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은 지금까지 내가 생각하고 익숙하게 생활하던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에서 사물이나 사람을 볼 수 있게 해 준다.
때로 내가 이거라고 고집해 왔던 어떤 것들이 여행을 통해 여지없이 깨지는
직접 경험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어디를 가려고 하면 꼭 갈등이 온다.
갈까 말까 하는 그것이다.
이번 여행도 그랬다.
다른 때에 비해 여행 갈 조건이 충분했다.
아직 농사철도 아니고 집도 아들이 있으니 고양이나 꽃순이 밥 챙겨 줄 걱정 안해도 되고
보일러 걱정도 안해도 되고 여행가려고 모아 둔 경비도 든든하고 한데도 불구하고
가는게 맞는가 싶은 것이 영 판단을 못 하겠었다.
벌써 한달도 전에 여행이야기가 나왔고 비행기표며 여행자보험까지 다 들었는데도
못 간다 할까 하는 마음이 들었었다.
아무래도 부모님 두분이 차례로 수술을 하시고 또 아버지는 아직 병원에 계신 상태였으니
그랬으리라 본다.
또한 약간의 맏이 컴플렉스가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럴적에 그래도 옆에 누가 있어 판단을 내리는데 도움을 주면
훨씬 나은 것 같다.
내가 그렇게 갈까 말까 할적에 남편이 말했다.
<이왕 마음 먹은 것이고 비행기표까지 다 끊어 놓았으며
우리가 안 가면 같이 가기로 한 참새님댁 일정에도 차질이 생길터인데
망설이지 말고 달려 가자구요>
<그래 갑시다 이제 또 열심히 일해야 할 철인데
정말 마음놓고 쉬어 봅시다.>
그렇게 떠나 왔던 길
여행일정 8박 9일 중 6박은 반끄릇에서 하고 2박은 수도인 방콕에서
보내자고 일정을 잡았었다.
그런데 반 끄릇에서 지내다 보니 정도 너무 들고 편하고 좋아서 다같이 회의 하여
하루를 더 머물게 되었고 그것도 오후열차로 최대한 반 끄릇에 오래 머문일정~
방콕으로 가는 일정은 세가지가 있는데 올적처럼 밴을 대절해서 오는 방법이 있고
버스를 타고 가는 방법이 있다.
버스가 조금 더 자주 있고 시간도 반시간정도 빠르게 가는 편이나
여행하면 역시 기차를 못 따라 가지 넷이 다 기차가 좋겠다고 해서
이틀전에 미리 차표를 끊어 놓았다.
올적에 밴은 네명이 우리돈 15만원 정도 들었는데 기차는 7만원에서
조금 빠지는 금액이었다.
집에서 나오기전 이선생님이 빨라도 기차시간 보다 40분은 늦게 올 터이니 천천히 나가도 된다고
몇 번을 말씀 하셨지만 그래도 걱정되어 반시간 전에 나왔더니 아니나 다를까 기차는
제 시간 보다 1시간 딜레이 되었단다.
차를 기다리는 시간은 조금은 아까운 마음이 든다.
반대편으로 가는 기차에 타고 내리는 사람 구경도 하다가 그렇게 시간을 때웠다.
다행히 이국에서는 별게 다 신기하고 놀라워 보이니 시간을 보내는 그 자체가
즐거운 일일 터이다.
우리가 가는 방향의 반대쪽으로 가는 기차가 도착했다.
안내양이라 해야 할까 아무튼 여자 승무원이 연세 있으신 어르신을
도와 기차에서 내려 드리고 있었다.
또 한쪽에서는 기차에 화물을 싣고 와서 내리는 중이다,
오토바이도 싣고 와서 역무원이 넷이나 달려 들어
내려 놓더니 조금 있다가 어떤 여자분이 와서 시동을 걸어 타고 갔다.
오토바이 같은 것도 실을 수 있는가 보았다.
