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아픔과 비밀을 지니고 살아간다.
그 비밀이라는 것이 대개가 세상이 정한 도덕과 법이라는 울타리를 조금 벗어난
것으로, 그 사람의 성장 과정이나 일상 혹은 인생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곤 한다.
그것이 옳은가 그른가, 적법한가 불법인가 혹은 윤리적인가 그렇지 않은가의
판단은 이미 그 의미를 상실한 다음이다.
영화 '더 리더(The Reader / 책 읽어주는 남자)' 는 10대 소년과 30대 여인의 우연한
만남과 사랑(맞나?)과 심리 변화를 유태인 학살에 대한 나치 전범재판이라는 역사의
한 구간을 관통하는 시간속에서 치밀하고도 한 켠 무덤덤하리만큼 냉혹히 묘사한다.
초반부터 등장하는 10대 소년과 30대 여인의 알몸과 섹스는 평소에 가졌던 가치관과
도덕적 관념을 잠시 접어두라는 신호이다. 비워진 마음으로 영화를 마주해야 한다.
소년의 마음과 몸을 통째 매혹시킨 여인 한나는 때론 불같고 때론 얼음처럼 차갑게 그를
대하고 한 발짝 뒤에서 소년을 응시하며 늘 꼬마(Kid) 라고 불러 그 거리를 확인한다.
격렬한 정사 후나 전에, 혹은 목욕탕 안에서 책을 읽어 달라고 해서 그 내용에 몰입하는
그는 많은 것을 감추고 있음을 눈빛 하나로 표현한다. 그리고 어느날 홀연히 사라진다.
영화는 이 과정에서 그다지 친절하지 않지만 법대생이 된 옛날의 소년 마이클과 여인
한나의 조우를 나치 전범 재판정을 빌려 그려내며, 그 치열한 감정의 변화를 뛰어난
연기자들이 아주 절제있게 나타낸 것이 오히려 이것이 영화이고 소설임을 느끼게 한다.
이 역설의 아이러니.
한나는 나치 전범으로 확정되어 무기형을 선고받고 수감되며 어른이 된 소년 마이클은
변호사가 되었지만 옛날의 기억으로 인해 부모와 아내 등 모든 가족에게서 조차 유리된
채로 살아간다. 그러던 중 마이클이 한나에게 책을 읽은 녹음 테이프를 보내주면서 둘
사이엔 또다시 감정의 물꼬가 트이고 한나는 글을 배우기 시작한다. 그녀는 문맹이었고
전범 재판 당시에 증거로 채택된 보고서는 그녀가 쓰지 않았던(쓸 수 없었던) 것이다.
은빛 머리를 흩날리는 중년이 되어 면회를 온 마이클에게 "꼬마가 어른이 되었네" 라고
말하는 그녀. 그런 그녀를 복잡한 심경의 눈으로 바라보는 랄프 파인즈의 연기가 일품이다.
20 년간 수감 생활 후 가석방되는 그녀의 후원자로 지정되어 찾아온 마이클의 소극적이고
사무적인 응대가 비극적인 결말을 예고하고, 그녀는 결국 감방에서 목을 매 생을 마감한다.
목을 매기 위해 책상에 책을 쌓고 올라서던 그녀의 거친 발이 어쩌면 그리 아프게 하던지.
어른 마이클을 연기한 랄프 파인즈의 연기는 일품이다. 1997년 제작된 '잉글리쉬 페이션트'
에서 보여준 연기에 비하면 덜 인상적이지만.
케이트 윈슬렛의 연기는 최고였다. 1975년생이면 한국 나이 서른 다섯인 2009 년에 전라의
연기를, 그것도 팽팽하지 않은 가슴을 그대로 드러내 보여준 것과 30대에서 60대 까지의
복잡한 심리를 묘사한 연기는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영화 타이타닉에서 보았던 통통하고 젊은 그녀는 이제 내공 깊은 연기로 스크린을 압도하는
진정한 연기자가 되어 있었다.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는 게 사족(蛇足)일
정도로.
누구와도 좋다.
할 수 있다면 가슴에 담은 사람과 함께 보길 권한다. 그 사이가 어떻든 설명할 필요는 없다.
삶의 의미에 대해, 사랑에 대해 졸렬하지 않은 마음으로 보라고 당부하고 싶다.
2024.04.29
앵커리지
몇 년 전에 써서 블로그에 보관했던 글로 복사와 스크랩을 허하지 않았습니다.
첫댓글
앵커리지님의 영화 'The reader' 의 영화 감상문이
마치, 앵커리지님의 경험처럼 리얼하고 절제된 표현이
금방 영화를 보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랄프 파인즈의 연기와 함께
게이트 윈슬렛의 연기가
영화를 더욱 돋보이게 한 것일까요.
감상문에 반했습니다.^^
그리 읽어주시니 고맙습니다.
사실 영화평에 관해서는 전문가들의 글에 익숙한
분들에게 글을 올리기 저어되게든요.
