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 src=http://jphole.pe.kr/jplifeimage/baby.jpg>1977 08 13 10:29am NY USA 보다시피 저런 외계인의 형상임에도 불구하고 주위에서 고추났다. 잘생겼다라는 소리들을 들으며 진표는 태어난다. -사진 클릭하려하지마라 크게못본다. ^^ - 내가 3살반인가 까지 미국에 있었는데 지금도 나에게 한영어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다.물론 이렇게 말한다고 돈 무시 미! 엄마한테 물어본결과 내가 한국에 나올당시 영어실력은 MAMA -우리나라애기도 엄마를 맘마라고 한다.- PAPA 였고 그나마 SISTER 발음이 안되서 누나를 CC 로 줄여불렀다. -아직도 누나를 씨씨라고 부른다. - 그당시 미국에 대한 기억은 전혀! 전혀 없다. 그나마 부모님께 듣는 것들로 나의 어린시절을 미뤄짐작하는건데 그다지 튀지 않고 약간은 엉뚱하며 잔머리를 어린나이에 조금굴렸고 아직도 남들로 하여금 탄성을 지르게하는 뒷통수 뿔이 조금더 흉칙하게 컸다 뭐 이정도? 미국에서 태어난 영향인지아닌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영어를 쓰는것을 좋아하는 편이며 성적과는 무관하게 영어라는 과목을 싫어하지는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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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진표배에대한문제해결.
패닉3집콘서트때 진표솔로타임때 배꼽티비스무레한 것에 힙합바지를 팬티가 보이도록 내려입은적이 있다. 그때이후로 '진표몸매가 좋다' 라는 당연시되던 말들은 온데간데없고 너무나 많은곳에서 '오빠뱃살좀빼요' 라는 말들만 들리기시작했다. 난 한번도 몸매가 좋다고 한적이 없다. 단지 어깨만 넓을뿐이다 핫핫 . 예전부터 나의 이뽈록배는 왜 생긴걸까 원인분석하다 가장 적합하고 타당한 것이 섹소폰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배에대해 물어오면 나는 항상 이렇게 대답해왔다. 섹소폰은 복식호흡을 하기 때문에 -마치 성악가가 배가 나온 것처럼- 배가 나온 것이라고 말이다.-비웃니? - 하지만 얼마전 앨범을 뒤적이다 이 문제의 사진을 발견했다. '어릴 땐 다 배가 나와'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제발 부탁이니 내가 들리도록 하진 말아달라. 아니 설사 내 귓가에 '바보야 어릴땐 다 배가나와! 니 배는 운동부족에 게을러터져서 그렇게 터지도록 나온거야!' 라고 소리친다 하더라도 나의 주장을 숙이지 않으리라. 목소리 높여 말하는데 "내배는 유전이다!!!" 그래도 의심이 가면 여기를 클릭하라. !!! <-이것을 보면 고개를 끄덕이는 당신을 발견할지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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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경유치원
유치원때 나는 호기심이 많은 아이었다. 당시 나는 방배동에 살았고 이유치원은 청담동에 위치했는데 가끔 부모님이 바쁘셔서 아는분과 택시를 탈기회가 많았다. 그당시 한양백화점-현재 갤러리아- 앞에서 택시를 타는데 택시탈 때 조건이 있었으니 뒷유리에 윈도우와이퍼가 있어야했고-포니원은 없었고 포니투는 있었다.- 빽 -더 무식한말로 할땐 빠꾸 좋은한국말은 후진- 할 때 '엘리제를 위하여'가 무조건 울려야했다. 같이다닌분은 무슨죄냐. 그리고 이동현이란 친구와 우주왕복선을 그리는게 심각한 취미였다. 내기억상으론 말이다. 사진에서 양옆에 있는 여자는 기억에남아있지 않는 아이들이고 그당시 내마음을 뒤흔들어놓은 여자가 있었으니 그녀의 이름은 추정민. 그당시 나는 어머님께 그녀와(!!) 결혼하겠다고 아니 결혼할꺼라고 공공연히 말했는데 분명 어머님은 허락까지 해주셨다. 그녀와의 마지막 기억은 초등학교때 엄마들끼리 함께 수영장에 가서 그녀와 같이 수영을 즐겼던 것이 아쉽게도 마지막 기억이다. 혹시나이걸 본다면 이메일이라도. 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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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의초등학교
