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E.B.A.C.K
THE MUSICIAN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하지만 이제 뒤돌아 보니
우리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
눈물같은 시간의 강 위에
떠내려가는건 한 다발의 추억
그렇게 이제 뒤 돌아 보니
젊음도 사랑도 아주 소중했구나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헤어진 모습 이대로
젊은 날엔 젊음을 잊었고
사랑할 땐 사랑이 흔해만 보였네
하지만 이제 생각해 보니
우린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
언제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헤어진 모습 이대로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헤어진 모습 이대로
이상은.
언젠가는.
-신연성의 애창곡.
제 5화. 삶은 계란
"쇼 프로만 연출하다가... 드라마 감독을 하겠다고?"
넘치는 여유를 거만함으로 내보이고 있는 50대 중년 남자의 책상 앞에 연성이 정자세로 서 있었다.
은선이 넘겨주고 간 드라마 진행을 위해 들른 SBC 드라마국 국장실.
깐깐한 윗사람들과의 대면은 언제나 그렇듯 이렇게 꺼림직하다.
"이은선이랑 몇 년이나 일했나?"
"방송국 입사하자마자 이선배님 밑에 있었습니다. 5년 됐습니다."
"5년... 그럼, '더 뮤직'을 같이 했겠군."
"그렇습니다."
"......드라마국에선 말야. 8년을 썪어도 작품 하나 맡을까 말까거든."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는데, 그런데도 드라마를 해보겠다고?
너보다 경력 많은 놈들도 야외촬영 나가서 조명들고 있어. 그런데도 하겠다고?"
"이선배님이... 맡기고 가신거니까요."
"선배님이라..."
"제게 부탁하고 가셨습니다."
"허. 너한테? 이은선이가 너한테 부탁을 했어?"
어이가 없다는 투의 콧웃음. 기분이 나빴지만 내색할 수는 없었다. 자존심을 내세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녀의 이름. '이은선'이란 이름을 지켜야 하는 상황이었다. 신연성의 자존심은 그 다음이었다.
"16부작 미니시리즈. 8회, 아니 6회 안으로 시청률 15% 내겠습니다. 믿어주십시오."
"15%라... 자네 그 근거없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건가?"
".........."
"보나마나 그것도 이은선한테 배운거겠지."
".........."
"대본은 받았겠지."
"그렇습니다."
"6회 안으로 15%. 잊지 마."
"감사합니다."
"나가 봐."
절에 가까운 인사를 하고 답답했던 국장실을 빠져나왔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안과 밖의 공기는 그야 말로 하늘과 땅 차이다.
그의 심장을 꽉 조이고 있던 무언가도 제법 느슨해졌다.
목을 조르고 있던 타이도 느슨하게 잡아 맸다. 정말, 이제는 좀 살 수 있을 것 같다.
연성을 바라보는 드라마국 PD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랬기에 그는 신경쓰지 않았다.
그들을 미워해서는 안되었다. 그러는게 옳았다.
그가 예능PD로 남아있을 시간도 이젠 3일.
5월 개편과 함께 현재 맡고 있는 토크 쇼 'Special Tonight'을 조연출에게 넘겨주고,
드라마국으로 넘어와 드라마 제작에 착수하기로 되어있다.
할 일이 많다. 예능국에서 그가 맡고 있는 직위 인수인계도 해야하고, 드라마국으로 짐도 옮겨와야 한다.
예능국으로 향하는 그의 걸음이 가볍지가 않았다. 친숙한 얼굴들이 그를 스치며 멀어진다.
멀어진다. 멀어진다...
멀리 떠나는 것이 아님에도 따라붙는 정이란 이렇게 무섭고 진득한데,
그녀는 이런 고통을 어떻게 홀로 견뎌 냈을까.
이은선이란 사람을 알고지낸지 5년 만에 처음으로 그녀가 불쌍해지는 순간이었다.