우리의 오토바이 택시 아저씨는 그새 손님을 한명
태우고 오셔서 또 만났는데 다시 봐서 또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일기를 쓰다니 마침 반 끄릇에 계신 이선생님이 그 분의 안부를 보내 오셨다.
오늘 시장에 갔다가 만났는데 우리가 언제 또 오느냐고 물어서 마이루(몰라요) 하고 말했다고
반 끄릇에 가면
길 어디에서든 만날 수 있는 토박이며 사람을 반가워 하는
스마일맨인 것 같다.
시간이 있어서 역 여기저기를 돌아 보다 보니 태국 지도가 있었다.
이 지도에는 세 나라가 붙어 있는데 태국이 살색,
미얀마는 분홍색
그리고 오른쪽에 재색부분이 캄보디아이다.
태국하면 여행지로 많이 가는 푸켓은 왼쪽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부분이고
수도인 방콕은 하늘색 바다가 쑥 들어 가 있는 만의 중간쯤
그리고 한국사람들이 가장 많이 가는 치앙마이는 왼쪽 북 끝 쯤에 있다.
우리가 여행했던 반 끄릇은 아래 사진에서 손가락이 가르키는 해변부분이다.
이번에 우리가 올라 갔다 내려 갔다 여행한 곳들이며
그 중 제일 잘록한 부분이 며칠전에 갔다 온 미얀마 국경지대이다.
내가 태국여행 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우리가 있는 반 끄릇이
태국의 남부라고 했더니 이선생님이 중간쯤이라며 일부러 가르쳐 주셨다.
지도로 보니 확실히 어디쯤인지 이해가 갔다.
아래만 해도 우리나라 남한 보다 훨씬 더 넓어 보인다.
태국의 전체 면적이 우리의 6배라던가 그 중에 아주 작은 지역 하나를 왔다가면서
태국 전체를 다 본양 이야기 한 내가 조금은 쑥쓰러워졌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에게 좋은 점이 하나 있다.
잘못된 것을 알면 바로 수정하는 것
그리고 잘못 되었더라도 무엇을 원망하지 않고 다시 잘못 하지 않는 것으로
거울을 삼는 것이다.
.
이 지도에 재미있는 비밀이 있었는데 바로 왼쪽에 푸른색 호크를
돌리면 새로운 세부지도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화일 형식으로 된 것
그 안에는 우리가 타고 갈 기차역들이 표시되어 있었다.
할 일이 없어서 북쪽부터 남쪽까지 역이 몇개나 있나 세어도 보고
반 끄릇 역에서 우리가 내릴 방시역 까지는 몇정거장이나 되나 세어도 보며
한시간 늦어진 기차를 기다렸다.
본래 시간 보다 1시간이 좀 넘게 지나 기차가 도착했다.
이 기차 보다 반시간은 전에 도착해 있던 남쪽으로 가는 완행열차는 그제야 출발을 했다.
밤새 가는 완행열차가 있다고 했는데 이런 시스템이라면 도대체 얼마나 오랜동안 갔어야 했을까
이 선생님은 우리가 떠나 올적까지 같이 계셔 주었다.
멀리 타국에 형제를 홀로 떼어 놓고 오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정을 놓고 떠나 오는 사람은 모른다.
얼마나 허전하고 마음 쓸쓸한지를 나는 고향에 와 살고 벌써 귀촌한지가
15년이 되었어도 누가 우리집을 와 놀다가 떠나가면 하루 동안 몸살을 한다.
무언가 허전하고 마음 아파서 말이다.
그 기분을 누구 보다도 잘 아는데 이억멀리 타국에서야 오죽하랴~
좀 전 기차를 기다릴 때는 기차만 타면 다 해결 될 줄 알았는데 막상 기차를 탔더니
또 어려운 일에 봉착했다.
기차의 통로가 좁고 우리의 큰 여행가방을 둘 곳이 없었다.
비행기로 말하자면 머리 위에 화물 싣는 칸에 짐들을 실어야 하는데 우리의 짐 무게가
장난이 아니었다.