반을뚝잘라 3년씩 나누어생각하면 초등학교3학년때가지는 비교적 얌전하고 내성적이고 말더듬던 아이가 4학년부터는 활동적이며 말썽피우며 나쁜짓도 많이 하게됐다. 특히 일명 뽀리까는데는 일가견이 있었으며 부모님 지갑에 손을 가장 많이 댔던 시기이기도 하며 성에 눈을뜨는 시기이기도했다 바늘도둑이 소도둑된다고 부모님지갑에서 몇백원가져오던 것이 1만원 2만원씩 커져만갔고, 그 돈은 다 장난감 사는데 썼는데 설날 때 사촌이 숨겨놓았던 장난감을 꺼내서 가지고놀다 엄마에게 걸려 버려 된통 뒤질뻔하기도했다. 5,6학년때는 커져만 가는 여자아이들의 가슴을 만져보고싶은 (!!) 욕구에 불타 장난으로 한번 만졌는데 글쎄 당한 아이가 나의 보물을 건드렸다. 그리고나서 서로 바지벗기기가 마치 게임처럼 번졌는데 억울하게도 여자아이들이 단체로 교장선생님께 신고(!) 하는바람에 마치 나만 욕구에불타 바지벗긴 것처럼 상황이 꼬여 6학년 5월4일 소운동회날 남들 줄다리기할 때 나만 교실에 남아 플라스틱 야구빠따로 먼지나도록 맞은적이 있다. 어머님 죄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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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중학교
말도많고 탈도많던 중학교시절. 정말 세상무서운줄 모르고 까불던 시절이었다. 1학년때 호기심에 담배를 피기시작했으며 많은 여자아이들을 좋아했으며 -차마 사귀었다고 말못함- 매일같이 교무실을 밥먹듯 불려다니곤 했다. 1학년땐 나름대로 공부한다고 반4등도 했지만 이때의 성적은 영원히 남을 진표의 최고성적으로 기록될 것이다. 정말 저주하는 수학선생이 한명있었는데 그 선생도 유치빤스똥자루여서 수업시간에는 서로 갈구면서 수업진행이 되던가 내가 나가 버리던가 했고 졸업때는 내가 졸업선물로 '씨발새끼'라고 파여진 도장을 선물로 주기도 했다. 중학교때 내머릿속에 조각내준 여자들의 이름을 꼽자면 김태연(사진) 남현욱 이현아 박신영 송지영 등등..-이걸보면 기분나빠할 것같음- 가끔 압구정동에서 옆사진의 친구들이 보이던데 지금은 안면까는사이. ^^ 조금이나마 철이든시기라면 중3졸업식도못가며 한달동안 집나가서 새벽엔 북가좌동 세븐일레븐 편의점에서, 낮에는 연대 솟을샘 매점에서 저녁에는 이대앞 소리모아 학원에서 섹소폰 연습하며 보냈던 시기. 진짜 열심히 살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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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문고등학교
엄마가 나 집나간 동안 다써준 -지금은 없어진- 천자문25번쓰기 숙제를 들고 들어간 학교. 딴선생한텐 조금 미안하지만 유일하게 진표의 스승님으로 생각하는 고1담임 이봉재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체육과 선생님이었는데 키가 190정도되고 생긴 것이 이봉걸과 너무 흡사해 봉걸이 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현재 교편을 놔 버린 상태여서 연락두절. 2학년 봄이던가 상문고 비리사건이 터지면서 그야말로 학교는 널럴한 학교가되고 -수요일은 1시40분에 끝남- 난 이미 서울예전에 진학할 것을 내심확정지은상태라 나름대로 음악공부한다고 교과서 대신 화성학 책을 가방안에 넣고다녔다. 사진에서도 보이지만 언제나 해드폰을 끼고 등하교했고 가끔 나이트가고 -누나학생증 위조하는데 죽는줄 알았다- 케스케이드 라는 락카페에 자주갔으며 -그후 501로바뀌고 없어진 듯하다- 섹소폰연습 죽어라 하며 음악먹으며 살았다. 99년초에 헤어진 여자친구도 고2 크리스마스이브날에 만났으며 내가 흑인인줄 알았다.-내2집 BLACK BANANA 참고. 나의 고등학교모습을 그린 것임.- 고3 4월에 패닉이 결성되었는데 이 음반녹음을 핑계로 학교에 늦게가서 3교시만 하고 오기를 밥먹듯이 했으며 음반 나오고선 PR 판 쫙 돌리고 -특히 학생부선생들- 있지도 않는 방송 스케줄있다고 뻥치고 일찍오기를 정말 매일 했다. 심지어 방송국을 하나 만들어낸적도 있는데 -유명한 방송얘기하면 들을까봐...- 실수이기도 했지만 '천주교방송국' 에 가야한다고 한적도 있다. -원래는 평화방송- 선생들도 웃긴 것이 학교다닐땐 나보고 '나발부는놈'하면서 딴 학생들앞에서 무시하더니 졸업후 좀 뜨니까 내 자랑을 한다는 얘기를 후배들한테 들은적이 있다. 그런얘기들이 '벌레'-패닉2집-를 작사하는데 너무나 큰 힘과 용기가 되었다
서울예술대학.