"독해, 정말. 독해."
"해 떨어지려면 아직 한참이나 남았는데, 어디서 한 잔 하고 오셨나봐요?"
쓸쓸한 혼잣말을 되받아치는 목소리에 발끝을 향해 있던 연성의 시선이 천천히 위로 올라왔다.
예능국에 도착한 그의 앞에 서 있는 긴 생머리의 여자.
그녀를 보자 울상을 짓고 있던 연성의 얼굴에 금방 화색이 돌기 시작한다.
이럴 땐 그도 똑같은 남자였다. 미인 앞에선 어쩔 줄을 모르는 바보같은.
"아, 어쩐 일이세요?"
"저녁 좀 얻어먹으려고요."
"저녁이요?"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나가는 연예 기획사 신은 Ent의 기획실장 차은주.
그녀의 제안아닌 제안에 당황한 듯 연성은 머리를 긁적였다.
"곤란하세요?"
"아, 그게 아니라..."
"그럼 다음에 얻어먹죠."
"아, 그게 아니라..."
"그럼 약속 있으세요?"
"아뇨, 그런 건 아니고..."
"오늘은, 제가 대접해도 될까요?"
"네?"
연이어 당황해 하는 연성이 귀여웠는지 은주는 손등으로 입을 가리며 웃음을 지었다.
그 입가에 패이는 보조개가 예쁘다고 생각하고 있을 찰나,
연성은 그의 손에 닿은 은주의 접촉에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섰다.
은주의 입장에선, 그저 쪽지를 전해주려 했던 것이었는데 예민하게 반응하는 연성 때문에
그녀는 어색한 미소로 연성을 바라보고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이게, 뭡니까?"
"근사한 레스토랑이 있더라고요. 방송국에서 만날 중식만 시켜드셨을텐데, 오랜만에 칼 질 한 번 하시죠?"
화사한 미소를 마지막으로 뒤돌아버린 그녀. 그녀가 자리를 완전히 떠난 뒤 한참이나 후에야 정신을 차린 연성이었다.
"신PD 그래가지고 어디 장가나 가겠어? 여자 앞에선 그렇게 정신을 못차리고 벌벌 떠니 원."
멍한 표정의 연성을 놀려대는 동료들. 민망한 듯 좌우를 급하게 돌아본 뒤 그는 재빨리 자신의 자리로 들어갔다.
-
그녀가 예고했던대로 근사한 분위기의 레스토랑이었다.
은은한 불빛의 조명과 음악회에 가서나 들을법한 익숙치않은 클래식.
드라마국장을 만나느라 오랜만에 찾아입은 정장과 매우 잘 어울리는 실내다.
웨이트리스의 안내에 따라 도착한 테이블엔 은주가 늘 그랬듯 환하게 웃고 있었고,
그녀의 옆엔 한 눈에 확 들어오는 외모를 가진 스무 살 남짓의 여자가 무심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연성은 웨이트리스가 빼주는, 은주의 맞은 편 자리에 앉았다.
"늦게...왔나요?"
예의 상의 질문. 은주는 상냥하게 대답했다.
"아니요. 알맞은 시간에 오셨어요."
"아, 예... 그런데 이 분은 누구..."
"아, 인사드려. SBC 'Special Tonight' 신연성 PD님이셔."
"처음 뵙겠습니다. 김연경이라고 합니다."
무심한 표정으로 앉아있다가, 의자를 밀고 일어나 90도 각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연경.
몇 시간 전 드라마국장 앞에서의 그도 이런 모습이었을까... 그녀를 보며 연성은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난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닌데... 지나쳐요. 이런 인사는."
연성의 다정함에도, 연경은 쉽사리 표정을 풀지 않았다.
무슨 커다란 걱정이 있나... 조금은 겁을 먹은 듯한 연경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연성은 은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예쁜 아가씨네요. 은주씨 동생인가요?"
