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영천이며 농암 이현보의 종손자 이기도 하다. 조부 이현우로 부터 가학을 익혔으며 19세때 성성재 금난수에게 배웠으나 뛰어나 성성재가 선생님께 입문토록 하였다. 선생님과는 40년 년하 였으며 조부와 손자 같은 사제 지간이었다. 선생님의 총애가 남달랐음을 상상할수있다. 조월천이 제자 중 수좌였다면 간재는 시자또는 수행비서 역활 이었다. 서애 . 학봉. 월천과 더 불어 가장핵심 제자 였음을 알수있다. 선생님의 저술가운데 간재공과의 질의 응답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있어 그의 학문적 깊이를 추측 할수있다. 박학다재하여 선생님 임종일 아침 천문과 궤를 보아 불길함을 예측하자. 제자들이 탄식을 했다는 일화도 있다. 30세때 선생님의 지시로 혼천의. 선기옥형. 을 만들었으며 이순신의 거북선 설계도 간재공이 했다는 설이있다. 여러모로 신빙성이 있어 보였다. ``구갑선도`` 란 도면인데 사진으로 봐도 비슷했다. 유추하건데 충무공형 이요신은 선생할 뱀 문도 였는데 그를 통해 전해졌다는 설.... 서애공을 통해 전해졌다는 설이 있으나 아뭏튼 일리가 있어 보였다. 공의 수학하던 시절 워낙 궁핍하여 많은 고생을 하였으며 서애의 형 겸암공 으로 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합니다. 선생님의 그림자 같은 제자로서 평소 선생님의 의중과 가족사등을 적은 `계산기선록` 을 간행하였다. 선생님 임종시 서책관리를 명받을 만큼 신임도 컸다. 또 어느 누구보다도 선생님의 의중을 잘아는 측근 이었다. 선생님 하세후 산성 큰산소 묘지서를 지었는데 자손록과 더불어 남아있다. 간재공 사후 오계서원에 배향되었으며 영천이씨 불천위로 모셔져 있다. <시심마님 글 가져옴
첫댓글 잘 보았습니다.
좋은 작품 감상 잘하였습니다....행복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