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초, 청계천 헌책방을 돌며 잡지를 뒤지는 소년이 있었다. 잡지에 실린 ‘명화(名畵)’를 발견하면 그 부분만 찢어서 팔라고 책방 주인에게 사정했다. 그렇게 모은 그림들로 르네상스, 바로크, 현대미술 등 서양미술사를 익혔다. 1972년 경복궁에서 열린 〈한국근대미술 60년〉전. 이중섭・박수근・김환기・이상범 등 한국을 대표하는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이 한꺼번에 나온 전시였다. 그런데 몇몇 작가를 빼면 동시대를 살아온 수많은 작가에 대한 자료는 전시 팸플릿조차 찾기 어려웠다.
고3이었던 그는 “사라져가고 있는 미술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마음먹었다. 자기 소개와 포부를 적은 글을 등사해서 미술평론가, 갤러리 대표, 잡지 편집장 등 미술 관계자들에게 보냈다. 그중 어떤 이는 “취미로는 괜찮지만, 직업으로 연결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충고했다. 당시 홍익대 박물관장이었던 이름난 미술평론가 이경성 씨는 “찾아오라”고 그를 불렀다. 그는 넙죽 큰절을 한 뒤 그동안 잡지를 찢어 모아온 그림 스크랩 15권을 보여드렸다. 이경성 관장은 “네 열정을 기억하고 있겠다”고 했다.
그 소년은 남이 알아주든 말든 한번 마음먹은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평생 모은 미술자료로 박물관을 만들었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장(56)이다. 서울시 마포구 창전동 미술자료박물관에서 김달진 관장을 만났다. 박물관은 5월 26일부터 7월 23일까지 <한국 현대미술의 해외진출-전개와 위상>전을 하고 있다. 1950년대부터 외국에서 열린 한국작가 전시회의 팸플릿과 리플릿, 도록, 포스터, 입장권, 전시장 사진들이 일목요연하게 전시되어 있다. 한자리에 모으기 어려운 귀한 자료들이다. 청소년기 시작된 미술자료 수집에 대한 열정. 그는 어떻게 그런 열정을 가지게 되었으며, 집요하게 한길을 걸어올 수 있었을까.
“원래 뭔가 수집하는 것을 좋아했어요. 처음에는 우표와 상표, 담뱃갑을 모았지요. 그런데 그런 걸 수집하는 사람은 많더라고요. 잡지에 실린 그림을 모으면서 어렴풋이나마 서양미술사의 흐름을 읽을 수 있었고, ‘남은 모르는 지식을 쌓고 있다’는 자기만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5남1녀의 막내에 내성적이었다는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말한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결핍이 그를 그림의 세계로 이끈 것일까. 잡지를 뒤적이다 그림을 발견할 때면 마음이 편안하고 뿌듯해졌다. ‘일생동안 진지하게 작품 활동을 해왔다면 스타 작가가 아니라도 역사적 기록으로 남아야 한다’는 생각에 꾸준히 자료를 모아온 그에게는 260여 명의 작가 스크랩이 있다. 중학교 때부터 신문이나 잡지를 뒤져 작가 관련 기사나 화보를 정리하면서 만들기 시작한 자료다. 가족들은 “그런 일이 밥 먹여주냐” “그걸로 먹고 살 수 있느냐”고 걱정했지만 그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살겠다’는 결심을 굽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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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부터 신문·잡지 뒤져 작가 스크랩
1978년부터 1980년까지 그는 월간 〈전시계〉에서 사원 겸 기자로 일했다. ‘무슨 일을 하든 그림과 관계된 곳에서 일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들어갔는데, 전시회를 쫓아다니며 작가를 만나고 글을 쓰는 일이 마냥 좋았다. 그런데 1980년 언론통폐합 때 잡지가 폐간되었다. 미술연감 만드는 일을 하다 누님이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청주로 내려가 카운터 일을 도왔다. 그때 이경성 씨가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이 되었다는 기사를 읽고 무조건 찾아갔다. “청소부라도 좋으니 미술관에서 일하고 싶다”고 사정해 일당 4500원 일용직으로 미술관에 취직했다. 1981년부터 1996년까지 15년 동안 국립현대미술관 자료실에서 일했지만, 그는 말단 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3년 기간제로 별정직 7급에 있었던 때를 제외하면 기능직 10급으로 타자수나 방호원과 같은 위치에 있었다. 처음 들어올 때 신분을 뒤집기 어려웠다. ‘대학 졸업장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서른넷 나이에 서울산업대 금속공예과에 입학했다. 새벽에 영어학원에서 공부한 후 과천국립현대미술관에서 근무하고 밤에는 미술학원에서 입시미술을 배우며 끈질기게 도전한 결과였다. 미술 선생님은 “당신같이 실력이 늘지 않는 사람은 처음 봤다. 미대 입학은 포기하라”고 했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중앙대 예술대학원에 진학해 석사학위까지 받았다.
