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뉴로얄사우나』(2016.10)
늑대 사냥
이누이트 족이 늑대 사냥을 한다
차디찬 칼날에 피를 묻힌다
피가 얼어붙은 칼을
늑대가 다니는 길목에 꽂는다
혹독한 눈보라를 뚫고
피 냄새를 맡은 늑대가 다가온다
눈발을 가르는 칼날을 핥는 늑대
시퍼런 칼날에 혓바닥이 베이고
늑대의 피가 칼날을 타고 흐른다
베인 혓바닥 같은 얼굴 주름이
거울에 비친다
칼끝에 선 나이가 스산하다
⸺《시와 표현》 2018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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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균 / 1970년 서울 출생. 성균관대 경영대학원 졸업. 2011년 《시안》으로 등단. 시집 『뉴로얄사우나』.
서동균
교실에 나무가 있어요 높이 자란 어둠으로 두꺼운 껍질을 만드네요 햇발과 바람이 통과한 뱀 허물 같기도 해요 몸을 비워 사리를 남긴 누룩뱀의 몸뚱이일 수 있죠 교실은 너무 어두워 서 있는 것과 걸어가는 것 뛰어가는 것이 한가지로 보여요 그래서 나무들마다 같은 무늬를 가지고 있나 봐요 빈 몸에 들어와 울다 간 아이의 눈물 자국이죠 회색빛 교실에 비치는 햇살도 회색이네요 북극지방의 백야같이 잠을 못 이루는 시간이 흔들리고 있어요 왼쪽과 오른쪽을 같이 보여 주는 거울은 이곳에 없어요 모두가 왼쪽이거나 모두가 오른쪽인 나무들이 빼곡히 숲 속을 메우고 있거든요 어쩌면 나무는 키가 큰 콩나무일지도 몰라요 책상이 몹시 흔들거릴 때면 새순이 돋아 교실 밖으로 올라가거든요 어긋난 시선이 폭염에 마른 저수지 바닥으로 타들어 가네요
서동균시집 『뉴로얄사우나』
서동균의 시들이 익명의 공간 내부의 보이지 않는 세부들과 실존적 기억이 새겨진 장소들 사이에서 구축되고 있다는 것은 기이한 일이 아니다. 그것들은 시적인 상상력이 공간 혹은 장소와 맺는 두 가지 층위의 관련성을 잘 보여 준다.
공간과 장소들이 비밀을 갖는다는 것은, 그 안에 시적인 상상력으로만 드러낼 수 있는 잠재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시는 하나의 공간과 장소 안의 예기치 않은 내밀함을 경험하게 만든다. 그 경험은 상투적인 삶의 공간을 낯설고 풍부하게 만드는 시적인 경험이다.
―이광호(문학평론가, <해설> 중에서
뉴로얄사우나
삼십여년전 아버지를 따라
빨간색 페인트로 나무간판을 쓴
남탕에 처음 갔다
아마 부산에서였을거다
경상도 사투리만큼 억센 때수건으로
온몸 구석구석을 한 번에 쭉
밀어주었고
목욕이 끝나면
따뜻한 병우유를 사주었다
오 년 동안
담도암으로 투병중인 아버지하고
빤간색 네온간판이 반짝이는
뉴로얄사우나에 갔다
뼈마디가 앙상한 손,발, 다리
그리고 광대뼈가 튀어나온 얼굴을
초록색 때수건으로 밀어드렸다
아버지 몸에 검푸른 주름꽃이
단단한 가슴으로 선로를 받쳐들고
끝내 바닥이 되어버린
묵묵한 침목(枕木)으로 남아 있다
그늘 / 서동균 시와환상』 2012 겨울호에서 발췌
제27회 시안신인상 시 부문 당선 - 서동균
옥탑방 빨랫줄
팔레스타인 분리장벽에 그려진 새가
비산먼지 덮인 재개발지구 하늘을 날고 있다
누군가 공사가림막에 둥지를 틀어 놨다
이역만리異域萬里 먼 곳이라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외침을
다 가지고 오지는 못했을 거다
탕-탕-탕-, 디핑머신의 굉음이
노랗게 버석이는 연탄재를 밟고 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밟고 사라진다
새총으로 저항하던 그들의 깃발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연탄재같이 부서진다
마당귀에서 삐꺽삐꺽 헛물만 켜는 녹슨 펌프
나카브사막의 끝을 바라보던 새는
밤의 냉기를 관절을 비틀듯이 떨치고 일어나
철거를 거부하는 늙은 용접공의
옥탑방 빨랫줄에 앉아 하늘을 본다
무너진 집에서 삐져나온 뼈 같은 철근과
철문의 부서진 바퀴를 용접하던
토우치 불꽃 같은 초록빛 태양이
들국화가 간신히 뿌리 내린 골목을 비추고
용접공의 힘줄 같은 낡은 빨랫줄이
온몸으로 맑은 하늘을 팽팽하게 당기고 있다
실종자
실종자 한 명이 접수됐다
발로 차이고 주먹으로 맞아 찌그러진 철제책상 위에
너덜너덜한 장부를 비추는 햇살의 프리즘
시간을 봉인한 벽을 추적하는
도굴꾼의 트라울*이
창살로 막힌 사무실을 은밀히 들어와
뿌옇게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있다
사망 사건이 아니므로 검시기록이 있을 리 없다
두꺼운 표지에 눌려 흐려지는 기억을
놓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
이름 옆에 쓰인 실종일자가
그들의 족적足跡을 대신하고 있을 뿐이다
조문 리본처럼 타이핑되는 이름들이
서류철의 무게를 늘리고 있다
수사중 접근금지!