"후훗. 그랬으면 얼마나 좋아요. 저희 기획사 히든카드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번에 데뷔시킬 아이에요."
"이번에도 대박 나시겠는데요? 하하."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제 곧 데뷔를 할거라는 은주의 말에 연성의 얼굴이 서서히 떨려오기 시작했다.
아주 짐작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덜컥 이런 일이 일어나고 보니 앞으로의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신은 Ent. 그 곳에서 배출해낸 대스타가 벌써 수 십이다.
배우 전문 양성소에서 가수 양성에 손을 뻗친지 겨우 3년. 짧은 시간 동안의 신은 Ent의 발전은 경이에 가까웠다.
요즘 잘나간다 하는 배우들은 모두 신은 Ent 소속이었고, 연예지망생들이 그리는 꿈의 기획사가 바로 신은이었다.
신은을 통한다면 정상에 서기란 시간 문제.
하지만 그렇게 빨리 스타가 되는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스폰서(Sponsor). 신은 소속의 연예인들 그 배후에는 적게는 하나, 많게는 수도 없는 스폰서가 존재하고 있었다.
공중파는 물론 지방과 케이블 PD는 물론이고 정재계 주요 인사까지 신은Ent가 손을 내밀지 않은 곳은 없었다.
그 일은 모두 기획실장인 차은주의 손을 거쳐 이루어졌고
바로 오늘, 비일비재했던 신은의 활동이 연성의 앞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곧 데뷔할거라는 신인 여가수. 아니 배우일지도 모르겠다.
올리비아 핫세를 꼭 닮은 아름다운 연경을 은주가 연성에게로 밀었다.
"몇...살이죠?"
"열 아홉이에요."
은주의 대답에 연성은 질끈 눈을 감았다.
이 자리에 나오기까지, 아직 스물이 채 못된 아이는 또 얼마나 두려했을까.
다시는 연경을 쳐다보지 못할 것 같았지만, 연성이 눈을 뜨자마자 맞닥뜨린 것은 바로 연경의 눈이었다.
'아저씨도 똑같아...'
경멸하고 있는 것 처럼 느껴진다. 비웃고 있는 것 처럼 느껴진다.
연경의 초점없는 눈빛이, 연성에겐 그렇게 느껴졌다.
"신PD님, 이번에 드라마 하신다면서요."
"그건 어떻게 아셨어요?"
연성이 토끼눈을 하고 은주를 다급히 바라보았다.
평화로운 기색의 은주는 와인으로 목을 축여주는 여유와 함께 전 보다 더한 미소를 곁들여 천천히 대답했다.
"그야... 신PD님에 대한 제 관심해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
"실은, 우리 연경이도 그 드라마에 캐스팅 되었거든요. 모르셨죠?"
"그야... 캐스팅은 조연출 담당이니까요... 저는 아직 조연출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아무쪼록 잘 부탁드려요. 열 아홉이지만, 깊어요. 아주. 생각하는게."
연경의 등을 쓸어내리는 은주. 그녀의 손길을 뿌리치지 못한 체 연경은 떨리는 몸을 겨우 부축하고 있었다.
연성의 눈엔 그게 보였다.
식사가 도착하기도 전에 볼 일이 있다며 일어난 은주는 뭔지모를 눈빛만을 연경에게 남기고 떠났다.
".........."
".........."
아무런 대화도 없이 설 익은 소고기에 닿는 칼 소리와 접시 부딪히는 소리만 오가는 테이블 위에서
어색함을 끊고자 먼저 입을 연 쪽은 연경이었다.
"호텔이 좋겠죠?"
딱 한마디. 연경의 입에선 딱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뭐?"
"잘나가는 PD신데, 호텔은 무리 없지 않아요? 자주 가시는 곳 있을거잖아요. 거길로 가죠."
".........."
연성은 양손에 쥐고 있던 나이프와 포크를 내려 놓고, 테이블 위에 팔 하나를 올려 이마를 받쳤다.
