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의 겨울
사시, 희망의 사다리 치워야 할까
젊은 시절 윗집에 나이 든 총각이 홀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늘 뭔가를 중얼중얼거리는 그는 내게 말을 걸지 않았지만 쳐다보면 희죽 웃으며 친밀감을 나타내기는 했습니다. 그는 고시공부에 몰두하다가 실성했다는 것이 어머니의 말이었습니다.
한 지인은 명문 사립대의 법과를 졸업했지만 장기간 사시의 벽을 넘지 못해 취업의 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생계는 아내의 수입에 의존하면서 푼돈이라도 벌 요량으로 초단기 증권 매매를 하는 ‘데이트레이더'로 나섰지만 주식은 뜻대로 되는 게 아니었습니다. 반면 공원 기슭의 판잣집에 기거하면서 어렵게 서울대 법대를 나와 고시에 합격하여 법조계에 두루 이름을 날린 변호사도 보았습니다.
무성영화로부터 시작된 ‘검사와 여선생’이 있습니다. 병든 할머니와 단둘이 살아 늘 굶주림에 시달리는 주인공은 친구들의 점심시간을 유리창 밖에서 바라보는데 선생님은 늘 그에게 자신의 도시락을 줍니다. 선생님이 학교를 떠나면서 준 저금통장의 도움으로 검사가 된 제자는 운명의 장난으로 살인누명을 쓰고 법정에 서게 된 선생님을 위해 따뜻한 사랑을 설명하면서 무죄임을 입증합니다.
변변한 직장이 아주 귀했던 옛날 고시 합격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꽤 많았습니다. 공부 좀 하는 집의 책꽂이에서 당시 유명했던 월간 ‘고시계’를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죠. 대학 시절의 여름 방학 때 경기도 오지의 절에 들어가서 아는 동생을 가르친 적이 있었는데 방마다 라디오도 없이 세상과 절연한 채 물과 나무를 벗삼아 사시공부에 몰두하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끈기가 없어 어느 일에도 오래 몰두하지 못하는 저는 그런 사람들이 부러울 뿐이었습니다.
개천에서 용 났다고 할 상징적인 인물인 고 노무현 대통령은 고졸로 약 7년간 독학해서 결혼하고 한참 뒤인 1975년 17회 사법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집에서 떨어진 산기슭에 토굴 비슷한 집을 짓고 공부했죠. 그는 그때 앉아서 편히 책을 볼 수 있는 실용신안특허품인 개량독서대를 고안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스스로 누구나 응시할 수 있는 출세의 등용문인 사시를 없애려고 그가 대통령 시절 도입한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제도는 법조인의 양성을 로스쿨 출신으로 제한함으로써 학부전공의 다양성을 취하려다 법조인 양성에서 경제적 계층 다양성을 놓쳤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일본 제도를 모방하면서도 신청하면 거의 다 인가한 일본과 달리 많은 대학에 로스쿨을 차단함으로써 게임의 규칙을 짓밟았다는 반격도 나왔습니다. 대학별 로스쿨 정원 할당은 무한도전의 실력 경쟁이 아니라 배급식의 나눠먹기라는 것이죠.
2016년 마지막 사시(1차)를 남겨놓고 선발 인원을 해마다 줄이면서 사양화로 치닫던 고시촌이 최근 법무부의 사법시험 4년 존치 연장 방침 발표로 옛 기운을 찾을까 기대된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정부의 이런 발표에 앞날이 불안했던 고시촌 사람들과 이들을 상대로 생계를 꾸려온 영세 상인들은 기대를 가질 것입니다. 그러나 로스쿨 재학생과 교수들은 신뢰의 원칙과 법적 안정성의 침해를 들어 사시의 존속을 반대하면서 로스쿨 자퇴, 사시 출제거부 위협 등 초강수의 반격을 외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된 데는 국회의원들이 변호사시험법 개정안 심의를 게을리 한 탓도 있습니다. 사시존치를 바라는 수험생 백여 명이 최근 국회 법사위원회를 헌법재판소에 제소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국회가 그간 제출된 사시존치 개정안의 심의를 외면했다는 것입니다. 존치를 하건 폐지를 하건, 그 결론은 치열한 국회의 토론을 거쳐야 하건만 발등에 불이 떨어져도 아무 일도 안 하는 불량, 무능 국회의 모습이 이 부분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법무부가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85.4%가 사시존치에 찬성했죠. 저도 사시의 존치에 찬성합니다. 로스쿨 졸업생들이 치르는 변호사시험 수준도 논란이 되었습니다만 로스쿨을 꼭 나와야 법조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돈 드는 교육을 더욱 심화시켜 여기에 못 가는 사람들의 공무담당권을 빼앗는 것이죠. 학부에서 다양한 전공자가 로스쿨로 들어가는 것도 좋지만 비싼 학비를 낼 수 있는 부자계층으로 변호사시험 자격을 국한하면 이들이 누린 기득권의 세습을 조장할 수 있다고 봅니다.
