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문화산책-렘브란트, 17세기의 사진가
올 설 며칠 전의 일이다.
페이스북에 귀한 글 한 편이 게시됐다.
검찰에서 인연이 되어 이제는 페이스북 친구로 간간히 소통하고 있는 송해은 변호사님이 게시한 글이었다.
다음은, 서울역 플랫폼 풍경을 찍은 사진 한 장과 함께, [대구로 가는 길에]라는 제목으로 게시하신 그 글 전문이다.
1 이런저런 사정으로 몇 번을 미루다가 렘브란트 판화를 보려고 대구미술관에 가는 길입니다.
2 지하철 안은 출근길 시민들로 붐빕니다. 대부분 백팩을 멘 상태로 드나듭니다. 내 눈으로 볼 수 있는 앞은 통제할 수 있지만 볼 수 없는 뒤는 제어가 안 됩니다. 사람이 많은 장소에서는 백팩backpack을 프런트팩frontpack?으로 바꾸면 나도 편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할 수 있어 좋을 텐데 습관이 안 된 탓인지 실행하는 이들이 드뭅니다. 고속열차 안에서 한 승객이 핸드폰으로 뉴스를 들으며 이어폰을 사용하지 않고 외부로 소리가 나오도록 해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기본예절이 자리 잡아 이기利己와 이타利他가 조화를 이루는 건실한 공동체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저부터 노력해야 합니다.
3 지하철이 한강 다리를 건널 때 기관사의 덕담이 흘렀습니다. 가래떡이 길은 이유는 무병장수를 비는 거고 떡국을 끓이기 위해 가래떡을 동전처럼 써는 이유는 돈복을 비는 거라고 합니다. 구정 명절이 코앞입니다. 모든 분들에게 건강운健康運과 재운財運이 장구長久하길 소망합니다.//
바로 그 글에, 내 눈에 확 띄어든 대목이 있었다.
1번 글의 ‘렘브란트 판화’라는 대목이었다.
렘브란트는 17세기 벨기에 출신의 사실주의 화가로, 동시대의 네덜란드 화가인 루벤스와 함께, 내 중고등학교 그 학창시절부터 그 둘의 화풍에 푹 빠졌었다.
아직은 고흐와 고갱의 그림, 그리고 피카소의 추상적 그림에 대해서는 별로 감흥을 느끼지 못할 때였다.
그림이라면 렘브란트나 루벤스처럼, 눈으로 보이는 그대로를 그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내 그때 그림에 대한 나름의 인식이었다.
내 그래서 십 수 년 전으로 거슬러 서유럽 북유럽 여행을 다닐 때에도, 어느 곳이든 미술관을 들르기만 하면, 그 둘의 그림이 있는지 없는지 눈을 씻다시피 하고 찾아 감상하고는 했었다.
참 반갑게도, 송 변호사님은 바로 그 렘브란트의 작품에 대한 전시회를 알려주신 것이다.
듣던 중 너무나 반가운 소식이었다.
우선 댓글부터 붙였다.
곧 이랬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가 렘브란트입니다. 아무래도 저도 가봐야겠습니다.’
그러고는 하매나 하매나 하면서 그 전시회에 발걸음을 할 날을 기다렸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듯, 그러던 중에 기회가 왔다.
조문(弔問)으로 대구를 가야할 사연이 생긴 것이다.
바로 엊그저께인 2024년 2월 14일 수요일의 일이었다.
일부러라도 찾아가볼 전시회였기에, 겸사 겸사로 가는 길에 렘브란트의 판화전이 열리고 있는 대구미술관을 찾아보기로 했다.
나 혼자 관람하기는 아쉬워서, 아내를 동행했다.
전시장 초입에 이번 전시회를 기획하게 된 취지가 적혀 있었다.
다음은 그 글 전문이다.
