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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와 백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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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해석 및 시 맛있게 읽기 스크랩 자본주의의 약속 / 함민복
은하수 추천 0 조회 84 14.10.30 15:3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자본주의의 약속 / 함민복

 

혜화동 대학로로 나와요 장미빛 인생 알아요 왜 학림다방 쪽 몰라요 그럼 어디 알아요 파랑새 극장 거기 말고 바탕골소극장 거기는 길바닥에서 기다려야 하니까 들어가서 기다릴 수 있는 곳 아 바로 그 앞 알파포스타칼라나 그 옆 버드하우스 몰라 그럼 대체 어딜 아는 거요 거 간판좀 보고 다니쇼 할 수 없지 그렇다면 오감도 위 옥스퍼드와 슈만과 클라라 사이 골목에 있는 소금창고 겨울나무로부터 봄 나무에로라는 카페 생긴 골목 그러니까 소리창고 쪽으로 샹베르샤유 스카이파크 밑 파리 크라상과 호프 시티 건너편요 또 모른다고 어떻게 다 몰라요 반체제인산가 그럼 지난번 만났던 성대 앞 포트폴리오 어디요 비어 시티 거긴 또 어떻게 알아 좋아요 그럼 비어 시티 OK 비어시티--

 

- 시집『자본주의의 약속』(세계사,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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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집이 나온 지 20년도 넘었으니 시 속에 등장하는 간판의 상호도 지금쯤 많이 바뀌었을 것이다. 누군가와 약속을 잡는 과정에서 상대편 통화 내용이 그대로 시가 되었다. 지금의 함민복 시인은 늦장가도 들었고 강화도에서 부인과 인삼장사를 하면서 예전에 비해선 훨씬 안정된 생활을 꾸려가고 있으리라 짐작된다. 하지만 과거엔 세상물정이 어두워 경제적으로 곤경을 겪는 등 요철이 심한 삶을 꽤 오랫동안 살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기능사 자격증을 따고 공고를 졸업해 원자력 발전소에 취업해 일하다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이 있고, 형님이 대준 등록금으로 만학을 하면서 신춘문예에 실패한 습작시를 불태운 일이 있는가 하면, 카페에서 일한 경험도 있고, 몇 백 마리의 돼지를 키운 적도 있다. 이러한 개인 정보들은 모두 그의 시를 읽으면 알 수 있는 것들이다. 그의 시 안에는 그의 삶이 고스란히 들앉아있어, 구체적인 일상에서 비롯된 체험이 ‘구라’없이 진정성으로 독자들에게 전달되는데 한 개인이 겪은 삶의 현장을 들여다보는 은밀한 즐거움이 작지 않다.

 

 시인의 고단한 삶과 가난에 대한 추억은 자주 ‘어머니’란 존재를 매개로 환기되지만 이 시는 자본주의의 상징인 저 많은 상호들에 대한 선망과 조롱이 자조하듯 풍자되고 은유되었다. 그의 또 다른 시에서는 ‘광고의 나라에 살고 싶다/ 사랑하는 여자와 더불어/ 아름답고 좋은 것만 가득 찬/ 저기, 자본의 에덴동산, 자본의 무릉도원’이라면서 폼 나는 생을 살고 싶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냐고 한다.

 

 광고는 개인에게 거짓 욕망을 불어넣는 산업사회의 압도적인 충동 양식이다. 욕망을 왜곡시켜 광고에 노출된 일부만을 견인하는 소외의 양식이기도 하다. 내일이 10월의 마지막 밤이니 어쩌니 유난을 떨고 있는데 늘 그렇듯이 냉정하게 보면 상술이 탑재된 자본주의의 한 단면에 지나지 않는다. 이 시에선 소외의 양식이 도시적 삶의 일그러진 경험의 표본으로 그려졌다. 다들 나 좀 먹여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지만 솔직히 어떤 광고를 볼라치면 경제적 약자로서는 열불이 날 때도 있다.

 

 어제 대통령의 시정연설은 예의 '경제 활성화'를 내세워 이 시의 화자처럼 자신이 알고 있고, 하고 싶은 말만 일방적으로 잔뜩 늘어놓았다는 느낌을 떨치지 못하겠다. 지난번 '대박'이란 시중의 유행어에 이어 이번엔 세월호 때문에 회자된 '골든타임'이란 외래어를 구사하였다. 정부의 책임과 반성보다는 국회로 공을 떠넘기면서 국민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듯한 발언도 없지 않았다. 물론 그 가운데는 공무원연금 개혁, 방산비리 척결 등 꼭 필요한 다짐도 포함되어 있고 장미빛 미래도 담겨있다. 그러나 정작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된 현안은 모두 피해버리고 '경제'를 볼모삼은 '유체이탈'식 청사진만 갖고서 이 난국을 돌파할 수 있을지 걱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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