25키로가 넘는 큰 가방이 두개에 작은 가방들도 15키로가 넘는데 저걸 어찌 올린댜
가방이 무거운 이유가 있었다.
이곳 태국의 젓갈이 진하고 맛있어서 언니도 나도 샀지
원당이 싸고도 맛있어서 그도 나만도 6키로는 샀지 새우젓도 담아 넣었지
난 어디가면 그 나라 꿀도 꼭 사 보는 편
남편과 참새언니는 조개껍데기랑 이쁜 돌멩이도 넣었지 등등
그 중에 원당이 가장 무거울 것이다.
나는 평소에도 발효식초 담을적에 좀 비싸도 원당을 구해서 쓰는데
여기 원당이 싸고도 좋으니 넣을 수 있는 만큼 가득 샀다.
그렇게 해서 무겁고 무거운 가방을 두 남자분이 공간을 만들어 올리느라 땀을 뺐다.
그렇게 애를 쓰고 간신히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중간에 케리어로
물건을 싣고 다니는 아가씨가 빵을 하나씩 나누어 주고
곧 이어 음료수도 서너가지 있는데 뭘 먹을거냐 물었다.
남편과 나는 얼떨결에 받았는데 참새님이 돈 내야 한다고 받지 말으라고 해서
다시 안 받는다고 돌려 보냈더니 남편이 영 아쉬워했다.
그래서 까짓것 돈 받으면 내면 되지 하고 다시 불러 통역기를 대 보았더니
공짜로 주는 것이란다.
우리는 태국에 올적에도 저가 태국 항공을 타 가지고 비행기에서도 물도 한잔 못 얻어 먹었는데
이게 웬 떡~
남편이 제일로 좋아했다.
어디가서 뭐 먹을 일이 있거나 맛 보는 것은 언제나 남편담당인데
먼저 먹어 보더니 빵이 아주 맛있다고 하마터면 이 맛있는 것을 못 먹을뻔 했다고
수선스레 말하며 맛있게 먹었다.
기차는 열심히 달렸다.
야자수 멋진 바닷가도 달리고 들판도 한참 달리고
논이 가득한 평야도 달렸다.
우리가 기차에서 감당해야 할 시간이 다섯시간 가량
밖으로 지나가는 경치도 감상하고 한잠씩 낮잠도 자고
오는 길에 기차를 타길 잘했다고 서로 이야기 했다.
거기다가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어디메쯤 가니까 한 떼의 사람들이 이렇게 국수 같은 것을 쟁반에 담아 가지고
기차에 탄 사람들에게 창 밖으로 판매를 했다.
사람들은 기차 창문을 열고 국수를 사고 돈을 지불했다.
우리 기차에도 올라 오나 했더니 우리가 탄 기차는 말하자면 급행열차로
창문을 열 수 없게 되어 있어 그런지 그냥 지나갔다.
남편이 세상 허탈한 표정을 지어서 좀 있어 보자 했더니
아까 우리에게 빵을 나누어 주었던 아가씨가 봉지에 무엇을 담아 가지고
다니며 나누어 주었다.
남편이 좋아 가지고 비행기에서 점심 나누어 줄 때처럼 앞에 쟁반처럼 생긴
식탁을 내려 놓고 기다렸는데 영 주질 않았다.
이 쟁반처럼 생긴 것 즉 비행기에서나 있는 이 것이 여기는 기차에 있어서
참 편리했다.
다시 아가씨를 불러 통역으로 물어 보니 이건 돈 주고 사는 거란다.
우리돈 500원 정도에 도시락에 담긴 이런 푸딩 같은 것이 두개씩 들었다.
먹어 보니 생각 보다 맛있었다.
더구나 따끈따끈 하고 부드러웠다.
사길 잘 했다고 하며 두번째 것을 뜯으려고 하는데 두살이나 세살쯤 된
태국아기가 통로를 뛰어 다니다가 우리와 눈이 딱 마주쳤다.
우리가 맛있게 먹는 것을 보더니 앞칸에 있는 제 엄마에게로 가더니 이내
큰 소리로 우는 것이었다.
