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을 감사하며, 2월의 일기, 설맞이/에델바이스 가족
서현아!
할아버지에게는 참 웃기는 추억이 하나 있다.
할아버지가 경남 울산 연암이라는 마을 뒷동산에서 군 생활을 할 때였으니, 거슬러 반세기 전의 일이다.
하루 휴가를 내서 울산 시내를 두루 구경 다닌 적이 있었는데, 그때 어느 영화관 앞을 지나가다가 만년설로 시원한 알프스 풍경이 그려진 포스터에 마음이 끌려, 그 영화관에서 상영되고 있던 ‘사운드 오브 뮤직’(The Sound of Music)이라는 영화 한 편을 보게 되었다.
음악을 사랑하는 말괄량이 견습수녀 마리아가 해군 명문 집안인 폰 트랩가의 가정교사가 되어 일곱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치면서 그 아이들의 홀아버지인 폰 트랩 대령과 사랑이 익어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였다.
뮤지컬인 그 영화를 보면서 ‘도레미 송’(Do Re Mi Song)이라든가 ‘에델바이스’(Edelweiss)라는 참 아름다운 노래에 빠져들었었다.
한참 스토리가 무르익어간다 싶었는데, 영상이 사라지고 이런 영문 글자가 스크린에 뜨고 있었다.
‘intermission’
나는 그 영문 글자의 뜻을 몰랐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외국영화 특히 미국영화를 좋아해서 ‘작은 아씨들’이라는 가족 영화도 봤고, ‘블루 하와이’라는 뮤지컬 영화도 봤고, ‘그레이트 레이스’라는 코미디 영화도 봤고, ‘건힐의 결투’라는 서부 영화도 봤고, ‘바이킹’이라는 중세 영화도 봤고, ‘왕중 왕’이라는 기독교 영화도 봤다.
그 영화들은 ‘The End’라는 영문 글자가 나오면서 영화가 끝났었는데, 이 영화는 희한하게도 그 영문 글자가 아닌 다른 글자가 나오고 있었는데, 그 뜻을 몰라서 잠깐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내 그렇게 잠깐 주춤하는 사이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일어서고 있었다.
그래서 내 생각에 영화가 끝났는가 싶어서, 나도 따라 일어서서 아예 영화관 밖으로 빠져 나오고 말았다.
그런데 또 희한한 것은 영화관 안에서 일어선 사람들이 정작 바깥으로 빠져나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바깥에서 영화관 안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그 사람들은 영화관 안에서 그저 맴돌고만 있었다.
그래서 내 생각에 영화를 한 번 더 보려고 그러려니 싶어서, 나는 그냥 소속 부대로 발길을 향하고 말았다.
그러고 나서 한 동안 그 영화를 잊고 지냈다.
그 이후 한 10여 년 쯤 지났을 때의 일이다.
TV 심야 프로에서 그 영화가 방영되고 있기에, 관심을 가지고 보다가 내 깜짝 놀라고 말았다.
끝난 줄 알고 영화관을 나왔던 그 장면 뒤로 계속 스토리가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서야 ‘intermission’이라는 그 단어를 찾아봤더니 ‘휴식시간’이라는 뜻으로 풀고 있음을 알았다.
그러니까 휴식시간을 알려준 것을, 아예 영화가 끝난 것으로 잘못알고 영화관을 빠져나왔으니, 결국 반쪽 영화밖에 보지 못한 꼴이 되고 만 것이다.
하도 쪽팔리는 사건이어서, 내 그동안 아무에게도 말 못하고 혼자 가슴속에 묻어놓고만 있었다.
서현아!
내 오늘 이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은 오늘 아침에 또 그 영화를 보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다.
17일 일정의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클래식트레킹을 위해 인천국제공항에서 네팔 카트만두를 향해 출국할 날자가 다음 주 월요일인 2017년 3월 27일로, 이제 딱 사흘이 남았다.
