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건설기계에 공식 도입된 원동기 유해물질 배출허용기준 ‘티어4(tier4)’를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건설기계의 티어4 도입은 지난해 12월 30일부로 개정된 대기환경보전법에 따른 것인데, 이 중에서도 ‘굴삭기, 로더, 지게차(전동식 제외), 불도저, 롤러를 제외한 나머지 건설기계에 대해 제조사나 건설기계 종류별로 총 50대까지는 2017년 12월 31일까지 티어3의 기준을 적용한다’는 별표 17 비고 6항의 내용이 문제되고 있다.
수입산이 대부분인 일부 기종에 한해서는 결국 2017년까지 티어3의 매매가 허용되는 셈인데, 이에 대해 특히 공기압축기업계의 반발이 크다. 공기압축기업계에 따르면 ‘올해부터 티어4가 적용되면 장비 가격이 크게 오르니, 그 이전에 장비를 구입해야 저렴하게 마련할 수 있다’는 제조사나 오퍼상의 말에 현혹돼 건설기계를 미리 장만했고, 이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지난해 제작된 건설기계는 2015년 9월 30일까지 출고할 수 있다’는 출고유예기준으로 오는 9월까지 이전 기준의 건설기계 판매가 허용됐는데, 이로 인해 일부 오퍼상들이 예년 수준 이상의 공기압축기를 들여오면서 과잉공급을 심화시킨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실정이다.
이와 관련 대한건설기계협회 주재로 환경부 담당자와 공기압축기협의회 신언호 회장, 박병산 수석부회장, 한용섭 고문 등 업계 관계자 4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달 28일 충남 공주시 동학산장에서 간담회가 마련됐다. 회의석상에서 어떠한 이야기들이 오갔는지 요점을 짚어본다.
업계 “제조사 오퍼상 배불리기 아냐?”
우선 논란의 핵심은 제조사나 오퍼상이 자의적으로 해석한 티어4 적용 관련 정보를 기존 장비 판매에 활용했다는 점이다. 업계 관계자는 “일부 제조사는 지난해 8월 설명회 등을 열고, 이를 통해 2015년부터 공기압축기에 티어4 배출환경기준이 적용됨에 따라 가격이 크게 오를 것이라며 사업자들에게 장비 구입을 부추겼다”면서 “그들은 실제로 새 배출허용기준이 적용되면 4000~5000여만원 오를 것이라며 구체적 인상금액까지 제시했고, 이를 곧이곧대로 믿은 건설기계업자는 한꺼번에 3대 이상 구입한 경우도 있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환경부가 티어3의 50대 유예기준에 관한 정보를 제조사나 오퍼상에게만 제공하면서 이들의 배만 불렸다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는 환경부가 법령을 개정하면서 제조사 등의 의견수렴은 거친 반면 건설기계업자들의 의견수렴은 배제한 데 따른 것이다.
이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관련법 개정 과정에서 건설기계업계의 의견도 수렴했어야 하는데, 미처 그러지 못해 죄송하다”면서도 “그렇다고 제조사나 오퍼상에게만 정보를 흘렸다는 소문은 순전히 오해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제조사가 설명회 등을 마련했다는 지난해 8월은 아직 티어3의 50대 유예기준 등에 관한 세부적 방침이 정해지지 않은 시점이었다는 것이다. 실제 관련법령은 지난해 12월 30일자에 이르러서야 개정됐다.