우리는 둘 다 괜히 죄지은 것 같았다.
어른도 남들 먹는 것을 보고 먹고 싶었는데 아기가 오죽 했을까
엄마가 아무리 달래도 말을 듣지 않고 큰 소리로 울었다.
결국 그 승무원 아가씨가 가서 주의를 주었지만 아기는 아랑곳 없이 계속 울었다.
이럴 때 우리부부는 누가 먼저랄게 없다.
결국 남편은 하나 남은 그것을 가져다가 아기엄마에게 주었다.
아기는 금새 울음을 그쳤다.
예전에는 기차간에서 이렇게 무엇을 나누어 먹고 아기들에게는
의례 과자나 떡 같은 것을 나누어 주었었는데 이제는 잘못하면 괜한
페만 끼치는 일이 되기 때문에 언제나 조심스럽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창밖으로 지는 해가 보이다가 말다가 노을 멋진 들판들이 나타난다.
이번에 핸드폰으로 속에 있는 구글앱을 잘 썼는데
통역기능은 물론이고 길찾기 프로그램도 아주 좋았다.
첫날 방콕에 내려 반 끄릇을 찾아 가는데 밴 기사가 길을 영 제대로 못 찾아 갔다.
방앗간님이 앱에서 네비게이션을 틀어 간신히 찾아 갔으며
이선생님이 한국에서 오시기 전에는 이 네비게이션으로 길을 찾아 다녔다.
이런식으로 한글로 되어 있기 때문에 어디라도 찾아 가는 것
가면서 우리가 어디쯤 왔나 얼만큼 남았나 다 알아 볼 수가 있어서 좋았다.
기차는 달리고 달렸다.
이제 점점 도시가 계속 되고 하교하는 학생들도 기차길 양편으로 서 있다.
아마 완행열차를 기다리는 모양이다.
교복이 우리네 학생들과 비슷하고 남학생들은 모두 머리를 짧게 깍았다.
해가 지고 나니 추웠다.
이곳은 낮에는 30도가 넘어 가서 더운데도 밤에는 시원하다.
반 끄릇에 7박을 하는 동안 낮에 한번 에어컨을 켜고 선풍기 만으로도 시원하며
그나마도 아무것도 안하고 있을 때는 틀지 않았었다.
예비로 넣어 갔던 두꺼운 옷도 꺼내 덮고 숄도 꺼내 덮었다.
도착 시간을 한시간쯤 남겨 두고 도시락이 왔다.
이 도시락은 처음에 기차에 탔을 때 주문을 받았는데
도시락 하나에 20밧 우리돈 700원 정도인데
입에 안 맞을까봐 한 집에 하나씩만 시켰었다.
이곳의 돈 세는 단위가 10밧 20밧 30밧 까지는 우리나라와 발음이 똑같다.
60밧만 홀십밧이라고 하여 발음이 완전 다르고 70밧이나 80밧도 째십밧 빼십밧 하는 것이
거의 비슷해서 통역기 없이도 나중에는 그냥도 무엇을 살 수가 있었다.
어묵과 함께 나온 국수가 무척 맛있었다.
고추장 안들어간 우리의 비빔국수라고나 할까
국수는 남편이 좋아하는 쫄깃한 맛
거기다 어묵도 우리의 옛날어묵 맛이 나는 것이 남편은 아주 만족했다.
그럴 줄 알았으면 하나씩 시킬 껄~
외국에 나가 무엇을 사려고 하면 항상 망설이게 된다.
첫째는 맛이 어떨지 몰라서 이기도 하고 둘째는
돈의 가치가 적응이 안되서 우리돈 만원어치를 무얼 사면
엄청 낭비를 하거나 사치를 하는 것 같아 죄책감까지도 든다.
확실히 동남아국가에 오면 그런 것 같다.
남편은 그럴 줄 알았으면 하나씩 살 걸 하는 소리를 몇번을 했다.
드디어 기차역에서부터 장장 6시간을 달려 우리가 내릴 역에 도착했다.