그 사흘을 앞두고 할머니와 함께 오늘 마지막 운동을 했다.
늘 다니는 서초동 우리 집 인근의 헬스클럽인 ‘타워 휘트니스’를 새벽같이 찾아, 할머니는 러닝머신에서 걷기를 했고, 할아버지는 사이클을 탔다.
그렇게 사이클을 타는 동안에 사이클 앞에 장치된 모니터 화면을 통해 그 시간에 케이블 TV에서 상영되는 영화를 보게 됐는데, 그 영화가 바로 ‘사운드 오브 뮤직’ 그 영화였다.
내가 사이클에 올라 막 운동을 시작할 즈음에, 마침 그 영화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엄격한 군인인 폰 트랩 대령이 직접 기타를 연주하면서 ‘에델바이스’를 부르는 바로 그 장면이었다.
내가 그 장면을 특별히 좋아하는 것은, 일곱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쳐온 마리아가 그때부터 폰 트랩 대령에게 빠져들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그 노래 영문 가사 전문이다.
Edelweiss. Edelweiss.
Every morning you greet me
Small and white Clean and bright
You look happy to meet me
Bolssom of snow may you bloom and grow
Boloom and grow forever
Edelweiss. Edelweiss
Bless my home land forever♪
우리말 번역은 이랬다.
에델바이스 에델바이스
아침 이슬에 젖어
귀여운 미소는
나를 반기어 주네
눈처럼 빛나는 순결은
우리들의 자랑
에델바이스 에델바이스
마음속의 꽃이여♪
서현아!
에델바이스는 높은 산에서 자란다고 하는데, 잎과 줄기에 하얀 솜털이 나고 별모양으로 피는 하얀 꽃이 참 아름다워 ‘고귀한 흰 빛’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하는구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이제 도전하러 가는 히말라야도 고산지대여서 에델바이스 그 꽃이 그 어딘가에 피어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혹 눈에 띄면 그 꽃 한 송이 꺾어 내 사랑하는 우리 손녀 서현이 가슴에 안겨줄 작정이다.//
7년 전으로 거슬러 2017년 3월에, ‘히말라야에서 쓴 편지, Edelweiss’라는 제목으로 내 그렇게 편지 한 통을 썼었다.
그때 일곱 살 나이로, 초등학교 1학년에 막 입학했던 손녀 서현이의 아름다운 성장을 바라면서 쓴 편지였다.
문득 그 한 통 편지가 떠올랐다.
이번 설날에 그랬다.
오지 마 오지 마 하는데도, 온다 온다 하면서 왔다.
맏이가 가장으로 꾸려가고 있는 서울 일원동 서현이네 가족이 그랬고, 막내가 가장으로 꾸려가고 있는 서울 봉천동 서율이네 가족이 그랬다.
그래서 문경 우리 집으로 온 가족 여덟이 모였다.
그렇게 모인 가족들을 보면서, 내 문득 그 편지의 사연을 떠올린 것이다.
세배도 받고 세뱃돈도 줬다.
맏며느리 지영이에게는 딸아이 서현이 학원비용으로 쓰라고 명분을 붙였고, 막내며느리 은영이에게는 만기가 찬 전셋집 보증금에 보태라는 명분을 붙였다.
그리고 온 가족 함께 동네방네 구경을 다녔다.
우리 고향의 명승지인 문경새재 옛 과거길도 올랐고, 이웃 동네인 예천 용궁의 명승지인 회룡포도 들렀다.
그리고 앞동산에 새로 걸쳐놓은 출렁다리도 건넜다.
집에서는 끼니 끼니가 잔칫상이었다.
아내는 간 크게도 30만 원 이상의 거금을 뭉텅 들여서, 우리 가족들 모두가 좋아하는 소고기 등심을 사가지고 와서 철판에 구워 내놓고 있었다.
남자들은 술잔을 기울였고, 여자들은 오순도순 대화의 꽃을 피웠다.
그 풍경, 곧 에델바이스 가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