사시는 노력하면 출세한다는 성공의 스토리이자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의 사다리였습니다. 이 사회가 점점 활력을 잃어가는 원인은 이렇게 처지가 어려운 국외자들의 '높이뛰기'를 어렵게 만드는 현실에 있습니다. 자신들은 희망의 사다리로 높은 자리에 올라갔으면서도 옛날의 자신을 잊어버리고 남이 못 올라가게 그 사다리를 치워버리는 꼴입니다. 서민을 잘 알고 대변하는 법조인을 키우는 것도 법조인 양성의 중요한 국가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펌] / 필자; 김영환(한국일보, 서울경제 근무. 파리특파원. 부장 등 역임. 편역서 '순교자의 꽃들. 현 자유기고가) / 2015년 12월 16일 (수) 02:36:41
넉줄고사리 (넉줄고사리과) Davallia mariesii T. Moore ex Baker / 2015. 11월 광주시 남한산성에서 / 박대문(환경부 국장 역임) 촬영
방패연
연(鳶)에 해당하는 우리말은 딱히 찾기 힘들다. 한자의 원뜻인 솔개라고 부르기도 하는 모양이다. 솔개처럼 빙빙 돌다가 잽싸게 내리꽂는 모습과 같아 불린 것 같다. 영어에서 연을 뜻하는 카이트(kite)도 솔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중국에서 연을 처음 만든 노반(魯班)의 연 역시 솔개와 닮은 형태다.
신라 선덕여왕 시절 김유신이 비담의 난을 평정하기 위해 날린 연도 새의 형상이었다. 김유신은 하늘에서 별이 떨어지면서 군사와 백성들이 불안에 떨자 불 붙인 허수아비를 만들어 연과 함께 날려 하늘로 올라간 것처럼 꾸몄다. 떨어진 별이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고 소문을 내면서 난을 평정했다. 벤저민 프랭클린이 번개를 발견할 때 만든 연 또한 유명하다. 프랭클린을 흉내 내 비슷한 연을 만들어 날린 사람 중 여럿은 번개에 맞아 죽기도 했다.
정작 한국의 연을 대표하는 것은 방패연이다. 솔개 모양과는 전혀 닮지 않은 직사각형 연이다. 표면에 갖가지 그림을 그리거나 치장을 하는 일본 연과도 두드러진 차이를 보인다. 세계 어떤 연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중앙에 큰 구멍(방구멍)이 뚫려 있는 게 특징이다. 방구멍은 연이 올라가고 내려오는 것을 쉽게 해주고 센바람을 흡수해 연을 잘 뜨게 한다고 한다. 연싸움에서 요구되는 기동성에선 최적이다. 선조들은 이미 비행기 발명 이전에 방구멍을 뚫으면 훨씬 높이 올라간다는 사실을 이해한 것이다.
국내 과학자들이 방패연을 분석한 결과 초당 3~5m의 바람이 불고 연의 각도가 30~60도 사이에서 방구멍의 역할이 극대화됐다고 한다. 방패연과 더불어 연실을 빨리 감고 풀 수 있도록 한 얼레도 독창적으로 개발한 유산이다. 방패연을 날리는 묘미는 얼레를 얼마만큼 잘 조종하느냐에 달려있다.