“금속공예가 전공인데도 브로치 하나 만드는 것도 힘들더라고요. 미대를 다녔기에 얻은 게 있다면 전시장에서 남의 작품을 쉽게 폄하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작가로서는 최선을 다해 작업한 결과물을 내놓은 것이니까요.”
미술관에 근무할 때 그의 별명은 ‘금요일의 남자’였다. 금요일이면 어김없이 서울의 인사동・동숭동・사간동 등 화랑가에 나타나 전시 팸플릿을 수집해가서였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미술기관인데, 작가나 화랑에서 보내오는 팸플릿만 정리하고 있자니 답답하더군요. 직접 자료를 수집해야겠다는 생각에 금요일이면 출근부 도장만 찍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놀러 나가는 것 아니냐’는 눈총도 받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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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부터 작가들의 자료를 수집해온 데다 미술관 자료실에서 오래 근무하다 보니, 미술자료에 관한 것이라면 그에게 묻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동안 모아놓은 자료를 바탕으로 통계도 내고 도표도 만들어 발표했다. 잘못된 기록은 바로잡았다. ‘오늘의 기록이 정확해야 정확한 역사를 남길 수 있다’는 신념에서였다. 미술자료에 있어서는 최고의 전문가로 인정받게 된 그. 1996년 국립현대미술관을 나온 그는 가나아트센터 자료실장을 거쳐 2001년 김달진미술연구소를 만들었다. 2002년 1월 국내외에서 개최되는 최신 미술전시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정보지 〈서울아트가이드〉를 창간했고, 2002년 9월에는 전시회 소식과 미술계 뉴스, 미술인 인명사전 등 미술정보를 신속하게 전달하는 온라인 아카이브라 할 수 있는 미술종합포털 달진닷컴(www.daljin.com)을 선보였다. 그리고 2008년 3월, 국내 최초의 미술자료 전문박물관인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을 개관했다. 우리나라 근현대미술 연구의 기초가 되는 미술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분류・보존・연구하기 위해서였다. 박물관에는 일제 강점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에서 출간되었던 미술 관련 단행본, 정기간행물, 학회지, 논문, 도록과 팸플릿, 작가 관련 신문이나 잡지기사, 작가별 개인 파일이 소장되어 있다. 희귀본을 제외한 자료는 일반인도 쉽게 열람할 수 있다.
“2007년부터 제가 수십 년간 모아온 자료를 일반인도 볼 수 있게 서가를 공개했는데, 2008년 박물관을 개관한 후 열람실을 좀더 체계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10년에는 아예 열람실 기능을 분리해 한국미술정보센터를 열었죠. 제가 꿈꾸어온 것이 한국 현대미술에 대한 아카이브를 구축해 우리나라 현대미술에 대한 기록과 연구의 밑거름이 되는 것, 그리고 현재 일어나고 있는 최신 미술정보를 일반인에게 제공해 미술문화 활성화에 기여하는 것이었습니다. 미술자료박물관과 한국미술정보센터, 전시정보가 총망라된 월간지 〈서울아트가이드〉와 달진닷컴을 통해 그 꿈을 이룬 것 같아 뿌듯합니다.”
청소년 시절 꿈꾸던 것을 하나하나 이루어냈지만 그의 삶은 가시밭길의 연속이었고, 가시밭길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미술사 연구자에게는 보고(寶庫)와 같은 곳이지만, 일반인이 흥미를 가질 만한 요소는 많지 않은 자료박물관인 데다 무료로 개방하고 있어 운영비를 충당하기란 어려운 일. 2009년에는 화가와 미술평론가, 화랑 대표, 큐레이터 등 미술계 관계자들이 그를 돕기 위해 후원회를 조직했다. 2010년에는 ‘예술전용공간 임차지원사업’ 대상으로 뽑혀 홍익대 앞에 널찍한 공간을 지원받았지만, 2년간의 지원기간이 끝나면 어디로 옮겨야 할지 막막하다. 그는 그러나 “시작은 미미하지만 끝은 창대하리라”라는 성경 구절에 의지해 앞으로도 한발 한발 나가겠다고 말한다.
李善珠 TOPCLASS 편집장 (sunlee@chosun.com)
사진 : 김선아
후원회 블로그 : http://blog.naver.com/artjar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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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에 대한 열정으로 고마운자료들이 넉넉한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