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f, My Story-태국여정 21일, 참 넉넉한
“쓰리 퍼터 째야!”
“아니야! 투 퍼터 째야.”
“바깥에서 퍼터로 그린에 올렸었잖아!”
“그게 무슨 상관이야.”
“상관있지.”
“어떻게.”
“퍼터에 대해서는 위치설이 있고 무기설이 있어. 위치설은 그린 위에서 퍼터를 쓴 것만 가지고 계산하지만, 무기설은 퍼터를 들고 연속해서 치는 경우를 말하는 거야. 그런데 무기설이 다수설인 거지.”
“어? 그런 학설이 다 있었어? 알았어.”
20년 전으로 거슬러, 검찰수사관 동료들과 어울려 공무원 우대 골프장인 경기 화성상록cc에서 골프라운딩을 하던 중에 있었던 일로, 그린 엣지에서 퍼터를 쳐서 공을 그린으로 올리고, 그리고 그린 위에서 다시 한 번 퍼터를 쳤는데도 공이 홀 컵에 들어가지를 않고 1m 정도쯤 떨어져서, 또 다시 퍼트를 하려고 했을 때, 우리 팀 동반자 중의 하나가 ‘잠깐!’이라고 외쳐서 나의 퍼팅을 일단 멈추게 한 후에, 내가 퍼터를 쓴 그 숫자를 놓고 그렇게 시시비비를 따졌었다.
그러니까 퍼터를 세 번을 쓴다면, 혹 그 퍼팅으로 공이 홀컵에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그 판에 걸려 있는 돈을 먹을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나와 같은 검찰 입사동기 친구로 평소 밥과 술을 같이 하면서 남달리 가까이 지냈으면서도, 그 친분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골프에서의 승부욕에만 눈이 멀어 그렇게 따지고 드는 것이 참으로 불쾌했었다.
일단 수긍을 했다.
그리고 드라이버 채를 들었다.
그 채로 퍼팅을 해서 성공을 했고, 파5의 그 홀에 걸린 돈을 내가 따 먹었다.
그날로써 나는 그 친구와 골프라운딩을 한 적이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어느덧 밥자리 술자리도 사라지고 말았다.
또 그 즈음의 일이다.
평소 가까이 지내는 고향 후배들 셋과 부부동반으로 서울 근교의 어느 골프장을 찾아 라운딩을 한 적이 있었다.
아내들을 앞세우고 남편들은 뒤를 따랐다.
어느 파3 숏 홀에서, 정체가 이엊미는 그 진행의 편의를 위해 앞 팀의 사인을 받았고, 우리는 그 앞 팀의 아내들이 모두 공을 그린 위에 올린 뒤에 티샷을 하고 그 뒤를 따랐다.
우리들이 탄 전동차가 그린에 닿았을 때, 아내들의 퍼팅이 진행되고 있었다.
“오케이!”
아내가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동반하는 어느 후배 부인이 퍼팅한 공이 홀컵 가까이 다가간 것을 보고, 더 이상 퍼팅은 안 해도 좋다는 양해의 뜻으로 그리 외쳐준 것이다.
그래서 그 부인이 공을 막 집어 들려는 순간이었다.
또 다른 외침이 터져 나왔다.
“안 되지!”
또래의 다른 후배 부인의 외침이었다.
아내의 양해를 거부한다는 의사표시였다.
평소에 아내에게 ‘형님!’이라고 호칭하면서 깍듯했던 그 후배 부인의 거부는 우리들 모두에게 의외였다.
그 외침으로 공을 막 집으려던 부인이 멈칫 했다.
그 한마디로 앞 팀 뒤 팀 모두 싸늘한 냉기가 흐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양해를 받았던 그 부인은, 그 짧은 퍼팅을 실수하고 말았다.
나는 그 부인보다, 그러는 부인에게 말 한마디 하지 않는 그 후배의 비겁한 처신을 챙겨봤었다.
나로 그렇고 아내도 그렇고, 그날 이후로 그들과 골프라운딩으로 어울린 적이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어느덧 우리 부부 앞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야! 버디!”
그렇게 외치는 음성이 있었다.
내 고등학교 동기동창으로 우리가 ‘장군’이라고 호칭을 하는 황진업 친구가 그 음성의 주인공이었다.
우리 부부와 한 팀이 되어 라운딩을 하던 중이었는데, 어느 파3 숏 홀에서 첫 번째 퍼팅한 공이 홀컵으로 빠져 들어가는 순간에, 덩달아 기뻐하면서 그리 외친 것이다.
곧 이어 한마디 더 외쳤다.
“모두 다, 오케이!”
나도 그렇고 아내도 그렇고, 아직 한 번 더 퍼팅을 해야 할 것이었는데, 그 먼 거리를 양해해 준 것이었다.
참 넉넉한 외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