1893년 열린 미국 시카고박람회에 출품됐던 조선 방패연 2점과 얼레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박물관에서 발견됐다고 한다. 이 방패연은 국내에서 찾기 힘든 19세기 실물이다. 시카고박람회는 조선에서 최초로 참가한 국제박람회였다. 고종이 방패연을 좋아해 출품했을 것이라는 추정도 있다. 당시 박람회에 참가했던 선각자들의 마음이나 지금 한강변에서 연을 날리는 아이의 마음이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연 띄워올리기 좋은 겨울이 왔다. 동네 뒤 언덕에 올라 귀가 얼어붙는 줄도 모른 채 한참을 연싸움에 골몰하다 보면 멀리서 엄마가 저녁 먹으라고 부르는 소리가 아련히 들리곤 했다.
[펌] / 출처; 한국경제 / 오춘호(한국경제 논설위원) / 2015-12-16 04:32:37
골든락-버마(golden rock) 버마 몬(mon)
북한 미녀는 위험하다
북한 미녀 소식에 이성 잃는 언론 풍토
관음증과 현혹으로 버무려진 불건강함
수상개화(樹上開花)라는 전술이 있다. 병법 ‘삼십육계(三十六計)’ 중 29계로 적의 힘을 약화시키는 데 활용하는 ‘병전계(倂戰計)’ 중 하나다. 가짜 꽃을 진짜 꽃인양 위장해 상대를 현혹하고 판단력을 흐리게 한 뒤 목적을 달성하는 전술이다.
『삼국지』에서 유비 세력이 조조 세력에 의해 결딴났던 당양 전투 당시 목숨이 경각에 달린 유비를 구한 장비의 장판교 대결은 이 책략의 성공사례로 꼽힌다. 장비는 20명밖에 안 되는 기병에게 말꼬리에 나뭇가지를 묶고 숲 속을 달리게 해 먼지를 일으키도록 한 뒤 홀로 장판교를 사이에 두고 조조군과 대치한다. 조조군은 천하맹장 장비의 명성에다 숲 뒤에서 일어나는 먼지를 보고 복병을 염려해 공격을 못하고 도망쳤다. 유비에겐 구사일생이었고, 조조에겐 ‘현혹의 계략’에 넘어가 유비를 놓침으로써 천하통일의 꿈이 꺾이는 장면이기도 하다.
북한 팝문화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북한판 걸그룹 모란봉악단에서도 ‘수상개화’의 향기가 느껴진다. 최근의 중국 공연을 위한 입국부터 취소까지 일련의 과정은 이들이 문화단체가 아닌 정치단체임을 보여준다. 북한 미녀를 앞세워 문화단체로 포장한 전술화된 수상개화의 전위대인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원래 북한은 화해와 친선의 제스처를 보여주고자 할 때 미녀들을 활용하는 데 능란하다. 한국에 미녀응원단을 보내 남성들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 는 것처럼 말이다. 이는 또 일종의 미인계다. 실제로 미인계와 결합한 전술들은 의외로 시대를 불문하고 먹히는 파괴력이 있다. 중국 후한 말 무소불위의 권력자 동탁을 2년여 만에 끝장낸 것도 사도 왕윤의 미인계로부터 시작됐다. 왕윤은 동탁과 그의 양아들 여포 사이에 초선을 들여보내 갈등을 유발하고 내부자들끼리 역시너지를 내도록 연환계(連環計)로 묶고, 여포 손으로 동탁을 죽이는 차도살인(借刀殺人)으로 공포시대를 끝냈다. 미인계는 반간계, 연환계, 수상개화 등 다양한 응용 버전으로 확산시킬 수 있는 유용한 전술이다.
북한의 미인계는 꽤 잘 먹힌다. 한국 남성들은 북한 미녀에게 신비주의를 덧씌우고 그녀들 앞에서 환호성을 지른다. 미녀응원단이 다녀가면 북한에 대한 호감도까지 상승할 정도다. 현혹의 수단으론 안성맞춤이다. 게다가 한국엔 그녀들의 전술적 가치를 높여주며 현혹을 극대화하는 메커니즘도 작동한다. 대한민국 언론과 미인에 대한 오래된 관념, 미인은 모두가 감상하고 품평할 수 있는 공공재라는 식의 ‘관음증적 미인 공개념’이 그것이다.
