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모메 식당의 일곱 번째 손님 이반디
“절박했던 시간들이 글을 쓰게 만들었어요.”
패션 디자이너에서 동화작가로
소설 『시인들의 고군분투 생활기』를 보면 편견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터번을 쓴 무슬림을 보고 이슬람 테러리스트가 떠오르면 보수주의자일 확률이 높고, 인도 출신의 온화한 의사 선생님을 떠올리면 자유주의자일 확률이 높다. 혹시라도 보수적으로 보일까봐 늘 전전긍긍해왔던 나도, 어쩔 수 없이 골수 편견덩어리임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동화작가라는 직업을 들었을 때, 나는 먼저 후덕한 아주머니 한 분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었다. 넉넉한 웃 음을 지으며 세상의 실제 모습과는 전혀 다른 동화 같은 세상을 맑고 깨끗하게 이야기해 줄 것 같은 이미지.
그런데 막상 약속장소에 나타난 이반디 작가는 짐작과는 전혀 다른 새침한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프랑스 여배우처럼 세련되게 자른 커트 머리, 깡마른 몸에 부드럽게 흘러내린 니트, 무릎까지 쫙 달라붙는 타이즈, 그리고 군용 워커 스타일의 하이힐, 도전적인 이십 대 중반의 아티스트가 연상되는 외모다.
“오해를 많이 받아요. 성인문학 하는 사람들은 개성 있게 꾸미고 다니는 작가에 대해 뭐라 그러진 않잖아요. 그런데 동화작가의 세계는 조금 달라요. 한국은 특히 교육운동 차원에서 처음 창작동화 작업이 이루어져서 그런가, 실제로 동화작가 중에 교육운동 하시는 분이 많은 편이기든요. 그래서 교육적인 마인드가 널리 퍼져 있어요, 재미있는 건 예전 직장에선 제가 나름 조신하고 진지하다는 평가를 받았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쪽 분야로 넘어오니까 평가 기준이 완전히 딜리요, 신경 쓸 필요는 없는데, 그렇다고 신경을 안 쓰기도 어려워서 아예 안 돌아다니려고 동화작가가 되기 전 그녀의 직업은 패션 디자이너였다. 아니, 그렇게 지낸 세월은 잠시뿐이고 사실은 오랫동안 직업란에 떳떳이 뭔가를 써놓을 수 없는 전업주부로 살았다. 어린 시절부터 수재 소리를 들으며 관심을 한 몸에 받던 여자에게 누구누구의 엄마, 누구누구의 아내라는 표현은 늘 성에 차지 않았다. 왜 내가 지금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어야 할까.
길거리에서 흔히 마주치는 아무 이야기도 없을 것 같은 아주머니의 얼굴로 평생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화려했던 시절, 어쩌면 지금까지 계속되었을지 모를 그 시절의 일상이 떠올라 매일 아프게 가슴을 쓸어내렸다.
연세대학교 의류환경학과를 졸업한 그녀는 바로 화려한 직장을 잡았다. 미국 중저가 패션의 대표 브랜드 갭Gap의 한국지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게 되었다. 겉으로 보면 그녀의 직함은 분명 ‘디자이너’ 였지만, 그녀는 회사에서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디자인을 해본 적이 없다고 고백한다.(176-1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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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쉽지, 결혼 후 모든 걸 할 수 있는 상황은 당연히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결혼과 동시에 바로 임신을 했고, 출산을 했고, 남들처럼 애 키우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으며 누구의 엄마로, 아내로 살았다. 가슴은 늘 공허했다. 나는 무엇일까. '나'라는 존재가 모두 지워지고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로, 아무 존재감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삶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일찍 가정에 안주하는 삶이 전혀 맞지 않는 타입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았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늘 세상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데 익숙했기 때문에, 주부로서 느끼는 소외와 상실감은 더더욱 크게 느껴졌다. 결혼을 하고 나자 사람들은 그녀에 대해 아무것도 궁금해 하지 않았다. 도대체 무엇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고, 과거에는 어떻게 살았으며, 앞으로는 어떤 삶을 꿈꾸고 있는지 아무도 묻지 않았다.
남편은 무척이나 따뜻하고 가정적인 사람이었다. 꽤 괜찮은 아빠고, 괜찮은 남편이고, 괜찮은 사회 구성원이었기 때문에 그녀의 갈등을 예민하게 포착하고 가슴 깊이 위로해 주곤 했다. 사회적 성공보다 화목한 가정을 만드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남자였기 때문에 조울증 환자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그녀의 감정을 조율하기 위해 에너지를 많이 쏟아 부었다. 하지만 그녀의 갈등은 쉽게 잦아들지 않았다. 피난처를 찾겠다는 목적으로 한 결혼이라면 꽤 성공적인 선택이었지만, 그녀는 안정된 상황에 만족할 수 없는 거대한 욕망을 갖고 있었다. 뭔가 되고 싶다는 그녀의 근원적 욕망이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에 남편도, 아이도 오랫동안 행복할 수 없었다. 가정은 단란하면서, 위태로웠다.