남자들이 네비게이션을 보고 15분은 전에 가방을 내려 문 앞까지 가져다 둔 덕에
복잡하지 않게 내릴 수가 있었다.
만약 방송을 듣고 내렸더라면 통로는 좁고 가방 내릴 시간도 안 되어
종착역까지 떠 밀려 갔을 수도 있었다.
우리가 내리는 역이 공항에서 가까운 역이라 많은이들이 거기서 내렸다.
그런데 내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바로 플랫홈으로 연결 된 것이 아니고 철로를 두개나 건너서 차가 다니는 광장으로 가야했다.
가방이 무거우니 남자들이 그걸 지고 간신히 건넜는데 이번에는 건너편에 서 있던
다른 기차 사이로 빠져서 나가야 했다.
그 넘의 무거운 가방
가방이 저토록 무거운 것은 세 사람에게 말도 못 할 한가지 비밀이 있었다.
그래서 나 혼자 죄스러워 죽겠다.
그렇게 간신히 기차역을 빠져 나와 이제는 광장
오랜만에 보는 도시의 모습이다.
시골에서 갓 올라 온 촌 사람의 행색이다.
짐이 많아 한 차에 다 못 타 남자들 둘이 먼저 택시를 잡아
이선생님이 예약 해 주신 호텔로 떠나고
다음 택시가 올 때까지 한참을 기다렸는데 조바심 안 내는 나도 좀 조바심이 났다.
우리는 남자들이 잘 찾아 갔을까 걱정
남자들은 우리가 길을 찾을 수 있을까 걱정
이선생님은 중간에서 메신져로 걱정하며 중계~
간신히 택시를 잡았는데 택시 기사가 호텔을 몰랐다.
혹시나 하고 기차 안에서 남자들이 미리 검색하여 준 네비게이션이 그래서 또 한 몫 하고......
남자들이 걱정스럽게 호텔 앞에 나와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고 있었다.
그제야 한 숨 돌리고 늦은 저녁으로 처음 한국에서 가지고 갔던 컵라면을 하나씩 먹었다.
혹시 음식이 입에 안 맞으면 먹으려고 가져 갔었는데 음식이 모두 입에 맞아 오히려 라면이 남아서
이선생님을 두개 드리고 아침에 먹으려고 가져 왔었다.
이 나무 젓가락을 참새언니가 가지고 왔었는데 리조트에도 젓가락이 별로여서
있는 동안 잘 써 먹고 혹시나 하고 가방에 넣어 가져 왔더니 끝까지 잘 써 먹었다.
역시 도시는 도시 호텔이 4성급이라 좋았는데도 밤새 제대로 잠을 못 이루었다.
새소리 듣고 잠 자다가 오토바이소리, 차들 경적소리 들이 밤새도록 들렸다.
역시 도시에서 하루만 자기를 잘 했다고 입을 모았다.
이제 8박 9일의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떠난다.
저 넘의 무거운 짐
그래도 공항까지 가는데는 별 무리가 없었다.
한 숨 돌리고 이제 출국신고를 하는 길 별 무리없이 내가 먼저 통과하고
참새와 방앗간님도 잘 통과했는데 남편 아무렴이
출국심사에서 뭐가 잘못되어 통과를 못했다.
무슨 일인가 알아 볼래도 한국말 하는 사람도 없지
이미 우리 세사람은 출국심사대를 통과한 터라 나가 볼 수도 없지
공항 직원들은 거기 서 있는 것 조차 안된다고 출국장 밖으로 나가라고 내몰지
혼자 영문 모르고 왔다갔다 하는 남편 아무렴을 출국대 뒤에서 지켜 보려니
애가 타 못 견디겠다
남편이 다른 줄에 다시 한번 섰는데 역시나 통과가 안되었다.
나는 제일로 애가 탔다.
무엇 때문일까 남편에게 전화도 안되었다.
그 때는 이미 나도 남편도 데이터가 다 되서 전화기를 꺼 둔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왜 그럴까 여러가지 사항들을 빠르게 점검해 보았다.