철컥철컥 여닫는 캐비넷 서랍에 '시ㄹ조o'으로 철자가 악착으로 물렸다
트라울의 뾰족한 탐문이 황급히 뒷걸음질치고 있다
* 트라울 - 고고학에서 땅을 긁어내는 호미 모양의 발굴도구
벙어리장갑
길바닥에 떨어진 벙어리장갑은 저체온증이다
행려병자의 시체처럼 이미 싸늘하다
쓱싹쓱싹
실밥에 매달린 톱니 같은 고드름이
긴 밤을 잘게 썰고 있다
배곯은 도둑고양이가 묶어 놓은 분리수거봉투를
발톱으로 할퀴고 지나갈 때
바람이 머물다 간 장갑 끝에 손가락이 돋아난다
툭툭 고요함을 터뜨리는 실밥을 꿰어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는 새벽서리
고양이가 지나간 자리에는
장갑을 낀 발자국이 답삭답삭 걸어간다
허공을 통과하는 파란 태양에
움켜쥔 햇살을 조심스레 펴 보인다
세렝게티 초원의 사내
찰칵찰칵 슬라이드 필름이 스크린에 분광되고 있다
술에 취한 남자가 전봇대를 잡고
전력질주를 한 세렝게티 초원의 치타처럼
숨을 헐떡이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순간 시속 100킬로를 주파하고 나면
하늘이 노랗게 어지럼증을 느낀다
한 장 한 장 흑백필름이 스크린을 메운다
강소주를 서너 병 마셔도 거뜬했던 시절은
저렇게 흑백이었을까
칠성판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야 할 때는
몸이 가벼워야 한다고
술만 마시면 게워 내는 사내는
이제 초원을 달려본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동시상영관의 영사기처럼 돌다가 그대로
부숴질 수 있다는 것을
수십 번을 보고 나서야 알아차린 사내
전봇대를 붙잡고 여전히 제 무게를 게우고 있다
어느 귀천歸天*
깜깜하다 눈을 뜨고 손을 내저어 봐도
잡히는 것 하나 없이 깜깜하다
거친 주먹질에 멍든 상처가
아직 보라색 등꽃으로 남아 있다
산도産道를 빠져나오듯 빠져나온
방문 앞이 절벽이었다
사정없이 날아온 아비의 주먹에
세 살배기의 가쁜 숨이 멎었다
찬 밤공기가 남겨진 육체를 감싸 안았다
쳐다보기만 하는 어미
둥지에서 떨어진 개똥지바귀 새끼처럼
풀린 동공은 여전히 어미 쪽을 향했다
영하 12도의 칼바람이 주검을 시커멓게 얼렸다
얼음장 같은 방바닥에 버려진 노장路葬
구석진 세탁기 베란다 벽에 걸린 풍장風葬
아스팔트 쓰레기더미에서 파헤쳐진 조장鳥葬
태어날 때 덮었던 흰색 이불에 겹겹이 싸여
택배용 상자에 버려진 아이가
황토색 테이프에 묻은 어미의 지문을 놓지 않았다
유치장에서도 아이의 울음이 성가셨다는 아비, 어미
희나리를 태우듯 영가靈駕를 올려 보낸다
풀잎에 베인 햇살이 은박줄처럼 반짝인다
* 2011년 3월 20일 한겨레 신문기사 ‘세 살배기의 죽음’을 보고
<당선소감>
언 땅을 파내려 가듯
길찾기에 매달려왔다. 아마 35년 전 춘천에서부터였던 것 같다. 끝 모를 길찾기에 매달려 아침에 친구들하고 들녘에 나가선 어슴푸레 해가 지고서야 집에 돌아오곤 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처럼 동네 뒷동산을 미지의 세계 삼아 탐험을 했던 것이다. 때론 길을 잃고, 때론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때론 이리저리 웃자란 가시덤불에 옷이 찢어지고 온몸에 상처가 나기도 했다. 이후로 부산, 원주, 대구 등 부모님을 따라 이사를 수십 번 하면서 내가 찾던 미로는 점점 현실이 되었다.
나를 찾아 나선 여행의 시작이 지금은 우리를 찾아 나선 여행이 되었다. 해야할 일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사회라는 울타리를 비켜서 갈 것인가, 그 울타리와 같이 갈 것인가의 기로에서 한동안 서성거리기도 했다. 수많은 군중 속에서 한 사람의 고독을 보듬어 줄 수 있는 詩를 쓰기로 한 것이다.
한겨울 꽁꽁언 땅을 파내어 겨우내 먹을 김치를 담을 김장독을 파묻듯 깊이 파내려 갈 것이다. 여기저기 박혀 있는 돌멩이에 삽날이 불꽃을 튀며 튕겨 나오더라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때로는 감각이 무뎌지는 손가락을 입김으로 달래어 가며 맨손으로 언 땅의 흙을 걷어낼 것이다. 마침내 파묻힌 독 안에서 웅웅거리는 울림이 사람의 마음을 채울 수 있을 때까지 그렇게 파내려 갈 것이다. 그런 공명을 간직한 詩 앞에 서서 나를 찾고, 우리를 찾고, 어울림을 찾아갈 것이다.
너무도 부족한 나의 詩眼을 새로이 일깨워주시고 지켜봐 주신 스승님과 그 길을 열어 주신 심사워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아울러 조금은 괴퍅하고 신경질적인 나를 많은 시간 격려해 주고 감싸 준 아내 조선희와 아이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