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
기어이 울음보가 터지고 말았다. 복지관 노인 일자리 담당자에게 매일 일한 사진을 전송한다. 집에 와서 그날 일한 사진을 보게 되었다. 오늘 사진 속 모습은 복지관에서 준 모자와 파란 조끼를 입고 베어낸 나무를 가득 싣고 작은 손수레를 힘겹게 끌고 가는 나의 사진을 보고는 그만 눈물을 쏟았다. 나도 모르게 엉엉 울었다. 아내 보기가 민망하여 밥을 먹다 말고 화장실로 뛰쳐나가 울음을 그치려고 하였으나 울음은 좀처럼 멈추지를 아니했다. 내가 우는 소리는 아버지의 울음소리와 닮았다. 그리고 손자와 초등학교 입학 전에 함께 살았는데 손자 울음 소리도 내 소리와 닮았었다. 내 삶이 너무 초라하게 보여서다. 사진을 보고 순간적으로 무엇을 찾으려고 무엇을 찾으려고 그렇게 그렇게 정년퇴직하고 까지 초라하고 불쌍하게 살아가는가 하고 말이다.
초등학교 동창회에 갔을 때 동창생 삼분의 일이 운명을 달리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도 그럴 날이 곧 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00세 장수 시대라고 하지만 80세 전후에 불현듯 떠나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많이 보아서다. 80세를 얼마 남겨 놓지 않는 이 때에 삶의 모습이 힘겹게 여겼다. 그러나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자리다. 아내는 나에게 ‘일자리가 힘들면 하지 말라’고 통 사정한다. 평소 내 방에 들어오면 나가기가 바쁜 아내가 아예 죽치고 앉아서 사정한다. 아내는 나에게 매달 40만원 용돈을 준다. “제발 일자리 그만두세요. 내가 준 용돈 충분하지 않아요!” 한다. “뭣에 쓸데가 그렇게 많으세요. 의식주 모두를 제가 책임 짓지 않아요” 나는 평정심을 찾아서 아내에게 말했다. ‘나는 결코 일자리 그만두지 않겠소. 그런 말은 더이상 하지 마세요. 노인 일자리는 내 발로 걷고 활동할 때까지 할 생각이요.’
아내는 나에게 “자식들이 알면 얼마나 속상하게 여기겠소?” 한다. 이미 7년 전 고희를 맞이하여 고희연 식장 현수막에 알렸다. “한결같이 저희들을 위해 희생해 오신 아버지, 이제는 저희가 보답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늘 감사합니다. 2016.2.25. 자녀일동”하고 현수막까지 내걸었다. 아내는 당시의 현수막을 생각했을까! 궁금하게 여겨졌다. 나는 자녀들에게 기대하지 않지만 고희연 현수막을 보고 당시 나는 감격했었다. 삼남매가 어느 듯 장성하여 부모 노후를 생각해 준 것에 흐뭇했다.
나는 98세 되신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시고 있다. 내가 혼자 경비를 다 낸다. 5남매가 버젓이 다 살아 있지만 나 혼자 4년제 대학을 졸업했다고 남은 형제자매는 내가 모시는 것을 당연지사로 여긴다. 나는 자녀들에 대하여 자유롭다. 셋이 똑같이 비슷한 대학교를 졸업했다. 둘은 안암동에 있는 고대 하나는 신촌동에 있는 연대를 졸업했다. 만일에 셋 중에 하나라도 그렇지 못했더라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니 휴유해 진다. 그리고 내 형제자매들에게도 떳떳하다. 그래서 현재 내 마음도 한없이 자유롭다. 노인 일자리를 한다고 창피하거나 부끄러운 생각은 추호도 없다. 돈 벌고 건강하게 활동하니 얼마나 좋은가! 오전에는 탁구로 취미생활을 하고 오후 일자리 하니 하루가 금시 지나간다. 사는 날까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 노인 일자리는 떳떳하고 할 만하다. 눈에 보이는 사진이 비록 힘들게 보일지언정 나의 마음은 굳세고 변함없으니 울음은 뚝 이다.
내가 일자리 해서 번 돈으로 작년에 희수를 맞이하여 초등학교에 다니는 손자와 외손자에게 장차 대학에 진학했을 때 한 차례의 등록금이라도 내라고 미리 아들딸에게 각각 5백만 원 합 일 천만 원을 내놨다. 많은 돈은 아니 지만 노인 일자리의 상징성으로 전했다. 아들이나 딸이나 싫다고 손사래를 치고 거절하여 “봉투 속에는 자기앞 수표 뿐 아니라 너희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을 적었다. 그러니 봉투를 받고 너희들 집에 가서 펼쳐 봐라” 하고 강권하여 겨우 줬다. 1천만원을 모으려면 일자리(월 27만원) 37개월을 모아야 한다. 내가 비록 말년에 적은 돈을 벌어도 담소화락이나 주색잡기가 아닌데 쓰고 싶었다
첫댓글 감동적입니다. 나중에 손자들이 그 돈을 받고 할아버지가 보내준 것을 생각하면 더욱 생각화고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노인일자리 나가는게 무슨 창피할 일입니까. 건강하게 그런 일을 하시는 분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더군요. 아무튼
건강 신경쓰시며 즐겁게 사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사진도 올려 놨지만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아내만 있어서 다행이었지 우는 걸 다른 사람이 봤드라면 큰 창피였을 것입니다. 나이 들어 너무 험한 일을 한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나더군요! 저는 부끄럽지 않는 행동을 하고 싶었습니다..그러나 이제는 부끄럽습니다. 미안합니다.
비록 힘들고 밑바닥 일이지만 노후에도 일을 한다는 자체로 의미가 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전지한 나뭇가지를 리어카에 가득 싣고 끌고가시는 선생님의 모습이 제 눈엔 자랑스럽기만 합니다. 더구나 어렵게 모은 거금을 손주들의 장학금으로 배려해주셨다니 감격스럽습니다. 저도 농사일하며 공원 관리 등 온갖 궂은 일 마다하지 않고 해나가고 있답니다. 실버 화이팅입니다!
인산님 고맙습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잠시 사진을 보면서 힘들어서 어려웠던 시간을 생각하니 감정이 복 받쳤던 것 같습니다.
저도 인산님의 생각과 같기 때문에 어려운 일 힘든 일도 두려워하지 않고 일한 것 같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 만사 형통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