그 중에 나는 저 위에서 말한적이 있는 세 사람에게 말 안한 사항이 하나 있었다.
기차를 타러 오기 전에 참새언니랑 아무렴이 조개껍데기를 좀 주어 가고 싶다고 하여
바닷가로 나갔었다.
세 사람은 조개껍데기를 주우러 저 만치 가 있고 나는 입구에서 놀다니까 어르신 한분이
바닷가에 앉아 새우를 고르고 있었다.
남편인 듯 보이는 이는 잡아다 주고 아내는 앉아 티를 골라 내고
모래를 골라 내는 작업을 한참 지켜 보다니 그 분이 나를 불렀다.
딸기 바구니 하나는 되는 것을 나에게 주며 가져 가서 볶아 먹으라는 시늉을 하셨다.
그래서 사양을 했는데도 비닐에 자꾸만 담아 주셨다.
받아 들기는 했는데 그래도 애쓰고 잡은 걸 그냥 가져 가는 것은 아닌 것 같아
돈을 100밧 (우리돈 3400원)을 드렸더니 그 바구니로 가득 두개는 더 담아 주시는 것
그래서 그 넘을 가져와서 얼른 소금을 쳐서 새우젓을 담아 내 케리어에 담았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새우가 맛있어서 나는 꼭 가져 가고 싶었는데
그것을 가져 간다고 하면 분명히 세 사람이 말렸을 것이다.
전번에 미얀마 시장에 갔을적에도 엄청 맘에 드는 천이 있었다.
우리돈 만원도 안되는 가격인데도
셋이서 어찌나 눈치를 주는지 누가 보면
100만원짜리 사는 줄 알았을 것이다.
결국 눈치가 따가워서 나 스스로 못 사고 왔었다.
이것도 이런저런 소리 듣기 싫어서
아무소리도 않고 꽁꽁 싸매 가지고 내 짐 깊숙히 넣었는데
혹시 그것이 문제가 되었나 아주 속이 까맣게 탔다.
참새님은 조개껍데기가 문제가 되지 않았을까 걱정을 했다.
남편은 저 쪽에서 왔다갔다 하더니 무엇을 계속 썼다.
겨우 10여분의 시간이 한시간도 넘은 것 같았다.
사실은 처음 태국에 내려 입국수속 때도 간 떨리는 시간이 있었다.
참새님네와 네팔여행 때도 베낭여행으로 갔었고 이번이 같이는 두번째 베낭여행이라
비행기 예매며 모든 여행일정을 참새님 내외가 다 짜고 우리는 그야말로
덜렁덜렁 따라만 왔다.
그렇게 해서 비행기 타고 태국에 내려 입국심사대앞에 섰는데
방아간님이 먼저 했는데 통과가 되질 않았다.
이어서 내가 했는데 나도 통과가 안되었다.
통과가 안된 이유는 우리가 가는 곳 주소와 호텔이름이 안 적혔거나
틀리게 적혔고 자신들은 모르겠다는 것이다.
우리가 뭐라고 계속 말해도 안 되겠다고 다음 사람을 불렀다.
한글도 아니고 영어로만 된 입국신고서를 작성하고 태국내 체류지역을 적으라는 란이 있었는데
그곳 주소를 몰라 대충 반 끄릇 이렇게들 적었다.
그것도 한글로
영어로 해도 잘 못 알아 듣는데 태국말로 뭐라고 하니 답답해 미치겠었다.
그 당시에 이선생님은 한국에 계셔 연락도 안되지 로밍은 나만 해 갔는데
나는 이선생님 전화번호를 모르지
아이구 답답하고 초조하고 모두들 맨붕이 왔다.
넷이 머리를 맞대고 궁리를 하다가 참새언니가 이곳으로 여행을 오게 된 계기가
샛강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친구의 반 끄릇 방문기를 보고 온 것이라
그에게 전화로 물어 보자고 하였다.
마침 나에게 샛강님 전화번호가 있었다.