우선 언론. 이번 모란봉악단의 중국행 관련 보도만 봐도 이들의 중국 도착부터 귀국까지 그 ‘예쁜 언니’들의 사진이 도하 각 신문 주요 지면을 도배하고, 방송들은 실황중계를 하고, 포털뉴스는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했다. 공연 취소 후엔 팩트도 확인되지 않은 ‘카더라 통신’이 난무하며 관심을 지속시킨다. 북한 미녀 관련 소식은 이제 ‘믿거나 말거나’를 넘어 ‘맞거나 말거나’다.
이번 모란봉악단 단장이었던 현송월은 몇 년 전 음란물 제작으로 총살형을 당했다며 일부 종편이 몇 날 며칠을 패널들까지 동원해 담론을 벌였던 인물이다. 김정은의 옛 애인으로 이설주와 대립한다고 목청을 높였는데 그녀는 이설주가 관여한다는 모란봉악단의 단장이다. 이 정도 오보면 책임 추궁과 사죄가 있어야 한다. 한데 잠잠하다. ‘팩트는 신성하다’는 저널리즘의 기본은 안드로메다로 날아가고 선정성과 현혹이 난무하는 ‘소설저널리즘’이 판을 친다.
이 과정에서 남북한은 힘을 합쳐 그녀들을 인권의 사각지대로 몰아넣는다. 북한 미녀들은 전술적 소모품이 되고 성상품화되며 관음증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북한 미녀를 둘러싼 현실은 이처럼 잔뜩 일그러지고 흉측하다. 이젠 좀 냉정해져야 할 때다. 그녀들의 인권을 위해서도, 우리의 안보를 위해서도 말이다. 현혹의 책략에 넘어가면 최소한 회복 불능의 치명적 손실을 입는다는 건 역사가 증명한다.
[펌] / 출처: 중앙일보 / 양선희(중앙일보 논설위원) / 2015.12.16 01:33
냉동식품 ‘혼밥’
대학을 중퇴하고 미국 농무부에서 일하던 클래런스 버즈아이(1886~1956)는 1912년 생물표본 수집 차 알래스카 출장 도중 뜻밖의 광경을 목격했다.
에스키모가 갓 잡은 생선을 매서운 추위 속에서 바로 얼린 뒤 보관해 놓고 몇 달간 요리재료로 쓰는 모습을 본 것이다. 뉴욕으로 돌아온 그는 단돈 7달러로 선풍기, 소금물통, 얼음조각을 산 뒤 급속 냉동법 연구를 시작했다. 1925년 버즈아이는 냉동기를 발명했지만 냉동 생선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매출은 저조했다.
▦ 버즈아이는 제너럴 씨푸드사를 설립, 냉동 해산물 판매를 시작한 뒤 점차 소고기 돼지고기 과일 야채 등으로 냉동식품 종류를 확대했다. 1929년 제너럴 씨푸드사와 냉동기술 특허권을 통째로 매각한 버즈아이는 장기간 보관과 신선도 유지가 가능한 냉동기술 개발에 매진했다. 그의 발명은 미국 가정과 식탁에 일대 변화를 몰고 왔다. 요리 시간 단축으로 직장을 다니는 주부들의 가사 부담이 크게 줄었다. 1930년대 이후 미국 가정에 냉장고 보급이 확대되고 냉장고의 냉동 칸 크기가 커진 것은 버즈아이의 냉동기술 덕분이다.
▦영하 40℃이하에서 급속 냉동을 하면 식품에 미세한 얼음 결정이 생겨 세포나 조직이 파괴되지 않은 채 그대로 유지된다. 냉동식품은 비타민 등 영양성분의 손실도 적다. 다만 냉동실에 오래 보관하면 식품이 건조하고 지방질의 산화 작용이 발생해 색깔이 변하기 쉽다. 냉동과 해동은 식품 종류에 따라 다르다. 채소는 더운 물에 살짝 데친 뒤 얼렸다가 뜨겁게 가열해 녹이는 게 좋다. 반면 과일은 날 것대로 얼린 뒤 반쯤 녹여 먹는다. 냉동 조리식품은 냉동고에서 꺼내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리는 것으로 족하다.
