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량포구에서
김부회
물길이 작은 암초에 걸려 맴돌고 있다
산을 훑다, 개울을 타고 넘어 가을을 데리고 온 빗줄기
끝내 바다가 된 바다는 모나지 않은 수평
낮과 밤의 풍상을 홀로 견뎌낸 늙은 해송의 오도송悟道頌 아래
바다가 잔잔한 것은
그 배경과 풍경 사이
물속으로 물이 흐르는 곡절은
오래 살아본 사람에게만 들리는
아득하게 먼 날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
수평으로 만든 조율이다
비가 되고 강이 되고 바다가 되고 다시 비가 되고
뒷세대가 앞세대를 잇듯
굴곡을 샅샅이 보듬고 이어 흐르는 세류細流의 물길
어느 위태로웠던 가계의 등불을 켜는
젖줄이 되었다
솔가지 사이 투두둑
빗소리 홀연한 타전이 애써 붙잡고 있는 서녘을 멈춘 지금
해수면을 넘어가려는
노을을 잡아챈 물골 어디쯤에서
세상 어떤 소리도 닮지 않은 스물여덟 번의 타종* 들린다
소리 밖으로 홀로 달아나며 살다 문득
툭, 걸쳐 입은 간절기 외투 같은
답신을 내게 보낸다
바다는 바다를 어디로 데려가려는지
*중생들이 고통에서 벗어나 진리를 깨닫게 하기 위해 타종하는 범종 소리
꾼
김부회
땅속으로 뿌리를 내릴 때마다 부활을 꿈꾸었던 말, 푸른 문장을 쏠아 먹었던 교언巧言의 부피는 바닥을 걷는 그의 키 높이 깔창처럼 점점 두꺼워졌다 사람과 사람 사이 공전을 유지하기 위해 홀로 자전 중이라는 궤변을 환還이라 부른다고 했다 밟혀야 일어서는 것들과 일어서야 밟히는 것들은 씨앗이 다른 무리, 바뀐 세상의 병목을 빠져나가야 하는 그들, 들개 떼는 여전히 도시의 기슭을 배회하고 보상받은 다섯 적당의 지폐 다발과 회색 광장의 비둘기가 한 꼬치에 꿰여 구태라는 나들목의 출구에 몰려 있다 낮을 몰아낸 밤이 서둘러 수평 아래 박힌 찌를 물었다 이따금 커지는 키, 수면 위 허공에 챔질 당한 당연이라는 낡은 옷을 걸친 삿된 이념의 당사자, 눈에서 잠시 부재했던 나무다리가, 또각또각 한 치 한 치 땅에 박힐 때마다 훌쩍 흔들리는 몸 기생하는 그림자 그리고 지팡이, 유일한 군림의 상징, 엑스 캘리버*가 툭 부러진 날 “아서 왕‘의 전설은 폐업했다 근원부터 허물어지는 온갖 몰락을 환還이 아닌 속俗이라 부르기로 했다 당위, 그 흔한 매뉴얼을 고졸한 척 완고의 외곽만으로 버티는 당당함이라니, 그는 가고 남은 지팡이는 의지할 곳을 잃었다 전락轉落은 비대면의 등등한 살기가 사그라드는 어떤 날 부연 연기가 되어 제 길을 찾았다
*15 세기 영국의 왕, 전설의 검 엑스 캘리버를 뽑아 왕이 된 신화
김부회 시인 프로필'
2011 창조문학신문 신춘문예 당선, 중봉문학상 대상, 문학세계 문학상 평론 부문 대상, 모던포엠 문학상 평론 부문 대상, 가온문학상및 창작지원금 수혜 외 다수 수상, 시집 (시, 답지 않은 소리) (러시안 룰렛) 평론집 (시는 물이다),(현) 계간 문예바다 편집부주간, 김포신문 시 전문 해설위원
계간 시 전문지 사이펀 2023 가을호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