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산길?
때묻지 않은 산길?
이런 산을 두고 하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없지 않다.
지자체에서 조금만 다듬는다면 아주 멋진 산이 분명할 테지만 유명산이 많은 강진군에선 아쉬울 게 없었나 보다.
최소한의 잡목제거와 이정표 몇 개가 아쉬운 등산로였다.
고찰 정수사는 훌륭한 날머리로 널따란 주차장이 있어 단체산행지로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강진 천태산(天台山 549m)은 같은 이름의 다른 천태산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결코 부족하지 않다.
호남정맥 사자산에서 분기해 억불산,괴바위산,부용산을 거쳐 오성산 아래 옹암마을로 빠지는 사자지맥(약 47km)의 중간에 있다.
능선에만 올라서면 3면으로 섬과 바다를 볼 수 있고, 무엇보다도 장흥 천관산의 걸출한 암봉(구룡봉·구정봉·환희대)을 접하게 된다.
양암봉(陽岩峰 469.2m)은 볕이 잘 드는 바위가 있는 산이란 이름.
아니나다를까 멋진 암봉에서 터지는 조망이 일품이다.
들머리인 골치재(骨峙재 약170m)는 옛날 무거운 등짐을 지고 산길을 오르내릴 때 골병(骨病)이 든다고 붙은 이름.
골치재에서 지맥을 타고 올라서면 그때부터 골치가 따악 아프기 시작이다.
산죽은 지리산 버전이고, 잡목은 야산 수준의 망개나무(청다래)까지 가랑이를 잡아챈다.
그나마 위로를 받는 건 조망바위에서의 감흥이지만.
정수사 대웅전(전남 유형문화재 제101호)엔 석가여래삼불좌상(보물 제1843호)이 있고, 목조 삼세불좌상은 유형문화재다.
정수사는 도공(陶工)들에게 정신적인 고향으로 장인정신과 넋을 기리기 위한 도조사(陶祖祠)가 있다.
또 임진왜란 때 강진 출신 의병장 염걸(廉傑 1545~1598)이 왜군을 유인해 싸웠던 격전지이기도 하다.
전승기적비 뒤에 있는 충효사는 염걸 장군의 형제와 아들의 공적을 기리기 위한 사당이다.
코스: A) 골치재-임도-양암봉-가지재-459.6m(갈림길 독도주의)-천태산-정수사(8.8km. 5시간)
B) 정수사 원점회귀(2시간)
궤적.
약 9km에 5시간 소요.
고도표.
<월간 산>을 일부 수정하였다.
미리 준비한 표지기.
장흥군 관산읍과 강진군 칠량면의 경계인 '골치재'에 버스를 멈춘다. 주소는 '강진군 칠량면 명주리 산148'이다.
들머리는 장흥군 안내판 뒤 화살표 방향. 절개지 비탈길을 올라서면...
그런대로 길흔적이 나온다.
그러나 산죽과 잡목의 저항은 어쩔 수 없다.
가을의 전령 억새와 쑥부쟁이.
임도인 듯하나 묵었다.
그러다 다시 능선으로 올라서지만...
반듯한 길은 그저 사치.
이만 만해도 만족해야지.
숲을 헤치면...
다시 길흔적을 찾을 수 있으니.
묵은 임도를 버리고 다시 좌측 산속으로 잡목을 헤친다.
산죽을 째고 가는 스탈은 완전 지리산 스탈. 고개를 숙이고 평영헤엄을 치듯 양 팔로 숲을 째고 가야 한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어 만난 전망대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먼 산을 바라본다.
당겨 짚어보니 예사롭지 않은 산.
이름만 들먹이면 다 알 수 있는 곳.
그런 곳에서 잠시 쉬었다 간다.
별로 넓지 않은 공간에서 우리 일행들이 밥자리를 폈다.
양암봉 직전의 쓰러진 이정표 지점.
울퉁불퉁 천관산이 하늘의 관을 썼다.