실수였다. 물론 배울게 많은 과이고 좋은 학교이다. 내게는 아니였다. 길게 말하고싶지 않다. 내가 학교를 사랑하고 있을 때까진 난 너무나 자신있게 난 서울예대 실음과에 재학중이오 라고 말하고다녔다. 하지만 내게는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난 어디서고 서울예대 실음과 학생이라고 말한적 없다. 난 그저 상문고졸업생일뿐...... 그저 음악을 듣는게 나한텐 최고의 공부였다.
고3초 오래간만에 적이형네집에 가서 놀다 적이형 데모를 듣게 된다. 난 연신 '오~ 좋다'를 내뿜으며 감상하는데 뜬금없이 적이형이 한마디 던진다. '같이할래?'
이렇게 패닉은 시작된다. 음악을 듣기만할뿐 할줄은 몰랐던 나에게 패닉의 1집 작업은 신기 그 자체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적은-이럴 때 막부르지 언제 막불러.- 나에게 선생님이나 다름없었고 또 패닉이란 그룹자체가 이적중심의 그룹이 될수밖에 없었다. 또다른 음반듣는 재미이자 어찌보면 단점인 것이 난 100% 들어난다는 것이다. 너무나 아마추어적일 때 데뷔했기 때문에 음반을 낼 때마다 뭘 공부했는지 또 어느 부분에서 어떻게 늘었는지 듣는사람들이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이다. 1집의 핵심은 진표가 참여한 부분은 극도로 적은데 그 이유는 원래앨범자체가 이적1집이었다는 것에 있다.-고로 진표를위한 부분을 찾아 넣어야했다.- 패닉1집당시 내가 STUDIO 안에서 녹음을 한 기간은 4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 그리고 패닉2집. 나의 첫작품 벌레와 마마. 그리고 그 가사의 논란. 재밌었다. 결국 가사를 지워야만 했지만 어찌됐건 패닉에서 김진표는 장식이다 라는 꼬리표를 떼버릴 수 있는 한방이기도 했다. 너무나 하고싶은 말들이기도 했고. 1년반쯤 지난후 패닉3집이 나온다. 패닉은 언제나 해체설이 따라다닌다. -아직해체안했다.- 그래서 더욱 재밌다. 패닉4집이 나올지는 나도 적이형도 모른다. 패닉과상관없이 언제나 강조하고픈 말 적이형 고마우이~
패닉1집 당시 나는 인기연예인의 맛에 흠뻑 취해 사람들이 날 알아보는게 좋았고 돈은 돈대로 흥청망청 쓰면서 지내는 시기가 있었다. 그때 적이형이 내게 한말있으니 "너 당장 내가 패닉안하겠다고 하면 너 어떻게 할래? 너만 패닉할순 없겠지 난 그냥 너희 부모님께 죄송할뿐이지만 넌 정말 할게 아무것도 없지 않니?" 난 그당시 한번 씩 웃고말았지만 정말 현실가능한 얘기였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정말 이말을 해준 적이형께 감사하지만 한때는 얄밉기도 했었다 ^^ 암튼 그때이후로 예전부터 욕심만 가졌던 랩앨범에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패닉2집을 내고 얼마후 적이형은 동률이형과 프로젝트 앨범을 낼 것이라는 얘기를 해왔다. 그때 난 솔로를 내야겠다라고 결심했다. 그리고 나온 것이 열외 1집. 생각보다 대성공. 재밌는 것은 랩을 쓰는데 있어 전환기 -1집가사들은 억지성이 있고 조금 힘들게 작업한데 비해 2집가사들은 너무나 재밌고 쉽게 할 수 있었다. 