나도 본 영화네요.강열한 느낌을 받았던,그녀가 문맹이어서 쓰지않은 보고서,
자존심이 허락치않아 쓰지않은 보고서,,,
네, 자존심으로 인해 쓰지 못한 보고서,
그로 인해 갇힌 그녀의 인생이 아프게 했습니다.
달달하면서도
너무나 안타깝고 짠한 스토리입니다.
한나가 문맹이라서
책을 읽은 녹음을 보내 준 남자.
로맨스는 누구나 꿈꾸지만
꿈으로 끝나야만 미련도 남지요.
숨죽여 글을 읽던 중
전화가 와서 방해 받아 다시 읽으니
더 아릿합니다.
앵커리지님
좋은영화 소개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그리 읽어주시니 고맙습니다.
제라님 댓글에서 밝은 기운이 확 느껴집니다.
좋은 글 올려주시고 늘 활기차게 사시기를
응원합니다.
덕분에 좋은 영화 한 편 조용히 심야극장서 홀로 잘 본 느낌입니다.^^
나중에 기회되면 찾아 봐야겠습니다.^^
꼭 한 번 시간을 갖고 보세요.
다음 편에는 'Kingdom of heaven' 을 올려볼까
생각 중입니다 ^^
영화 더 리더 ᆢ덕분에 정보 잘. 얻었습니다. 기회되면 나도 보겠습니다.
네 기회가 되면 보십시오.
감사합니다.
도덕적 관념을 잠시 접어 두고
빈 마음으로 봐야 할 영화.
그럴 것 같네요.
여주인공 이름이 제 실명과 동일해서
잠시 멈칫 했습니다.ㅎ
앵커리지 님의 인생영화
잘 감상했습니다.
예쁜 이름을 가지셨네요.
영자 경자 정자... 잘해야(?) 경숙 영숙 정숙
등의 이름을 갖던 우리 시대인데 ^^
편한 시간에 한 번 이 영화를 보십시오.
@앵커리지 편한 시간에 한 번 봐야겠습니다.
실명은 성경에 있는 이름입니다.
할머니부터 크리스챤이었어요.
읽어보기만 해도 온몸에 전율이 돋을 정도로
충격적인 내용이네요
영화지만 그녀가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편한 시간에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한 번
보시길 권합니다.
저는 방영 내내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영화의 스토리를 만드는 사람들은 천재같습니다. 이 영화를 한번보고 싶습니다. 천재가 만드는 탁월한 전개방법을 통해 어떤 감정을 받아볼지 나자신도 궁금합니다.
좋은 영화를 만드는 이들의 능력과 노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특히 역사를 소재로 한
수작의 영화들은 우리 삶을 아주 풍요롭게
하니까요.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저는 책도 읽고 영화도 봤어요.
책과 영화 중 어느 쪽이 먼저였는지는 잊었는데,
책도 인상 깊었고 영화도 그러했기에
둘 중 먼저 접한 쪽이 좋았으므로 다른 쪽도 자연스럽게 보게 되었지요.
앵커리지님의 영화평 또한 너무도 훌륭하시니
제겐 아주 마음에 드는 삼종 셋트 완성입니다. ^^
자신이 문맹이라는 사실을 절대로 밝히기 싫었던 한나의 자존심이
그녀 스스로를 막다른 길로 내몰고 어린 시절의 마이클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지요.
건조하고 강퍅하면서도 따뜻하고 열정적인 한나라는 여성의 내면을 너무도 잘 소화해낸 케이트 윈슬렛,
이 작품 이후로 저는 그녀를 명배우로 생각합니다.
이 영화 더 리더와, 이터널 선샤인, 원더 휠, 이 세 작품이 제가 사랑하는 케이트 윈슬렛 삼종 셋트입니다. ^^
언급하신 대로 상처를 입고 성인이 된 마이클의 속내를 그 깊은 눈빛으로 기막히게 표현해낸 랄프 파인즈의 호연도 엄지 척이고요.
소년 마이클을 연기한 배우는 촬영 초반에는 18세가 채 안 되어서
다른 장면들 먼저 찍은 후 정사 장면은 그가 18세 되기를 기다렸다 찍었다고 해요.
앵커리지님 영화평 너무도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
달항아리님 반가워요.
요즘 잘 보이지 않던데 어디 다녀오신 듯합니다.
이 영화평은 달항아리님이 쓰셔야 할 것을
그랬나 봅니다 ^^ 상세히 부연설명을 하셔서
저도 도움이 됐습니다.
저는 글을 가능하면 짧게 쓰려는 강박관념이
좀 있습니다. 카페에 쓰는 글은 정치 종교 빼고
길지 않아야 한다고 믿거든요 ^^;;;;
저는 삶 방에서 슬그머니 빠져나와 수필방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삶 방은 제 정서와는
잘 맞지 않는다는 기분이 들어서요.
저를 끌어들인 조여사는 방을 나갔지만 달항아리
님은 자주 뵙기 바랍니다.
@앵커리지 어디 다녀온 것은 아니고요ㅎㅎ
제가 금년 정초에 교회를 옮겼어요.