티어4 조속한 적용 촉구…수급조절 효과 기대
오퍼상 “사실 왜곡 없어, 우리도 혼란스럽다”
이에 대해 오퍼상 또한 관련 정보의 사전 입수와 이를 활용한 제품판매 행위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한 오퍼상은 “환경부가 올해부터 티어4를 적용한다고 밝혔으니, 시장의 흐름을 고객인 공기압축기업자들에게 알리는 차원에서 전달한 것일 뿐, 사실을 왜곡한 적은 없다”면서 “우리도 지난해 말에 이르러서야 티어3의 50대 유예기준을 뒤늦게 알아서 혼란스러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기압축기의 경우 현재 티어3도 아닌 티어1, 티어2 기준의 장비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티어3가 적용된 공기압축기를 유예기준으로 삼아봤자 어차피 수입도 불가능하다”면서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만 살펴보더라도 유예기준을 설정해 두고 있으며, 이들 국가에서조차 공기압축기는 티어4가 적용되지 않는데 오히려 국내에서 배출허용기준이 더 엄격하게 적용되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공기압축기협의회 신언호 회장은 “임대시장에서 티어1이나 티어2 기준의 공기압축기가 다수인 점은 사실이지만, 티어1이나 티어2 기준은 소형장비에 국한돼 왔고 현재에는 대형장비를 위주로 티어3가 적용되고 있는 추세”라며 “이에 일부 제조사의 경우 티어3 기준의 장비를 주력상품으로 삼고 있으며, 또한 제조사들은 2017년까지 50대 유예기준에 따라 티어3 기준을 적용한 장비를 출고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과잉공급 심화 등 업계 파장을 우려했다.
제조사나 오퍼상도 이같은 업계의 불만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계의 반응에 대해 아쉬움을 표출하는 까닭은 유예기준 없는 티어4 적용이 수입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 자신들에게도 피해가 미칠 수 있다는 염려에서다.
수급조절 대체방안…자가용 증가분도 과잉공급 심화
환경부가 이번 간담회에서 ‘특이 케이스’라고 밝혔듯, 공기압축기 업자들은 다른 기종과 달리 조속한 티어4의 적용을 촉구하고 있다. 제품가격 인상 등을 염려해 티어4 적용을 최대한 늦추려는 다른 기종과는 확실히 다른 점이다.
이에 대해 공기압축기협의회는 ‘수급조절의 대체방안’이라며, 저의를 숨기지 않았다. 공기압축기협의회는 당초 정부에 수급조절을 요청하려 했지만, 공기압축기는 전량 수입장비여서 FTA 규정에 위배된다는 답변을 받은 바 있다. 공기압축기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영업용 3275대, 자가용 1058대 등 총 4333대가 등록돼 다른 기종에 비해 대수가 많지는 않지만, 공기압축기 임대업자는 과잉공급이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상황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들에 따르면 임대업자 외에 건설사 등이 보유하는 자가용 공기압축기도 과잉공급의 주요원인이다. 건설사 등이 자가용 공기압축기를 구입한 후 불법적으로 헐값에 임대행위를 하면서 시장질서를 흐리고 있다는 것이다.
공기압축기는 이같은 이유로 대기환경보전법 시행규칙 별표 17 비고 6항에 명시된 ‘제조사별 기종별 티어3 50대 유예기준’의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당초 관련법 개정 과정에서 건설기계업계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듯, 공기압축기협의회는 이번에도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각종 집회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환경부 의견조율 피력 ‘고무적’
환경부는 곤혹스럽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공기압축기업계의 요구를 일단은 검토해 보겠지만, 다양한 업계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수용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또한 50대 유예기준이 철회되더라도, 일부 오퍼상을 중심으로 지난해에 이미 올해 판매분까지 제품을 초과로 비축해 둔 상황이어서 그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기압축기협의회 측은 “지난해에 허가받아 수입해 둔 물량의 판매까지 우리가 막겠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2015년 10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티어3의 제조사별 기종별 50대 유예기준이 철회되면 과잉공급이 더 이상 악화되지는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요구를 정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소형장비는 그대로 적용하더라도 대형장비는 유예기준을 철회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번 간담회를 통해 뚜렷한 결론이 도출되지는 않았지만, 그나마 고무적인 점은 환경부가 건설기계업계의 의견을 수렴해 조율을 거치겠다고 밝힌 것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이번 간담회에서 속 시원히 결론이 도출되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문제점을 공유하고 앞으로 어떤 식으로 나아갈 지 방향을 잡았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면서 “추후에 또 논의가 필요하면 대한건설기계협회를 통해 연락하겠다”고 밝혔다.
공기압축기협의회 신언호 회장은 “장비의 포화로 인해 임대업자들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는 만큼 환경부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충분히 고민할 것이라고 믿는다”면서 “만약 개선 없이 원안 그대로 진행된다면 건설기계업계 전체가 가만히 두고 보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