가끔 어머니를 만나러 친정에 가면 뭔지 모를 설움이 북받쳐 올라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는 난감해하며 물었다. “집에 무슨 일이 있는 거니? 일이 있는데, 엄마가 걱정할까봐 말을 못하는 거니?” 사실 그녀의 가정에는 문제가 전혀 없었다. 문제는 그녀 자신. 자기 마음만 다독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었다. 엄마는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 가정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힘들어하는 딸을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산단다. 결혼해서 애 낳고 가족끼리 행복하게 살면 되는 거지. 남편이 잘 해주는데, 애들 잘 크고 있는데, 네 마음만 다잡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왜 그렇게 힘들 어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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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대 진학을 포기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기분 전환 삼아 글 쓰는 선배 언니를 만나러 나갔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대학에서 의류환경학을 전공했지만 뒤늦게 글을 쓰고 싶어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다시 진학하고 현재는 자신의 글을 쓰고 있는 멋진 선배였다. “나도 서울예대 문창과에 다시 들어가 볼까?” 어린 시절부터 공부에는 자신이 있었던 그녀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던진 그 말에, 언니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너 대학 다닐 때 나한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하고, 글 쓰는 것도 좋아하니까. 나중에 아기 생기면 그림책을 직접 만들어줄 거라고, 동화도 네가 직접 써서 읽어주겠다고.”
자신은 까맣게 잊고 있던 꿈을 선배 언니가 불쑥 꺼냈을 때, 갑자기 잠자고 있던 욕망이 파르르 일어서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그림책을 만들어보자. 내 손으로 직접! 글도 쓰고 그림도 그려보자!”
한겨레 문화센터 그림책 작가 강좌에 등록했다. 분당에 사는 그녀는 일주일에 한 번, 애들을 어딘가에 맡기고 공덕동까지 가는 그 시간이 너무나도 즐거웠다. 강좌를 듣는 시간에는 오로지 자신의 이름으로 서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잃어버린 자아를 찾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습작처럼 쓴 글을 좋게 본 선생님이 출판사 한 곳을 소개시켜줘 어린이 그림책 전집 원고를 쓰게 되었다. 그 때 그녀는 비로소 ‘이춘영’이라는 본래의 이름을 되찾았다. 이춘영의 이름으로 전집을 쓰고 소박하게 사회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펜대를 놓고 살았던 그녀가 글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다는 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전집용 글쓰기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건 일종의 ‘어린이를 위한’ 기획물이었고, 편집자가 요청하는 주제에 대해 아이의 시선으로 글을 붙여주는 작업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덜컥 또다시 둘째아이를 임신했다.
본의 아니게 2년이라는 시간이 또 바쁘게 흘러갔다. 그 무렵 그녀를 둘러싼 모든 상황은 말할 수 없이 참담하게 흘러갔다. 시아버지와 친정어머니가 동시에 암 투병을 시작한 것이다. 간호를 해줄 사람이 마땅치 않았다. 두 분의 간호를 모두 그녀가 맡기로 했다. 거의 1년이 넘는 시간을 그녀는 그렇게, 아이들이 호기롭게 짜놓고 지킬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생활계획표처럼 빡빡하게 이어나갔다. 아침에 일어나 큰아이를 유치원에 보낸 후 둘째아이를 들쳐 업고 시장에 나가 장을 보고 점심을 만든 뒤 양쪽 병원에 나가 식사를 챙겨드리고 병간호를 하고 다시 큰애를 유치원에서 데려오는 삶이 매일 반복됐다. 저녁에도 무슨 일이 있으면 병원에 나가야 했고, 나머지 시간은 가사에 매진하기에도 빠듯했다.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한 달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기 어려운 삶이 이어졌다. 시간은 흐르고, 그녀의 모습은 점점 상상하기 어려운 몰골로 변해갔다. 생활에 찌든 아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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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겐 아무 ‘이야기’도 없을 것 같았고, 아무 욕망도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그들에게도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안다. 그렇게 볼품없이 스쳐지나가는 아주머니들에게도 한때는 참 많은 꿈이 있었고, 한때는 하고 싶은 일이 너무나도 많았다는 사실을 이제 겨우 알게 됐다.