천관산의 암괴.
농안마을의 농안저수지다. 멀리 하늘금은 호남정맥(?).
처음 참가한 일행이 식사 중인 곳에서 미옥 총무가 포즈를 잡았다. 식사는 이런 곳에서 해야만 氣를 받는 것.
한 컷 하겠다고 하였다.
양암봉에 올라...
준비해간 표지기를 건 뒤...
양암(陽岩)에 섰다. 능선은 우리가 나아갈 길.
천관산이 가까이 다가오고...
연지저수지가 발 아래다. 그리고 남해바다.
능선과 천태산.
펼쳐지는 산하.
<파노라마>
연지저수지.
가지재의 억새.
이제 오름길.
천관산 조망이 계속 열리지만 459.6봉에서 얼마간 헤매고 있었다. 중요지점이다.
5m 이내에 등로가 있었지만 찾지 못하고 잡목숲에 갇혀 허우적거리다 얼굴에 생채기를 내고 말았으니...ㅉㅉ
그러다가 천태산 꼭대기를 머리 위에 이고 진행하다...
파노라마로 천지를 짚어 보았다.
뒤돌아 보면 계속 천관산이 따라오고 있다.
연지저수지.
뒤돌아보면 우리가 진행한 능선과 천관산.
천태산 직전에서...
사자지맥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천태산에 올라...
기념사진을 찍었다. 표석엔 천개산천태봉(天蓋山天台峰).
표지기.
몇해전 다녀온 여계산은 11km의 거리.
우리는 정수사 방향.
이후 산길은 깔끔이 정비되었고...
골치재 앞에서 내려 깃대봉을 찍고온 별동대팀이 우리를 앞질러 뛰어 내려간다. 대단하시다.
세멘트 임도에 내려서...
정수사 뒷편 경내로 들어가며...
당우를 담아보지만 현판이 없으니 무슨 건물인지 알길이 없다.
대웅전엔...
'정수사 석가여래 삼불좌상'이 있어 합장하고 사진에 담았으나 실내 어둠에 적응하지 못한 카메라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고 만다.
강진 정수사 석가여래 삼불좌상(보물 제1843호)의 안내판.
괘불대.
삼층석탑을 이마로 떠받치고 있는 사자상. 강화도 전등사 처마밑 나부상을 연상케 한다.
대웅전.
천불전.
그러고보니 정수사의 당우는 모두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수(母水) 한 컵을 마신 뒤...
전설을 음미하고...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는 정수사 안내판도 살펴 본다.
처음 쌍계사였다가 정수사로 개칭하였다. 고려 청자를 굽던 도공들의 정신적 귀의처였고, 임란 땐 염걸 장군 형제와 아들의 전승지였다.
또한 승군들의 혼이 깃던 호국도량이다.
주차장에 내려와...
천태산 등산 안내판을 살펴본다.
안내판.
주차장 위의 돌비는 임란 때 이충무공을 도와 왜적을 물리치다 거제도 해전에서 순국한 염걸장군의 전승기적비와 운계 천기대사의적비다.
염걸장군과 천기대사는 100여년의 시간차를 두고 살았던 인물로 정수사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운계천기대사의적비(雲溪天璣大師義積碑)'.
천기대사는 쌍계사로 불리던 사찰을 정수사로 고쳐달라는 글을 예조에 올려 오늘에 이르게 했다.
'퇴은당 염걸장군 전승기적비(退隱堂 廉傑將軍 戰勝記積碑)'
염걸장군은 1545년(인종 1년) 칠량면 율변마을에서 출생, 임란때 구강포와 정수사 사이에 쳐들어오는 적을 두 아우 서와 경, 외아들 홍립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섬멸했다.
식별 불가한 비석은 '현감이후송덕비(縣監李侯頌德碑)'. 내용은 정수사 사적비에 해당될 만큼 중요하단다.
파주 염씨 임란사충 전적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