이렇게 된 전환기- 는 나의 솔로앨범도 패닉앨범도 아닌 박진영 4집의 뭔가이상해란 곡의 Featuring을 할 때이다. 나도 정확히 표현할 수 없는데 진영이형 이곡 가사작업하면서 갑자기 일종의 노하우를 익힌 듯한 느낌을 받았다. ^^ 그리고 2집 JP STYLE. 활발히 활동하고 치고나가야할시기에 회사문제상 안타깝고 아깝고 그랬지만 접을수밖에 없었다. 힙합이냐 아니냐 라는 질문을 제일 싫어한다. 난 랩으로 표현할수 있는 음악은 앞으로 전부 해볼 것이다. WARREN G 가 이런말을 했다. Where rhythm is life and life is rhythm. 리듬이 있다면 그 어떤 음악이라 할지라도 난 해볼 것이다.
이팀은 도대체 어떻게생긴 것인가 많이 알려져있긴하지만 이래저래 시기상으로 딱 맞아떨어지는 그런우연의일치라고 하기에는 존심상하지만 너무도 기가막힌 타이밍의 연속으로 같이 할 수 있었다. 패닉3집활동하면서 동시에 나는 솔로2집 녹음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녹음을 하면서 무언가 알 수 없는 아쉬움이 내마음을 차지하고 있었고 나에게 무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생각한 것이 예전에 심각하게 심취해 듣던 JUDGEMENT NIGHT O.S.T 가 생각났다. '그래 그런작업이라면 난 너무 신날텐데.... ' 항상 머릿속에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고 패닉3집 공연 때문에 한동안 연습만 할뿐 녹음작업을 일단 중단시켜놨었다. 연습하던 어느날 연습이 끝나고 세황이형이 날꼬신다. 여자친구소개시켜줄께... 여자친구가 있긴했지만...형의 여자친구소개시켜줄께란 말에는 거절해도 넌 가야만 한다라는 아주아주아주 강한 의지가 섞여있었다..-진표합리화.^^- 따라나간장소는 신사동 큰손횟집이라는 말그대로 횟집. 얼마후 킹카라는 여자들은 온데간데없고 수용형과 영석형이 나온다. -그당시 진짜 황당했다. 세황이형이 게이라고까지 생각했으니까..- 그다음부터는 다 상상할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렇게 노바소닉은 탄생하게 된다. 이팀을 환영하는 사람 물론 있지만 가끔 그런말을 해오곤 한다. 도대체 그팀이 왜 필요가있는건가? 라고 말이다. 초장기에는 이렇게 대답했다. 당장 음악하는 당사자들이 이팀을 하면서 재밌다고... 하지만 이제는 이대답에 1집의 음반판매량의 결과로 하나더 추가할 수 있었다. '우리의 음악을 듣고 즐겨주는 사람들이 많다고...'
항상 나는 욕심부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내 인생철학은 2가지인데, 첫째는 폼나게 살자요 둘째는 욕심부리지 말자 이다. 차근차근 한계단씩 올라갈 것이다. 패닉1집당시의 나를 생각해본다. 이건 분명한 발전이다. 생긴건 많이 노는 날라리 같이 생긴게 이런말 하니 안어울리긴 한데, 난 분명 많이 노는 날라리 이자 사고도 치는 문제아이다. 하지만 날라리나 양아치나 문제아는 잘되란 법없나? 쳇 이렇게 국어사전에라도 나와있나? 적어도 내가 하고싶은 분야에서는 더욱더 열심히 할 것이다. 그리고 마음껏 놀 것이다. 1999.9.1 j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