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에서 노예살이를 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세의 인도하에 자유를 찾아 이집트를 벗어난 것은 위대한 구원사이다. 제국의 이기적인 욕망에 짓눌려 있던 인권과 자유와 생명이 회복되고 정의와 진리가 회복된 위대한 해방 사건이었다.
이집트의 파라오(Pharaoh)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인권, 자유, 생명 같은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정의, 진리, 이런 것은 애초부터 파라오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파라오는 오직 이스라엘 사람들을 노예로 부리므로 얻게 되는 이익만을 생각하였다. 그래서 모세와 아론이 파라오 앞에 나아가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에 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 하니 가도록 허락해 달라고 했을 때 순순히 허락할 수가 없었다. 노역을 쉬게 할 수가 없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쉬는 만큼 파라오 자신에게 손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적지 않은 이들이 이와 같다. 이집트의 파라오처럼 지금 당장 자신에게 돌아올 이익만 생각한다. 넓게 멀리 보려고 하지 아니한다. 자신의 거친 욕망을 자제하려고 하지 아니한다. 탐욕을 버리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지금 자신에게 일어날 손익계산에만 몰두한다. 추악한 탐욕의 날개를 퍼덕이며 타오르는 불꽃을 향해 죽을 줄도 모르고 달려든다.
요즈음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을 보면 기득권 유지와 당리당략(黨利黨略)에 급급하고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 소위 정치가라는 사람들이 나라와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일하려고 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추악한 욕망을 채우는 데에 몰두하고 있다. 기본도, 상식도, 모두 내팽개치고 더럽고 거칠고 추한 욕망만 뿜어내고 있다. 도대체 언제쯤이나, 나라와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정치와 국회를 볼 수 있을까? 참으로 안타깝고 답답하다. 하루빨리 기본과 상식의 바탕 위에서 국민을 생각하고, 국민을 위하고, 국민을 두려워하는 정치를 보고 싶다.
정치인이든, 그렇지 않든, 대(大)를 위하여 자신의 추악한 욕망을 버릴 수 있는 용기가 절실히 필요하다. 넓게 보고 멀리 보며 대(大)를 위해 사적인 탐욕을 버리지 아니하면, 이집트의 파라오처럼 어쩔 수 없이, 강제로 떠밀려서 버려야만 하는 그런 순간이 눈앞에 닥쳐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