자신 역시 그들과 비슷한 몰골로 정신없이 삶을 흘려보내고 있을 때, 친한 언니가 위로를 건네며 이런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모든 시간을 가족에게만 쏟지 말고 자신을 위한 시간을 꼭 가져보도록 해.” 그 말에 용기를 얻어 그녀는 다시 문화센터 강좌에 등록했다. 이번엔 그림책이 아니라, 동화 쓰기 강좌였다. 일주일에 한 번, 세상의 모든 근심을 떨쳐버리고 오직 자신만의 시간을 가져보기 위해 시작한 일, 그런데 이 시간이 신통하게도 그 녀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생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감동을 느꼈고, 뭔가에 한대 얻어맞은 것 같은 벅찬 진동을 감지했다.
“동화는 그림책과 달랐어요. 이건 단순한 글쓰기가 아니라 제대로 된 문학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한번 열심히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동화 수업을 듣는 동안 주변 사람들은 그녀의 열정에 탄복하며 이렇게 말했다. “네 눈빛이 이렇게 반짝거리는 걸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 네가 겪고 있는 힘든 일상과 네 얼굴은 전혀 다른 모습이야!”
실제로 그녀는 일종의 탈출구를 찾은 것 같았다. 하루 종일 아이 유치원과 양쪽 병실을 오가다 저녁에는 동화를 쓰는 생활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녀는 그 순간이 전혀 힘들지 않았다. 그녀의 새벽은 ‘비밀의 문’처럼 새롭게 열렸다.
기진맥진 삶에 찌들어 쓰러질 것 같다가도 모든 가족이 잠든 후 자신이 만들어놓은 세상의 문을 열어젖히면 그녀는 바닥났던 에너지가 끝없이 충전되는 것을 느꼈다. 시어머니와 갈등을 빚고 속상해하는 순간도 잠시, 대문 밖을 나서면 모든 것이 잊혀졌다. 그리고는 집에 돌아와 그녀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우리 어머니는 이 시간에도 얼굴 붉히며 나와 다퉜던 일을 잊지 못하고 속을 태우겠지. 하지만 나는 나만의 세상이 있으니까 그런 고통쯤 쉽게 잊을 수 있어!’
동화를 쓰는 새벽 시간은 점점 그녀에게 현실의 고통을 잊게 해주는 치유의 시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자신만의 공간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이들을 재워놓고 작은 밥상을 펼친 후 빛이 새어나갈까 조명 빛을 가리면서 어렵게 동화를 써내려갔다. 보통 작가들이 한 작품을 쓰는 데 몇 달씩 소요된다고 하는데, 그녀는 6개월 동안 무려 10여 편의 동화를 써내려갔다. 집중력도 강했고, 무엇보다 가슴속에서 치고 올라오는 이야기가 많았다. 일상적인 생활 이외의 시간에는 항상 동화만을 생각하며 살았다. 예전에는 음악도 듣고 콧노래도 흥얼거리며 부산스럽게 시간을 흘려보냈지만, 동화를 쓰기 시작한 후부턴 음악도 듣지 않았고 오직 이야기의 세계에만 매달렸다. 자신이 만들어놓은 공상의 세계로만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그렇게 동화에 미쳐 있는 동안에도 일상은 변함없이 복닥거리며 흘러갔다. 시아버지가 12번의 항암치료 끝에 세상을 떠났고, 엄마는 항암치료를 마친 후 경주로 내려가 요양생활을 시작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엄마를 찾아가 간간히 말벗이 되어주는 것도 그녀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간병을 하면서, 운전을 하면서 그녀는 늘 머릿속에 동화만 생각했다. 드디어 그녀가 평생을 바쳐 자신이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낸 것이다.
비슷한 시기, 그녀와 비슷한 상황을 겪었던 언니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동생이 중환자실에 입원해 자신이 간병을 맡아야 했는데, 평소에는 그렇게 써지지 않던 글이 갑자기 열흘 만에 한 권씩 뚝딱뚝딱 써지기 시작하더라는 것이다. 간병을 하는 틈틈이, 잠자는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서 글을 쓰는 데도 언니는 평소보다 훨씬 글을 빨리 쓸 수 있었고, 글 쓰는 그 시간을 통해 그나마 고통을 견뎌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글을 쓰고 있어야 숨통이 틔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야 마음이 더 편해졌다는 그 말.
그녀도 그 마음이 무엇인지 십분 이해했다. 매일 밤, 아이들을 재우고 쪼그리고 앉아 글을 쓰면서도 마음속에는 늘 이런 속삭임이 떠나지 않았다. 너희들은 모를 거야, 나에게는 나만의 세계가 따로 있어. 어금니를 꽉 물고 만들어낸 자신만의 소중한 시간, 그 시간이 없었다면 원고는 결코 써지지 않았을 것이다. 동화작가는 결코 되지 못했을 것이다.