▦버즈아이가 산업화한 냉동 조리식품이 청춘들의 허기를 채워주고 있다. 최근 설문조사결과 20대의 54.5%가 집에서 ‘혼밥’으로 냉동식품을 먹는다고 답했다. 조리가 간편하고 장기 보관이 가능한데다 식당 음식보다 싸기 때문이다. 1인 가구 증가도 영향을 미쳤다. 유명 요리 전문가가 기획 생산한 3,500원짜리 도시락 등 종류도 다양해지고 질이 높아진 것도 배경이다. 그러나 그 저변에는 최저 시급 5,580원(내년 6,030원) ‘알바’로 힘겹게 생활해 내야 하는 청춘들의 현실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펌] / 출처; 한국일보 / 황상진(한국일보 논설위원) / 2015.12.15. 20:00
피어리스
여성 투표권
여성 참정권 역사를 더듬어 보면 뜻밖의 사실들을 발견하게 된다. 처음으로 여성의 투표권을 보장한 나라는 1893년 뉴질랜드다. 다음은 호주로 1902년에 참정권을 도입했다. 유럽에서는 북유럽 국가들이 앞장섰다. 핀란드는 1906년 유럽 최초로 보통선거를 실시하면서 여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했다. 이어 인접 노르웨이가 1913년, 덴마크가 1915년 여성 참정권을 보장했다. 마치 도미노처럼 여성 참정권이 인근 국가로 퍼져나간 것이다.
영국과 미국, 프랑스 등 민주주의 전통이 일찍 확립된 국가에서 여성 참정권이 늦은 것은 아이러니다. 영국은 1918년 30세 이상의 여성에게 제한적으로 참정권을 부여했다가 10년 뒤 21세 여성까지 확대했다. 1870년 흑인 노예에게 참정권을 준 미국이 여성의 참정권을 인정한 것은 1920년이었다. 여성이 노예보다 늦게 참정권을 행사했다.
프랑스의 여성 참정권 행사는 지난한 투쟁의 결과였다. 1789년 8월 프랑스혁명 중 라파이예트는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을 발표했지만, 이 ‘인간’에서 여성은 제외됐다. 이에 여성혁명가 올랭프 드 구즈는 ‘여성과 여성시민의 권리선언’을 통해 “여성은 태어날 때부터 모든 분야에 있어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는 여성의 국민투표를 주장하는 벽보를 붙이다 체포돼 “여성이 단두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면 의정단상에도 오를 권리가 있다”는 절규를 남긴 채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자신의 성별에 적합한 덕성을 잃어버린 사람’ 구즈의 죄목은 ‘남성만의 평등을 위한 혁명에 제동을 걸었다’는 것이었다. 이후 프랑스에서는 기나긴 암흑기를 거친 끝에 1944년에야 여성에게 참정권이 허용됐다. 올해 프랑스에서 여성과 남성 장관이 똑같이 17명씩인 남녀평등 내각이 탄생하기까지 무려 220년이 걸린 셈이다.
여성 참정권을 허용하지 않던 마지막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지난 12일 여성들이 처음으로 투표권을 행사했다. 유권자 등록 시 남성 가족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등 제한적인 참정권이지만, 여성 투표율이 82%로 남성보다 두 배 높았다. ‘아랍의 봄’ 이후 탄력을 받은 여성들의 투쟁의 결과다. 투표지 한 장에 스며 있는 가치에 숙연해진다.
[펌] / 출처; 경향신문 / 이중근(경향신문 논설위원) / 2015-12-15 21:30:01
Preikestolen-노르웨이
1636년의 겨울, 병자호란과 남한산성
1636년(인조 14) 4월 후금(後金)은 국호를 청(淸)으로 바꾸고 수도를 심양에 정하면서 본격적으로 중원 장악의 기틀을 마련했다. 누루하치의 뒤를 이은 청 태종 홍타이지는 스스로 황제라 칭하며 명나라에 대한 총력전을 선언했다. 그리고 그 전 단계로 조선에 대해 군신(君臣) 관계를 맺을 것을 요구해 왔다. 전통적으로 북방 민족을 오랑캐라 멸시했던 조선 입장에서는 수용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조선은 요구를 거부하고 청에 대한 강경 노선을 고수했지만, 청나라는 동아시아 최강국으로 성장한 군사강국이었다.