대구미술관은 2023년 해외교류전 ≪렘브란트, 17세기의 사진가≫를 개최한다. ‘빛의 화가’로 불리는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는 서양미술역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로 꼽히는 거장이며, 미술사가들로부터 ‘렘브란트 이후 판화의 역사가 다시 쓰였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판화, 특히 동판화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독보적인 판화가였다. 이번 전시는 렘브란트의 동판화 120여 점을 소개하는 대규모 전시로, 자화상과 초상화로 대표되는 유화뿐만 아니라 에칭과 드라이포인트 기법을 활용한 판화를 평생 300여 점 남긴 렘브란트의 판화가로서의 면모를 본격적으로 소개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사진이 발명되기 2세기 전 마치 카메라의 렌즈와도 같은 시선으로 17세기의 세상과 당시의 사람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바라보고 작품에 담아 낸 렘브란트의 시선에 주목한다. 대구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통해 렘브란트의 삶과 예술을 조망하고, 그 빛과 어두움, 무엇보다 그의 ‘세상을 향한 시선’을 함께 나눠 보고자 한다. 이 전시가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 세상과 인간을 따뜻하게 바라보았던 위대한 화가의 시선을 따라가 보고,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이 글로 사진기가 없던 시대를 산 렘브란트의 작품을 전시하면서, 어떻게 ‘사진가’라는 제목을 붙이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작품은 그 분위기에 따라 구역을 구분지어 전시되고 있었다.
‘자화상’(Self-portraits) ‘거리의 사람들’(Beggars & Streetfolk) ‘성경 속 이야기’(Biblical Scenes) ‘장면들’(Allegories, Genre Scenes) ‘누드’(Nudes) ‘풍경’(Landscapes) ‘습작’(Sheets of Studies) ‘인물, 초상’(Faces & Portraits)해서 모두 여덟 구역이었다.
당초에는 몇 작품만 둘러보고 발걸음을 돌릴 작정이었다.
조문도 해야 하고, 그리고 다시 문경 우리 집으로 되돌아와야 하는 그 일정이 빡빡해서였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었다.
렘브란트가 자신의 모습을 새긴 동판화인 ‘자화상’ 그 첫 작품에서부터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먼 곳에서 봤을 때는 딱 흑백으로 찍은 사진이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그것도 고개를 앞으로 쑥 내밀어 확인해보고서야, 그 작품이 미세한 칼로 섬세하게 새겨간 동판화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다음 작품도 그랬고, 또 그 다음 작품도 그랬고, 전시된 모든 작품이 가까이 다가가서 확인해야 할 정도로 섬세했다.
특히 ‘성경 속 이야기’ 구역에 있는 작품들은 울컥 하는 감동을 느끼게 했다.
얼마나 섬세하게 새겼는지 작가의 온 정성을 다 쏟았겠다 싶었다.
이렇게 작품소개를 하고 있었다.
성경 속 장면들은 렘브란트의 작품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림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예술가는 풍경, 정물, 인물과 동물, 텍스처 등 모든 분야에 능숙해야 했고, 또한 글을 읽고 이야기를 이미지로 표현하는 능력이 있어야 했다. 렘브란트는 그림을 그리기 전, 미리 상상하는 데 매우 능숙했다. 이야기의 특정 시점에서 주인공이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해 냈을 뿐만 아니라, 주변 인물과 동물과 같은 조역들도 중요하게 여겼다. 그는 성경 속 이야기에 대한 전형적인 이미지를 잘 알고 있었지만, 아담과 하와를 이상적인 젊은이의 모습이 아닌 평범한 사람으로 묘사하는 등 자신만의 독특한 해석을 통해 표현했다.//
한 작품도 놓칠 수 없었다.
나와 아내가 적을 두고 다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우리 서울시민교회 담임이신 권오헌 목사님께서 최근의 설교에서 인용하셨던 ‘여관 주인에게 돈을 내는 착한 사마리아인’이라는 작품도 있었고, 태초에 하나님이 지으신 두 인간인 ‘아담과 하와’라는 작품도 있었고, 예수님의 기적을 주제로 한 ‘부활하는 나사로’라는 작품도 있었다.
그렇듯 성경 속의 이야기들을 연상하면서 그 작품들을 다 감상했다.
어느 한 작품 앞에서는 석고상처럼 굳어버린 듯 한참을 서 있어야 했다.
예수의 최후를 담은 ‘십자가에서 내리는 예수’라는 제목의 작품이었다.
보다 보다, 결국은 두 눈시울을 뜨겁게 적셔야 했다.
두 눈을 적셔야 했다.
감동의 이 전시회를 알려주심으로써, 나로 하여금 그 현장으로 달려가게 하신, 송해은 변호사님에게 내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