남편과 내가 12년 전에 그녀의 중매를 섰었고 혼례식도 전통혼례로
귀농한 사람들이 모두 모여 치루어 주었던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같은 영월에 살아도 가는 길이 좀 달라 근래에는 별로 왕래를 안했다.
가끔 읍에서 만나면 반갑게 인사는 하지만 전화자체는 잘 안해서 연락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다행히 전화를 받았다.
우리가 그런 상황이라고 했더니 얼른 알아 봐 준다며 전화를 끊었고
빠른 시간에 반 끄릇 주소를 메시지로 적어 보내 주었다.
그 때도 거의 한시간은 애를 태우고 지체해서 간신히 통과 했는데
그 시간이 너무도 애탔었다.
만약 나 조차도 전화가 안 되었다면 어떻게 할 뻔 했나
짐도 찾아야지 출국장 밖에서는 밴 기사가 와서 하염없이 대기 중이지......
그렇게 까맣게 속을 태우고 있었더니 좀 있다 남편이 통과되어 출국장으로 나왔다.
우리 모두 왜 그랬냐고 하니 남편은 뜸을 들이고 말을 아꼈다.
나중에 비행기에 타고 이야기 해 주는데 바로 출국신고서를 안 썼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처음 입국할적에 입국신고서 옆에 붙어 있기에 뭐 한국에서는 이미 출국 했는데 이걸 왜 써야 하냐고
했다가 그야말로 할 일이 없고 심심해서 썼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사람 애를 태울줄은 몰랐다.
나중에 집에 와서 참새님 딸 은지에게 들으니 그것이 제일 중요하고 만약 잘못 되었을 때는
외교문제로까지 될 수도 있다는 것
엄마 아빠는 몇번이나 베낭여행을 했으면서 그걸 어떻게 소홀히 할 수 있냐고
한 소리 들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도 미국이나 뉴질랜드 갈적에 이걸 분명히 썼을텐데
다행히 주소가 다 있었으니 무사히 통과 되었던 것이었던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아무튼지 이번에 제대로 알게 되어 큰 경험을 했다.
대충대충은 어디에도 없는 것
참새님 댁도 우리도 마음 고생은 했지만 몸으로 닦치는 큰 경험을 하고
새롭게 배웠다.
무슨 일이 생기면 그 당시는 정말 하늘이 노랗고 당황되지만
문제가 해결 되면 언제 그랬냐 금새 잊어 버린다.
비행기에 탔더니 배가 고팠다.
저가 항공은 물도 사 먹어야 한다.
갈적에는 참새언니가 쑥개떡을 만들어 가서 그걸로 먹었지만
올적에는 아에 사 먹을 생각을 하고 밥을 시켰다.
라면은 좀 비싸서 우리돈 4500원 정도이고 오른쪽에 닭고기 김치밥은 물 포함 7000원 정도이다.
미리 예약을 해도 되고 우리는 바로 시켰다.
그래도 비행기에서 먹는 라면맛이 색다르고 괜찮았다.
배도 든든히 채우고 ~
비행기에 비치된 여러가지 잡지도 꺼내 보았다.
그런데 모두 태국어라서 뭐라고 썼는지 전혀 모르겠다.
이럴적에 번역앱이 한 몫 한다.
번역 앱에 있는 카메라 모양을 누르면 이렇게 글자도 번역을 해 준다.
좀 걸러서 해석을 해야 하긴 하지만 그래도 모르는 것 보다는 나을 것
이번에 앱 사용하는 법을 방앗간님에게 제대로 배웠다.
돌아 올 때에는 다섯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다.
창 밖으로 우리땅이 보이기 시작했다.
언제나 그렇지만 다른나라에 갔다 오면 애국자가 되는 것 같다.
이처럼 편하고 깨끗하고 안전한 곳이 우리나라 대한민국
아무리 좋은 곳을 갔다 와도 역시 내가 사는 나라가 제일 좋다.