"그럼, 그냥 모텔로 가실래요?"
"이봐. 이봐요."
".........."
연성은 쿵쾅거리는 심장을 긴 심호흡으로 진정시키고 제법 매서워진 눈빛으로 연경을 바라보았다.
"아가씨. 아까 나이가 몇이라고 했지?"
".........."
"열 아홉. 열 아홉. 그럼, 난 몇 살인 줄 알고 있나?"
".........."
"나는 말이죠, 나는 서른 두살이에요. 아가씨보다 열 세살이나 많아. 띠 하나를 빙 두르고도 한 칸을 더 갔어."
".........."
"더 중요한 건 말야. 나한텐 아가씨만한 남동생이 있어. 걔도 열 아홉인데, 학교를 다녀. 열심히 다녀. 아주."
".........."
"지금 넌. 이것도 배우가 되기 위한 과정인가?"
".........."
"...그런 말, 다시는 하지마. 농담이라도 하지마. 오해 받어."
".........."
"안 하겠다고 해. 기획사에서 시켜도 안 하겠다고 해. 누구나 그래선 안되지만, 아가씬 더더욱 안돼.
아가씬, 아직 어른도 안 됐잖아."
"어른의 기준이 뭔데요?"
처음으로 연경의 눈빛이 분명해지는 순간이었다.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는 그녀의 눈빛. 열망에 젖어 있는 눈빛이라면 좋았을 것을...
안타깝게도 지금 그 눈빛은 분기를 토해내고 있었다.
"도대체 어른이란게 뭔데. 어디까지가 애고, 어디서부터가 어른인건데.
삼촌뻘, 아빠뻘, 아니 그 이상 되는 아저씨들도 그냥 여자라면 좋아.
그냥 여자라면 좋아서 넥타이 풀고 벨트도 풀어.
그 아저씨들, PD님 보다 나이 많아요.
어른이 아니라서 그런가? 아니면, 그 아저씨들 앞에서 난 어른인건가?"
되돌릴 수는 없을까. 지금도 무심히 지나가고 있는 그 사람을.
시간...이라는 그 존재를 붙잡아 다시 되돌려 보낼 수는 없을까.
곰곰히 생각하다보면 방법이 나올까. 정말 할 수 있을까.
상처받기 이전으로, 이 세상을 알기 이전으로, 지금보다 더 어린시절로,
이 아이를 데려다 놓을 수는 없는걸까.
어느 것 하나 마음대로 이룰 수 없는 상황.
신연성. 그의 삶에 대한 회의를, 처음으로 느껴보는 순간이었다.
첫댓글 오호- ㅋ 한껏 빠져 들어서 읽었는데.. 아쉽게도 금세 끝나버렸네요~ㅋ, 조금은 달라진 무언가에 더 눈을 또릿하게 뜨고 봤던것 같네요.. 킥킥. 그 전 얘기 안 하려고 했는데.. 바보 같아;; 히히, 아마도,, 저런 일들.. 많겠지.. 아주 아주 많겠지.. 그 곳이라는데가... 좀,, 그럴꺼야.. 연경과 연성,, 순간적으로 잘 못 읽어서,, 헷갈려서.. 다시 열심히 읽었어요~ ㅎㅎ ^^ 건필하세요,,ㅋ
재미있어요 재미있어~~정말로 저도 한껏 빠져들어 읽었습니다 ㅋㅋㅋ
아아//소설이 재밌으니까 너무 짧게 느껴지네요^^ 앞으로도 즐겁게 계속 읽겠습니다
정말 연예인들은 문란하다는말 여기서 또 깨닫게 되네요. 연예인보다 그 연예인을 조종하는 사람들이 더 나쁜 것 같아요. 매회느끼는 거지만 부제목이라고 해야하나 그거 너무 좋아요. 잘 읽고가요.!
재밌게 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