25년을 다녔던 먼저 교회를 떠나 새 교회로 옮긴 것이 신앙 생활의 한 변곡점이 되었기에,
정신 바짝 차리고 기도에 집중하느라 카페에 소홀해졌네요.
수필방이 근자에 앵커리지님 둥실님 그산님이 합류하셔서 그 흐름이 더욱 풍성해진 듯합니다.
조여사님은 안녕하심을 전화 통화로 확인했어요. ^^
조여사님 아드님 치과에 조만간 우리 가족들이 단체로 진료 받으러 갈 예정이고요. ^^
늘 좋은 글 읽기만 하고 댓글도 못 썼는데
앞으로는 댓글로 종종 찾아뵙겠습니다.
건필하소서! ^^
이 영화도 보았지만 오래 전
'잉글리쉬 페이션트'를 보고 충격~
얼마 전 넷플에 올라와 다시 보았지요
멋진 후기 글, 잘 읽었습니다~^
잉글리쉬 페이션트도 참 좋지요.
저는 영화를 그리 많이 보는 편은 아니지만
킹덤 오브 헤븐이 아주 좋았답니다.
의미가 있어서요.
와~~~너무 잘 그려진
영화평에
꼭 보고싶어지네요
넷플에 있을런지
이 글읽고 영화보면
더 섬세히 느끼며
볼것 같습니다
삶방을 떠나 수필방이네요
저는 다시 삶방으로
휘리릭~~@@@
정아님 반가워요.
저는 수많은 글이 올라오는 삶 방에 적응이
잘 안 되더라구요 ^^;;;
사람마다 정서가 다르니 어쩔 수없지요.
삶 방에 자주 들러서 글과 댓글은 읽고
있답니다.^^
꼭 봐야 할 영화 하나 더 추가입니다. ^^~
네 꼭 보세요 ^^
어떻게든 꼭 찾아서 보겠습니다.
앵커리지님 영화 후기 읽으며 관람욕구가 솟구칩니다. ㅎ
감사합니다 ^^
바쁘시더라도 꼭 보세요.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 입니다 .
감명 깊게 보았던것 같은데 잊고 있다가
앵커리지님의 글을 읽으니 내용이 생각이 났습니다 .
감사 합니다 .
저는 요즘 책 읽어 주는 남자들과 친합니다 .
잠이 스르르 들게 만들어 주거든요.
책 읽어주는 어플이 있나 봅니다 ^^
저도 책 읽어주는 여자 어플이 있나 찾아봐서
친해질까 봅니다.
그 영화는 정말 강렬했습니다.
여러 번 보았는데 다시 보고 싶을 정도로요.
@앵커리지 어플은 아니고 YouTube에서 골라서 듣습니다 .
저는 주로 <책읽는 자작나무 > < 책 읽기 좋은 날 > ...
법정스님 , 고전 ... 그날 그날 골라서 듣습니다 .
@아녜스 아항 알았습니다.
제게도 도움이 되겠네요. 고맙습니다.
2000년대 초반쯤(?)
개봉 당시
봤던 기억이 나네요.
차마 털어 놓을 수 없었던 사실,
문맹으로 비롯돼
어긋나 버린 인생에
가슴 먹먹했던
단편적 기억으로만
남았지만
한나라는 여인 자체인 듯한
케이트 윈슬렛의
연기에
푹 빠졌던
감동은 생생하네요.
그렇지요?
한나를 어찌 그리 실감나게 연기하는지 아직까지
감동으로 남아있습니다.
저는 개봉 때 못 보고 나중에 보았습니다.
여러분들이 회상하니 저도 호기심이 발동하네요.
잘 읽고 갑니다.
기회가 된다면 한 번 보십시오 ^^
제작자가 어마무시해서 보게 되었던 영화인데요.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만든 시드니 폴락감독과 잉글리쉬 페이션트를 만든 안소니 밍겔라 감독였거든요.)
그러게요 케이트 윈스렛은 타이타닉 영화에서 여주 치고는 예쁘지도 않고 통통해서 별로였는데 더리더에서는 정말 연기 잘하는 배우로 거듭 태어났어요.
잉글리쉬 페이션트에서 상당히 멋있었던 랄프 파인즈도 더리더에서는 왠지 멋있다는 생각은 안들었어요.
영화 보는 내내 문맹인 한나가 얼마나 안쓰러웠는지 몰라요.
앵커리지 님께서 쓰신 글을 보니 옛생각이
나서 반가웠어요.
허심탄회하게 영화이야기 할 수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려요. 앵커리지 님
나무랑님의 영화평은 저보다 훨씬 섬세하고
정확했을 겁니다.
저는 영화 줄거리 보다는 객관자의 입장에서
가능하면 짧게 쓰려고 하는 편입니다.
감사합니다
@앵커리지 앵커리지 님께서 저보다 훨 잘쓰셔서
더 좋았는데요 모.
같은 영화를 보고 공감할 수있다는 게
더 중요하잖아요.
그냥....감명 깊게 봤던 영화를 이야기
할 수있는 기회가 생겨서 반갑고 감사했어요.
저도 짧고 간결하게 요점만 전달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되요 그게 제 글쓰기의 한계이기도 하구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