집으로 돌아와 짐을 풀다 보니 링의 어머니 완디가 싸 준 콩도 들어 있고
또 우리가 좋다고 했던 양푼도 들어 있다.
그 분이 선물 해 주신 것이다.
오른쪽에 있는 것은 항아리 씻는 솔이 좋아서 시장에서 하나 샀는데
우리돈 700원을 주었는데 잘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참새님네와 함께 한 이번 베낭여행
다른 때 보다 훨씬 더 좋았고 배운것도 많았다.
그렇게 김치도 담아 먹고 밥을 해 먹은게 더 많았는데도
참새님댁에 와서도 한 냄비해서 다 먹었는데
집에서도 두끼를 김치만 볶아서 먹었다.
꿀맛이다.
돌아 보니 참새님 내외에게 좀 미안한게 있다.
밥 하기 좋아하는 나 때문에 좀 더 여러가지의 태국음식을
맛 볼 수 있는 것이었는데 못 보게 한 건 아닐까
앞으로 4월정도 되면 우기라 비도 자주 오고 낮 기온이
40도 정도로 비수기라고 한다.
성수기는 9월부터 3월로 사실은 지금도 약간 더운 편이라고 한다.
이번여행의 총 비용은 한 사람당 86만원 가량 들었다.
물론 비행기 값 숙박비 차량 이동비 먹는 것
설탕이랑 젓갈류 산 것 다 포함이다.
지금이 성수기로 비행기 값이 좀 센 편인데도 그렇다.
이만 하면 가끔 훌쩍 떠나기는 좋은 조건이 아닐까
초반에 갈까 말까 망설였는데 갈까 말까 할 때는 가는 것이 답이다.
이번 여행을 계획하고 이끌어 주었던 참새님 내외와
태국에 계신 이선생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여행일기를 마친다.
|
첫댓글 아주, 멋진 휴가를 보내셨네요. 잘하셨습니다. 좀 더 나이들어서 가보고 싶어지는 곳이네요. 굿~~^!!
맞어~
뜬, 킬리는 당분간 더 에너지 쏟는 여행을 즐기다가
기운 빠지믄 여기로.ㅎ
내년 퇴직하게되믄 꼬옥 가봐야겠어요~~
정보감사합니다
찜 해 놓으세요.
한가롭게 즐기기에
여러모로 만족스러웠어요.
갈까 말까 망설이지 말고
확~~갑시다^^
재미난 여행으로 소소함을 다 누리셨네요~
킬리 님은 아직 팔팔하니
이 곳 여행지는 한 5년 후 쯤에 생각해보기요.ㅎ
네분의 장점만 살린다면 세상 겁나는것이 없겠습니다
그렇지님은 참새님이 있어 행복하고 참새님은 그렇지님이 있어 행복하고
아무려님과 방앗간님은 예쁘고 똑소리나는 마나님들이 있어 행복하고
참 부럽고 부럽습니다 나이가 들어선지 더욱 부럽습니다.~^^*
둘이만 가면 좀 심심할듯하고,
3~4명이 좋겠더라구요.
호기심천국인 그렇지님 내외덕분에 더 즐겼지요.
자세한 여행기와 사진 감사합니다..
즐거운 시간인데 마지막 태국 출국때문에 어려웠지만 이젠 추억이 되네요...
앞으로 새로운 곳도 소개시켜 주시죠....
저는 태국이 처음이었는데
생각 외로 좋았답니다.
날씨도 쾌적하고.
치안도 좋아보이고,
동네분들도 친절했구요.
그렇지님의 진솔하게 닥아오는 얘기가 여행기가 아니라
옆에서 자분자분 얘기해주듯 참 맘이 따뜻해지는 글들입니다.
맞아요.
그렇지님 글은 무릎 맞대고
얘기 하듯 자분자분 편해요 ㅎ
수고 하셨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우와 재밌게 읽었어요 방앗간님이 못 나오시는 장면에선 소설 처럼
애가타서 읽기도 하면서 말이죠 ㅎㅎㅎ 부럽습니당 서로에게 좋은 벗이 있다는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