1636년 12월, 강추위보다 더한 충격과 공포가 조선에 밀려왔다. 청 태종의 명으로 심양에 집결한 12만 명이 넘는 병력 중 기병 선봉 6000여 명이 12월 8일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넜다. 병자호란이 시작된 것이다. 질풍같이 쳐들어온 청군은 압록강을 넘은 지 5일 만에 서울을 점령했다. 1627년 정묘호란을 겪었지만 별다른 방어대책이 없었던 인조와 조정 대신은 서둘러 피란길에 나섰다. 청군의 선발대가 양화진 방면으로 진출해 강화도로 가는 길을 차단하자 인조 일행은 차선의 피난처인 남한산성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1636년 12월 15일 남한산성은 청의 대군에 의해 완전히 포위됐다. 성 안에는 쌀과 잡곡을 합쳐 1만6000여 석이 있었는데 이는 1만 명이 한 달을 버틸 수 있는 양이었다. 청군은 포위망을 구축하고 장기전으로 들어갔고, 항전이 길어지자 성 안 사람과 짐승이 굶주려 말과 소가 죽고, 살아있는 것도 서로 꼬리를 뜯어먹는 상황이 지속됐다. 매서운 추위에 눈과 비가 내리면서 군사들은 얼어 죽기도 했다.
12월 24일 진눈깨비가 그치지 않자 인조는 세자와 승지, 사관을 거느리고 ‘이 고립된 성에 들어와서 믿는 것은 하늘뿐인데, 찬비가 갑자기 내려 모두 흠뻑 젖었으니 끝내는 얼어 죽고 말 것입니다. 내 한 몸 죽어도 애석하지 않지만 백관과 만백성이 하늘에 무슨 죄가 있습니까. 조금이라도 날을 개게 하여 우리 신민을 살려 주소서’라며 땅에 엎드려 통곡했다. 1
2월 29일 북문 밖에서 청군의 기습 공격이 실패로 돌아가고, 1월 15일 산성 외곽에서 저항했던 충청도 관찰사 등의 패전 소식도 들려 왔다. 더 이상의 저항이 불가해지자 주화파의 중심인물 최명길이 청 태종에게 항복을 청하는 국서를 작성했다. 여전히 척화파의 목소리가 컸지만, 형세의 불가함을 파악한 인조도 결국 최명길의 주장에 동의했다.
1637년 1월 30일 인조는 47일간 버티던 남한산성을 나와 삼전도(현재 잠실 석촌호수 부근)에서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림)의 항복 의식을 마쳤다. 우리 역사상 가장 치욕스러운 순간이었다. 1636년의 병자호란은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명분만 강조한 강경 외교가 얼마나 큰 우를 범하는지를 생생하게 기억시켜 줬다. 그리고 남한산성은 그 아픈 역사를 지켜본 공간이다. 남한산성은 역사성과 함께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380년 전 가장 추운 겨울을 맞이했던 남한산성을 찾아 그날의 역사를 되새겨 보았으면 한다.
[펌] / 출처; 세계일보 / 신병주(건국대 교수⋅사학) / 2015-12-15 21:31:30
고부가 기술 '금속⋅바이오 3D 프린팅'
소비자용 프린터 북미⋅中이 장악… 고부가 특수 시장 집중해야 승산
정부, 장기계획 따라 적극 육성을
2015년은 3D 프린팅 기술이 제2의 도약기를 맞은 해였다. 올 초 시장을 놀라게 했던 100배 빠른 3D 프린터나 스마트 소재 기반의 4D 프린터의 등장 등 3D 프린팅 시장의 급격한 변화와 발전은 현재진행형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프린팅 속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기술력을 선보였으며 고강도 소재나 차세대 3D, 혹은 4D 프린터의 근간인 다양한 소재를 하나의 프린터에서 프린팅할 수 있는 다물질 프린터(multi-materials printer) 등의 발전이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에 비해 3D 프린팅 시장은 그렇게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세계적인 3D 프린터 기업들은 사업 확장 과정에서 경영 문제를 겪고 있고 중소 프린터 회사들이 급속히 증가함에 따라 프린터의 판매 수익이 기대치에 못 미치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시장예측 기관들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3D 프린팅 시장의 5년 내의 성장 전망치는 여전히 높게 평가되고 있다. 특히 금속, 바이오 3D 프린터 시장은 지속적인 성장을 보이고 있다.
