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의 글은
2012년 1월 13일 포스팅하였습니다.
"불편한 진실"이라는 개콘의 코너를 보면서
사실과 진실이라는 문제를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실과 진실은 실재와 실제의 차이지만
불편한 진실이라는 말은 진실의 네거티브적인 사실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리송한 말은
생각하기에 따라서 다르게 적용하고 사용할 수 있는 말인 것 같습니다.
진실의 사실이라면 더욱 선명한 뜻이 되어야 하는데
불편한 진실이라는 아주 아리까리한 말이 되었습니다.
사실에 진실을 더하면 선이 되고.....
진실에 사실을 더하면 불편한 진실이 됩니다.
요즘은 불편한 진실을 개그로 미화하는
아주 웃기는 세상을 살아갑니다.
때로는 울게 하고 때로는 웃게하는 불편한 진실은
불편한 진실을 가진 자와 불편한 진실을 비밀로 아는 자의 차이입니다.
가진 자는 울고, 아는 자는 웃는 수수께끼의 답이
불편한 진실의 정체성입니다.
불편한 진실은
누구에게나 있고 적용되는 양성을 가진 생물과 같습니다.
문제는 불편한 질실일 뿐이라는
이데올로기입니다.
개성이라는 말은
잘나고 못난 사람을 스타로 만드는 동력입니다.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을 중화 시키고
소통의 경지로 스타의 반열에 이르게 하는 강력한 힘, 그것이 바로 개성입니다.
스타가 되기 전 밤무대를 종횡무진하였던 과거는
스타의 불편한 진실이 되었습니다.
불편한 진실을 개성으로 만들어 가는 세상은
다원주의 문화를 만들어 가는 첩경입니다.
불편한 진실이 개콘의 코너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불편한 진실을 미화하는 개성으로 다원주의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이혼으로 돌싱이 된 사람들의 터전을 아름답게 만들어 가는 세상은
돌싱이 되지 못하고 가정을 가진 사람들의 불편한 질실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불편한 진실을 불편하지 않는 개성으로 만들어 가는 세상은
울트라 모던 시대의 소통의 미학입니다.
야동 문화나 성의 교환을 개성있는 삶의 패턴으로 소통의 미학을 추구하는 세상은
이미 불편한 진실이 최고의 선한 가치로 존중을 받는 문화가 되었습니다.
순결하고 정숙한 사랑의 틀에 갇혀 성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아주 불편한 진실을 가진 세상입니다.
울트라 모던 시대의 개성과 소통은
다원주의 문화를 인본주의로 만들어 가는 절대 힘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포스트 모던을 넘어서 울트라 모던 시대를 열어가는 세상에
프리 모던의 절대 진리의 가치는 진실에서조차 그 아름다운 가치를 찾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프리모던의 절대 선한 가치는
개성과 소통의 이데올로기로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한편 불편한 진실을 개성으로 만들어 가는 시대에
공소 시효도 없는 폭로 전쟁으로 당의 해체 위기를 맞은 한나라당의 몰꼴은
정말 불편한 진실의 개차반을 겪고 있습니다.
전근대적인 의식을 가진 진부한 정치인들의 생존 몸부림으로 드러난 부정과 폭로는
안철수 신드룸을 필적할 깨끗하고 참신한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한 최상의 카드로 꺼낸 듯하나
오물을 잔뜩 뒤집어 쓴 채 청명한 하늘을 우롱하는 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스스로 난도질한 상처를 치료할 명의가 나타나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강력한 리더가 될지는 불편한 진실일 뿐입니다.
아직도 진부한 의식의 쇼에 놀아나고 끌려다니는 메스컴과 검찰과 국민 여론의 향방이 갈리는 것을 보며.....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사는 것이 불편한 진실이 되었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하나님 나라 영원한 왕이신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 그 자체여서 불편한 진실을 개성과 소통으로 용납하지 않습니다.
불편한 진실을 소통과 개성으로 추구하는 삶의 패러다임을 가진 자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에게서 믿음과 사랑으로 진실과 정직을 가르침 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개성과 소통이 아닌 빛의 열매로 자유를 누리는 사람입니다.
빛의 열매는
주 안에서 빛이된 빛의 자녀들의 삶의 향기로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입니다.
불편한 진실은 빛의 열매가 아니며
불편한 진실을 개성과 소통의 미학으로 추구하는 세상은 어둠의 세상입니다.
어둠의 세상을
미래 희망의 세상으로 열어가는 긍정의 힘은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믿음의 반대 개념입니다.
결국 긍정의 힘을 신념으로 가진 자는 불편한 진실을 위대한 가치로 만들어 가지만
믿음을 가진 자는 진리의 빛으로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그 나라 백성입니다.
불확실한 미래의 염려를 긍정의 힘으로 만들어 가는 신념은
불편한 진실마저 아름다운 삶의 가치로 녹여냅니다.
이것이 울트라 모든 시대의 위대한 가치요,
이상이요, 종교며, 철학입니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 안에서는
불확실한 미래나 내일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나라에 대한 믿음의 확신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을 영화로운 영생의 삶으로 이루어 갑니다.
우주 시대를 개척하며 열어가는 것은 울트라 모든 시대 인류의 비전이요, 희망이지만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는 우주적 하나님 나라를 영생복락으로 누립니다.
만들어 가는 가치와 만들어진 가치의 차이는
신념과 믿음의 차이며 비전과 소망의 차이입니다.
비전은 꿈을 이루는 긍정의 이상이지만
소망은 아침 햇살을 따뜻하게 맞으며 감사하는 기쁨입니다.
그러므로 비전으로 미래 희망의 꿈을 긍정의 힘으로 이루어 가는 기독교 인본주의는
꿈이 현실이 되게 하는 울트라 모든 시대의 종교요, 반디불을 모아 어둠을 밝히려는
투철한 신념의 세상 종교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참된 믿음은
그리스도의 빛으로 세상을 비추는 진실, 그 자체입니다.
진실과 불편한 진실의 차이를
믿음과 신념의 패러다임으로 조명하여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