더 이상 손에 인정을
두지 않았다. 그가 떨친 검이 채 목표에 이르기도 전에 피보라가
일어났다.
"크아아아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두 개의 목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두 괴승은
마침내 황천으로 직행한 것이었다. 유천기는 바닥에 소리없이 내
려섰다.
그는 검을 거두고 뱀에게 물린 손목을 보았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언제 뱀에 물렸느냐 싶게 아무런 상처도 나 있
지 않았다. 다만 미미한 이빨 자국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조금도 중독된 느낌을 받지 못했다.
'다행이군. 아무 증상도 없구나.'
그는 대왕신공의 독혈과 내단을 복용한 이후로 만독불침(萬毒不
侵)의 체질이 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환골탈태한 후로는 아무
리 깊은 상처라도 즉시 아물어버리는 놀라운 능력이 생겼다.
다만 그는 자신의 그런 능력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었
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