금속 3D 프린터의 경우 선박⋅항공기 등의 엔진 부품을 제작할 수 있어 이미 시장은 상당히 크게 형성돼 있다. 특히 금속 3D 프린터에 사용되는 분말(powder) 시장이 크게 성장 중이며 일반 분말야금소재 대비 3D 프린팅 분말소재의 가격은 3~10배의 높은 가격으로 형성돼 있다. 시장조사기관인 마켓앤드마켓은 최근 보고에서 3D 프린팅 분말소재 시장 규모를 오는 2020년까지 6억4,000만 달러로 예측,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연간평균 성장률을 24.4%로 보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금속분말 소재를 사용하는 곳은 항공기와 군 관련 분야에서 약 3분의1을 차지하고 있으며 주로 제트엔진 부품의 생산이나 재사용을 위한 보수에 3D 프린팅 분말소재가 사용되고 있다. 또 활발히 사용되는 곳은 자동차와 의료⋅치과 분야이다. 직접 머리뼈를 대체할 구조를 프린팅할 수 있는 금속 3D 프린터가 이미 시판 중이며 임플란트나 다른 의료 장치를 맞춤형으로 만드는 용도로 쓰인다.
금속 3D 프린터와 함께 가장 활발한 분야는 바이오 3D 프린팅 시장이다. 그랜드뷰리서치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3D 바이오 프린팅 시장의 크기는 2014년에 이미 4억9,000만 달러, 2022년까지 18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된다. 치과나 간단한 임플란트는 이미 시장이 형성돼 있고 뇌나 심장 등 수술이 어려운 분야에서는 수술 전에 연습을 위한 인공모델을 실제 장기와 질감이나 형상이 유사하게 프린팅돼 사용함으로써 수술 성공률을 높이는 방법도 이미 시험 단계를 넘어섰다.
약물의 독성 테스트나 약물전달, 조직공학(tissue engineering), 화장품 테스트를 위한 인공피부, 뼈 이식, 치아 교정 등의 분야에서 시장이 활발히 성장하고 있다. 의료 분야에서는 앞서 언급한 분야뿐 아니라 3D 의료용 알약과 같은 바이오 의약품 등의 신(新)시장이 2022년에 전 바이오 프린팅 시장의 30%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주에 정부는 '스마트제조 R&D 중장기 로드맵'을 발표했다. 12월10일자 서울경제 기사에 따르면 오는 2020년까지 스마트센서⋅지능형 제조시스템, 3D 프린팅 등 8대 스마트제조 기술개발에 4,161억 원의 자금이 투자된다. 8대 기술 중 생산시스템 혁신기술에 3D 프린팅 기술이 포함됐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특히 앞서 언급한 고부가가치 기술에 집중할 수 있으면 좋겠다.
소비자용 3D 프린터는 북미나 중국의 기술력이나 시장 점유율을 넘을 수 없을 것이다. 금속이나 바이오 3D 프린팅 기술의 핵심 시장은 북미이며 그 다음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인데 주요 몇몇 업체는 글로벌 시장을 확보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세계적인 기술력을 가진 한두 업체가 있지만 아직은 스스로 고군분투하는 실정이다. 이번에 마련된 제조업혁신 대책이 장기적인 로드맵을 만들고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컨트롤 타워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펌] / 출처; 서울경제 / 문명운(KIST 계산과학연구센터장) / 2015.12.15 22:21:22
초현실주의 화가 롭 존잘베스(Rob Gonsalves. 1959년생. 캐나다 출신)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