처음엔 글발이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는데 열심히 쓰다보니 어느새 그녀는 숙련된 작가가 되어 있었다. 뒤늦게 깨달았다. 남들이 흔히 말하는 문학소녀는 아니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꽤 많은 소설을 읽어왔다는 것을, 부모님이 사준 계몽사 세계문학전집을 빠짐없이 읽어치웠고,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동네 도서관을 들락거리며 부지런히 책을 빌려 읽었다. 우울한 감정에 휩싸일 때마다, 그녀는 자주 책 속으로 도피했다. 책을 읽으면 모든 것이 즐거워졌고, 구질구질한 세상사이에 차단막이 생기면서 새로운 세계로 입장한 것 같은 설렘이 찾아오곤 했다. 밥도 안 먹고 책을 읽거나 공상에 빠졌던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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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에 글을 써보고 싶은 욕구,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늘 살아 있었다. 작은 씨앗들은 그렇게 멋대로 자라나 현실의 풍파를 겪으면서 좀더 단단하게 성장했다.
그녀는 얼마 전 창작과비평사에서 주관하는 신인 동화작가상을 수상했다. 상이 뭐 별건가 싶기도 하지만, 그동안 노력한 것에 대한 작은 칭찬이라는 생각이 들어 나름 뿌듯하다. 사람 들은 겉모습만 보고 그녀에게 이렇게 말한다.
“글은 절박해야 써지는 법인데, 춘영 씨는 걱정이에요. 절박함을 잘 모를 것 같아서요. 늘 그렇게 밝게 웃고 자신감 넘쳐 보이는 사람이 글을 쓸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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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그녀가 글을 쓰지 않는다면, 남편은 오히려 기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다. 만일 그녀가 글을 쓰지 않는다면 가정의 평화나 화목 따윈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녀는 그런 사람이다. 뭔가를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야만 에너지가 솟아난다. 살림할 때도 원망을 듣기 싫어 더 열심히 일하고, 글을 쓸 땐 살림에 들인 시간을 보상받기 위해 더 악착같이 원고를 써내려간다.
남들은 뒤늦게 운이 좋아 글을 쓰며 사나보다 쉽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녀는 자신의 인생이 누구보다 시끄러웠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시끄러웠던 삶에 대해 오히려 고마운 마음이 앞선다. 뭔가를 할 수 있게 해줘서,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게 해줘서, 그 소란스러움에 무릎 꿇고 넓죽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바닥을 쳐본 사람만이 창작을 할 수 있다는 건 틀린 말이 아니다. 고통은 창작의 원동력이다. 요즘 그녀는 고통의 시간을 자양분 삼아 다양한 동화를 쓰고 있다. 아이를 보며 이야기를 떠올리기도 하고, 그냥 머릿속에 떠오른 뜬금없는 공상이 무럭무럭 자라나 한 편의 동화가 되기도 한다. 어린이를 위한 사명감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재미있어서, 글 쓰는 과정이 마냥 즐거워서 동화를 쓰고 있다. 가끔은 동화에 등장하는 아이가 그녀 안에 있는 아이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세심히 보살펴준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 느낌이 좋아서 매일 조금씩 원고를 써나가는 규칙적인 삶을 살고 있다. 아침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면 오전 3시간은 무조건 생활의 일부처럼 동화를 쓴다. 늦은 밤 감상에 젖어 새벽까지 글을 쓰면 오히려 체력이 떨어져 이 일을 오래 하지 못할까봐 나름 규칙적인 글쓰기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혹시 밤에 오래 글을 쓰다 늦잠을 자는 날이면 남편이 일찍 일어나 아침밥도 차리고 준비물도 챙겨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준다. 그 정도 외조는 충분히 해줄 수 있는 남편이다. 그녀는 참 오랜 시간을 돌고 돌아 이제 비로소 만족스러운 인생의 첫 장을 열어젖힌 것 같다고 말한다. 그래서 더 흥분되고 즐거운 인생이다. 올해는 남편의 외조를 듬뿍 받으며, 모든 일을 제쳐두고 동화 창작에만 몰두할 작정이다. 열정을 불태우는 두 아이의 엄마이자 이제는 비로소 ‘이름’을 갖게 된 작가로 열심히 살아볼 생각이다. 열정을 가진 아줌마는 의욕 없는 싱글보다 훨씬 아름답다. 어느새 그녀는 작은 표정 하나로도 세심하게 감정을 표현할 줄 아는, 이야기가 가득 넘쳐흐르는 프랑스 여배우 같은 얼굴이 되어 있었다.
출처
카모메 식당의 여자들, 황희연, 위즈덤하우스,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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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디
연세대학교에서 의류환경학을 공부했습니다. 「꼬마 너구리 삼총사」로 제1회 창비어린이 신인문학상(동화 부문)을 받았습니다. 저학년 동화 『꼬마 너구리 삼총사』 『호랑이 눈썹』 『도레미의 신기한 모험』 등을 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